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182화 (182/629)

0182 ------------------------------------------------------

본격적인

“보세요. 제가 찾는다고 했죠?”

“흑……. 다행이야…….”

시황의 말에 은비는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시황이 찾은 반지를 봤을 때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꼭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찾고는 있었지만 1시간, 2시간이 넘도록 찾아도 나오질 않자, 정말 못 찾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절망적인 생각 중에 찾게 되니, 그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다가 몇 번의 사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진실임을 인지하게 됐고, 그 순간 느껴지는 주체 기쁨에 절로 눈물이 나왔다.

“은비 씨…….”

시황은 훌쩍 거리는 은비를 아까처럼 살며시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시황의 이런 위로에 마음이 안정이 된다. 그래서 은비는 딱히 시황을 밀쳐 내거나 하지 않고 은은한 살내음을 맡으며 가만히 훌쩍거리기만 했다.

“이제 괜찮으세요?”

은비의 훌쩍거림이 잦아들자 시황이 은비를 놔주며 말하자 은비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반지 찾은 기념으로 다시 사진 한 장 찍을까요? 반지 껴보세요.”

“그, 그냥 돌려드릴게요. 제가 가지고 있다가 또 잃어버리면 어떡해요.”

시황의 말에 은비가 깜짝 놀라 빠르게 말했다. 또 반지를 잃어버릴까봐 너무 무섭다. 그러고 보니 반지에 정신이 팔려 아직까지 목걸이와 귀걸이를 끼고 있는 걸 까먹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은비가 빠르게 반지와 목걸이를 체크했고 얌전히 그 위치에 있다는 걸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은비는 목걸이와 귀걸이를 빼서는 바로 시황에게 건네주었다. 이제야 약간 마음이 편해진다.

“나중에 또 껴보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괜찮거든요!”

자신을 놀리듯 말하는 시황을 보고 은비가 새침하게 대답했다. 반지를 찾으면서 시황에게 좀 더 친숙해지고 그 마음씨 또한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 평소의 성격이 그대로 나왔다.

“하하. 그러면 이 애물단지들은 제 가방에 넣어둘게요.”

은비에게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를 받아든 시황은 보석함에 넣어서 가방에 넣는 척 하며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 옷도 드릴게요. 잠시 만요.”

“그러면 옷 갈아입으시는 김에 샤워도 하세요. 아까 긴장을 하셔서 식은땀 많이 흘리시던데 찝찝하시잖아요.”

“아, 아니거든요! 더, 더워서 땀 흘린 건데요!”

아까 전에 했던 부끄러운 일을 꺼내자 은비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때 생각만 아직도 부끄럽다. 그런데 자존심을 건드리는 식은땀 부분에 신경 쓴다고 시황이 샤워를 하라고 한 말에 미처 거절을 바로 하지 못했다.

“뭐, 어쨌든 옷장에 간단히 입을 수 있는 옷도 있으니까, 지금 샤워하세요. 전 나중에 해도 돼요.”

“샤워요?”

갑자기 분위기가 좀 이상해지자 은비가 당황해서 시황에게 말했다. 남자와 한번도 이렇게 밤늦게까지 있어 본 적이 없기는 했지만 뭔가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샤워 안 하고 주무실 거에요? 그럼 저 먼저 샤워 할게요.”

“그, 그러든가요.”

이런 거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는 은비가 당황해서 대답했다.

“그럼 쉬고 계세요.”

은비의 대답을 들은 시황이 가방에서 팬티를 꺼내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은비는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거주춤하게 의자에만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마치 섬에 놀러왔다가 배가 끊긴 연인 같은 그런 이상야릇한 느낌이었다.

욕실 문을 닫았음에도 시황이 샤워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자연스럽게 시황이 샤워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자 은비가 얼굴을 붉혔다.

