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0 ------------------------------------------------------
서울로
시황은 어제 은비에게 말한 대로 자신의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가고 있었다. 묵직한 엔진 음과 밟는 대로 쭉쭉 뻗어나가는 BMW M6는 처음 산 차이기는 했지만 운전하는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속 100km 정도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자꾸 옆에서 이상한 차가 알짱알짱거렸다.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국산 승용차인데 자신의 앞에서 자꾸 차선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상당히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시황은 그 차를 추월하기 위해 속도를 빠르게 올리자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국산 승용차도 같이 속도를 올리며 시황보다 앞서나간다. 평일 오전이라 차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다행이지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호승심 때문에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시황이 얼굴을 찡그렸다. 괜한 감정싸움 하기 싫어서 속도를 줄이자 승용차는 또 그거에 맞춰서 속도를 느리게 하며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풀었다 하며 위험한 짓을 한다.
이쯤 되자 시황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러다 실수라도 한다면 목숨까지 위태로울 만한 그런 큰 사고가 날 위험성이 있었다.
시황은 싸늘한 눈으로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엔진이 묵직한 소리를 토해내며 속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그러면서도 시황은 한눈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속도를 올렸을 경우 어떻게 할지에 대한 움직임까지 단번에 생각을 끝마쳤다.
갑자기 시황이 치고 나오자 당황이라도 한 건지 앞에 있던 승용차의 움직임이 조금 둔해졌다. 시황은 재빠르게 차선을 변경해서 그 승용차의 앞에 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브레이크로 인해 멈춰버린 타이어가 노면과 마찰을 일으키며 닭살이 돋을 것만 같은 소음을 일으켰다. 시황의 차가 갑작스럽게 멈추자 뒤에서 떨어져서 쫓아오던 승용차도 빠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관성 때문에 승용차가 바로 멈추지 못하고 시황의 2억짜리 BMW M6와 부딪힐 듯 다가왔다. 돈도 돈이지만 이대로 부딪힌다면 금강불괴에 가까운 시황이야 멀쩡하겠지만 일반인은 크게 다칠지도 모르는 상황.
부딪힐 듯 말 듯 아슬아슬했지만 다행스럽게도 1m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승용차가 멈춰 섰다.
“야 이 개새끼야. 돌았냐?”
시황의 앞에서 깝죽거리며 위험천만하게 운전했던 승용차의 주인이 자기가 한 짓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백미러로 그 모습을 본 시황도 차에서 내렸다.
승용차의 주인은 20대 후반정도 돼 보이는 남자였는데 키가 190cm정도에 몸무게가 100kg에 육박하는 듯 했다. 거기다 인상까지 상당히 험악해서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심장이 떨릴 정도의 위압감을 뿜어냈다.
고속도로의 중간에 무작정 내리다 보니 옆 차선에서는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지만 시황도 남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야. 야. 돌았냐고.”
시황의 앞까지 다가온 남자가 시황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시황의 키도 줄넘기로 제법 커졌음에도 남자 앞에 서자 확연히 키 차이가 났다.
“먼저 시비를 거시지 않았습니까?”
시황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도로 위에서 커다란 인명사고가 날지도 모르는 짓거리를 하는 이런 놈들은 쓰레기였다. 만약 이러다 사고라도 났으면 빠르게 도망가든가 뒷목을 부여잡고 나왔겠지?
“뭐? 개소리하네. 내가 뭐? 내가 무슨 시비를 걸었는데? 어? 말해봐. 개새끼야.”
남자가 적반하장으로 도리어 계속 시황의 어깨를 강하게 밀치며 화를 냈다. 하는 짓이 영락없는 깡패다.
“네가 갑자기 빨리 달리더니 멈춘 거 아냐.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 했어? 엉?”
“답이 없는 쓰레기군.”
시황은 자신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남자의 팔을 부여잡았다.
“윽! 뭐, 뭐야. 개새끼가 한번 붙어보자는 거야?”
