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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237화 (237/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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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20억이 합리적인 가격은 아닌 듯 하군요.”

“감정서도 없는 정체불명의 다이아몬드를 20억에 사는 건데 충분히 합당한 가격 아닌가요?”

100억도 우스운 최상급 중의 최상급인 레드 다이아몬드를 20억이라는 가격에 사겠다라는 말을 하며 유진아가 가볍게 웃었다. 그건 일종의 협박이었다. 유진아는 시황이 레드 다이아몬드를 정당하게 얻었다고 생각자체를 안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물로 취급하고 이렇게 나오는 거였다. 이후로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만약 거절을 하게 된다면 유진아가 가진 힘으로 상당히 짜증나게 할 게 분명했다.

이 레드 다이아몬드를 시황이 정당하게 얻었더라도 그건 다른 행성에 존재하는 로즈린과의 거래였기 때문에 적합한 절차로 얻었다고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여기에 유진아의 힘까지 결합되면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하다.

얼굴은 예쁘고 귀품이 있을지 모르나 하는 짓이나 생각하는 게 역겹기 그지없다.

“가격에 대한 얘기보다 제가 먼저 이 다이아몬드를 어디서부터 얻었는지 설명을 해야겠군요.”

시황의 말에 유진아가 약간은 호기심이 간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여자와 다르게 연예인처럼 청담동 샵에서 관리를 받는지 부드럽게 웨이브 진 머리와 완벽하게 먹은 화장이 범상치 않은 여자라는 걸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데 연예인이라는 느낌은 아니고 대충 봐도 부잣집 따님 같아보였다.

무릎 위에 있는 손으로 라면이라도 끓여봤을지 의문이다.

“제가 얘기하기 전에 차 한 잔 드시지 않겠어요?”

“차요?”

갑작스런 시황의 말에 유진아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유진아가 미간을 찡그리든 말든 시황은 신경 쓰지 않고 가방에서 고급스러운 유리병을 꺼냈다. 평범한 종이곽이 든 차와 다르게 겉보기만 해도 고급 차라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유진아는 약간은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본다.

“처음 보는 차군요.”

“마셔보시면 더 마음에 드실 겁니다.”

시황은 부엌에 가서 커피포트로 물을 끓인 뒤에 유진아가 가져온 다기로 차를 만들었다. 차를 마시는 예절에 따라 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다기였지만 그런 걸 모르는 시황은 적당히 찻잔에 차를 따랐다.

약간은 달콤한 향기가 퍼져나간다. 그저 냄새만 맡아도 마음이 차분해질 정도로 은은하면서 그윽한 향기다.

“향기가 좋군요.”

“그만큼 신비로운 효과가 있는 차이기도 하지요.”

시황의 말에 유진아가 흠칫한다. 혹시 이상한 거라도 탔나 싶은 표정.

“제가 이 보석을 얻은 건 우연히 이 차를 얻으면서였습니다.”

찻잔을 유진아에게 건네준 시황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무적이고 딱딱하던 분위기가 달콤하고 은은한 차의 향기 때문에 약간은 부드러운 분위기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어떤 찻집에서 나오는 좋은 향기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찻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찻집엔 손님이 저밖에 없었지만 웃는 미소가 순박하신 늙은 할머니가 절 맞아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차를 추천해주셨는데 마시게 되면 큰 행운이 올 거라고 하더군요.”

시황은 차를 한잔 마셨다. 마치 신비로운 이야기를 하는 듯 목소리를 낮으면서도 부드럽게 얘기했다. 유진아도 그렇게 지루하진 않은지 나름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지만 그다지 썩 믿는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전 당연히 믿지 않았지만 차 맛이 워낙 좋아 나올 때 유리병에 든 찻잎을 사서왔습니다. 그런데 그 차를 마셔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유독 나른하고 피곤하더군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바로 잠을 청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전 알 수 없는 무인도에 있었습니다.”

“풋. 그건 어디 이야기죠?”

“제가 겪은 일입니다. 워낙 황당하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좋아요. 계속해 보세요.”

유진아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시황은 전혀 웃지 않고 약간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전 너무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도 몰랐으니까요. 처음엔 꿈인 줄 알고 당연히 깰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되니 너무나 배가 허기져서 무인도를 돌아다니며 과일을 따먹고 물고기도 잡아서 먹기도 했습니다.”

시황은 목이 타는지 중간에 차를 마시고 말을 이었다.

“이대로 평생 무인도에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자리라도 찾을 겸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찾은 동굴에서 지금 있는 이 레드 다이아몬드의 반지와 목걸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나마 사람의 흔적을 알게 되어 전 약간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결론이 뭐죠?”

이젠 약간 지겨워졌는지 유진아가 약간은 날카롭게 말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 빨리 보석 거래를 하는 게 훨씬 중요했다.

“다 됐습니다. 이제 마지막이에요. 그날 밤 저는 이 다이아몬드를 품에 안고 잤습니다. 다음날 사람의 흔적이라도 발견하길 기원하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전 제가 누워있던 침대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지저분한 옷과 이 다이아몬드가 있는 채로요.”

“그러니까, 결론은 이 차를 마시고 이상한 무인도에 가서 이 레드 다이아몬드를 구했다는 건가요?”

“역시 머리가 좋으셔서 단번에 이해하시는군요. 그 뒤로 제 인생은 완벽하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풉. 그러면 지금 그 차를 마셨으니까 또 이상한 무인도로 가시겠네요? 그리고 그렇게 위험한 차를 저한테 권한거구요.”

