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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236화 (236/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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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시황과 악수를 한 유진아가 시황을 슬쩍 훑어본다. 그다지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본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눈 끝이 손에 들고 있는 가방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멋있으신데요?”

평소라면 이런 말을 들어도 별 다른 생각을 안 했겠지만 유진아가 한 말은 노골적 무시라는 걸 시황은 알고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일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서 얼굴도 못생겼을지 알았는데 직접 보니 나름 괜찮다는 말이었다.

과장해서 해석을 한 게 아니라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게 딱 그런 의도가 맞았다.

“그런가요? 유진아 씨도 생각보다 아름다우시네요.”

“못생긴 건 아니라는 거죠?”

맞받아치는 시황에게 유진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기분 나쁠 법도 한데 유연하게 넘기는 게 자신감과 여유가 넘쳐 보였다. 궁색 맞게 살던 자신의 과거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모습에 시황도 엷은 웃음을 지었다.

유진아의 얼굴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을 하기 보단 고귀하다라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렸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만큼 짓는 표정이 도도하면서 자신감이 넘쳤다. 거기다 관리를 잘 받았는지 희고 고운 피부 때문에 옛날의 자신이라면 말을 걸긴커녕 멀리서 슬쩍 훔쳐보기나 했을 정도였다. 능력이 있고 잘 생긴 사람은 모르겠지만 별 다른 능력도 없고 얼굴도 별로라면 단지 얼굴이 엄청 예쁘기만 한 여자라도 차마 말을 걸기가 버거운 것이다.

“들어가죠.”

유진아가 앞장서서 빌라의 문에 있는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갔다. 제법 굽이 높은 하이힐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있는 유진아의 집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게 엄청 최신식 건물 같지는 않아서 의외로 평범하게 사나 싶었는데 내부가 말도 안 되게 넓고 좋았다.

인테리어를 완전히 새롭게 한 자신의 집과 비교해도 더 좋았고 넓기도 비슷하게 넓었다. 거의 70평은 넘는 거 같은데 설마 혼자서 이런 게 큰 집에서 사나 싶었다. 혼자 살기엔 넓어도 지나치게 넓다.

“집이 넓고 좋군요.”

“붉은 다이아몬드를 가지신 분이 이런 거에 놀라실 줄은 몰랐군요.”

시황이 약간 감탄하며 말하자 유진아의 눈이 휘어지고 미소를 띠며 말한다. 짧은 한마디지만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시가로 환산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보석을 가져놓고 이런 거에 놀랄 수가 있냐라는 의미를 단번에 이해한 시황의 입매가 조금 비틀린다.

그런데 거실로 걸어가자 소파에 중년으로 보이는 말끔한 인상의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 뒤에는 보디가드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둘이 중년인 뒤에 서있었다.

“앉으세요.”

시황은 유진아가 가리키는 대로 중년인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케즈론의 성에 있는 소파만 못한 느낌이지만 평범한 소파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질 좋은 푹신함이 느껴진다.

“바로 감정해보죠.”

유진아의 말에 시황은 가방에서 보석함을 꺼내 탁자에 올린 뒤에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은비가 착용했던 레드 다이아몬드 반지와 목걸이가 아름다운 광채를 내며 우아한 자태로 놓여있었다.

“호오…….”

유진아의 눈에서 호기심이 일렁인다. 약간은 무시하듯 도도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시황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이었다.

“아가씨, 감정해보겠습니다.”

중년인이 공손하게 말을 하자 유진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중년인이 흰색의 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레드 다이아몬드를 쥐어 감정기에 올려놓는다. 현미경과 비슷하게 생긴 감정기로 다이아몬드의 투명도와 내외부의 결함, 연마 정도를 세심하게 살핀다.

“호오…….”

다이아몬드를 감정하는 중년인에게서 낮은 감탄음이 나온다. 사실 시황이 다이아몬드를 만든 것도 아니고 로즈린을 치료해주고 받은 것뿐이라 정확한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진품일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상태에 따라서 워낙 가격 차이가 심한 것도 다이아몬드인지라 약간 긴장은 된다.

중년인은 감정을 다 했는지 현미경에서 눈을 뗀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다이아몬드는 4가지 기준으로 판단을 하고 등급을 매깁니다. 컷과 중량, 투명도, 컬러인데 이 레드 다이아몬드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우수해서 투명도에서 F…… 아니 간단히 말해서 투명도와 컷이 완벽합니다. 제가 이때동안 감정한 그 어느 다이아몬드보다 뛰어난데 그 희귀하다는 레드 다이아몬드에다 어림짐작만 해도 7캐럿은 넘어 보이니……. 가격이 얼마나 나갈지 상상조차 안 가는군요. 정확한 가격을 제가 말씀 드리긴 어렵고 경매로 부치는 수밖에…….”

“그렇게나 좋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전 세계를 다 뒤져도 이렇게 품질 좋은 레드 다이아몬드를 찾기가 어려울정도입니다.”

“흐음……. 그렇군요.”

