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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202화 (20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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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야, 할 거 없으면 술이나 먹으러 가자니까.”

“…….”

남자가 소리쳤지만 지숙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아, 짱나게.”

대답조차 하지 않는 지숙에게 화가 났는지 남자가 갑자기 지숙의 손을 낚아챘다.

“악!”

지숙이 깜짝 놀라 소리를 친다.

“자꾸 무시 하냐?”

“뭐, 뭐하시는 거에요.”

남자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지숙이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 껄렁한 남자가 자꾸 밥을 먹자든가, 술을 먹자고 말을 걸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신의 손을 낚아챈 건 처음이었다. 이때까지 귀찮고 짜증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자 두려움이 몰려든다.

“아니, 내가 너한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친하게 지내자는 거잖아.”

“저, 저 남자 친구 있다니까요.”

“남자 친구 있다고 술 못 먹냐?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엄청 나쁜 짓 하는지 알겠다?”

이정도면 충분히 민폐에다 나쁜 짓이 맞았지만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남자는 지숙의 팔목을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고 지숙은 겁먹은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지숙아.”

시황은 빠른 걸음으로 지숙에게 다가가서 지숙을 끌어 당겼다. 그러자 갑작스런 시황의 등장에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지숙을 놓아준다.

“오, 오빠. 어, 어떻게 여기에…….”

지숙은 시황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시황과 통화를 하고 이제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었는데 이런 극적인 순간에 만나게 될 줄이야.

“뭐하는 짓이지?”

시황은 굳은 표정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만약 자신이 지금 여기에 없었다면 지숙이 어떤 꼴을 당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저렇게 술을 마시자고 강요하는 남자의 목적이 뭔지는 뻔했다. 술을 마신 지숙을 어떻게든 꼬아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적 시키려는 것.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짓이다.

“뭐, 뭐가요? 그, 그냥 술 마시자고 말한 거 뿐인데.”

지숙에게는 거칠게 행동하던 남자가 시황이 나타나자 살짝 위축된 표정으로 말했다. 시황의 얼굴이 착하게 생기긴 했지만 무표정하게 노려보니 알 수 없는 위압감 때문에 겁이 살짝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사나운 맹수와 맞닥뜨린 느낌이다.

“…….”

“죄, 죄송합니다.”

시황이 아무런 말없이 노려보자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더니 죄송하다는 말을 남겨놓고 순식간에 도망쳐 버렸다. 마음만 먹으면 저 도망가는 남자를 잡아서 입도 벙긋 못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었지만 지숙도 있기 때문에 일단은 그냥 놓아주었다. 보통 저렇게 야비하게 생긴 놈은 지금은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도망가도 나중에 비열한 짓을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듯 하다.

“지숙아, 괜찮아?”

시황은 혹시나 지숙의 팔이 다쳤을까봐 세심하게 확인했다. 그놈이 세게 팔을 잡았는지 살짝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어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치유력을 발현해 손목을 치료해주었다.

“오, 오빠…….”

“다행히 괜찮아 보이네. 일단 내 차로 가자.”

“네. 오빠…….”

자신의 손목을 만지작거리는 시황을 보며 지숙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꿈만 같아 자신의 볼을 살짝 꼬집어봤다. 피부로 느껴지는 생생한 현실감에 지숙은 눈시울을 붉혔다. 아직까지 별다른 얘기를 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시황을 만난 거 자체가 너무나 행복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탄 시황은 지숙을 바라봤다. 몇 달 못 본 사이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굴이 핼쑥해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지숙아.”

“그게…….”

지숙은 시황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까 전에 지숙이가 아빠 공장일 도와준다고 했을 때 뭔가 좀 이상한 거 같아서 찾아온 거야.”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오빠…….”

“괜찮으니까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줘.”

시황은 지숙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요 몇 달 동안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예전과 다르게 손이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아빠 공장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집에 내려갔어요.”

지숙은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그 말을 듣고도 별 다른 생각 없이 그냥 저 보고 싶어서 내려오라는 건지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집에 내려가니까 빨간색 압류딱지가 이미 집에 다 붙어있는 걸 보고 너무 놀라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지숙의 눈에 눈물이 살짝 어린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모든 재산이 다 압류당하고 나니까 어떻게 해야할지 너무 암담하더라구요. 그래도 길거리에서 얼어 죽을 수는 없어서 어찌어찌 월세집에 들어오기는 했는데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제가 일을 안 하면 도저히 안 될 정도였어요.”

“그래서 다시는 못 만날줄 알고 건강하라고 한 거야?”

“흑……. 네. 저도 오빠 너무 만나고 싶었는데 현실이 그렇지가 않으니까…….”

결국 지숙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하얀 얼굴로 슬픔이 가득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너무나도 가련해 보이는 그 모습에 시황은 지숙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지숙이 이렇게 힘든 일을 겪었을 줄이야. 마음이 아프다.

한참을 시황의 품에서 울던 지숙이 아까보다 밝아진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은지의 일도 그랬지만 돈이 없으면 사는 게 너무나 힘이 들었다. 먹고 싶은 거 못 먹는 수준이 아니라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한다고 평범한 자기 시간조차 가지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래도 오빠가 서울 가기 전에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에요. 전 앞으로 영영 오빠를 못 만날 거라 생각했거든요.”

“오늘만 보고 말거야?”

“네?”

“오빠랑 같이 서울 갈래?”

“서울이요?”

시황의 뜬금없는 말에 지숙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얼굴 사이에 약간의 기대감이 엿보인다.

“응. 서울에 가서 몇 가지 사업을 할 생각인데 지숙이도 도와줬으면 좋겠어.”

