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179화 (17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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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어머……. 정말 아름다워요.”

만화였다면 눈에 하트가 그려졌을 것만큼 은비는 장신구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정말 그 어떤 매장에서 봤던 보석보다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웠다. 큼지막한 블루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는 보석 간에도 급이 있다는 걸 처음 느끼게 해주었다. 괜히 10억이 넘는 그런 보석들이 아니다.

“그런데 은비 씨께서 모델을 안 하신다고 하시니……. 어쩔 수가 없네요. 대충 감상하셨으면 이제 다시 넣을게요. 엄청 비싼 것들이라 조심해야 하거든요.”

“잠깐만요.”

시황이 장신구들을 다시 부드러운 천에 싸서 보석함에 집어넣으려고 하자 은비가 시황에게 외쳤다.

“네? 왜요?”

“어머. 너무 그렇게 급하게 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아직 시간도 많은데.”

잠깐 당황해하던 은비가 약간 진정을 했는지 특유의 가식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표정만 그럴 뿐 장신구를 꼭 껴보고 싶다는 열의가 가득 느껴졌다.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이런 10억이 넘는 보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게 아니었다. 그것도 다 합쳐서 10억이 아니라 개당 10억,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비싼 보석이니 말이다.

“제가 내일 아침에 녹화가 있어서요. 그렇게 시간이 많지는 않거든요.”

“어, 어머 그런가요.”

냉정한 시황의 말에 은비가 조금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자신이 보통 이렇게 얘기하면 보통 남자는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행동하는데 시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시황은 연예인인 자신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거 같았다. 왠지 조금 자존심이 상한다.

“네. 아까 운전도 계속하고 와서 좀 피곤하기도 하구요.”

“어머, 죄송해라. 그러면 제가 모델 할게요.”

계속 자신과 있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빨리 가라는 말투에 은비가 살짝 욱하는 마음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는데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기분 나쁜 시황의 말투와 보석에 눈이 멀어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아, 그래요? 모델 해주신다니 다행이네요. 어느 드레스로 입으실래요?”

“네? 그, 그게……. 자, 잠시 만요. 화장실 좀…….”

은비는 시황이 다시 드레스를 가져오자 당황한 마음에 오줌도 마렵지 않은데 화장실로 와버렸다.

“하아……. 어쩌지. 짜증나는 상황이네.”

시황의 앞에서는 가식적으로 웃고 착한 척을 했지만 화장실에 들어오자 은비의 얼굴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왠지 시황의 페이스에 말린 거 같아 짜증이 조금 났다. 물론 보석을 껴보고 싶기도 했고 그림도 받고 싶은 마음에 이런 상황이 된 거긴 했지만 어쨌든 시황이 문제였다. 완전 짜증.

은비는 바지를 벗고 팬티를 봤다. 예상대로 질염 때문에 팬티가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혹시나 싶어 냄새를 킁킁 맡자 생성비린내 같은 묘한 비린내가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이 상태로 그런 짧은 드레스를 입는 건 정말 곤란하다. 드라마를 찍을 때에는 팬티라이너 같은 걸 이용해서 이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아무리 얇다고 해도 그런 팬티라이너 자체가 갑갑, 불편하고 질염에도 좋지 않다는 말에 평상시에는 잘 착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녹화할 때면 여분의 팬티라이너를 가지고 다니는데, 지금은 너무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미처 준비를 하지도 못했다.

팬티를 벗어서 살펴보자 예상대로 질염 때문에 분비된 노란색의 냉이 팬티를 잔뜩 묻어 있었고 음순 주변에서 흰색의 기분 나쁜 분비물이 묻어 있었다.

“아……. 짱나.”

은비는 휴지를 조금 뜯어 일단 분비물과 냉을 닦아냈지만 팬티는 여전히 얼룩덜룩했고 냄새도 제법 강하게 풍겼다. 질염 초기일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녹화 때문에 팬티라이너를 오래 입고 있어서인지 상태가 엄청 악화되어 버렸다. 괜히 시황에게 몇 번이나 전화한 게 아니었다.

이도저도 못하던 은비는 휴지로 다시 한번 팬티를 닦아내고는 화장실을 나왔다.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거절을 할 생각이었다. 도저히 이 상태로는 그런 드레스를 입을 수가 없었다. 팬티까지 보이진 않더라도 냄새가 풍길 건 분명했다.

“어떤 거 입으실래요?”

“저기…….”

은비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시황이 드레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은비가 조금 주저하며 말을 꺼낸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혹시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에요?”

