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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227화 (227/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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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찬미, 유미와 펜션을 다녀온 뒤로 시황은 정신없이 바빴다. 은비에게서 보석을 받으러 가서 청담동에 있는 넓은 평수의 건물 1, 2층을 계약하고 인테리어 업체까지 선정했다. 이미 해놓은 게 있었기 때문에 인테리어적인 부분은 어려울 게 전혀 없었다.

다만 이전처럼 소규모가 아닌 제법 큰 규모로 카페를 운영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괜찮은 위치에 있는 건물 1, 2층을 통째로 계약하느라 돈이 제법 많이 들었다.

서울에 있는 집을 산데다 이런 계약까지 겹치니 슬슬 돈에 대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6레벨을 올리기엔 시간이 제법 필요했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카페 말고는 딱히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보석을 파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이건 아직까지 불안 요소가 많았고 그나마 만화를 출판하는 게 가능성이 있었다. 제법 많은 분량을 그려놓기는 했지만 서울에 올라가서 출판사와 계약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출판사에 직접적으로 전화 같은 건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사실 직접 만나서 계약한다고 해도 인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기도 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치가 필요했다.

“수란아. 나중에 만화를 출판하게 되면 인터뷰 같은 건 네가 하도록 해.”

“제가요?”

카페를 마치고 돌아와 소파에 앉아 아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TV를 보던 시황이 옆에 앉아 있는 수란에게 말했다.

“난 그냥 시나리오 정도만 썼다고 할 테니까 언론 측에서 들어오는 얼굴마담 역할은 전부 네가 하라는 거지.”

“특별한 이유라도?”

갑작스런 시황의 말에 수란이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할 텐데 시황이 하는 말은 그것과 완벽히 대치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써먹기 좋고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불러일으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뭔지 알아?”

“특출한 능력 아닌가요? 시황 오빠가 가진 그림 실력이라면 단번에 사람들과 언론에 관심을 끌 거 같은데요?”

“전혀. 세상에는 특출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간단하게 예를 들면 금메달을 딴 스포츠 선수 같이 말이지. 그런데 금메달을 따면 어느 정도의 관심을 받고 이슈가 생길지 몰라도 모두 똑같이 성공하는 건 아니야. 누구는 매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회자가 되고 CF 스타가 되는 반면 누구는 아예 관심조차 거의 못 받는다는 거지. 왜 그런지 알아?”

“글쎄요…….”

“예쁘거나 잘 생기지 않아서.”

시황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는 부인하지 못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매력이라고 할까?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는 매력. 올림픽에서 금메달조차 따지 못한 체조선수가 몇 번이나 금메달을 딴 여자 역기 선수와 비교도 안 되게 인기가 많고 CF도 많이 찍은 것만 봐도 손쉽게 알 수 있지. 결국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예쁘냐 안 예쁘냐, 매력이 있냐 없냐가 능력보다도 중요하다는 거지.”

“좋아요. 그거까지는 이해하겠어요. 그런데 왜 제가 해야 되죠? 그럴 거면 차라리 아루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루도 만화를 그리는 걸 돕기도 하고 저보다 몇 배나 더 예쁜데요.”

“아니야. 수란이가 나보다 더 예뻐. 가슴도 훨씬 크고. 남자들은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한데.”

수란의 말에 아루가 수란에게 다가가 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168센티미터인 큰 키와 C컵의 가슴, 혼혈적인 얼굴은 아루보단 좀 덜 예쁘긴 했어도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상당한 매력을 가지게 만들었다. 아루의 미모는 넋을 빼놓고 보는 청초한 아름다움이라면 수란은 압도당하는 아름다움이었다.

“아루는 다른 게 할 게 있거든. 그리고 실제로 만화는 네가 다 그리기도 하고. 이제 막 20살이 된 아름다운 소녀가 그린 그림이라……. 어떤 관심을 받을지 벌써 내가 궁금해지는데?”

