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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191화 (19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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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찬미의 집에 도착한 시황은 벨을 눌렀다. 그러자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은 찬미가 문을 열어주었다.

“오빠, 시험 어땠어요?”

“무난하던데.”

찬미의 방으로 가며 시황이 가볍게 말했다. 그러자 찬미가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의고사기는 해도 시황이 처음으로 쳐보는 제대로 된 시험이라 찬미도 제법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찬미의 방에 들어간 시황은 미리 준비해놓은 탁자에 앉으며 가방에서 답안지를 꺼냈다. 모의고사는 답지가 바로 공개되기 때문에 간단하게 점수를 체크할 수 있었다.

타블렛으로 모의고사 답을 보면서 점수를 매겼다.

“아, 틀렸네.”

별 문제없이 다 맞아가다가 중간에 한 문제를 틀렸다. 시황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다행스럽게도 2점짜리 문제였지만 한 문제 틀렸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한 문제 밖에 안 틀렸네요. 오빠.”

“다 맞을 수 있는 건데……. 아깝네.”

찬미는 잘했다는 의미에서 말한 건데 시황은 그 틀린 한문제가 너무 아쉬웠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아쉬움에 한숨을 쉬던 시황은 마음을 다잡고 이어서 수리와 영어, 사탐을 채점했다. 다행스럽게 언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에서는 틀린 게 전혀 없었다.

“오, 오빠……. 언어만 하나 틀리고 나머지는 다 만점이에요.”

점수를 채점한 찬미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영어야 워낙 잘해서 만점 받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수리와 사탐까지 만점을 받을지는 몰랐다. 문과라서 경쟁률이 이과보다는 훨씬 치열하기는 하지만 500점 만점에 498점이라면 한국에 있는 그 어떤 대학이라도 갈 수 있는 엄청난 점수였다.

시황은 인터넷으로 등급커트라인을 확인했다. 언어영역이 쉬웠던 건지 98점이 1등급 커트라인으로 나와 있었다. 한문제만 더 틀렸어도 2등급으로 내려갈 뻔한 건 물론이고 찬미가 내건 올 1등급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도 못할 뻔 했다.

“찬미가 가르쳐 줬는데 당연히 이정도 점수는 받아야지.”

시황이 웃으면서 말했다. 한 문제 틀린 건 아쉽긴 했지만 예전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성적이라 가슴 가득 기쁨이 차오른다. 그런데 또 좀 묘한 게 그 옛날에는 그렇게 공부를 해도 안 되더니 지능이 상승한 것만으로 점수가 쑥쑥 오른 거 보면 이전의 자신은 지능이 상당히 낮았다는 말인데……. 뭔가 좀 찝찝한 기분이다.

“아니에요. 오빠가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얻은 거죠. 이 기세로 수능까지 좋은 성적을 얻도록 노력해요.”

“고마워. 근데 이건 찬미가 말한 1등급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말하는 부탁 무조건 들어줄 거지?”

“그, 그럼요. 어떤 부탁인데요?”

시황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말하자 찬미가 약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가슴을 만진다든가, 섹스를 한다든가 등의 성적인 행위는 평소에도 당연히 하는 거였기 때문에 시황이 무조건 들어달라고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할 것도 아닐 테고……. 도무지 뭘 부탁하려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별 건 아니고 오늘 일 끝난 뒤에…….”

시황이 말을 하려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유미가 들어왔다.

“언니!”

“으, 응.”

순간적으로 흐름이 끊겼다.

“나중에 말해줄게.”

“아……. 네.”

찬미는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황에게 빨리 말하라고 귀찮게 굴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될 일인데 괜히 그런 행동을 하면 서로의 기분이 상할 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찬미는 다른 남자들에게는 차가운 여자지만 내 남자에게는 따스하고 배려심 깊은 여자였다.

찬미의 방문이 벌컥 열리며 유미가 들어왔다.

“언니, 오빠! 나 오늘 시험 완전 대박 잘 쳤어.”

유미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가방을 멘 채로 시황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가방을 벗고는 시험지를 꺼냈다. 시황은 학원에서 시험지를 다 걷어 가버려서 다른 종이에 답까지 적어서 가져왔는데 기본적으로는 시험지를 가져올 수 있는 듯 했다. 왜 불편하게 학원에서 시험지를 걷어갔는지 의문이다.