“네? 아니요.”

자신이 하려고 했던 말이 시황이 해버린데다 시황의 표정이 마치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뻔하지라는 느낌이라 은비는 자기도 모르게 아니라고 말해버렸다. 어쩐지 아까부터 자꾸 시황의 의도대로 행동하는 것만 같은 이상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이 든다.

“다행이네요. 모델 한다고 하셔도 놓고 아까처럼 그냥 가신다고 할까봐 걱정했거든요.”

“어머,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신용 없이 보였나 봐요.”

“하하. 죄송해요. 제가 피곤해서 그런가 정신을 좀 놓은 거 같네요.”

이걸로 은비는 대충 변명을 하고 이 상황을 회피하기란 불가능해졌다. 어찌됐든 드레스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떤 걸로 입으실래요?”

시황의 말에 은비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짜증나라고 말한 뒤에 드레스를 꼼꼼히 살폈다. 다들 치마 부분이 짧기는 했지만 디자인은 마음에 쏙 들었다. 시상식에 이런 드레스를 입으면 단번에 굉장한 관심을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들 디자인이 괜찮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하나 선택했다. 주홍색 빛깔이 살짝 들어가고 등이 약간 파인 드레스였는데 다른 것보다 약간 노출이 있음에도 디자인이 너무 예뻤다.

“이걸로 할게요.”

“네. 그럼 저 방 가서 옷 갈아입고 오세요.”

시황의 말에 은비는 옆에 있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혹시 시황이 들어오면 곤란하니까.

“하아……. 괜찮겠지.”

은비는 티와 바지를 벗고 드레스를 입었다. 가슴이 A컵이라 약간 밋밋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미끈하게 빠진 다리와 가녀린 팔, 그리고 우유처럼 흰 피부는 연예인이라는 위엄을 느끼게 만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넋을 놓고 볼만한 아름다움이 화사한 꽃처럼 피어났다.

거울에 옷을 비쳐본 은비는 만족스러운 웃음 머금었다. 치마가 좀 짧아서 방심하면 팬티가 보일 정도이긴 하지만 옷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 가능하면 다음 시상식 때 빌려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은비는 혹시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자신의 가랑이에 근처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미묘하게 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나는 거 같기도 했지만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정도면 안심이다.

한번 더 꼼꼼하게 살펴본 은비는 잠갔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아까부터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약간 짜증나게 만드는 시황에게 보란 듯이 고개를 세우고 걸었다.

“오, 잘 어울리시네요. 배경은 어디로 할까요? 마음에 드시는 배경 있으세요?”

그런데 시황의 반응이 너무 평범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온갖 찬사를 늘여놓고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텐데 시황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마음에 안 든다. 저 인간. 진짜.

“이 옷이랑 저랑 별로 잘 안 어울리나 봐요?”

“네? 잘 어울리시는데요.”

“반응이 별로이신 거 같아서요.”

시황이 대충 대답하자 억지로 웃음을 띠던 은비의 이미가 조금 찌푸려지며 약간 까칠하게 말을 했다. 착하고 친절하게 행동해야 하는데 시황과 같이 있으니 그런 마음으로 하기가 조금 힘들다. 본래 성격이 자꾸 튀어나오려 한다.

“아, 하하. 제가 리액션을 너무 평범하게 했나 봐요. 미안해요. 정말 잘 어울리고 예뻐요.”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마세요.”

은비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부끄러워서 소리를 쳤다. 정말 너무 부끄럽다. 시황의 반응이 평범했다고 속마음이 나오다니.

“이제 이것들 껴보세요.”

시황은 탁자에 있는 장신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귀중한 것들을…….”

“하하. 잃어버리거나 흠집만 안 나면 괜찮아요. 이게 경매장에 내놓아도 10억 이상은 충분히 받는 것들이라 조심히 다뤄야 하거든요.”

“아, 네. 조심히 쓸게요.”

은비는 시황에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까 전에 조금 부끄러운 짓을 하기는 했지만 다시 착한 척을 해서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 저기 야경이 보이는 쪽을 배경으로 할까요?”

“네. 그렇게 해요.”

시황은 커다란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울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창문 근처에 앉아 차를 마시는 건 옛날 시황이 꿈꾸던 행동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넘어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정은비와 단 둘이서 이렇게 대화 중이었다. 드래곤의 유산의 얻기 전에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상상조차 못했는데 말이다.

