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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231화 (23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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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카페를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시황은 매일 부모님들에게 기계의 사용법과 어떤 방식으로 경영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나이가 나이이기도 하고 평생 커피라곤 인스턴트커피밖에 안 마셔본 분들이라 습득 속도는 조금 느리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해진 레시피대로 커피를 만들 실력은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도 별로 없는 현주가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제법 괜찮은 30대 초반의 여자 바리스타도 한명 구하게 되어 좀 더 편하게 카페를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집도 그렇게 넓은 평수는 아니지만 근처에 있는 아파트 단지 중 20평 중반대로 하나 구할 수 있었다. 시황은 좀 더 큰 집을 사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은 그 정도로도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말해서 어떻게 더 권할 수가 없었다.

새로 산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바꾸고 도배를 새로 하고 전자제품을 구입하다보니 어느새 대학 합격 발표 날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오빠 괜찮을 거예요. 오빠가 합격 못 하면 누가 합격하겠어요?”

“고마워. 찬미 말대로 합격했으면 좋겠네.”

부모님은 은지와 지숙에게 맡겨두고 시황은 찬미의 집에 와서 컴퓨터에 앉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도 은근히 떨린다.

“헐, 오빠 제가 막 떨려서 쓰려질 거 같아요.”

옆에서 시황보다 더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미가 말했다. 유미는 성균관대 최초 합격은 못 했지만 이미 중앙대와 건국대 최초합격을 했고 성균관대도 추가 합격이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다.

“내 시험 발표인데 왜 네가 더 긴장해.”

시황은 유미의 볼을 살짝 꼬집어주며 말했다.

“당연히 긴장되죠. 전 나중에 오빠랑 결혼할 건데요. 부인이 남편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에요?”

유미는 감히 그 누구도 꺼내지 못한 민감한 문제를 아주 간단하게 얘기했다. 이제 성년이 되는 나이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졸업도 안 한 고등학생이다 보니 오히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유미 부모님하고도 만나야 하는데…….”

“부모님한테 결혼 허락 받게요? 아싸! 오빠 전 결혼할 때 막 엄청 화려하게 안 해도 괜찮아요. 인터넷에서 봤는데 남자들이 그런 문제로 엄청 부담 느낀대요. 이런 것도 알고 저 완전 개념녀죠?”

유미는 좋아죽겠다는 표정으로 시황을 껴안으면서 조잘조잘 얘기했고 찬미는 정말 결혼허락이라도 받으려고 하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행복하게 살길 응원해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가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찬미의 두 눈이 심하게 떨리고 얼굴이 잔뜩 굳어버렸다.

“으이구, 유미는 아직 결혼하기 너무 이르지. 좀 더 사회생활을 해보고 결혼을 해야 되지 않겠어?”

“힝, 지금 바로 해도 괜찮은데.”

시황의 말에 유미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반대로 찬미는 안도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라고 생각을 했음에도 유미랑 시황이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표정 관리가 힘들 정도로 가슴이 덜컥했다.

“그럼 부모님은 왜 보려고 해요?”

“서울에 올라가는데 부모님이 자취방 구하려고 하실 거 아냐? 아니면 기숙사에 넣으려고 하실 수도 있고. 그런데 유미는 조만간 우리 화장품 모델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만나기도 힘들고 그렇잖아. 유미랑 찬미를 위해서 내가 서울에 집까지 사놨는데.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고 허락받게.”

“아. 맞다. 그렇구나. 근데 그렇게 말하면 부모님이 허락해 주시려나. 저희 부모님이 은근히 좀 깐깐해서 오빠랑 같이 산다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할 거 같은데……. 그냥 제가 몰래 거짓말할게요. 언니는 어차피 알아서 집 구하라고 할 테니까 저만 잘 말하면 되거든요.”

시황의 말에 유미가 잠깐 고민을 하다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가 사는 집에서 살 게 허락을 해줄 거 같지 않았다. 좀 힘들긴 해도 그냥 거짓말을 하는 게 편할 거 같다.

“안 되지. 부모님한테 그렇게 거짓말하고 속였다가 나중에 들키기라도 하면 더 큰 일이 된단 말이야.”

“그래. 유미야. 부모님한테 차근차근 말씀드리고 허락받자. 내가 생각해도 거짓말은 안 좋을 거 같아.”

