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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응. 아마 충분히 가능할 거야.]
[허허, 서울대라니.]
아빠는 정말 기쁜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드래곤의 유산을 받고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300만 원이라는 돈을 줬을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좋아하는 아빠는 처음 봤다. 그만큼 아빠에겐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으로 남은 거 같았다.
[그래서 서울대에 합격하면 서울로 올라가서 살려고.]
[그래.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해라. 필요한 거 있으면 아빠한테 바로 얘기하고. 알겠지?]
[응. 알았어. 그런데 지금 하는 카페 말이야…….]
시황은 이 카페를 부모님이 이어 받아서 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그냥 카페를 닫을까 고민도 했지만 한 달에 500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이 카페를 닫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건 네 엄마하고 얘기를 해보마.]
[알았어. 나중에 연락해줘.]
[그래. 우리 아들. 정말 자랑스럽구나.]
시황은 처음 들어보는 아빠의 칭찬에 쑥스럽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살면서 이렇게 아빠가 좋아하셨던 적은 처음인 거 같다. 진작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께 효도할 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효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능 만점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기분이 좋아진 시황은 카페에 들어가서 밤늦게까지 유미와 놀아주었다. 수능을 마친 유미는 그 해방감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분위기가 업 된 상태로 쉬지도 않고 시황에게 이런저런 온갖 사소한 얘기들을 다했다.
밤 12시가 지나 카페 문을 닫은 시황은 찬미와 유미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는데, 이제 얼마 뒤면 이것도 끝이라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한 느낌이다. 카페를 마치고 찬미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길을 걷는 것도 즐거웠는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시황은 컴퓨터로 어디쯤에 집을 사면 좋을지 검색을 했다. 지금 가진 돈이 대략 20억 정도 있는데 청담동에 카페를 차리고 집을 사려면 돈이 제법 많이 필요했다. 지방이야 땅값자체가 싸다보니 카페를 차리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 않았지만 청담동은 땅값이 비싼데다 카페 평수도 제법 넓게 할 생각이었고, 거기다 아루는 물론이고 찬미와 유미 등이 살아야 할 큰 집을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20억이라는 돈도 빠듯했다.
대충 살펴보니 방 5개가 넘고 제법 괜찮다 싶은 아파트는 10억이 가뿐히 넘었는데 이것도 약간 싼 곳이 그랬고 부의 상징이라 불리는 고층아파트는 20억 가지고는 전용면적 50평 이상은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빌라가 낫지 않을까 싶어 시황은 한참동안 인터넷 검색을 했다.
어느새 아루와 수란이 잠이 들었고 시황은 여전히 부동산 시세를 알아봤다. 인터넷이라는 게 모든 정보가 다 있는 게 아니다보니 대략적인 것들만 알 수 있을 뿐 확실한 정보를 찾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한 100억 원 정도만 있었으면 이런 고민 안 하고 그냥 마음에 드는 곳에 가서 살면 될 텐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2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있음에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100억 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러한 욕심이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물질에 사로잡히면 드라마나 소설에 나오는 돈 때문에 그 어떤 짓이라도 하는 추악한 인간이 되고 만다.
“조심해야지.”
시황은 낮게 중얼거리고는 어느 위치에 집을 구할 지부터 살폈다.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과 찬미가 다니는 대학, 유미가 합격할 대학이 전부 다를 테니 차가 없는 찬미와 유미가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인터넷 페이지를 넘기면서 시황은 끊임없이 정보를 뒤적거렸다.
어느덧 완연한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거리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었고 차가운 바람에 사람들은 두꺼운 점퍼를 껴입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황은 수능성적표를 받기 위해 자신이 옛날에 다녔던 고등학교로 갔다. 아직 아침 10시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학생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한 시황은 교무실에 들어갔다. 재수, 삼수를 한 걸로 보이는 학생들 몇 명이 이미 성적표를 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황도 그들 뒤에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이름이 뭐지?”
“강시황이요.”
“강시황이라…….”
시황의 이름을 들은 40대 중반의 선생이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시황의 수능 성적표를 찾기 시작했다.
“이야! 네가 강시황이구나.”
“네?”
성적표를 본 선생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시황을 보며 말했다.
“너 이 녀석, 수능 만점 받은 건 알고 있냐? 하하.”
“아…….”