시황은 감정사의 결과를 듣고 흐릿한 미소만 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는 유진아 때문에 기분이 급격할 정도로 나빠져 있었는데 감정 결과를 듣자마자 파안대소가 터져나올 뻔 했다.

유진아도 결과에 제법 놀랐는지 이마가 약간 찡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보통 드라마나 영화라면 유진아 같은 인물이 저런 감정사에게 뒷돈을 주고 다이아몬드가 안 좋다는 식으로 감정을 하게 했을 텐데 그런 비열한 짓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는 게 영화처럼 유진아가 깡패도 아니고 협박을 해서 다이아몬드를 갈취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공신력 있는 감정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현실도 영화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펙타클하기 때문에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권력을 믿고 깡패를 동원하여 정말 막나가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진아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 했다. 인성이야 어떻든 제대로 된 감정 결과를 말하게 했으니까.

“그렇군요. 고마워요. 이제 가보셔도 괜찮아요.”

“네. 아가씨. 또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해주십시오!”

유진아의 말에 중년의 남성이 가져온 감정 도구들을 챙겨 90도로 인사를 하며 집을 나간다.

“여기 있는 시황 씨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당신들도 이제 나가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검은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덩치 큰 보디가드 둘도 집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봐도 퇴근을 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거실에 있던 사람들이 다 나가고 나니 시황과 유진아 둘만 남게 되었다. 보디가드들을 그냥 남겨두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쿨하게 바로 내보냈다.

“제 생각보다 더 좋은 다이아몬드였네요. 저도 좀 살펴봐도 될까요?”

“그러시죠.”

시황은 보석함을 밀어 유진아에게 건네주었다. 유진아가 조심스런 손길로 반지와 목걸이를 살펴본다. 딱히 허영심 때문에 그러는 거 같진 않은데 이상하게 보석에 관심이 많다.

“제 꿈이 뭔지 알아요?”

“글쎄요.”

포털 사이트 검색란에 장래희망이나 꿈이 적혀있을 리가 만무하니 아는 게 이상했다. 단지 서두로 꺼낸 말이라는 건 알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답할 말이 딱히 없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보는 거에요.”

“명품 브랜드라…….”

유진아를 조사했을 때 서울대 의류학과라는 걸 알고 그런 쪽에 관심이 많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꿈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확실히 대기업 그룹의 회장 딸인 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는 꿈과 너무나도 동떨어져있었다.

“시황 씨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명 브랜드가 없어요. 여자들이 갖고 싶어 하는 샤넬이니 루이비통이 하는 건 전부 외국 브랜드죠.”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말하기가 좀 더 편하겠네요. 전 이번 시상식에서 시황 씨가 선보인 홍보 방식을 대단히 참신하다고 생각했어요. 런칭조차 하지 않은 브랜드인데 검색어 1위를 한 것도 모자라서 사람들 모두가 케즈론을 초고가 브랜드라고 인식했잖아요?”

“그랬나요?”

“흐응, 모르는 척 하실 필요 없어요. 당신이 비록 이 보석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활용법은 제가 놀랄 정도로 뛰어났다는 거에요. 물론 이런 단발성의 홍보는 제품이 따라주지 않으면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겠지만 정은비가 입었던 드레스의 디자인과 질감이 대단히 뛰어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케즈론이 초고가 브랜드라는 걸 알게 모르게 인식하게 돼버렸어요.”

유진아는 시황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생긴 건 그럴싸했지만 이미 시황의 가족과 과거 행적을 다 조사한 뒤였다. 부모님이 별 볼일 없는 막노동이나 한다는 것과 지방대 들어가서 그다지 학점이 좋지 않다는 점 등, 전형적인 하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카페를 내고 서울대 수석 합격을 하더니 말도 안 되게 비싼 레드 다이아몬드까지 소지를 하고 있었다.

로또에 당첨 되어 몇 십억을 가지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1년 정도 만에 일어난 시황의 변화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당한 방법이 아닌 무언가가 개입된 게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황을 믿지도 신뢰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이 보석을 저에게 파세요. 저라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브랜드를 만들 자신이 있어요. 레드 다이아몬드 자체가 희귀하기 때문에 이걸 홍보로 쓴다면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충분히 이슈가 되겠죠. 당신이 아무리 브랜드를 런칭해봤자 결국 그건 국내용에 지나지 않아요. 해외에 매점을 내고 물량을 생산할 능력이 전혀 되지 않죠. 그에 비해 저에겐 그런 능력이 있어요. 이 아름답고 값비싼 가치를 지닌 보석이 당신에게 있는 건 많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유진아가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 속에 자신에 대한 무시와 도도함, 거만함이 짙게 배어있어 시황은 배알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유진아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흔하디흔한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자기에겐 그럴 능력이 있다고 했지만 유진아는 정작 시황이 자신과 비교도 안 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단순히 조사한 시황의 집안과 과거 때문에 완벽하게 몇 단계 아래의 인간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능력이라……. 뭐 좋습니다. 이 보석, 얼마에 사실 거죠?”

“20억에 사도록 하죠.”

“20억이라…….”

상상을 초월하도록 낮은 가격에 시황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유진아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그저 미소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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