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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사람들 앞에서는 온갖 착한 척은 다해도 실제로는 쌀쌀맞고 까칠한 성격의 은비가 시황을 좋아하다니! 특종 중의 특종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만 한다면 단번에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할만한 그런 대단한 뉴스였다.
소진은 자신의 추측이 사실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황과 은비를 살폈다.
“은비 씨는 집에서 뭐해요? 귀찮아서 운동 같은 거 안하시죠?”
“운동 열심히 하거든? 바보야. 스케쥴 때문에 바빠서 많이 못해서 그렇지…….”
“그래요? 근데 은비 씨 집은 어디에요?”
“그게 왜 궁금한데. 나 부모님이랑 살아서 너 오지도 못하거든?”
“그냥 알고 싶어서요.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흐, 흥. 압구정에 살거든. 알아봤자 뭐해. 어차피 넌 지방에서 살잖아.”
이 부분에서 은비는 살짝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더 시황과 친해지고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 이후로는 언제 만날지 몰라서 너무너무 아쉽다. 시황의 카페가 서울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중에 서울로 이사할거라 미리 알아두는 거죠.”
“서울로? 언제? 왜?”
시황의 눈에 은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방금 전에 풀이 죽었던 거랑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쯤 되자 소진은 은비가 시황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아예 확신을 했다. 이때까지 수없이 대쉬해오던 남자 연예인에게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던 은비를 어떻게 저런 사랑에 빠진 순수한 소녀로 만들어버렸는지 신기할 정도다.
“청담동에 카페도 내고, 서울에서 학교도 다녀야 하거든요. 아마 수능 치고 나서 올라오지 않을까 싶네요.”
“수능이요?”
“수능?”
시황의 말에 은비와 소진이 같이 대답을 했다. 시황이 좀 어려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능을 쳐서 대학을 갈 나이는 상당히 지난 거 같은데 무슨 수능이란 말인가?
“응. 이번에 수능 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생각이거든. 아직 공부중이니까 나중에 합격하면 말해줄게.”
시황의 말에 꽤 놀라웠던지 그 뒤로도 은비와 소진의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은비나 소진과 그렇게 많이 만나고 다른 여자들에 비해 엄청 친한 건 아니었지만 대화가 전혀 끊기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잠깐, 나 화장실 좀.”
시황이 얘기하던 도중에 화장실에 갔다. 그러자 한창 신나서 떠들던 은비가 급격히 조용해졌다. 시황이 나가자마자 방에 요상한 적막감이 감돈다.
“은비, 너 시황 오빠 좋아하지?”
잠시 눈치를 보던 소진이 은비에게 대놓고 물었다.
“무,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언니.”
“오빠랑 얘기하는 거 보니까 티 엄청 나던데.”
“아, 아니라니까. 내, 내가 저런 바보 같은 놈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
은비는 엄청 당황해하며 말했다. 누가 봐도 속마음을 들켜서 그런다는 게 뻔히 보일 정도로 어색한 태도다.
“너 계속 그러면 언니가 안 도와준다.”
“도, 도와준다고?”
소진이 도와준다고 말하자 이때까지 거부하던 은비가 솔깃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전에 만난 은지가 오빠랑 친하거든. 그래서 내가 오빠 취미랑 그런 거 물어봐서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
“진짜?”
“그래. 또 둘이서만 만나기 어색하면 내가 같이 만나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도와준다니까. 응? 오빠 좋아하지?”
소진의 말에 잠시 갈등을 하던 은비가 얼굴을 엄청 붉히더니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씨…….”
그리고는 그 부끄러움을 못 참겠는지 낮게 소리를 냈다. 은비의 얼굴이 정말 터질 듯이 붉어졌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떻게 시황에게 첫눈에 반하다시피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전부 다 그 반지 때문이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자신이 시황을 좋아하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어쩌다가 좋아하게 된 거야?”
“그게…….”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소진이 묻자 은비가 잠시 갈등을 하다가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다만, 사실 그대로 얘기해주면 소진이 이상한 상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키스를 했다든가, 같은 침대에서 잤다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10억 원이 넘는 보석이라고?”
“응. 반지랑 귀걸이, 목걸이였는데 엄청 예뻐.”