학생들이 성적표를 받기 전에 선생이 먼저 수능 성적표를 받아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명 일일이 성적을 다 확인해봤을 것이다. 그러니 그 중에서 올 1등급은 물론이고 그 누구보다 높은 표준점수를 가진 시황의 성적표를 보며 몇 점을 받았는지 체크해봤을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은 어디 갈 생각이냐? 문과니까 의대는 안 되고 서울대 법대에 지원할 거냐?”
“고민 중이에요. 서울대에 지원은 할 건데 어느 과에 갈지는 아직 안 정했어요.”
“그래. 경영이든 법대든 자기 적성에 맞는 게 중요한 거지. 하여튼 만 점이라니. 정말 대단하네. 올해 수능은 엄청 어려워서 만점자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겠다던데. 혹시 만점자가 너 뿐인 거 아니야?”
시황의 말에 선생이 기분 좋게 웃으며 얘기를 했다. 시황이 수능 만점을 받았다는 사실이 상당히 흡족한 듯 했다.
“글쎄요. 설마 저뿐이겠어요?”
“모르지. 이번 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근데 너 좀 낯이 익은 거 같은데 옛날에 우리 반이었냐?”
성적표를 시황에게 건네주며 선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름이야 성적표를 보자마자 원점수를 체크해봤기 때문에 알았던 건데 얼굴까지 이렇게 낯익을 줄은 몰랐다.
“정선생님. 요 앞에서 엄청 유명한 카페 하시는 분이에요. TV에도 몇 번 출연해서 낯이 익은 걸걸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선생이 옆에서 끼어들며 말했다. 시황에 대해 제법 자세히 아는 걸 보니 카페 케즈론에 몇 번 온 적이 있는 거 같았다.
“아, 그래요? 이거 유명인을 몰라봤구만. 하하.”
이후로도 선생들과 제법 오랫동안 별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나서야 시황은 성적표를 가지고 학교를 나올 수 있었다. 먼저 성적표를 받았던 학생들은 특출한 성적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다른 말없이 성적표만 주고 끝이었는데 자신에게는 계속 대학에 관한 얘기부터 수능에 관한 얘기까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걸 보니 수능 만점이 가져다주는 임팩트는 굉장한 듯 했다.
카페에 도착한 시황은 노트북으로 수능에 관련된 뉴스들을 살폈다. 옛날, 재수가 망했을 때는 TV나 인터넷에서 수능관련 얘기만 봐도 짜증이 치밀었는데 수능 만점을 받으니 수능과 관련된 정보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졌다.
[너무나 어려웠던 수능, 만점자는 단 한명.
수능 채점 결과가 발표됐다. 채점 결과 모든 영역의 점수가 큰 폭으로 하락해 영역별 만점자 비율이 1%에 크게 못 미쳤다.
채점결과 만점자 비율은 언어영역 0.33%, 수리‘나’ 0.02%, 외국어영역 0.17% 등 난이도가 비교적 쉬웠던 작년 수능에 비해 만점자 비율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언·수·외 3개 영역 모두 만점자는 인문계열, 자연계열 포함해서 단 한명으로 최상위권의 수험생들도 시험에서 큰 어려움을 겪은 걸로 풀이된다…….]
이 뒤에 수능 응시자수가 65만 명이니 뭐니 하는 내용으로 이어졌지만 수능을 몇 명이 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65만 명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만 만점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시험을 칠 때 그렇게 어렵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수리와 외국어영역이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한 거 같았다.
시황은 비슷한 내용의 뉴스 기사만 보다가 조금 지겨워져서 자신이 자주 가는 사이트에 들렀다. 거기에도 수능을 친 사람들이 제법 있는지 게시판에는 수능 관련 얘기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나 수능 등급 211 2112받았는데 이정도면 무난함? 고려대 가능할까? ㅋ]
[수능 점수 방금 받았는데 레알 죽고 싶다……. 345 454인데 어떡해야 하냐? 재수가 답이냐? 진짜 우울하네…….]
몇 개의 글을 읽었는데 수능점수를 잘 받아서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글부터 시험을 망쳐서 우울해 죽으려는 글까지 다양한 글들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시황은 글을 하나 썼다.
[수능 만점 받으면 서울대 수석입학 가능할까?]
글의 회전이 빠른 곳이라 순식간에 댓글이 달렸다.
[수능 만점인데 당연히 가능하지. 이건 뭔 병신 같은 소리?]
[님이 수능 만점 받을 일도 없는데 그런 고민 왜 하세여?]
[수능 만점 받은 놈 진짜 개부럽다. 아오 진짜 완전 개부러움.]
