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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239화 (23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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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흐윽…….”

한참을 울던 유진아는 이제 약간 진정이 되는지 울음이 잦아들었다. 등을 두드려주던 시황의 손도 점점 느려졌다.

“이제 됐어요.”

유진아가 눈을 벌겋게 한 채로 시황의 품에서 벗어났다. 여전히 겁에 질려있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아까 전에 비하면 많이 괜찮아져있었다.

“여기는 슬슬 밤이네요.”

해가지면서 노을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상쾌한 바람이 일며 잠잠하던 바다에 작은 파문이 인다. 이 상태만 보면 무인도에 피서라도 온 모양새지만 유진아는 이런 감상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앞으로 보이는 건 배 하나 지나가지 않는 망망대해, 뒤로는 뭐가 있을지 모르는 거대한 숲뿐. 믿을 수 없게도 자고 일어나니 정말 무인도였다. 처음엔 꿈인가 했지만 가슴 시리게 느껴지는 이 현실감은 두려움과 절망만을 줄 뿐이었다.

“전부 당신 때문이잖아!”

유진아가 시황을 노려보며 말했다. 두려움과 절망감이 분노가 되어 날아간다.

“네?”

“당신이, 당신이 그 이상한 차를 마시게 해서 그런 거잖아! 다 너 때문이라고!”

유진아가 비명을 지르듯 시황에게 소리쳤다. 모든 건 시황 때문이었다. 너무나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죄송해요. 설마 이렇게 될지는 몰랐어요.”

시황은 도리어 화내기보다 일부러 미안한 척을 했다.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할 거냐고! 여기서, 여기서 영원히 못 돌아가 가기라도 하면……. 흑…….”

한참 화를 내던 유진아가 다시 눈물을 주룩 흘린다. 두려움 때문에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토해져 나오는 감정에 휩쓸리다 보니 아까 오줌 싼 것도 모르고 지린내 나는 바지를 계속 입고 있다. 평소 때의 유진아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밤이니까 어디 몸이라도 피할 곳을 찾고 나서 생각해보죠.”

“왜! 왜! 왜 내가 널 따라가야 하는데? 다 너 때문이잖아. 내가 지금 널 얼마나 죽여 버리고 싶은지 아냐고!”

유진아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친다. 이글거리는 눈은 마치 시황을 죽일 듯한 분노로 차있었다. 두려움과 절망감이 전부 시황에 대한 분노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여기 계세요. 제가 숲에 들어가서 쉴 곳이 있나 찾아볼게요.”

유진아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었지만 시황은 화를 내지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 현실에서 이렇게 욕을 먹으면 화가 나겠지만 지금은 유진아를 속이고 있는 중이다 보니 딱히 화가 나지 않는다. 친구에게 장난칠 때 욕을 먹어도 화가 나기보다는 재미만 더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였다.

시황은 유진아를 두고 숲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어차피 숲에는 귀여운 동물들만 있는 걸 알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졌다고 해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야! 어디 가는 거야!”

그런데 시황이 어두컴컴한 밤에 숲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화가 잔뜩 나있던 유진아가 약간은 겁먹은 목소리로 시황을 불렀다. 정말 시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지만 혼자 있는 건 그보다 더 싫었다.

“같이 가실래요? 일단 쉴 곳이랑 먹을 걸 찾는 게 급하거든요.”

“내가 왜 네 말에 따라야 하는데? 미친 거 아냐?”

“진아 씨 일단 진정부터 하세요. 그리고 저한테 화나신 건 알지만 반말은 조금 그렇지 않나요? 그래도 제가 나이가 더 많은데…….”

“뭐? 어쩌라고 그러면 너도 반말하든가! 짜증나네. 짜증난다고. 진짜.”

어제만 해도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유진아는 공포와 분노, 스트레스로 엄청난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었다. 진정되는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 같다.

“그러면 그렇게 할게. 하여튼 따라올 거면 따라오고 아니면 기다리고. 마음대로 해.”

“야! 야!”

시황이 숲으로 걸어가자 유진아가 크게 시황을 불렀다. 하지만 시황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숲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진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시황을 따라서 저 위허해 보이는 숲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가만히 있기도 싫었다. 잠시 동안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던 유진아는 오줌 싼 잠옷을 입은 그대로 시황의 뒤를 쫓아 숲으로 들어갔다.

“야! 너는…….”

“쉿. 위험한 짐승이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시황을 보며 유진아는 흠칫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시황의 말대로 하기는 싫었지만 정말 위험한 짐승이라도 나오면 큰일이었다.

시황은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척 했다. 아까 콘즈와 숲을 돌아다녀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빠르게 일을 전개해날 생각은 없었다.

“악!”

불만과 짜증, 분노가 가득한 표정으로 시황을 쳐다보며 걷던 유진아가 갑자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다쳤어?”

“짜증나.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유진아는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맨발을 살폈다. 약간 뾰족하게 나온 돌멩이를 밟았지만 딱히 상처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맨발로 모래사장과 흙을 밟아 발이 잔뜩 더러워져 있었다.

“그러면 일단 물부터 찾아보자. 네가 오줌 싼 바지도 씻어야 하니까. 계속 그렇게 냄새나게 다닐 수는 없잖아.”