아까 시황에게 여기서 자고 간다고 말했던 게 선명하게 떠오른다. 반지를 찾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반지를 찾고 나니 이보다 당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냥 가버릴 수도 없었다. 그건 반지를 잃어버렸을 때 자신에게 위로를 해준 시황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고, 이 새벽에 도망치듯 호텔을 나갔다가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게 분명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샤워를 마친 시황이 팬티에 반바지만 걸친 채로 욕실에서 나왔다. 미끈한 몸매에 조각 같은 근육에 은비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응시했다. 남자 연예인 중에서 시황보다 잘 생기고, 키 크고, 몸매 좋은 사람은 제법 봤지만 시황만큼 매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진정됐던 가슴이 다시 울렁울렁한다.

“정말 안 씻으실 거에요?”

“모, 몰라요.”

시황의 말에 정신을 차린 은비가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시황의 말대로 식은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너무 찝찝해서 샤워는 하고 싶었는데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

“집에서도 그렇게 안 씻으세요?”

“뭐, 뭐라구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보니까, 그런 거 같은데요? 뭐, 사실 저도 집에 있을 때는 귀찮아서 안 씻을 때도 있으니까, 이해는 합니다.”

“아니라니까요!”

웃으며 말하는 시황을 보고 은비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누구 때문에 안 씻는지도 모르고 저런 소리를 할까.

“어쨌든 안 씻으실 거죠? 그러면 이제 슬슬 자죠.”

“씻을 거에요! 흥.”

왠지 자신을 더럽게 보는 듯한 눈빛으로 시황이 말하자 은비가 욱하는 마음에 까칠하게 대답하고는 욕실로 바로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욕실에 들어오자 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자신에게는 팬티나 입을 옷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질염 때문에 냉이랑 분비물이 잔뜩 묻은 팬티와 땀에 젖은 옷을 입을 수는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은비는 일단 욕실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잘 준비를 마쳤는지 시황은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침대에 베개가 두 개 있기는 했지만 침대 자체는 하나라서 자는 것도 약간 곤란했다. 둘 중 하나는 바닥에서 자든가 해야 하는데 시황이 저렇게 누워 있는 거 보면 자신보고 바닥에서 자라는 건가 싶었다.

“왜 안 씻고 나오셨어요?”

“소, 속옷 가지러 나왔어요.”

“속옷 들고 오셨어요?”

“그건 아닌데…….”

은비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팬티를 안 입을 수도 없고, 질염 때문에 샤워를 안 할 수도 없었다. 커다란 난관을 넘었다고 생각했더니 수많은 허들이 자신의 앞에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건 전혀 생각도 못했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짜증까지 조금 날 정도다.

“그러면 제 속옷이라도 입으실래요? 아직 한 번도 안 입은 건데.”

“한 번도요?”

“네. 혹시나 싶어서 새 팬티 몇 개 가지고 왔거든요. 트렁크 팬티라서 입는데 별로 불편하시지도 않으실 거 같은데 어때요?”

“그, 글쎄요.”

“입으신 팬티는 빠셔서 말리고, 제거는 내일 주시면 되잖아요. 뭐, 싫으시면 어쩔 수 없구요.”

시황은 설득을 한다기보다는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이럴 때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것처럼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민망함 때문에 하라고 해도 안 하니까.

“그, 그럼 일단 그거라도 줘보세요.”

우물쭈물하는 은비의 말에 침대에서 일어난 시황이 테이블에 있는 가방에서 팬티를 하나 꺼냈다. 포장이 안 되어 있기는 했지만 새 거 특유의 느낌이 가득했다.

시황이 팬티를 건네주자 은비가 엉거주춤하게 받아든다. 시트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런 상황에 어이가 없었지만 어찌됐든 자신에게 일어난 현실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옷도 드려요?”

“옷이요? 일단 줘보세요.”

이쯤 되자 은비도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까보다 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황은 가방에서 흰색의 반팔 티와 짧은 반바지를 꺼내서 주었다. 여자가 입기에 큰 부담이 없는 옷이다.

“이제 씻으세요. 전 TV나 좀 볼게요.”

“알았어요.”

