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201화 (20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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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평범한 사람이 수능 만점을 받아도 이슈가 되는 마당에 나름 인지도가 있는 편인 시황이 만점을 받자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다. 시황이 TV에도 나오고 했지만 종편채널이다 보니 대중적인 인기 자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명한 편이라 사이트마다 시황에 관련된 얘기가 끝을 모르고 올라왔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그런 감정. 항상 학력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런 감정은 정말 처음 느껴봤다. 돈을 많이 생겼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가슴이 뿌듯하면서 자긍심이 생겨났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샘솟는다.

시황은 즐거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인터넷 글 들을 읽다가 문득 이쯤에 방송을 하면 관심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세렝게티 방송국에 들어가서 이번 주 토요일에 방송을 하겠다고 글을 올렸다. 방송을 한지 너무 오래된 게 조금 걱정이기는 했지만 생각과 다르게 글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 기대된다는 댓글이 순식간에 달렸다.

[오빠 진짜 수능 만점 받으신 거에요? 저 뉴스보고 완전 깜짝 놀랐어요.]

[얼굴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는데 여기에 공부까지 잘하시면 어떡해요 ㅜㅜㅜㅜ]

댓글에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단 듯한 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딱히 오빠라고 하지 않아도 인터넷 경력 10년이 넘는 시황은 짧은 문장만 봐도 남자가 썼는지 여자가 썼는지 바로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일종의 통찰력이었다.

어릴 때는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그게 20대인지, 30대인지, 40대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이 나이 대에는 이런 얼굴과 형태를 가졌다는 걸 익히게 되고 나중에는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의 나이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드르륵!

한참 인터넷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다.

지숙이다. 부산에 내려간 뒤로 처음 온 전화는 아니고 한 번씩 전화가 오기는 했다. 그런데 지숙의 성격이라면 매일 전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렇게 띄엄띄엄 전화가 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랜만이네. 지숙아.]

[오빠……. 잘 지내셨어요?]

지숙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전에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래도 약간의 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옛날의 지숙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응. 나야 잘 지내지. 요즘 뭐해? 우리 안 본지 너무 오래 된 거 같은데.]

[그냥 아빠일 도와주고 있어요.]

[공장 일?]

[……네.]

지숙은 살짝 머뭇하다가 대답했다. 뭔가가 있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지만 시황은 무슨 일이냐고 캐묻지 않았다. 괜히 지금 물어봐야 제대로 대답해 줄 거 같지도 않고 분위기만 이상해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지숙이 효녀네. 부모님도 도와드리고.]

[아니에요……. 그보다 오빠 수능 만점 받으셨어요?]

[아, 응. 뉴스로 본거야?]

[네. 인터넷 보는데 오빠가 수능 만점을 받았다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축하해요. 오빠. 옛날부터 생각했지만 오빠는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지숙은 순수하게 감탄을 했다.

[고마워. 지숙아.]

[그런데 오빠 수능 치셨으면 서울로 대학 가실 거에요?]

[응. 그러려고 수능 친 거니까.]

[그러면 앞으로 오빠 만나기 힘들겠네요……. 지금도 만나기 힘들긴 하지만요.]

지숙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하는 시황을 보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럽다.

[왜 만나기 힘들어. 내가 부산으로 가면 되지. 시간 돼? 지금이라도 볼래?]

[죄송해요. 오빠……. 아빠 일 도와주느라 바빠서 안 될 거 같아요.]

[꼭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 시간 돼? 주말에 만날까?]

[오빠……. 죄송해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오빠, 서울에 가셔도 건강하셔야 돼요.]

지숙은 마치 다시는 못 만날 것만 같이 얘기를 했다. 처음 머뭇거리며 대답할 때부터 느낌이 왔지만 이쯤 되니 지숙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마워. 지숙아. 그런데 아직 갈려면 한참 멀었어. 하하.]

시황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일부러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런데 옆에서 어떤 아줌마가 크게 소리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아, 그럼 오빠 다음에 또 제가 전화 할게요.]

[벌써 끊게?]

[죄송해요. 오빠 건강하세요.]