은비는 10억 원 이상 하는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흡집이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착용하고 이어서 목걸이, 반지를 꼈다. 그리고 거실에 비치된 커다란 전신 거울에 비쳐보니 자신이 보기에도 정말 아름다웠다. 드레스도 그렇고 보석도 그렇고 비싼 것만 입는 다고 다가 아니라 적절한 조화와 색감이 중요한데 그러한 부분도 마치 전문가가 고른 것 마냥 너무 적절하게 어울렸다.

정말 시상식에 이렇게 입고 가고 싶을 정도다.

“서 있는 건 힘드실 테니까 의자에 앉으세요. 제가 상체 위주로 그릴게요.”

“네. 그럴게요. 잘 그려주셔야 해요.”

은비가 창가 근처에 있는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처음 그 불안하던 기분이 사라진 정도를 넘어 행복감까지 느껴진다. 이렇게 비싼 보석을 껴볼 수가 있다니. 나중에 내용을 조금 각색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할 생각이었다. 거기다 사진으로 찍어서 팬카페에도 남기면 기사화도 될 테니, 당분간 사람들의 관심을 상당히 많이 받지 않을까 싶다.

“아, 혹시 카메라도 있으세요?”

“네. 있긴 있는데, 왜요?”

“그걸로 제 사진 좀 찍어주셨으면 하구요.”

“그럼 사진 먼저 찍고 하죠.”

시황은 가방에서 DSLR을 꺼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능숙한 포즈를 취하는 은비의 사진을 수없이 찍었다. 프로이긴 프로인지 사진을 찍는데 아무런 긴장을 하지도 않고 오히려 매력적인 포즈를 취하니 유미를 찍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름 열심히 찍었는데 어떠세요?”

시황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조그만 LCD 창에는 은비의 아름다운 모습이 좋은 구도와 각도로 찍혀 있었다.

“어머, 예쁘네요. 나중에 제 메일로 보내주세요.”

“노트북도 있으니까, 그림 다 그리고 제대로 확인해……. 그런데 약간 이상한 냄새 나지 않으세요?”

시황은 킁킁 거리며 말했다. 자세 자체가 의자에 앉아 있는 은비에게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라서 은비의 음부와 엄청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음부 가까이 코를 대고 맡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냄새가 심할 정도인 거 보면 은비의 질염이 꽤나 심한 듯 했다.

“네? 아, 안 나는데요. 빠, 빨리 그림이나 그려주세요.”

“그래요? 이상한 비린내 같은 게 나는 거 같은데……. 뭐지…….”

시황이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슬쩍 은비를 봤는데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져 있었다.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는 엄청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시황은 괜히 더 말했다가는 은비가 무슨 행동을 할 줄 모르니 이쯤에서 멈추고 은비와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거치대를 미리 준비해놔서 마치 제대로 된 화가마냥 그림을 슥슥 그린다. 다만 시황이 쓰는 펜은 만화가들이 쓰는 거라서 느낌 자체가 조금 만화스럽게 나오기는 했다.

마력 회로를 가동해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그림을 다 그릴 수 있었지만 일부러 시황은 더욱 세밀하게 천천히 그림을 그렸다. 중간 중간 은비가 힘들어할까봐 커피를 마시기도 하면서 1시간 살짝 넘는 시간까지 그렸다. 빨리 그릴 수 있는데 일부러 천천히 그리는 것도 제법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을 투자해서 엄청 세밀하게 그리려고 노력해서 그런지 전에 소진에게 그려줬던 그림보다 한층 더 뛰어난 그림이 완성되었다. 항상 느끼지만 자신이 그렸지만 정말 말도 안 되게 잘 그렸다. 그 어떤 여성만화가보다 섬세하면서 그 어떤 남성만화가보다 힘이 있었다. 그러면서 시황이 가직 특색이 고스라니 드러나는 게, 이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 그렸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아니에요. 시황 씨가 더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시황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은비는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시황에게 다가왔다. 어떤 그림이 완성 됐을지 가슴이 떨릴 정도로 기대가 됐다. 그런데 시황과 가까이 가서 보면 또 시황이 질염 냄새를 맡을까봐 걱정이 돼서 은비는 살짝 거리를 두고 그림을 살폈다.

“어머어머, 예뻐라.”

은비가 그림을 보자마자 감탄성을 내뱉었다. 아까보여줬던 소진의 그림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려져 있는데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시내까지 꼼꼼하게 그려져 있어 넋을 놓은 채로 감상을 할 정도였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시황은 은비 몰래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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