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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상큼한 바디 클렌저 향기가 풍긴다. 시중에 파는 흔한 냄새가 아니라 생전 처음 맡아보는 향기였는데 지나치지 않고 은은하게 풍기는 게 상당히 고급스럽다.
수납장에서 수건을 꺼내 몸을 닦은 은비는 살짝 시황의 눈치를 봤다. 여기서 바로 밖으로 나가면 속옷이 없는데 멀뚱멀뚱 서있게 될까봐 선뜻 욕실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욕실에서 알몸을 보여주는 것도 부끄럽지만 완전히 개방된 거실에서 알몸으로 서있는 건 더 부끄러웠다.
“빨리 속옷 가져와! 이대로 못 나가잖아.”
“어차피 바로 드레스 입을 건데 나가서 입어요. 어서요.”
시황의 재촉에 은비는 주춤주춤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거실로 나갔다. 겨울임에도 보일러를 틀어서 집이 쌀쌀하진 않았지만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기가 힘들다. 대로변에 발가벗고 서 있는 기분이 이러할까?
“옷은 방에 들어가서 입어 봐요.”
살짝 움츠려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대하게 발기한 성기를 당당하게 내놓고 시황은 은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미 서로의 몸도 애무하고 샤워까지 같이 했을 정도니 언제 섹스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이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누리고 싶었다.
“휴우…….”
넓디넓은 거실이 아니라 문으로 닫힌 방에 들어오자 그나마 안심이 되자 은비가 얕은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의 부끄러움에 비하면 시황의 알몸을 보는 거나 자신의 알몸을 보이는 건 이젠 아무렇지 않은 느낌이다.
“잠시 만요. 속옷하고 드레스 좀 준비할게요. 잠시만 침대에서 쉬고 있어요.”
시황의 말대로 침대에 앉은 은비는 주변을 둘러봤다. 고급스러운 방의 인테리어는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하다.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와 최신식 대형 TV, 이때까지 느껴본 그 어느 침대보다 안락하면서 편안한 고급 침대. 결혼을 해서 사랑하는 남자와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은비는 멍하니 시황을 쳐다봤다. 가방에서 보석함과 드레스 등을 꺼내느라 분주한 모습. 알몸인 상태라 거대한 성기가 보이기는 하지만 천박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그리스의 조각품이라도 보는 것 마냥 감탄만 나온다. 남성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 은비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혀로 말라버린 입술을 축였다.
부끄럽지만 어느새 시황과 같이 사는 상상이 멋대로 떠오른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른다.
“은비 씨. 준비 다 했어요.”
“뭐, 뭐가 이렇게 느려. 조, 졸 뻔 했잖아.”
한창 상상의 나래에 빠져있던 은비는 갑작스런 시황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방금 했던 상상이 너무 부끄러워 자기도 모르게 까칠한 말이 튀어나왔지만 내용만 그럴 뿐 말투는 전혀 딴판이다.
은비는 조심스레 일어나서 시황에게 다가갔다. 괜히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워 고개를 살짝 돌렸다. 덤덤한 척은 했지만 시황과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린다.
“옷 줘. 빨리.”
은비는 시황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로 손만 내밀었다. 탁자 위에는 그냥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드레스와 보석함이 있다.
“제가 입혀 줄게요.”
“뭐, 뭐라고?”
시황의 말에 은비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그런데 싫다는 느낌보다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혼자 입기 불편하잖아요. 제가 입혀드릴게요.”
“정 하고 싶으면 그러던가.”
은비는 크게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도도하게 말했지만 사실 시황이 입혀주는 옷을 입고 싶다는 욕구가 턱 밑까지 차올랐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왠지 영화 속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라도 된 듯 감성을 자극한다.
시황은 새침하게 서 있는 은비에게 옷을 입혀주기 위해 팬티를 집어 들었다. 흰색의 귀여운 팬티다. 케즈론의 옷장에서 가져온 만큼 평범한 팬티와 다르게 정교하면서 아름다운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시황은 은비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팬티에 집어넣었다. 다리가 벌려질 때 앙증맞게 다물고 있던 은비의 음순이 살짝 벌어지며 붉은 꽃잎을 내보인다. 때 하나 묻지 않은 그 순수한 아름다움은 움츠려 들었던 시황의 성기를 단번에 용솟음치게 만들었다.