지숙의 전화가 끊겼다. 마지막에 들린 아줌마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좀 더 길게 통화를 했을 건데 뭔가 아쉽다. 지숙에 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유추하던 시황은 가방에서 꺼내는 척 하며 아공간에서 다용도 추적기를 꺼냈다.

항마력이 있는 존재는 추적할 수 없는 매우 부실한 추적기지만 지구에서는 거의 사기급 아이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황은 추적기를 사용해 지숙이 사는 곳의 주소를 찾았다. 혹시 장이 망해서 다른 먼 지방으로 떠난 게 아닐까 라는 추측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부산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은 지숙이 사는 곳을 모르니 이 정보만 가지고 뭐라 확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은지야, 잠깐만 이리로 와봐.”

잠깐 고민하던 시황은 은지를 불렀다.

“아, 네. 오빠. 잠시 만요.”

손님이 나간 자리를 청소한 뒤에 손을 씻고 시황이 앉은 테이블에 맞은편에 앉았다. 요즘 카페에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방금 지숙이한테 전화가 왔거든.”

“지숙이요? 요즘 잘 지낸데요? 그러고 보니 지숙이 못 본지 몇 달이 지났네요.”

“요즘 지숙이 뭐하는지 알고 있어? 전에 공장이 약간 어렵다며?”

시황은 은지에게 지숙에 관한 정보를 물었다.

“전에 듣기로는 저희보다는 괜찮다던데 뭐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전에 전화 했을 때는 잘 지낸다고 하던데…….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지숙이 목소리에 힘이 없는 거 같아서. 아, 그리고 혹시 여기 주소가 어딘지 알아?”

시황은 추적기로 통해 나온 지숙의 집 주소를 은지에게 말해주었다.

“대충 위치가 어딘지는 알아요. 그런데 누구 주소에요?”

“그냥. 부모님 아는 사람. 부산에 사신다고 해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아, 그렇군요.”

은지는 대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황은 그런 은지의 반응을 보고 지숙의 집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은지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일이야 조금 더 쉽게 되겠지만 지숙이 그런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하는 거 같아 일부러 숨겼다.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시황은 일부러 동네 주변에 대해서 물었다. 식사할 곳은 있는지, 놀 곳은 있는지 등 말이다.

“고마워. 은지야. 이제 할 거해.”

“네. 오빠. 헤헷.”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한 시황은 은지를 돌려보내고 컴퓨터로 그 주변을 살폈다. 요즘은 정보화 시대이다 보니 직접 그곳까지 가지 않더라도 포털 사이트의 지도서비스 중 거리뷰를 이용해 쉽게 살펴볼 수 있었다.

생각대로 상당히 지저분하고 좁은 골목길이 많은 동네였다. 이전에 들렀던 광안리 근처의 은지 집과 같은 도시에 있는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확인을 하고 나니 지숙이 정말 걱정된다.

시황은 시계를 봤다. 오후 6시.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수능 성적표를 받은 아침만 해도 기분이 상쾌하다고 느낄 정도로 최고로 좋았었는데 지숙의 일 때문에 지금은 마음이 상당히 무거워진 상태였다.

지금 당장 내려갈까 내일 아침에 갈까 고민하던 시황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금 바로 지숙의 집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현주와 은지에게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오겠다고 말을 하고는 자신의 오피스텔 지하로 간 시황은 차를 끌고 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오후 6시밖에 안 됐는데 벌써 해가 지고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별 생각 없었을 밤의 어둠이 지금은 좋지 않은 상상을 자꾸만 불러일으켰다. 이때동안 은지의 말만 듣고 지숙에게 아무런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게 너무나 미안했다.

카페가 바쁘고 수능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이건 조약한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마음만 먹었으면 지숙에게 신경 써줄 시간은 충분했으니까. 모든 건 지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자신의 잘못이었다.

1시간 쯤 돼서 추적기에 나온 지숙의 동네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더 허름한 느낌이었다. 지숙의 집으로 가려면 좁은 골목길을 들어가야 했는데 그 골목길에는 어떻게 주차했는지 이미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 더 이상 진입할 수가 없었다.

