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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이른 아침. 시황은 아루와 함께 부모님 마중을 위해서 터미널로 갔다. 아침인데도 버스터미널 근처에 사람이 북적북적한다.
터미널 앞에 차를 세우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 차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만약 아루가 수 진의 백금 팔찌를 끼지 않았다면 힐끔 쳐다보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연예인이라도 왔나 싶어 몰려들 수도 있다 싶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고 팔찌를 준거였다.
아루와 함께 차에서 내려 잠시 기다리자 부모님이 탄 버스가 도착했다. 예정보다 10분 정도 늦었지만 아루와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딱히 지루한 건 없었다.
“엄마. 왔어?”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머, 아루 더 예뻐졌네. 우리 시황이가 나쁜 짓 하지는 않지?”
시황의 엄마는 아들인 시황은 본체만체 아루의 손을 잡고 얘기하기 바빴다.
“시황 오빠야 항상 잘 해주는 걸요. 걱정 마세요. 어머니.”
아루도 평소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웃으며 대답한다. 집에서 항상 귀여운 말을 하는 아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적인 모습이다.
“뭘 이렇게 가져온 거야.”
“오는 김에 반찬 좀 가지고 왔지.”
시황은 엄마에게서 반찬을 받아들고 부모님과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갔다. 시황의 차가 2도어 쿠페이다 보니 일반 4도어 세단처럼 편한 건 아니었지만 4명 정도는 큰 불편함이 없이 탈 정도는 됐다.
시트를 눕히고 아루와 엄마를 태우고 앞좌석 보조석에는 아빠를 앉혔다.
“일단 집에 들렀다 카페로 가자.”
카페에 들리기 전에 먼저 집으로 향했다.
“아빠. 카페 할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막노동 한 게 몇 년인데 그 정도 못할까.”
“일이 어려운 건 아닌데 그래도 알아야 할 게 많은데…….”
“걱정말거라.”
걱정이 가득한 시황을 보고 아빠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릴 때 그렇게 엄하던 아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너그러움이 가득한 표정이다.
집에 도착한 시황은 부모님을 데리고 오피스텔로 갔다. 숨기는 게 많다보니 가슴이 좀 두근두근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안녕하세요.”
“누, 누구니 시황아?”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란이 단정한 옷을 입고 시황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했다. 수란을 케즈론의 성으로 보내놓을까 하다가 괜히 그런 식으로 숨기는 것 보다 지금은 조금 피곤해도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실을 밝혀놔야 나중에 편할 듯 싶어서 한 결정이었다.
“아루 친구인데 나랑 할 일이 있어서 같이 지내고 있어.”
“그, 그래도 남자가 사는 집에 여자가 있는 건 좀 그렇지 않니? 시황아.”
어제 아루랑 동거한다고 말했을 땐 사고방식이 막혔다고 하더니 지금은 상당히 껄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럴만한 게 결혼할 사이에 동거하는 건 이해할만했지만 그런 사이도 아닌 여자가 남자 집에 얹혀사는 건 누가 봐도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나마 시황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에다 아루랑 결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정도로 끝나는 거였지 여자였다면 당장 난리가 났을 것이다.
“만화가 지망생인데 일 때문에 같이 지내는 거뿐이야.”
시황은 수란이 그린 만화를 보여주며 별 거 아니라는 듯 설명했다. 비록 지금은 고통스럽고 힘들지 모르나 일단 이렇게 해놔야 나중이 편해진다.
“그러니?”
엄마는 썩 달가워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한 듯 했다. 그런데도 혹시 저 수란이라는 애가 임자 있는 시황을 유혹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시황이가 하는 일인데 다 생각이 있겠지. 당신은 그만하고 짐이나 풀어. 그래야 카페도 둘러보지.”
아빠의 말에 엄마가 약간 궁시렁 거리더니 가져온 음식들을 아루에게 설명하며 냉장고에 넣는다. 뭘 그리 가져왔는지 냉장고가 가득 찰 정도다.
수란이 옆에서 도와주기는 했지만 엄마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걸 봐선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한참 걸릴 듯 하다.