몸이 비리비리해서 그다지 힘이 없을지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황의 힘이 엄청나 남자는 끙끙거리기만 할 뿐 팔을 전혀 빼낼 수가 없었다. 팔을 죄는 힘이 너무 강해 남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도저히 참지 못한 남자가 잡힌 손이 아닌 왼손으로 시황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일반인치고는 제법 빠른 주먹이었지만 시황은 고개를 살짝 움직여 가볍게 피해내었다. 시황의 육체적 능력이 일반인과 비교도 안 되게 뛰어나기도 했고 비록 레벨이 낮기는 하지만 격투 게임에 접속해서 몇 번의 싸움을 거치기도 했다. 이런 일반인의 조잡한 주먹질에 맞는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 이 개새끼가.”
몇 번 주먹을 휘둘렀음에도 시황이 너무나 수월하게 피하자 남자가 당혹스러워하며 욕을 내뱉었다. 시황이 잡고 있는 손은 너무 아파 이제는 손을 뻗기도 힘이 들 정도였다.
“노, 놓으라고 개새끼야. 너 내가 누군줄 알고……. 악!”
남자의 욕설에 시황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남자가 엄청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른다. 시황은 마기를 끌어올려 살기를 내뿜으며 남자를 쳐다봤다. 전에 지숙에게 치근덕거리던 남자에게 쓰기도 했던 이 살기는 4레벨 보상으로 받은 권법의 식(式)에 나와 있는 기의 운영법 중 하나였다. 이외에도 사자후를 내지르면 공포에 빠진다든가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살기 정도밖에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시황의 살기에 남자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나름 악과 깡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시황이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무서웠던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당장에라도 자신을 죽일듯한 소름끼치는 눈빛이다.
“사, 살려주세요.”
마치 다가오는 호랑이에게 달음박질로 도망을 가듯 남자는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시황에게 사정했다. 아까 전의 그 패기는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비굴하고 구차한 모습이다.
시황이 부여잡은 남자의 팔은 시뻘겋게 부어올랐지만 남자는 그런 고통조차 모를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당장에라도 살해당할 것만 같은 시황의 눈빛에 남자는 끊임없이 후회를 했다.
자신이 평소 갖고 싶었던 BMW M6를 부모 잘 만난 듯한 어린놈이 운전을 하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 장난을 좀 쳤었다. 그런데 잔뜩 쫄아서 운전할 줄 알았던 놈이 갑자기 자신을 추월해 브레이크를 밟자 깜짝 놀람과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바로 차를 박차고 나갔는데 이렇게 무서운 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섬뜩한 눈을 마주보고 있노라니 마치 당장에라도 싸늘한 비수가 자신의 목덜미에 꽂힐 것만 같다.
“너 같은 쓰레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죄, 죄송합니다. 사, 살려만 주시면 아, 앞으로 절대로 안 그러겠습니다.”
얼마나 두려웠던지 남자가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는 섬뜩함을 넘어 두려움에 머리가 하얗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남자를 잠시 동안 응시하던 시황은 팔을 집어던지듯 놓아버렸다. 그러자 다리에 힘이 풀린 남자가 바닥에 꼬꾸라진다. 마음 같아서는 얼굴에 주먹이라도 꽂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당장에라도 뉴스가 날 테고 그만큼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된다.
“가, 감사합니다.”
남자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시황에게 연신 고맙다고 말했지만 시황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시황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는지 남자는 이 추운 겨울, 아스팔트 바닥에서 그대로 오줌을 싸버렸다. 다 큰 성인이 길가에 오줌을 싼다는 건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살았다는 기쁨 때문인지 얼굴 가득 환희에 차 있었다.
오전 11시 20분.
생각했던 대로 오후 12시 이전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르륵!
은비가 말한 장소로 향하던 중에 전화가 왔다. 보나마나 은비일 게 뻔하다. 매일 말로는 아닌 척해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게 뻔히 다 보였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같다보니 얘기하는 재미가 있다.
[다 와가?]
[네. 거의 다 왔어요.]