은비는 시황의 손길대로 팬티와 브래지어를 입으며 드레스를 살펴봤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입혀주는 옷을 입고 있으니 정말 공주라도 된 기분이다.
속옷을 다 입자 시황이 곧바로 드레스를 입혀 주었다. 몸에 붙는 감촉 자체가 이때까지 입어본 드레스와 달랐다. 분명 그 드레스들도 내로라하는 세계인적인 명품 드레스였는데 몸에 달라붙는 이 고급스러운 부드러움을 반도 따라오지 못했다.
“어때요?”
시황은 드레스를 다 입혀주고 나서 전신 거울을 가져와 은비에게 보여주었다.
“예쁘다…….”
전신 거울에 자신이 입은 드레스를 비춰본 은비는 깜짝 놀라 멍하니 중얼거렸다. 방금 샤워를 하고 아직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태임에도 압도적인 드레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순백색의 드레스는 은비를 위해 제작되기라도 한 듯 그 순결함이 본래의 것처럼 어울렸다. 아무리 아름다운 옷이나 드레스라도 입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 아름다움이 퇴색할 텐데 이 베룬의 드레스는 오히려 은비를 성스럽고 순결하게 만들었다.
“아직 더 남았어요.”
“어?”
시황은 은비의 발을 살며시 쥐고는 준비해 온 하이힐을 신겨주었다. 이것도 특별히 엄선해 온 하이힐이다 보니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발이 더할 나위 없이 편할 것이다.
“어? 엄청 편하네? 하이힐인데 하이힐을 신은 거 같지가 않아.”
“은비 씨를 위해서 특별히 구해온 구두에요.”
“그, 그래?”
시황의 대답에 은비는 기분 좋은 웃음이 자기도 모르게 지어지는 걸 느꼈다. 덤덤한 표정을 지으려고 해도 기분이 너무 좋아 자꾸만 입 꼬리가 올라간다.
“네. 엄청 비싼 거예요.”
“비싼 거? 신기하다.”
사실 비싸든 싸든 하이힐이 가진 구조상 절대 발이 편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특별하다든가, 비싸다고 하면 사람인 이상 으레 비싼 게 좋긴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불가능의 영역에 다다른 현상이라면 비싸다고 말해봐야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항목은 그 정도로도 충분히 속일 수 있는 요소인 것이다.
은비는 구두를 거울로 살펴봤다. 이때까지 발 아픈 하이힐을 신게 바보 같을 정도로 편안하다. 단순히 편하기만 하면 그다지 끌리지 않았겠지만 디자인도 그 어느 하이힐보다 아름다워 시황에게 말해 꼭 사고 싶을 정도다.
“드레스하고 하이힐 어때요?”
“마, 마음에 드네. 은근히 센스 있는데?”
“하하. 열심히 골랐는데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액세서리만 끼면 완성이네요.”
시황은 탁자에 있는 보석함을 열었다. 은은한 붉은색을 품고 있는 레드다이아몬드가 고고한 자태를 뿜어낸다. 지나친 화려함은 없지만 보는 순간 눈이 멀 정도의 아름다움이다.
“어, 엄청 비싸 보이는데.”
“약간 비싸긴 해요.”
보석을 보자말자 은비가 당황스러워한다. 전에 시황이 건네준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보니 괜히 이런 비싼 보석만 봐도 가슴이 떨린다. 혹시 또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 끔찍하다.
시황은 목걸이를 꺼내 은비에게 걸어주었다. 방금 샤워를 해서인지 향긋한 살 냄새가 미각을 자극한다.
반지는 특별히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준다.
“거, 거기에 끼울 거야?”
“네. 여기에 끼는 게 제일 예뻐요.”
이러니까 마치 시황이 프로포즈를 하는 거 같아 은비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장이라도 시황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비싼 드레스가 구겨질까봐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으, 응. 예뻐. 마음에 들어.”
은비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수줍게 대답했다.
순결하고 청순한 순백색의 드레스와 하이힐. 이것만으로도 그 어느 연예인보다 아름다운데 여기에 레드다이아몬드로 목걸이와 반지에 포인트를 주자 항거 불가능할 정도의 아름다움에 시황조차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그런데 반지랑 목걸이라는 얼마야? 많이 비싸지?”