직설적인 시황의 말에 유진아가 자신의 바지를 쳐다봤다. 거기엔 달빛만 있는 어둠 속에서도 확인이 가능할 만큼 바지의 가랑이 부분이 노랗게 얼룩진 데다 축축해 있었다. 언제 오줌을 쌌는지 알지도 못했고 이때까지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너, 너…… 정말……. 흑…….”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워 유진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더듬 거리다 눈물을 흘렸다. 두려움, 공포, 분노,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복합되어 너무나 서러웠던 것이다.

성인 남성도 이런 상황에 놓이면 정신을 놓을 정도로 혼미해질 텐데 평생 온실 속의 천념기념물마냥 자라왔던 유진아가 멀쩡히 견딜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울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거 같아?”

“다 너 때문이잖아 흑……. 그것도 모르면서……. 흑…….”

시황의 냉정한 말 유진아가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 시황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 따윈 없었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자기한테 화를 내니 억울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나온다.

“계속 울든가 따라오든가 알아서 해. 난 간다.”

이럴 땐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로 위로를 해줘야 하는데 시황이 냉정하게 가버리자 유진아는 서럽게 울면서도 당황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울고 싶었는데 여기에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두려워서 울 수도 없다.

“흑……. 집에 돌아가면 가만 안 둘 거야…….”

눈물을 닦은 유진아는 숲으로 들어간 시황의 뒤를 쫓아갔다. 바닥에 있는 나뭇잎과 풀, 돌 등이 발바닥을 아프게 자극했지만 시황이 워낙 빨리 걸어서 중간에 멈추고 발바닥을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근처에서 물소리가 들리는데?”

약간은 큰 섬이다 보니 산까지는 안 되더라도 제법 높은 언덕이 있었다. 섬들의 주요위치를 알고 있는 시황은 여기저기 찾는 척 하면서 지하수가 솟아나는 호수의 근처로 갔다.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흔히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물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주의를 기울였다.

“아파…….”

얼마나 울었는지 눈과 코가 새빨간 유진아가 발을 만지면서 말했다. 시황을 쫓으면서 빠르게 걷는다고 발이 너무 아팠다. 중간에 시황에게 천천히 가라고 외쳤지만 시황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저긴가?”

시황이 걷자 유진아도 따라서 숲을 걸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시황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발이 아파오자 다시 눈물이 찔끔 난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찾았다.”

주변에 가득하던 나무가 사라지고 호수가 나타났다. 생각보다 크고 깊어 보이는 호수였다. 달을 머금은 잔잔한 호수는 주변에 피어난 꽃들과 조화되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하지만 유진아는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기 보단 이제 더는 안 걸어도 된다는 안도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평생 맨발로 걸어 본 적이 없으니 조금만 걸어도 발이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웠다. 오줌을 싸서 더러운 것도 더러운 거지만 고통을 더 견디기가 힘들었다.

“목마르면 물 마셔. 여기는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으니까.”

시황이 호수에서 물을 떠 마시며 말했다. 손발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호수물은 굉장한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시황을 노려보던 유진아는 별다른 말없이 시황과 약간 떨어진 곳에 가서 물을 마셨다. 간만에 지치도록 걸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꿈이라면 얼른 깼으면 하는 생각 밖에 안 든다.

“그렇게 노려봐도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이렇게 될지는 몰랐어.”

“그걸 말이라고 해? 너 때문에 지금 내가 무슨 꼴을 당하고 있는지 아냐고!”

“소풍 왔다고 생각해. 경치도 좋잖아.”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느긋하게 말하는 시황을 보며 유진아가 다시금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지금 영원히 이 이상한 곳에 살아야 할지도 모를 판인데 소풍이라니?

“화내봐야 여기서 집으로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 때문에 이런데 온 거 같아서 미안하기도 한데 애초에 내가 하나도 빠짐없이 사실을 다 말해줬는데도 네가 그런 건 미신이라고 나한테 화내면서 차를 마셨던 거잖아? 그러니까 다시 집에 돌아갈 방법이나 찾아보자고.”

“너, 너…….”

유진아가 몸을 부들부들 떤다.

“그리고 난 너를 싫어하면 싫어했지 좋아하진 않으니까 호의 같은 건 바라지 말라고. 난 내가 할 것만 할 테니까 먹을 거나 입을 건 알아서 구해.”

“어, 어떻게 그런 말을……. 너 때문에 여기에 왔으니까 네가 책임져야 할 거 아냐! 양심이 있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싫어하면 싫어했지 좋아하진 않는다고? 난 널 지금 죽이고 싶을 만큼 싫거든? 막노동이나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으니까 그따위 인성을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혼자 알아서 하라고. 네 말대로 난 막노동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인성이 별로 안 좋으니까.”

중간에 유진아의 말을 끊은 시황이 순간 욱해서 소리쳤다. 이런 데까지 와서도 상황파악 못하고 부모님에게 막말을 하는 유진아를 보니 이젠 측은지심까지 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유진아가 저런 비뚤어진 사고와 거만함을 가진 건 교육이 잘못 돼서다. 물론 그래봐야 결국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유진아니 유진아를 안 미워할 수는 없긴 하다만.

“그럼 여기서 헤어지자. 난 알아서 갈 테니까 너도 알아서 가.”

“야! 어디가! 어디 가냐고! 악!”

시황은 분노에 찬 유진아를 놔두고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유진아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발이 아파서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설마 진짜 간 건가 싶어 시황이 사라진 숲 속을 쳐다봤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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