은비는 시황에게 받은 팬티와 옷을 가지고 욕실에 다시 들어갔다. 문을 잠갔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남자와 이렇게 밤늦게까지 있는 것도 처음이고 아빠가 아닌 남자가 밖에 있는데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주춤주춤하던 은비는 옷을 다 벗고 팬티를 봤다. 분비물 때문에 팬티가 노랗게 변했고 냄새까지 심하게 났다. 이 상태로 잘 수는 없는 일이다.

샤워기를 틀어서 팬티를 대충 씻은 다음에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팬티를 넣어두었다. 한번만 씻어서는 냄새가 제대로 빠지지가 않았다.

혹시 시황이 훔쳐볼까 싶어 잔뜩 경계를 했지만 방에서는 TV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제야 약간 마음이 편해진 은비가 제대로 샤워를 시작했다. 머리도 감고 겨드랑이도 씻었는데, 특히 음부를 깨끗하게 씻었다. 다만 이건 시황과 섹스를 하려고 씻는 게 아니라 질염 때문이었다.

샤워를 마친 은비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난 뒤에 팬티를 한번 더 빨고 욕조 위에 있는 빨래줄에 팬티를 걸었다.

“아, 어쩌지.”

은비는 시황의 팬티를 바라보면서 고민했다. 입는다고 받기는 했는데 막상 입으려니까 부끄러워 죽을 거 같다.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은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아…….”

한참을 고민하고 한숨을 내쉬던 은비가 뭔가를 결심한 표정을 짓고는 팬티를 입었다. 남성용 트렁크 팬티라서 제법 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딱 맞는 느낌이다. 거기다 통풍이 잘돼서 음부로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자 상당히 상쾌하다. 완전히 벗고 자는 것만은 못하지만 나쁘지 않은 느낌. 이 편한 느낌에 트렁크 팬티를 하나 살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든다.

팬티를 입은 은비는 브래지어를 걸쳤다. 시황이랑 같이 있는데 티로 유두가 튀어나온 걸 보일 순 없으니까. 그리고 받은 반바지와 티를 살며시 쥐고는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킁킁거리면서 맡았다. 다행스럽게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반바지와 티까지 다 입은 은비는 조심스럽게 욕실 문을 열고 나갔다.

“하하.”

시황은 침대에 누워서는 TV를 보며 웃고 있었다. 자신이 욕실에서 나온지도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자 어쩐지 기분이 조금 나쁘다.

“저는 어디서 자요.”

은비가 시황을 보며 새침하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시황에게까지 가식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가식적인 행동을 하는 건 인기와 이미지를 위해서일 뿐이니까. 그래서 자신의 원래 성격을 아는 소진이나 기타 몇몇 사람들에게는 가식적인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제 옆에서 주무시면 되죠.”

“네?”

시황의 말에 은비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세상에 저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왜요?”

“그, 그게 말이나 돼요? 당연히 둘 중 한명이 바닥에 자야죠.”

“이불이 이거 밖에 없는데요.”

“기다려 봐요.”

당황한 표정을 지은 은비가 옷장을 뒤적뒤적 거렸지만 정말 이불이 침대에 있는 거 하나뿐이었다. 첩첩산중이라더니, 반지를 찾고 모든 고통은 끝일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보세요. 없잖아요. 빨리 침대에 누우세요. 저 졸려서 죽을 거 같아요.”

시황의 말에 은비는 어찌해야할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시황이라는 사람 자체가 제법 호감이 있고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그것과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건 정말 별개의 일이다.

“은비 씨. 계속 서 계실 거에요? 그럼 저 먼저 잘게요.”

“뭐, 뭐에요! 매너 없이.”

정말 불을 끄고 자려고 하자 은비가 소리쳤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시황은 자신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왠지 자존심 상하는 느낌.

“저 졸려요.”

“아……. 진짜 제 몸에 손 하나라도 댔다가는 가만 안 둘 거에요.”

============================ 작품 후기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