정리를 다하고 시황은 부모님만 데리고 카페로 갔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라 차를 가지고 가진 않았다. 가는 길에 시황은 카페 근처 아파트를 사서 여기서 사는 건 어떻냐고 물었다. 옛날부터 밀양에서 살았는데 다른 도시로 바로 오는 건 쉽지 않으니까.
“일단 보고 생각 좀 해보자꾸나.”
시황의 말에 부모님은 바로 확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근히 마음이 있는 모습.
딸랑.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손님이 한가득이다. 시황이 운영하는 카페에 몇 번이나 오고 싶어 하던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본다.
“오빠! 어?”
카운터에 있던 은지가 시황을 보며 손을 살짝 흔들었는데 옆에 처음 보는 어른과 함께 있자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인사해. 우리 부모님이야.”
“앗!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저는 강은지라고 해요. 시황 오빠랑 같은 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오빠 가게에서 일하는 중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아, 그러니? 반갑구나.”
시황의 말을 듣자마자 은지가 카운터에서 나와서 정말 공손하게 인사하고 예의바른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얼마나 예의가 바른지 시황의 엄마와 아빠가 살짝 놀랄 정도였다. 보통은 아르바이트생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니까.
“야, 강은지. 뭐하는…….”
설거지를 하고 왔는지 손에 물기가 가득한 지숙이 은지를 보고 한소리 하려다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말을 흐렸다. 그리고 잠시 상황을 보더니 단번에 무슨 일인지 파악하고 찡그려졌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지어졌다.
“안녕하세요. 서지숙이에요, 시황 오빠 어머니답게 정말 아름다우세요.”
지숙은 느닷없이 칭찬을 했다. 어떻게든 마음에 들어 보이려고 애쓰는 게 눈이 보일정도다.
“어머, 고마워.”
엄마도 그런 입에 발린 말이 나쁘지 않은지 흡족하게 웃는다.
그 모습에 은지의 표정이 살짝 움찔한다.
“아버님도 정말 멋있으세요. 시황 오빠가 왜 그렇게 멋있나 했더니 아버님, 어머님 덕분이었네요.”
누가 봐도 평범하게 나이든 아저씨인데 은지가 지지 않으려고 빠르게 이어서 칭찬을 했다. 평소의 은지라면 좀 더 내성적으로 행동을 할 텐데 시황과 지숙이 관계된 일이라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변한다.
“허허. 고맙구나. 사실 내가 젊은 때 그런 소리 많이 듣긴 했지. 어흠.”
은지의 말에 아빠는 조금 당황하더니 이내 입가에 잔뜩 미소를 띠면서 말한다.
“많이 듣기는 개뿔.”
엄마와 아빠가 티격태격하기는 했지만 은지와 지숙이 약간은 점수를 딴 듯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지숙이도 저랑 같이 학교 다녔어요.”
“그래?”
그런데 눈치가 빠른 시황의 엄마는 시황의 말에 약간은 의심스런 눈으로 은지와 지숙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공손한지 대충은 짐작한 표정이다.
“우리 아루 참 예쁘지 않아?”
“네. 어머님. 아루 정말 예뻐요. 연예인 해도 될 거 같은데……. 그건 생각 없으세요?”
“어머, 그렇지? 우리 아루가 연예인할 정도로 예쁘긴 하지. 그런데 여자에게 제일 중요한 건 남자를 잘 내조하는 거 아닐까? 요즘 애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난 그렇게 생각한단다.”
어제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엄마는 바로 아루 얘기를 꺼내서 은근슬쩍 반응을 본다.
“어머님 말씀대로 저도 일을 하기 보단 집에서 내조를 잘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은지가 바로 대답한다.
“전 요리가 취미라 집에서 요리도 자주해요. 은지랑 같이 사는데 보통 가정일은 제가 다 도맡아서 하거든요.”
지숙이 슬쩍 은지를 보면서 말하자 은지의 눈가가 살짝 떨린다. 지숙이 요리를 조금 더 하기는 했지만 절대 저렇게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빨래도 번갈아가면서 했는데 겨우 밥 좀 더 차렸다고 가정일을 도맡아 한다는 표현을 쓰다니?