“하아…….”

시황의 말에 수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에는 여자관계를 도와달라더니 이제는 자신이 언론 앞에 나서길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쯤 그림 몇 장 좀 그려줘. 색깔 입혀서. 인터넷에 올려서 미리 예열을 시켜놔야 하니까.”

“네. 네. 그러죠.”

시황의 말에 수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역시 잘 그렸네. 이정도면 충분히 관심 좀 받겠어.”

시황은 카페를 마치고 와서 바로 수란의 그림을 확인했다. 소녀의 감성이 묻어나는 화사하면서 아름다운 그림이다. 아루와 언뜻 닮은 듯한 소녀의 풍부한 표정도 마음에 들지만 정교한 사진처럼 보이는 주변의 배경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특히 수란이 그리는 특유의 만화적인 그림체의 분위기가 약간은 몽환적인 느낌이라 보면 볼수록 그림에 빠져들게 만든다.

시황은 수란의 사인이 있는 그림을 바로 스캔해서 컴퓨터로 옮겼다. 어제 부탁한대로 몇 장의 그림이 더 있었지만 한 번에 다 올릴 생각은 없었다.

“여기 앉고 슬슬 글을 써보자.”

수란을 컴퓨터 앞에 앉힌 시황이 말했다. 직접 올려도 되기는 하지만 댓글도 많이 쓰고 해야 하니 아예 수란에게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자, 마우스 잡고. 여자애들이 많이 오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자.”

시황은 수란의 바로 뒤에 서서 수란이 잡은 마우스위에 그대로 손을 올리고 여자들이 많이 가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새로 아이디를 만들었다.

손도 그렇고 목덜미에 숨결도 느껴져서인지 수란이 몸을 살짝 움츠리며 움찔하기는 했지만 시황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글은 답정너 스타일로 써보자.”

“답정너요? 그게 뭐죠?”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이지. 그러니까 어떤 식이냐면…….”

시황은 어떤 방법으로 써야할지 상세하게 설명해줬고 머리가 총명한 수란은 순식간에 그 뜻을 파악했다. 대충 느낌을 알게 되자 바로 글을 써본다.

[언니들 나 만화가 되고 싶은데 나 그림 너무 못 그리는 거 같애. ㅜㅜ]

글 제목은 얼마나 못 그리길래 라는 의문이 생기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이번에 나랑 친한 오빠가 시나리오 써줘서 진짜 제대로 만화를 그려보려고 하거든. 근데 나 너무 그림을 못 그리는 거 같아서 자신감 완전 떨어져 ㅜㅜ. 오빠가 써준 시나리오는 진짜 좋은데 내 그림이 다 망칠까 무서움 ㅜㅜㅜㅜㅜㅜㅜ 언니들 내 그림 어때? 평가 좀 해줘. 플리즈.]

글을 다 쓰고 수란은 시황을 쳐다봤다. 이렇게 하면 되냐는 표정.

“잘 썼네. 사진 첨부하고 올리자.”

시황은 다시 수란이 잡은 마우스에 그대로 손을 올려 사진을 첨부하고 글을 올렸다. 그리고 나서 은근슬쩍 수란의 목덜이에 얕은 바람을 분다. 수란이 몸을 살짝 떤다.

“댓글 벌써 5개 달렸어요.”

“그러게. 읽어보자.”

수란이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글을 눌러서 댓글을 확인했다.

[개쩐닼ㅋㅋㅋㅋㅋㅋ 이게 못 그리는 거면 난 뭐임.]

[진짜 잘 그리는데? 이정도면 충분히 만화 성공할거 같아.]

[언니 대박 잘 그린다. 내 손이랑 바꾸면 안 됨?]

[또, 답정너 글이네. 이런 거 올려놓고 못하는 척 하는 거 진짜 짜증난다.]

[잘 그리는 거 맞으니까 걱정 ㄴㄴ해.]

댓글이 순식간에 불어난다.