유미는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탁자 위에 시험지를 올렸다.

언어 96점, 수리 74점, 외국어 84점. 시황에 비하면 많이 못 미치는 성적이었지만 등급으로 치자면 전부 2등급 안에 들 정도로 상당히 높은 점수였다.

“잘했지? 오빠 잘했죠? 여기서 막판에 더 열심히 공부하면 진짜 언니처럼 서울 상위권 대학 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유미의 눈에 SKY라는 단어가 얼핏 보이는 듯 했다. 시황이야 고려대니 연세대니 하는 곳에 가는 게 아니라 수능 만점으로 서울대 수석 입학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였지만, 이건 시황이나 그런 거고 유미같은 일반 고등학생은 연고대에 가는 게 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거기다 연고대에 입학만 하면 그 어떤 친척이 와도 여유를 가질 수가 있는 건 물론이고, 동시에 부모님에게 자부심 +10과 자랑 +10 이라는 부가적인 효과를 주기도 했다.

“정말 잘했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겠다. 유미야.”

“대단하네. 유미.”

찬미와 시황이 웃으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유미의 얼굴이 헤벌쭉해진다.

“오빠도 오늘 시험쳤죠? 몇 점이에요?”

“나? 언어영역 하나 틀렸어.”

“와, 대박. 수리는요?”

유미는 시황이 언어영역 시험 점수만 말한 줄 알고 수리 점수가 몇 점이냐고 물었다.

“하하. 전부 다 해서 언어영역 하나 틀렸다는 말이야.”

“진짜요? 헐, 완전 대박. 말도 안 돼.”

시황의 말에 유미가 정말 놀랐는지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만약 같은 반 애가 저렇게 말했으면 기분이 조금 상했을 테지만 시황은 경쟁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순수하게 감탄하고 좋아했다.

“오빠 진짜 완전 엄친아네요.”

“엄친아는 무슨……. 하하.”

유미의 말에 시황은 피식 웃어버렸다. 자신은 엄친아라는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부족했다. 로또도 아닌 드래곤의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거 자체가 지구를 넘어서는 스케일이니 말이다.

잠깐 유미와 대화를 하면서 놀던 시황은 오후 6시가 넘자 현주와 교대를 하기위해 찬미와 함께 카페로 갔다.

9월이 지나 대학교가 개강을 한 영향도 있기는 했지만 잡지, 신문, 공중파 방송까지 타서 그런지 6시가 넘었음에도 카페에는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가는 것조차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찬미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시황은 손을 씻고 와서 은지를 도와주었다. 좁은 평수에도 불구하고 아르바이트생이 제법 많았음에도 손님이 너무 많이 오다보니 정신없이 바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은지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아보였다. 웃음을 짓고는 있는데 그야 말로 억지로 짓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저녁 아르바이트생이 오고 찬미가 현주와 교대를 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은 빠르게 퇴근을 했지만 현주와 은지는 시황이 앉는 테이블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커피를 마셨다.

“은지야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오빠.”

은지는 무슨 일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은지가 하고 있는 고민은 뻔했으니까.

분명 은지가 저번에 다음 달 말, 즉 지금으로 치자면 이번 달 말까지 돈을 갚아야 했는데 아직 그 돈을 갚지 못한 듯 싶었다.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큰돈인 듯 했다.

“얼마나 남은 거야?”

“……2주 정도 남은 거 같아요.”

잠시 주저주저하던 은지가 말했다. 이 말은 아직 일주일정도는 여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얼마 정도 부족한데? 가능하면 오빠가 도와줄게.”

“아, 아니에요. 오빠 괜찮아요.”

시황은 일단 미리 도와준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이렇게 예열을 해놔야 원활하게 진행이 된다. 얼마 남지도 않았을 때 도와준다고 말을 했다가 은지가 계속해서 극구 사양을 한다든가, 다른 이상한 변수가 생긴다든가 하면 큰일이니까 말이다.

“괜찮아. 은지야. 얼마 정도 필요한 거야? 부담 갖지 말고.”