은비의 말을 들은 소진이 순간적으로 시황이 은비를 꼬시려고 사기를 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10억 원이 넘는 다이아몬드라는 게 나름 인기 있는 연예인에게조차도 허황될 정도의 얘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황의 순진한 행동이나 착한 마음 씀씀이를 조금이나마 아는 소진이었기 때문에 이 이상 의심을 하지는 않았다. 만약 소진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무조건 시황이 사기를 쳤을 거라고 은비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황 오빠 차도 엄청 비싼 거 같던데, 집이 잘사나봐.”
“도, 돈이 중요한가 뭐.”
은비는 시황과 키스만 했을 뿐 여자 친구도 아닌데 괜히 자부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소진과 은비가 시황의 재력에 대해 한창 얘기하는 와중에 시황이 들어왔다.
“오빠, 은비한테 들었는데 진짜 10억 원이 넘는 보석 있어요?”
“응. 있어. 보여줄까?”
“네. 오빠. 보여주세요. 엄청 궁금해요.”
“잠깐만.”
소진은 약간의 검증 차원에서 시황에게 말했는데 시황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옆에 놓인 가방에 손을 집어넣어 보석함을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렸다.
시황이 그 보석함을 열자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장신구 3개가 모습을 나타냈다. 혹시 가품이 아닐까 생각했던 소진조차 이 보석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쳐다봤다.
“예쁘지?”
“너무 예쁘다…….”
이런 비싼 보석은 처음 보는 소진인지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한 번 껴볼래?”
“그, 그래도 돼요?”
“응. 은비 씨처럼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돼. 하하.”
“너 때문이잖아. 바보야.”
시황의 말에 은비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고 소진은 조심스럽게 반지를 들어서 자신의 왼쪽 손가락에 껴보았다. 다이아몬드가 단순히 크기만 한 게 아니라 너무나 아름답게 컷팅되어 있어 빛이 이리저리 반짝거린다.
소진은 보석을 껴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은비는 혹시 그 보석을 잃어버릴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둘이서 놀고 있자 시황은 가방에서 타블렛을 꺼내 퀘스트를 확인했다.
[연예인과 키스를 하세요. 경험치 300]
[종편 채널의 예능이나 드라마에 출연하세요. 경험치 600]
얼마 전에 죽었다 살아나면서 2만이라는 엄청난 경험치를 얻었음에도 5레벨을 향한 경험치 바의 5분의 1정도만이 찼을 뿐이었다. 이제 막 군대에 입대한 이등병처럼 5레벨이 되기까지 엄청 까마득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노력해서 경험치를 모아야했다.
퀘스트를 확인했는데도 여전히 소진과 은비가 보석에 정신이 팔려있자 시황은 일렉트릭의 황승민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했다.
“응?”
황승민이라는 놈이 얼마나 행실이 안 좋고 나쁜 놈인지 알아보려고 검색을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글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오빠, 그 싸가지 없는 놈이 누구에요?]
[또 누가 우리 오빠 화나게 한 거야!]
[오늘 녹화면 JLBC에서 한 본좌대 본좌라는 프로인데……. 거기 나온 사람 중 하난가?]
웹페이지 검색창에 뜬 글들을 보고 시황은 어떤 상황인지 바로 눈치를 챘다. 곧바로 승민의 트위터를 확인했다.
[오늘 녹화를 했는데 참 싸가지 없는 놈을 만났다. 노래라도 잘하면 그걸 패기라고 생각해주겠는데 노래도 못하면서 싸가지 없게 행동하는 꼴 보니까 한숨만 나온다.]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글이었지만 시황은 단숨에 자신을 저격하는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너무 바보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설마 이런 글을 쓰면 여론이 자신에게 좋아질 거라 생각한 건가?
항상 말하지만 시황은 인터넷만 10년을 넘게 한 폐인이다. 이런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후에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 눈에 선하게 보였다. 경제에 전문가가 있고, 바둑에 고수가 있듯이 시황은 인터넷 여론에 관해서라면 자신도 나름 전문가 반열에 든다고 생각했다.
일렉트릭의 황승민이 나름 인기가 있기는 있는지, 벌써 네티즌들이 그 싸가지 없다는 사람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정보라는 게 무한한 게 아닌지라 승민이 말한 싸가지 없는 놈이 누구인지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황보다 승민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다. 그 말은 승민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을 옹호해줄 사람이 시황보다 많다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승민은 자신의 팬들이 인터넷 전체로 보자면 매우 소수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어찌됐든 현재로써는 승민보다 시황의 팬이 압도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이거에 대응할 방법은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대응할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시황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승민의 팬들이 쓴 글을 읽었다. 전형적으로 연예인에 눈이 먼 여자애들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싸가지 없는 놈을 욕하기 바빴다. 그들에게는 진실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오빠의 말이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정작 그 사랑하는 오빠가 소진을 어떻게 한번 꼬셔보려고 노력중인건 알랑가 모르겠다.