“아……. 말씀 고마워요 오빠. 그런데 서울에 가면 집세하고 식비를 감당하질 못해서…….”

지숙은 정말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이야 오피스텔에 사는 것도 아무런 부담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그 몇 십만 원조차도 너무나 큰돈이었다. 정말 시황과 같이 서울에 가서 지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집세하고 식비 같은 건 걱정하지 마. 그런 건 내가 다 부담할거니까.”

“오빠가요?”

“응. 직원들 복지혜택이라고 생각하면 될려나? 그런데 내가 지금 방이 제법 많은 빌라나 주택을 살까 고민 중이거든. 여기에 지숙이나 너나 은지 말고도 찬미나 유미 같은 애들도 같이 살 건데……. 괜찮아?”

시황이 자신이 구상해놓은 생각을 지숙에게 말해주었다. 오피스텔에 따로 떨어져서 사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는 아예 평수가 큰 집에 다 같이 사는 편이 나을 거 같았다.

“하숙집하고 비슷한 개념인가 봐요? 저야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오빠가 너무 부담스러우실 거 같아서…….”

지숙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황이 말한 대로만 된다면야 정말 최고의 시나리오겠지만 그렇게 되면 시황에게 너무 부담이 많이 갈 거 같아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걱정할 필요 없어. 너 말고도 다른 애들도 다 공짜로 해줄 거니까.”

“아, 그렇군요. 정말 고마워요. 오빠.”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신경써주는 시황을 보며 지숙은 감동을 해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보통 남녀관계라면 이렇게 빚더미에 내려앉은 것만으로도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시황은 그걸 넘어 어떻게든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고 있었다.

“고맙긴. 근데 아르바이트하고 얼마정도 받아?”

“한 달에 대충 100만 원 정도 받아요. 오빠.”

“그래? 그러면…….”

시황은 지숙에게 자신과 같이 일을 하면 어느 정도 월급을 지급해줄지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지숙의 사정이 너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은지나 현주, 찬미 등이 이미 받는 월급이 있는데 무리하게 다른 사람보다 많이 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 고기집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받는 돈 보다는 시급으로 치면 훨씬 많았기 때문에 훨씬 나은 환경이었다. 거기다 서울에서 열게 될 카페는 지금보다 규모도 훨씬 커질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월급을 줄 여지는 충분했다.

“정말, 정말 감사해요. 오빠. 정말…….”

“뭘 이정도 가지고.”

시황은 계속 고맙다고 얘기하는 지숙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면 대충 얘기도 끝났으니까 나랑 좀 더 놀다가야지.”

“엄마한테 전화할게요. 잠시 만요.”

시황의 말에 지숙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시황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예전이었다면 섹스를 하고 싶어 적극적으로 시황을 유혹했을 텐데 돈이 없으니까 자신감도 덩달아 없어져 소극적으로 변해버렸다.

지숙은 간만에 친구랑 만나고 들어간다고 집에 얘기를 했다. 부모님이 약간 걱정하시는지 얘기가 조금 길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숙은 밝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뭐라고 하셔?”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들어오래요.”

“그래. 그럼 일단 출발하자.”

시황은 주차장을 빠져나와 괜찮은 곳이 있는지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런 유흥가 쪽에는 모텔이 워낙 많다보니 얼마 운전하지 않고도 제법 괜찮은 모텔을 찾을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모텔 방에 들어갔다.

최신식 모텔답게 커다란 LCD TV부터 침대까지 제법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웠다.

“아, 피곤하다.”

모텔에 들어오자마자 지숙이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루 종일 일을 해서인지 정말 지치고 피곤해보였다.

“힘들지?”

“조금요.”

지숙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사실 말은 조금이라고 했지만 몇 달째 일을 했음에도 어찌나 힘든지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피곤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은 그나마 시황과 같이 있어 이 피곤함에도 기분이 좋았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내일 바로 부모님한테 말씀 드리고 일 그만둬. 알겠지?”

“네. 오빠. 그렇게 할게요.”

“그래. 그러면 씻자. 오랜만에 오빠가 마사지 해줄게.”

“아, 마사지. 저 일 끝나고 나면 항상 오빠 마사지 생각한 거 알아요?”

시황의 말에 지숙이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우울했던 지숙과 다르게 조금 활달해진 모습이다.

“내 생각은 안하고 마사지 받았던 생각만 했나봐?”

“네? 아, 아니에요. 그냥 오빠하고 있었던 일을 매일 생각했어요. 그때가 좋았는데…….”

지숙이 추억에 약간 잠긴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때는 은지가 정말 마음에 안 들고 눈에 가시 같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다 추억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그 시절로 너무나 돌아가고 싶다.

“빨리 씻자. 이러다 너 자겠다.”

“네. 안 그래도 누우니까 일어나기가 싫을 정도에요.”

시황은 옷을 벗었는데 지숙은 여전히 지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내가 벗겨줄게.”

“괘, 괜찮은데.”

시황은 지숙이 괜찮다고 했지만 개의치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지숙의 옷을 벗겨 주었다. 겨울이라서 두꺼운 코트와 몇 겹의 옷을 껴입고 있어 벗기는데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얗고 매끈한 지숙의 맨 몸을 드러내게 만들 수 있었다.

예전보다 살이 조금 빠지기는 했지만 몸매의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비록 지숙의 얼굴은 약간 평범하나 몸매와 같이 놓고 본다면 미인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시황이 마사지를 해줘서 다리와 허리 등 몸매가 아름다워 진 것도 있지만 기본적인 골격자체가 워낙 예뻐서 보통의 여자들과는 한 차원 다른 몸매를 소유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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