[나 이거 배경으로 써도 돼?]

[딴 사이트에 사진 올려도 되나여?]

중간에 흠잡는 댓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당연히 칭찬일색이었다. 그림을 올린 건 정말 평가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칭찬이나 하라는 답정너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칭찬을 받는 게 당연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좋은지 수란의 얼굴에서 웃음이 피어난다. 그 주체할 수 없는 매력에 당장이라도 수란을 껴안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그럴 순 없었다.

“답정너 스타일은 한 번 썼으니까 이제 다음부터는 좀 더 자신감 있게 글 쓰면 돼. 며칠만 올리고 그린 만화 인터넷에 올려보자.”

“아, 네. 그럴게요.”

시황의 말에 수란은 댓글을 보고 답글을 달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황은 수란의 머리를 만져주고 소파에 앉았다,

만화는 이제 수란에게 맡겨 두면 되는데 카페 인수인계가 문제다. 부모님이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돈이 그렇게까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오피스텔 보증금 빼고 부모님 집 팔고 자신이 가진 돈 합치면 30평 초반의 아파트 정도는 그럭저럭 해드릴 정도는 됐다.

딱히 돈을 헤프게 쓴 건 아닌데 서울에 있는 집을 산 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시황은 잠시 고민하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

[아이구, 우리 시황이냐? 엄마야 요즘 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 주변에서 아들 잘 뒀다고 시황이 널 얼마나 칭찬하는지 아니?]

엄마답게 주변에 자랑을 엄청 한 듯 싶다.

[그래? 근데 엄마. 혹시 여기 올라와서 살 생각 있어?]

[거기? 너랑 같이? 아루랑 결혼하려고 그러니? 어머, 아루는 참 생각도 깊네. 요즘 애들은 시집살이하기 싫다고 난리인데.]

언제부터인지 엄마는 입만 열면 아루 칭찬뿐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이제 아루랑 같이 서울에 올라가잖아. 그런데 카페를 닫고 가기는 좀 그래서 엄마랑 아빠가 하면 어떨까 해서. 그리고 거기서 버는 돈은 엄마랑 아빠가 알아서 쓰면 되고.]

[어머, 정말? 아루가 그렇게 하라고 하든?]

이번엔 아루의 아 자도 안 꺼냈는데 갑자기 엄마가 아루 얘기를 또 꺼낸다.

[응? 아, 응. 아루가 생각이 좀 깊잖아.]

[아루 걔가 요즘 애들답지 않게…….]

시황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엄마가 아루를 끊임없이 칭찬한다.

[그러면 내일 바로 올라갈까? 요즘 엄마랑 아빠 일도 안 하고 있어서 시간 많은데. 아루도 보고 싶고.]

[그럼 내가 아침에 터미널에 마중을 나갈게. 아, 그리고 주변 사람들한테는 아루가 내 동생이라고 말했거든.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아루 얘기는 될 수 있으면 하지 마.]

잠깐 고민하던 시황은 엄마에게 아루를 동생이라고 말했다는 걸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나중 가서 수습하기가 힘들어지니 이럴 땐 어느 정도의 진실을 밝히는 게 좋았다.

[동생?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아루랑 동거하는 거 알려지면 좀 곤란해져서 그냥 동생이라서 같이 산다고 말했거든. 그러니까 엄마도 아루가 동생인 척 해줘. 알겠지?]

[어차피 결혼할 건데 그게 뭐가 부끄럽니. 어머, 얘도 아빠처럼 사고방식이 꽉 막혀 있다니까.]

[알겠지? 그러니까 절대로 아루랑 결혼하니 어쩌니 말 하면 안 돼.]

시황은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당부를 해도 크게 신용은 가지 않았지만 상황 설명을 해놔서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내일 카페에서 일하는 현주와 은지, 지숙, 찬미, 유미에게 부모님이 온다고 미리 말할까 하다가 갑작스러운 반응에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해져서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시황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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