시황은 다시 한번 승민을 기억해 두었다. 옛날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자신은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오빠, 이거 정말 10억이에요? 너무 예쁘다.”
시황이 정신없이 타블렛을 보고 있는데 소진이 시황에게 말했다.
“10억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왜? 가지고 싶어?”
“네. 너무 갖고 싶어요. 그런데 10억이면 10억이지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는 뭐에요?”
“16캐럿 다이아가 10억 이상 해서 그냥 10억 원이라고 말한 거야. 경매로 팔면 10억이 아니라 20억, 30억일지도 모르지.”
“30억…….”
시황의 말에 소진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너무 가지고 싶어 죽을 거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소진에게 이런 값비싼 보석을 주기에는 많이 일렀다. 아루나 찬미라면 갖고 싶다 말한 순간, 당장에 줬겠지만 나중에 관계가 깊어지면 모를까 지금 소진과 자신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값비싼 보석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 다음 연말 시상식 할 때 그거 끼고 나갈래? 드레스도 내가 예쁜 걸로 줄게.”
“정말요? 정말 그래도 돼요. 오빠?”
“응. 괜찮아.
“고마워요. 오빠. 정말 고마워요.”
시황의 말에 소진이 감격스러워하며 감사를 표했다. 소진에게 이 값비싼 보석을 주는 건 무리였지만 잠깐 빌려주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소진은 자신에게 엄청 고마워할 테고, 연말 시상식에서 소진이 착용한 보석과 드레스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될 테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나는 바보야.”
가만히 보고 있던 은비가 질투심어린 표정으로 시황에게 말했다.
“아! 어쩌죠. 보석은 그거뿐인데…….
“아씨, 바보야. 왜 소진 언니만 주는 건데!”
소진에게만 주고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시황이 행동하자 은비가 정말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순간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다. 소진의 표정도 살짝 흐려지며 은비의 눈치를 봤다.
“은비야, 이거 네가 낄래? 난 괜찮은데.”
착한 소진답게 단번에 은비에게 보석을 양보했다. 그렇게 가지고 싶으면 보통 이럴 때 가만히 있는데 소진은 마음씨가 너무 착하다보니 그러지를 못했다.
“그거 언니 껴. 난 괜찮아.”
은비가 입이 쀼루퉁하게 나와서는 말했다.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이다.
“농담이에요. 농담. 은비 씨 진짜 삐지신 거에요?”
“아, 아니거든. 바보야. 내가 왜 삐져.”
시황의 말에 은비의 얼굴에 단번에 화색이 돈다. 성격을 알기가 너무 쉽다.
“그러면 빌려달라고 애교 한번 부리면 소진이 거보다 더 예쁘고 비싼 보석 빌려줄게요.”
“애, 애교?”
“싫으면 마시구요.”
시황의 말에 은비가 잠깐 갈등한다. 그 모습을 본 소진이 툭툭 건드리더니 은비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은비의 얼굴이 빨갛게 변하더니 뭔가를 하려는 듯 약간 주춤주춤거린다.
“오, 오빠, 저도 빌려주세요. 뿌잉뿌잉.”
은비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 양주먹을 볼에 대고 귀엽게 흔드는 애교. 한참 전에 유행해서 이미 단물 다 빠진 애교를 어색하게 하는 은비를 보면서 시황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은비의 본모습을 그냥 대충 보면 까칠하고 성격이 나쁜 거 같아도 생각 외로 단순하고 하는 행동이 너무 귀여웠다.
“푸하하. 알았어요. 빌려줄게요. 은비 씨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시황의 말에 은비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졌는데, 귀엽다는 말 때문인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은비를 소진이 잘 했다는 듯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저 식사만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얻은 게 많았다. 비록 오늘은 이걸로 헤어지게 되겠지만 이후에 만나면 은비는 물론이고 소진과의 관계도 충분히 만족할 만큼 발전하리라.
시황은 얼굴 가득 진한 웃음을 머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