“아니에요. 오빠 정말 신경 쓰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시황이 설득을 했지만 은지는 계속 괜찮다면서 사양을 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약간 이상해져 현주가 어색한 표정으로 커피만 홀짝였다.

하지만 시황은 이 분위기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이런 요상한 분위기가 된 것도 은지가 자신을 생각해준다고 돈을 빌려준다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니까. 인터넷만 보면 어떻게 하면 남자 돈 빼먹을까 하는 된장녀 밖에 없는 거 같은데 막상 자신의 주변에는 은지처럼 마음씨가 좋은 여자들 밖에 없었다. 뭐, 된장끼가 있는 여자라면 애초에 자신이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을 거지만 말이다.

“알았어. 아직 기간이 남았으니까, 우리 천천히 생각해보자.”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오빠.”

“뭘 이정도 가지고.”

시황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직 2주라는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급할 건 없다. 은지야 당장에라도 설득할 수 있지만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설득할 생각이었다.

카페에서 놀던 은지와 현주가 떠나고 시황은 테이블에 앉아 인터넷을 했다. 밤이 좀 늦어져서 그런지 손님이 많이 줄어 제법 카페가 한적해졌다.

딸랑.

“저기에 시황 오빠 있다.”

“실물로 보니까 진짜 쩐다.”

“야, 빨리 말 걸어봐.”

늦은 밤에 카페에 들어온 여대생 3명이 입구에서부터 약간 소란스럽게 굴더니 주춤거리면서 시황에게 다가갔다.

시황은 여대생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자신에게 용무가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지만 일부러 전혀 모르는 척 마치 업무라도 보는 냥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인터넷을 했다.

[정은비랑 키스하면 엄청 달콤한 맛 날 거 같지 않냐? 솔직히 정은비가 똥 싼다는 게 안 믿겨짐. 그 귀엽고 예쁜 얼굴로 어떻게 똥을 싸냐.]

[이건 또 무슨 병신이야. 정은비는 똥 안 싸거든?]

[얘들아. 정은비도 똥 싸고 양치질 안 하면 입 냄새 개쩐단다. 근데 난 그 입 냄새라도 맡고 싶다. 하악…….]

마침 보고 있던 게 이런 수준 낮은 글이라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게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드래곤의 유산을 얻은 이후로 몇 달 동안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던 시황이었던지라 정말 감쪽같은 행동할 수 있었다.

“오, 오빠. 저, 저기……. 패, 팬인데 사,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주춤주춤 다가와서 어색한 표정을 짓던 3명의 여자애 중 한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시황에게 말을 걸었다.

“아! 네. 물론이죠.”

시황은 인터넷 창을 끄고 나서 이제야 알아차렸다는 듯 감탄성을 내뱉으며 여대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커피를 만들고 있는 찬미가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시야의 가장자리로 슬쩍 보인다.

“저, 저도 팬이에요. 방송 잘 봤어요. 오빠.”

“노래 정말 잘하시더라구요. 저 그 방송 보면서 정말 감동했어요.”

여대생들이 시황이 나왔던 본좌대 본좌 방송을 봤는지 그거에 대해서 끊임없이 떠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시황은 웃으면서 여대생이 건네준 종이에 사인을 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은 사인도 그 사람을 나타내는 한 가지 요소였기 때문에 시황은 마력 회로를 끌어올려 정교한 그림을 그리듯 사인을 해주었다.

“와, 사인 대박 간지난다.”

시황의 사인을 본 여대생들이 감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통 연예인들의 사인도 제법 괜찮긴 했지만 마력 회로를 최고로 끌어올린 시황의 사인은 예술성이 느껴질 정도였다.

여대생들은 시황의 사인을 받고 나서 한참동안이나 시황과 얘기를 하고는 다음에 또 온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본좌대 본좌 방송이 나간 이후로 이런 일이 부쩍 많아졌다. 인터넷 방송을 할 때는 정말 간혹 가다 생기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새삼 와 닿는다.

시황은 아까 여대생이 왔을 때부터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찬미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다시 인터넷을 했다. 괜히 지금 눈이라도 마주쳤다간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져 버린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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