다시 평온해진 표정의 찬미가 시황의 말에 동조했다. 조그만 불길일 때 끌 수 있는 걸 괜히 숨겼다가 더 커지면 끄기도 버거워진다. 그리고 꼼꼼한 부모님의 성격상 거짓말을 해도 들통이 안 날 수가 없었다.

“힝, 허락 안 해줄 거 같은데.”

아까와 다르게 유미의 표정이 잔뜩 흐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락을 안 해줄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좀 있다 다시 얘기해보자. 발표 시간 됐네.”

시황은 유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에 서울대학교 홈페이지에서 합격자 조회를 했다. 그러자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던 유미와 찬미가 빠르게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주민등록번호를 치고 시황은 한 호흡 쉰 뒤에 확인 버튼을 눌렀다. 바로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고 잠시 멈춘 듯 있더니 잠시 뒤 축하합니다라는 팝업창이 떴다. 그리고 그 밑에는 그냥 합격이 아닌 전체 수석 합격이라는 글이 선명하게 새겨져있었다.

“헐, 대박.”

“오빠…….”

유미는 놀라서, 찬미는 감격해서 시황을 쳐다봤다.

시황도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감격에 잠시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합격을 할 줄은 알았고 전체 수석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기쁨을 넘어선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기쁨과 환희는 물론이고 고생했던 부모님에 대한 아련함 등 복합적인 감정에 눈물까지 살짝 감돌았다. 재수한다고 난리까지 쳐봤던 터라 이때까지 느꼈던 그 어떤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성취감을 맛 볼 수 있었다.

성적인 것이 아닌 원하는 걸 이루었을 때 느끼는 짜릿한 쾌감에 몸이 부르르 떨었다. 드디어, 드디어 해낸 것이다.

“고마워. 너희들 덕분이야.”

시황이 살짝 웃으며 말하자 찬미와 유미가 동시에 시황을 껴안았다. 유미는 놀랍고 대단한 감정에 그런 거지만 직접 시황의 공부를 가르치고 시황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았기 때문에 감동에 복받쳐서 눈물까지 조금 흘렸다.

“언니, 기쁜 날에 왜 울어? 평소엔 호랑이도 때려잡을 거 같으면서.”

유미가 눈물을 흘리는 찬미를 보고 놀렸다. 자신에게는 그렇게 잔소리하고 엄하게 하더니 지금 우는 모습을 보니까 평소의 찬미와 너무 달라 신기하고 웃기다.

시황은 그런 찬미를 살짝 껴안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평소라면 유미가 한 소리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찬미의 등을 두드려 줄뿐이었다.

잠시 분위기가 진정되고 다시 아까의 그 얘기로 돌아왔다.

“그냥 말하면 분명 우리 부모님 절대 안 된다고 할 건데. 오빠 그냥 나랑 사고 쳤다고 말할까요? 그럼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허락해줄 텐데.”

유미가 맹랑하게 말했다.

“유미야. 그런 말 하면 안 돼.”

“뭐, 어때서 어차피 나중에 오빠랑 결혼할 건데. 지금 말하나 나중에 말하나 똑같지 뭐.”

“안 그래도 어머니랑 아버지 마음 약하신데 그런 말 들으면 얼마나 충격 받으시겠어. 앞으로 그런 말 절대로 하지 마. 알겠어?”

“칫칫, 심술쟁이.”

찬미가 잔소리를 하자 유미가 툴툴거리면서 침대에 앉은 시황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리고는 시황의 손을 조몰락거린다.

“음, 그러면 이건 어때?”

“어떤 거요?”

유미가 고개를 돌려서 시황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랑 찬미랑 사귀는 사이라 하고 서울에 여동생이랑 같이 지내는데 방이 많이 남아 찬미랑 유미한테 무료로 쓰게 해준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잉, 싫은데……. 나랑 결혼한다고 말하는 건 안 된다 해놓고 왜 언니랑 사귄다는 거예요.”

유미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는 입이 살짝 튀어나온 상태로 시황에게 말했다.

“유미는 아직 성년도 안 됐고 고등학생이니까 사귄다고 말하긴 좀 무리지. 거기다 다른 사업 설명까지 곁들이면 부모님도 허락해주실 거 같은데? 찬미는 어때?”

“부모님이 저는 믿어주시는 편이니까 저도 그게 제일 괜찮아 보이는데. 유미가…….”