“글쎄요. 잘은 모르겠는데 이백억 정도 할걸요?”
“거, 거짓말이지? 농담이지?”
전에 껴봤던 십억 짜리 반지도 말도 안 되게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끼고 있는 반지랑 목걸이 합쳐서 이백억 정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억 단위 액세서리만 차고 시상식에 나와도 수많은 뉴스가 뜨는 마당에 이백억이라니?
“레드 다이아몬드는 일반 다이아몬드와 다르게 조금 더 비싸서요. 그래도 크게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어떻게 부담을 안 가져. 바보야. 비싸도 너무 비싼 걸 가져왔잖아.”
은비는 목걸이와 반지가 제대로 있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말했다. 혹시라도 잃어버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손이 살짝 떨린다.
“은비 씨라면 잃어버려도 괜찮으니까 전혀 부담 가지실 거 없어요. 정말로요.”
“피, 거짓말.”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도 이백억짜리 보석을 잃어버리고 담담할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빈말이라도 시황이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기는 한다.
“예쁘긴 정말 예쁘다.”
은비는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백억이라는 가격을 듣기 전부터 레드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는데 이백억이라는 가격을 듣고 나니 묘한 위압감까지 느껴졌다.
“그렇죠? 저도 은비 씨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고 가져오기는 했는데 이정도일지는 몰랐어요.”
시황은 약간은 끈적끈적한 목소리를 내면서 은비를 껴안으려고 했다. 이제 할 거 다 했으니 가장 중요한 거사를 치러야 할 순서였다.
“자, 잠깐만.”
그런데 평소라면 새침한척 하면서 얌전히 안길 은비가 시황을 밀어낸다.
“이거 비싼 거라며. 그러다 옷 구겨지면 어떡할 거야. 바보야. 일단 잠깐 기다려봐.”
은비도 시황과 로맨틱한 밤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빠르게 옷을 벗으려고 했다. 드레스를 입고 시황과 스킨십을 하기에는 구겨지는 것도 문제고 혹시 반지나 목걸이를 잃어버릴까 겁도 났다.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어차피 드레스와 힐은 은비 씨한테 줄 선물이에요.”
베룬의 드레스는 일반 드레스와 다르게 마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어 옷이 더러워지거나 구겨지지 않는다. 순결함의 상징과도 같은 흰색 드레스가 규겨지고 더러워지면 얼마나 꼴불견이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시황도 별다른 부담 없이 은비를 껴안으려고 했던 것이다.
“아, 안 돼. 안 된다니까.”
시황이 다시 껴안으려고 하자 은비가 다시 시황을 밀어낸다.
“은비 씨…….”
“그러면 반지랑 목걸이는 빼고. 응?”
상처받았다는 시황의 표정에 은비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살짝 찡그려진 표정과 뎅그런 눈. 귀여움의 극치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런 화장조차 안 한 얼굴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알겠어요. 반지랑 목걸이는 제가 보관하고 있을게요.”
“바보.”
시황은 은비에게서 목걸이를 풀고 반지는 빼내어 보석함에 조심스럽게 넣고는 가방에 집어넣었다. 애초에 이 반지와 목걸이에 절대 잃어버릴 수 없는 장치를 해뒀기 때문에 어디 놔두든 별 상관은 없었다.
시황이 반지와 목걸이를 넣자 은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시황이 보기 전에 드레스를 벗기 위해 잽싸게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혹시라도 이 예쁜 드레스가 구겨질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천천히 벗으셔도 돼요.”
“윽, 지금 벗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그걸 본 시황이 은비에게 다가와서 바로 껴안는다. 바로 알몸이 되는 거 보다는 한 꺼풀 한 꺼풀 옷을 벗겨가는 맛을 느끼고 싶었다.
이번엔 은비도 조금 체념한 듯 아까처럼 시황을 밀쳐내지는 않았다. 찢어지는 게 아니라 조금 구겨지는 정도면 드라이클리닝하면 되니까.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두달을 넘게 쉬어버렸네요
중간중간 쓰려고 노력했는데 의욕도 안 생기고 힘이들어 도저히 못 쓰겠더군요. 그래서 다른 글이라도 좀 쓰면서 페이스를 찾다보니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드래곤의 유산은 꾸준히 써서 완결을 짓도록 하고 다른 글은 분량이 좀 더 확보되면 올려보도록 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