[올해 수능이 엄청 어려워서 만점자가 한명 뿐이니 수석입학 가능하지 않을까? 다만 내신 점수가 변수인데 삼수 이상해서 내신 점수가 반영되지 않는 수험생이라면 수석입학은 따놓은 당상일 듯.]
쓸데없는 댓글이 많았지만 마지막에 달린 글은 제법 읽어볼만 했다. 만약 수능이 쉬워서 만점자가 속출했다면 수석입학이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올해 수능은 너무나 어려워 만점자가 자신뿐이라 생각보다 쉽게 수석입학이 가능할 거 같았다.
시황은 가방에서 타블렛을 꺼내 퀘스트를 살폈다.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으세요.][완료][경험치 2000]
수능 만점으면서 퀘스트가 완료됐고 2000이라는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여기서 끝이나는 게 아니라 서울대 수석입학 퀘스트라든가, 학점 퀘스트 등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타블렛을 집어넣고 이런 저런 글들을 살피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시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강시황 씨죠?]
[네. 맞는데 누구시죠?]
20대 중반의 남자 목소리. 약간 굵직한 저음을 내는 목소리를 들으니 직접 대면한 건 아니지만 대충 어떤 느낌의 남자인지 대충 예상이 갔다.
[저는 뉴스롤의 김지훈 기자라고 합니다. 이번 수능 만점을 받으신 걸로 아는데 인터뷰가 가능 할까 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빠르다. 인터뷰 요청이 올 거라는 건 대충 알기는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연락이 올지는 몰랐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알아서 이렇게 연락을 하는지 궁금할 정도다.
[네. 가능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만날 시간을 대략적으로 정하고 시황은 전화를 끊었다. 인터뷰야 이미 여러 번 해봤기 때문에 별로 긴장 되는 것도 없어서 다시 인터넷을 하려고 마우스를 잡았다. 그런데 금방 또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미디어지금의…….]
이것도 인터뷰 요청 전화였다. 예전 한창 노래본좌로 이름을 날릴 때도 이렇게 연속적으로 인터뷰 요청이 오지는 않았는데 수능 만점을 받자마자 언론사에서 엄청난 전화가 왔다.
직접 인터뷰를 요청하는 곳도 있었고 전화로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바로 인터넷에 기사로 올리는 언론사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빠르게 뉴스 기사를 올린 건 예전 고소사건으로 자신과 약간 친분이 생긴 뉴엔뉴의 김철민 기자였다. 약간의 친분이 있다 보니 전화상으로 제법 상세하게 얘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자 시황은 인터넷을 하며 뉴엔뉴의 김철민 기자가 기사를 올리길 기다렸다.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쓸지 기대가 됐던 것이다. 잠시 인터넷을 하며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올라왔고 시황은 바로 확인했다.
[이게 바로 엄친아? 수능 만점자는 노래 본좌로 확인.]
나쁘지 않은 제목이다.
[…… 인문계열, 자연계열을 통틀어 단 한명밖에 없는 수능 만점자가 노래 본좌로 확인이 됐다. 노래 본좌인 강시황 씨는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임에도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김철민 기자가 왜 수능을 쳤냐고 해서 대충 지어내서 말한 거라 뒷내용은 별로 중요치 않았고 중요한 건 수능 만점자가 노래 본좌라고 기사를 냈다는 사실이었다.
시황은 바로 포털 사이트에 노래 본좌 수능이라고 검색을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관련 글들이 검색된다.
[야 수능 만점자가 노래 본좌라는데? 진짜 불공평한 거 아님? 노래 잘하는 것도 모질라서 수능까지 만점 받냐. 진심 짱난다. 누구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수능도 망쳐서 재수할까 고민 중인데……. 아오 빡친다.]
시황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 찬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뭐, 시황이 생각하기에도 만약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온갖 욕은 다했을 것이다.
[너희들 그거 아냐? 노래 본좌 BMW M6 타고 다닌다. 참고로 2억짜리 차임. ㅋㅋㅋㅋㅋㅋㅋ]
이 글에는 어디서 찍혔는지 자신이 차에 타는 사진이 올라와있었다. 그렇게 유명한 편도 아닌데 이런 사진까지 올라온 거 보면 연예인들은 어떨지 안 봐도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 작품 후기 ============================
어느새 200회가 됐네요.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 오늘 동생 논산 훈련소에 입대하는 거 배웅해주고 올게요.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동생이라 이제야 입대를 하네요;
군생활 어떻게 하련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뭐, 잘 하겠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