[그러면 내가 말하는 건물 주차장으로 와. 거기서 몰래 탈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
시황은 전화를 끊고 은비가 말한 건물로 향했다. 은비가 연예인, 그것도 요즘 한창 인기가 많은 연예인이다 보니까 귀찮은 점이 제법 많았다. 시황이야 은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인지도가 있었기 때문에 둘이 같이 만나는 게 사람들한테 들키면 스캔들까지 날지도 몰랐다. 나중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스캔들 기사가 딱히 득이 되는 점이 없었다. 그래서 시황은 그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케즈론의 옷장에서 몇 가지 물품을 가지고 왔다.
차를 몰고 은비가 말한 고급스러운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가자 예전에 은비가 타고 카페에 왔던 밴이 보였다.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는 밴이야 워낙 유명하다 보니 바로 눈에 띈다.
시황의 BMW M6가 그 밴 옆에 서자 은비가 내리더니 바로 시황의 옆에 탄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목도리로 얼굴 아랫부분을 감싸고 챙이 제법 긴 야구모자와 얼굴을 가득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안 들키려고 이렇게 입은 건 알겠는데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눈에 띌 정도다.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시황이 웃으면서 은비에게 말하자 은비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그리고는 슬쩍 시황을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차에 탔는데 모자랑 선글라스 벗으세요. 예쁜 얼굴 다 가리잖아요.”
“뭐, 바보야. 그러려고 했어.”
시황의 말에 은비가 기분 좋은 듯 수줍은 웃음을 짓더니 모자와 선글라스, 목도리를 벗는다. 그러자 요즘 한창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은비의 오밀조밀하면서 자그맣고 예쁜 얼굴이 드러난다. 과거의 시황이라면 은비의 얼굴에 압도가 돼서 입도 벙긋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이다.
“모자 이거 쓰세요. 은비씨 주려고 제가 사왔어요.”
시황은 케즈론의 성에서 가져온 모자를 은비에게 건네주었다.
[만토스의 가림 모자. 남자와 여자가 공용으로 쓸 수 있는 멋진 디자인의 모자.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이 모자를 쓰게 되면 인상이 흐릿해져서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체형으로 연예인을 구별해내는 사람들도 있으니 방심은 금물.]
“와, 예쁜 모자네. 고마워.”
은비는 시황이 준 모자를 살펴보며 감탄했다. 크게 특별한 디자인은 아니었는데 고급스러운 재질이나 세련된 모습 등 딱 봐도 명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죠. 어디로 갈까요?”
“내가 봐둔데 있어.”
시황은 은비의 안내에 따라서 봐뒀다는 음식점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비가 말한 음식점에 도착했는데 레스토랑 같은 곳은 아니었고 일반 한식집이었다. 저번에 소진과 갔던 곳처럼 방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은비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서 이곳으로 온 듯 했다.
은비는 시황이 준 모자만 쓰고 방으로 들어갔다. 미리 예약을 해놨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 쓸 건 없었다. 조금 기다리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수많은 음식들이 차려졌다.
“맛있겠다.”
“드세요. 저도 운전을 하고 왔더니 배가 고프네요.”
침이 넘어갈 만큼 맛있는 음식들을 보고 은비가 순수한 표정으로 감탄을 하자 시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TV에서 볼 때랑 다르게 은비의 진짜 모습은 정말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다.
평소 전화로도 할 말이 많던 은비였던지라 시황을 직접 만나자 끊임없이 말을 한다. 주로 연기를 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들이었는데 은비가 말을 잘해서인지 듣기만 해도 상당히 재미가 있다.
“아, 맞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아는 곳이 몇 군데 있긴 있다더라.”
한참 얘기를 하던 은비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래요? 어떤 건데요?”
“그냥 돈 주고 그렇게 큰 평수 가려면 약간 위치가 애매해지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경매로 나온 집을 사면 훨씬 더 싸게 살 수 있다더라.”
“경매요?”
생각지도 못한 은비의 말에 시황이 궁금한 듯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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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