차를 세울 곳도 마땅치 않아 약간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지숙의 집으로 갔다. 금이 간 벽들과 녹이 슨 대문들. 시황의 부모님이 사는 곳 만큼이나 좁고 허름한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한참을 들어가서야 희뿌연 가로등 아래에 있는 지숙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은색 대문을 가진 딱 보기에도 좁아 보이는 건물에 페인트까지 벗겨져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면 사람이 사는지 의문이 들었을 법한 집이었다. 이런 곳에서 지숙이 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벽을 둘러봐도 벨이 없자 시황은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몇 번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쳤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집 안에 불이 켜진 걸 보면 안에 사람이 있는 건 분명했다.

“지숙아, 오빠야. 안에 있어?”

이미 상황 파악이 한참 전에 완료된 시황은 안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빚쟁이로 착각하고 있는 거 같아 일부러 친근한 목소리로 지숙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덜컹 열리며 수척한 아줌마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왔다. 보자마자 지숙의 어머니라고 느낄 정도로 지숙과 꼭 닮아 있었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지숙이랑 친한 선배인데, 지숙이한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그래요? 그런데 지금 지숙이 집에 없는데…….”

지숙의 엄마는 시황을 슬쩍 훑어보며 말했다. 다행스럽게 못되게 생긴 얼굴이 아니라는 게 제법 마음을 놓게 만들었다.

“어디 간 거에요?”

“무슨 일 있어요?”

“아, 네. 사실 지숙한테 아까 전화가 왔는데 바빠서 그런지, 꼭 중요하게 할 얘기를 다 못하고 끊었거든요.”

“어떤 얘기에요? 제가 전해줄까요?”

“아니요. 아니요. 엄청 개인적인 얘기라서…….”

“그래요? 지금 지숙이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찾아 가려면…….”

시황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지숙의 엄마가 지숙이 어느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는지 얘기를 해주었다. 만약 시황의 얼굴이나 모습이 좀 꺼림칙했다면 말해주지 않았을 테지만 순진한 얼굴에 너무나 착하고 공손해서 가르쳐 줘도 별 문제가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오히려 지숙의 남자 친구일지도 모르는데 이런 허름한 곳에 살고 있어서 실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까지 생각 정도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숙이는 몇 시까지 일해요?”

“아마 한 9시 30분 정도는 돼야 끝날 거에요.”

“아, 그렇군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럼 전 이만 지숙이에게 가볼게요.”

“그래요. 잘 가요.”

“네. 안녕히 계세요.”

지숙의 엄마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시황은 차를 타고 지숙이 일한다는 음식점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술집에서 일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스럽게 평범한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제법 큰 시내로 나온 시황은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숙이 일한다는 음식점 앞으로 갔다.

규모가 상당히 큰 고기집이다.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만 해도 상당히 많았다. 시황은 들어가지는 않고 일부러 밖에서 지숙이 있나 조심스럽게 살폈다. 밖이 너무 추워 유리로 된 문에 김이 서리기는 했지만 몇몇 여자 알바들 사이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지숙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

시황은 지숙을 발견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숙을 발견했기 때문에 시황은 지숙이 일하는 가게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갔다. 가게 앞에서 계속 안을 쳐다보고 있으면 상당한 민폐이기 때문이었다.

대략 2시간 정도만 더 있어야 지숙이 마치기 때문에 시황은 잠시 차로 갔다. 몸이 변화하면서 추위와 더위를 상당히 덜 타기는 했지만 길거리에서 2시간 내내 서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 일단 차로 온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시간이 생각보다 금방 흘러갔다. 지숙이 마치기 10분 전쯤에 차에서 내린 시황은 음식점의 문이 보이면서도 길에서 걸리적거리지 않는 좁은 골목길에 서서 지숙을 기다렸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깐 기다리자 지숙이 문을 열고 음식점을 나왔다. 아까 전에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복인 걸 보니 일이 끝난 듯 하다.

시황은 바로 지숙에게 가서 말을 걸려고 했는데 갑자기 남자 하나가 튀어 나와서 지숙의 옆에 붙어서 말을 건다. 귀에 귀걸이를 하고 건들건들거리며 걷는 그 남자는 딱 봐도 성실하고 착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남자는 계속 지숙에게 말을 걸었는데 지숙은 그 남자가 귀찮은지 대답조차 하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저런 남자가 지숙의 옆에서 계속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시황은 상당히 거슬렸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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