“그렇게 되나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꿈인가 싶기도 하고 아리송하군요. 사실 그 뒤로 또 보석을 구하고 싶어서 차를 마셔봤는데 그 무인도로 가지는 못했거든요.”

아까까지만 해도 그래도 거만하고 얕잡아 보기는 해도 사람을 보는 눈이었는데 지금은 약간의 멸시를 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정신이 나간 거 아닌가 하는 혐오스러운 표정도 조금 섞여있다.

“무서우시면 안 드셔도 됩니다. 혹시라도 유진아 씨가 그런 경험을 하실 수도 있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전 단지 이 보석을 팔기 전에 이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경멸하는 게 뭔지 아세요?”

“글쎄요?”

“그런 허무맹랑한 미신이에요.”

유진아는 시황을 노려보며 말하고는 차를 마셨다.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과 허무맹랑한 소리에 짜증이 났던 것이다. 저런 멍청한 남자가 수면제 같은 걸 차에 탔을 리도 없고 설령 탔다고 하더라도 잠들기 전에 바깥에 있는 보디가드들에게 소리치면 그만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가치 없는 게 그딴 말도 안 되는 믿음이에요. 왜 그런 신비한 일은 이 6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그 당사자에만 일어나는 걸까요? 안 그래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요? 결국 그런 미신은 돈 없고 가난한 자들이 현실에서 불가능하니 그런 헛된 믿음에 기대는 것일 뿐이에요.”

차를 다 마신 유진아는 약간은 흥분해서 마치 불신지옥을 외치는 노인에게 말하듯 시황에게 소리쳤다. 시황이 하도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니 참기가 힘들었던 것 같았다.

“하하. 그렇게 이 얘기를 싫어하실지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그건 없었던 걸로 하고 다시 거래 얘기를 계속하죠.”

“앞으로 내 앞에서 그런 이상한 얘기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에요. 당신도 이제 정신을 차리는 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어요?”

시황보다 나이도 어린 유진아가 경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시황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까 전의 그 기분 나쁜 도도함보단 오히려 저 표정이 좀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하암…….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나른하고 잠이 오는군요. 설마 그 차를 마셔서 그런 걸까요? 견디기가 힘이 들 정도군요.”

“이봐요! 그딴 장난…….”

시황이 잠드는 척 소파에 쓰러지는 순간 화가 나서 소리를 치려던 유진아의 눈이 멍해졌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망막과 생기를 잃은 무표정함은 잔다기보다는 전원이 끊긴 인형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딱 맞췄네.”

아까 한 시황의 헛소리는 그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었다. 유진아가 경계해서 차를 안 마실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나중을 위한 일종의 복선이기도 했다.

하지만 차에 이상한 섬으로 가는 효과는 없어도 마신 사람이 잠시 동안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효과는 있었다. 정신을 잃었었다는 표현보다는 인형이 되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이 차도 마법 저항력이 약간이라도 있는 상대에게는 먹히지 않아 낮은 레벨로 정해져 있었는데 이 지구에는 시황을 제외하고는 마법 저항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했다.

시황은 다이아몬드를 놔둔채 재빠르게 유진아가 잠을 자는 침실로 갔다. 넓은 빌라이기는 했지만 어디서 자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유진아가 자는 침대 옆에 문을 소환하고 바로 들어갔다. 저 차는 효과가 빠르고 강력하지만 그만큼 지속력이 짧아 조금만 방심하면 지금 하는 짓이 다 들통 날 가능성이 있었다.

시황은 케즈론의 성으로 건너가 문을 열어둔 채 거실에서 나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다.

“치면…….”

차의 효과가 풀렸는지 유진아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며 바로 크게 소리친다. 그런데 눈앞에 있어야 할 시황이 사라진 걸 발견한 순간 유진아의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시황이 잠이 온다면서 쓰러진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눈을 뜨고 있는데 마술도 아니고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유진아는 다이아몬드를 봤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아름답던 다이아몬드였는데 지금은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든다.

혹시 시황이 이상한 짓을 하는 건가 싶어 신발장에 갔는데 신발도 그대로였다. 다시 소파에 돌아온 유진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 쉬고 있는 보디가드들에게 물어봤다.

“혹시 아까 들어온 남자 나가는 거 보셨나요?”

“네? 아니요. 아무도 안 나갔습니다.

분명 아까 시황에게 미신이라고 소리까지 쳤는데 어째서인지 손이 약간 떨린다. 입술을 깨문 유진아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여기저기를 다 둘러봤음에도 시황이 없었다. 레드 다이아몬드를 놓고 사라졌지만 어째서인지 기뻐할 수가 없었다.

탁자에 올려진 찻잔으로 눈이 간다.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너무 나빠 차를 전부 싱크대에 버려버렸다.

이상하게 초조하고 기분이 나빠서인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게 된다.

이런 유진아의 분주한 움직임을 느낀 시황은 피식 웃었다. 미신이라는 건 돈 없고 가난한 자들이나 믿는 거라고 소리치더니 직접 당하니까 제법 긴장이 되나 보다. 일단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면 유진아가 자는 새벽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유진아의 저 오만하고 거만한 생각이 자신에게만 향하지 않았으면 상관이 없었을 텐데 협박까지 하고 부모님을 욕하는 말을 들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꼭 저 오만함과 거만함을 고쳐주고 말리라.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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