“힝…….”

유미의 입이 방금보다 더 튀어 나와 있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 방법이 맞는 거는 같았지만 왠지 찬미가 자기대신 부모님에게 결혼 허락을 받는 거 같아 허락하기가 영 내키지 않았다.

“유미야, 그냥 그런 척만 하는 거뿐이야. 이렇게 안 하면 아예 같이 살기가 힘든 걸. 유미 혼자 기숙사나 자취를 하고 싶진 않지?”

시황이 달래듯 말하자 그제야 유미의 입이 조금씩 들어온다.

“그럼 뽀뽀해줘요.”

“응?”

“뽀뽀해주면 허락해줄게요.”

“그래. 유미가 해달라는데 해줘야지.”

유미는 찬미한테 혀를 날름거리고는 시황을 보며 다시 입을 내밀었다. 아깐 기분 나빠서 나온 입이라면 이번엔 키스를 하기 위해 나온 입이었다.

시황이 유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갖다 대자 유미가 시황의 목을 팔로 휘감는다. 그리고는 평소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입술을 부비적거리다가 입을 살짝 벌려 혀를 내민다. 그러자 시황의 혀가 뱀처럼 유미의 혀와 얽힌다.

찬미는 멍하게 그 장면을 보기는 했지만 시황과 유미가 키스를 하는 걸 하도 많이 봐서 이젠 별다른 생각도 안 들었다. 다만 나중에 유미 몰래 자기도 시황과 키스를 해야겠다는 마음만 생겨날 뿐이다.

평소보다 길게 이어진 키스가 끝나고 유미는 다시 한 번 찬미한테 혀를 날름거리며 메롱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존경하고 좋아하는 언니라 이쯤에서 양보하는 거지 은지나 지숙이 그랬다면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은지나 지숙이 시황과 사귈 바에는 차라리 언니인 찬미랑 사귀는 게 2억 5천배는 더 나았다.

“진짜로 사귀는 게 아니라 흉내만 내는 거야. 언니, 알겠지? 그리고 오빠 곤란하게 행동해도 안 되고. 평소처럼 짜증내도 안 되고…….”

“알았어. 유미야. 그렇게 할게.”

유미가 하지 말라는 것들을 주절주절 읊어주자 찬미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비록 가짜로 사귀는 척 하는 거긴 하지만 유미의 허락 아래 사귀게 되니 평소와 다르게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진다.

유미의 허락을 받고 시황과 찬미는 어떤 식으로 말을 맞출지 정했고 유미도 옆에서 거들어 주었다.

**

원래라면 평온했어야 할 일요일 오전이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찬미의 집이 약간 시끌벅적했다. 찬미가 부모님에게 말해 일요일 오후 12시에 시황과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했었기 때문이다.

“찬미야, 어떤 남자니? 세상에 정말 우리 찬미한테 남자 친구가 있을 줄 몰랐네.”

“보면 알아.”

거실에 앉은 찬미가 엄마의 말에 조금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생긴 일 이후로 남자를 혐오하기 시작했고 부모님도 그걸 알고 항상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남자 친구 얘기를 꺼냈을 때 찬미의 엄마는 진심으로 놀라움과 기쁨이 섞인 표정을 지었고 그 이후로 수시로 찬미에게 남자 친구가 어떤 애냐고 물어봤었다.

“이상한 놈팡이 같은 놈이면 사귀는 거 절대로 허락 안 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그런 사람 아니거든! 아빠는 잘 모르면서 맨날 소리만 쳐.”

찬미를 걱정해서 일부러 엄하게 말한 아빠에게 오히려 유미가 한소리 했다. 하지만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딸이다 보니 찬미와 유미의 말만 듣고는 교제를 허락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얼마나 늑대 같은 놈들인데!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야. 아빠.”

“찬미야. 아빠 빼고 남자는 다 늑대란다. 성실하고 착해 보이는 놈도 속을 보면 완전 시커먼 게…….”

“으이구, 또 이상한 소리한다.”

아빠의 말을 끊은 찬미의 엄마가 핀잔을 준다. 같은 부모지만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 받아들이는 반응이 극도로 다르다.

띵동.

“앗! 왔다. 내가 나갈게.”

11시 50분 쯤 돼서 벨소리가 울리자 유미가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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