순간 약간의 신경전이 일어났고 시황의 엄마는 그걸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시황에게 마음이 있는 듯한 모습. 은지라는 애는 생긴 게 착하고 곱기도 하는 행동을 잠깐 보니 시황에게도 잘 해줄 거 같다. 그리고 지숙이라는 애는 얼굴은 약간 평범한 편이었지만 피부가 곱고 몸매가 정말 예쁜 게 모델 같은 느낌이라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예전의 시황이라면 이런 애들 중 하나와 사귀어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겠지만 지금은 시황이 좀 아까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예쁜 애들이 앞 다퉈서 잘 보이려고 하니 흐뭇한 마음이 든다.
“이제 슬슬 카페 둘러보자.”
시황은 은지와 지숙에게 무슨 이유로 부모님이 왔는지 말해준 뒤에 카페를 돌아다니며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여기는 우리 카페 바리스타인 현주. 커피 정말 잘 만들어.”
“아, 안녕하세요. 최, 최현주입니다.”
은지와 지숙과 다르게 현주는 커피를 만들다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은지와 지숙이 없어서 현주가 일을 다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주는 많이 긴장했는지 부모님 얼굴도 못 쳐다보고 모기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현주야. 부모님이 드실 아메리카노 좀 만들어 줄래? 일단 맛부터 보여드리게.”
“네. 사장님.”
현주는 평소와 다르게 잔뜩 긴장을 해서는 손을 살짝 떨면서 커피를 만들었다. 거기다 오빠라 부르기에는 자신과 시황이 너무 친밀한 사이 같이 느껴질까 봐 일부러 사장님이라는 호칭까지 사용했다. 생각은 은지와 지숙처럼 애교를 떨고 점수를 얻고 싶었는데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정반대의 행동을 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주가 커피를 줬고 부모님이 조심스럽게 맛을 본다. 상당히 어색한 모습. 이걸 보니 부모님한테만 맡기기엔 역시 좀 불안하다. 한 번씩 살펴보러 오기야 할 거지만 현주와 같은 전문 바리스타가 반드시 필요한 듯 싶다.
“어머, 맛있네? 쓰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은근히 달달하네. 우리 시황이 내가 낳았지만 참 대단하다니까.”
“어흠, 맛있구나.”
부모님도 커피 맛이 괜찮았는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후로 어떻게 커피를 만드는지 어떤 식으로 가계 운영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하다 보니 어느새 교대시간이 됐다.
시황은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현주에게 괜찮은 바리스타 있으면 소개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현주가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 그 드라마에 나오는 강소진이 은지 사촌 언니니?”
“네. 소진 언니도 시황 오빠랑 아는 사이에요. 전에 카페에 놀러 오기도 했어요. 사인이라도 받아드릴까요?”
“어머 어머, 그래줄래? 은지야 고맙다.”
은지가 시황의 엄마에게 호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온갖 인맥을 다 동원했다. 그 모습에 이번엔 지숙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딱히 동원할 인맥도 재주도 없어서 속으로 눈물만 삼켜야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시황을 유혹할 필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오빠! 저 왔어요.”
“유미야 손님 계시는데 조용히 해야지.”
교대시간보다 5분 정도 빨리 온 유미가 활기차게 들어와서 시황에게 인사를 하자 옆에 있던 찬미가 지적을 한다.
“유미랑 찬미 왔네. 너희들은 이제 퇴근해도 돼.”
평소라면 좋아서 퇴근을 할 은지랑 지숙이 머뭇거린다. 좀 더 여기 있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지지만 시황은 괜히 머리 아프게 여러 명 있는 거 보단 유미랑 찬미 둘만 있는 게 나았기 때문에 나중에 집에 찾아가겠다고 살짝 속삭여주고는 집으로 보냈다. 어차피 좁은 오피스텔에서 부모님과 자기 힘들었기 때문에 미리 근처에 있는 호텔에 예약을 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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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