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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177화 (177/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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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급하게 필요하신가 봐요?]

[저희 아버지가 무좀 때문에 고생하고 계셔서요.]

시황의 말에 살짝 당황한 은비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프로라는 느낌이 든다. 은근슬쩍 떠본 말에도 전혀 당황조차 하지 않고 저렇게 자연스럽게 말하다니.

[아, 그렇군요. 안 그래도 제가 오늘 서울에 올라가는데 만나서 바로 드리면 되겠네요.]

[아! 오늘 서울에 오시나 봐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은비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시황에게 말했다. 사실 시황에 무슨 일로 서울에 오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고 그저 원두와 물을 하루라도 빨리 받고 싶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배우라는 이미지도 있고 약을 받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궁금한 척 하며 말했다.

[소진이가 이번에 MC를 맡은 격돌! 본좌대 본좌에 나가기로 했거든요.]

[아하, 그러시구나. 저도 소진 언니가 새 프로 맡는다고 듣기는 했는데 시황 씨께서 출연하실지는 몰랐어요.]

[그러면 제가 오늘 호텔에 예약을 해놨는데 거기서 볼 수 있을까요?]

[호텔이요? 어디…….]

시황의 말에 은비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자신의 질염을 위해 약을 바른다는 걸 매니저나 기타 동료들에게도 숨겨야 했기 때문에 단 둘이, 그것도 호텔에서 만나는 건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네. 만나는 김에 제가 저녁도 대접해드릴게요. 은비 씨랑 만나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하하.]

[아, 저녁이요? 저야 기쁘긴 한데, 혹시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해져서…….]

연예인이라고 스캔들이 날까봐 항상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보통 호텔이나 청담동 같은 곳을 다니면 크게 따라붙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는 건 자신의 목적은 약이지, 시황과 만나서 밥이나 먹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심은 약에 있는 거지 시황이라는 인물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노래를 잘 부르고 질염에 잘 듣는 약을 주다보니 약간의 호감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딱히 밥을 먹을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요? 그러면 제가 부탁할 것도 있고 하니까, 제가 예약한 호텔 방에서 보실래요?]

[네?]

[개방된 곳에선 사진 찍히면 곤란하다고 하시니 제 방에서 단 둘이서만 보면 괜찮지 않나요?]

[다, 단 둘이서 보기는 조금…….]

[그러면 소진이라도 부를까요?]

[아, 아니요.]

갑작스러운 시황의 제안에 이때까지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던 은비가 쩔쩔맸다. 그저 밥 먹기 싫어서 제안을 거절한 게 점점 일이 커지고 있었다.

[음, 그러면 어떻게 하시게요? 그냥 택배로 보내드릴까요? 그런데 약을 드리는 김에 부탁할 게 있어서 한 번 만나고 싶은데……. 힘드신가요?]

[그, 그런가요? 어, 어느 호텔인데요?]

왠지 안 만나주면 다음부터는 약을 주지 않을 거 같은 말투라서 은비는 살짝 당황해하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밥 먹는다고 할 걸이라는 뒤늦은 후회가 든다.

[서울 시청 근처에 있는 서울 호텔이요.]

[아……. 서울 호텔.]

은비도 아는 호텔이었다. 전에 녹화한다고 가본 적이 있는 고급 호텔이었다. 혹시 말만 호텔이고 모텔 같은 곳이었으면 단호하게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비싼, 그것도 상당히 비싼 호텔이라는 말에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호기심도 생겼다.

이건 마치 여자에게 모텔에 가자고 할 때와 펜션에 가자고 할 때의 반응 차이와 비슷했다. 모텔에 가든 펜션에 가든 어차피 섹스하는 건 똑같은데 모텔은 저질스러운 곳이고 펜션은 낭만과 로맨틱이 가득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었다.

[괜찮으세요?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리거든요.]

[네. 그러면 그렇게 해요. 오늘 언제쯤 만나실 건가요?]

[저녁 안 드신다고 하셨으니까, 한 8시쯤에 괜찮으세요? 제가 서울까지 운전해서 가는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아, 네. 8시까지 갈게요.]

[네. 그러면 서울호텔…….]

시황은 은비에게 방위치를 가르쳐 주고 전화를 끊었다. 원래는 식사를 하고 나서 차근차근 다음 단계를 진행시켜 갈 계획이었는데, 어쩌다보니 호텔 방에서 단 둘이서 만나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은비가 가진 직업적인 특수성 때문에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만나려고 하다 보니 결국 방에서 만나기로 정해진 것이다.

시황은 약을 전해주는 게 아니라 질염을 직접 치료해주고 싶었는데 이제 두 번째 만나는데 은비가 자신의 음부를 보여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시황은 고민했다. 이 기회를 살려서 은비와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고 싶었다.

시계를 보자 어느새 오후 12시가 되어 있었다.

“현주야, 은지야. 나 이제 서울 갈게.”

“벌써요?

시황의 말에 테이블을 청소하던 은지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응. 가는데 4시간 넘게 걸리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알겠어요. 그러면 나중에 제가 전화 할게요.”

은지가 말했다.

“다, 다녀오세요. 오빠.”

현주도 수줍게 시황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그럼 간다.”

은지와 현주의 인사를 받은 시황은 오피스텔에 가서 챙겨야할 물건들을 꼼꼼하게 챙기고 주차장에서 차를 운전해 서울로 향했다.

처음 가는 장거리 운전인지라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안 그러면 어디로 가야할지 전혀 모르니 말이다.

시황이 사는 곳이 서울과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곳이라 장장 4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서야 겨우 서울에 진입할 수 있었다. 벌써 5시가 넘었다.

아주 어릴 때 말고는 처음 방문해보는 서울인지라 도무지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네비게이션 안내에 따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 정문으로 간 시황은 주차장이 어디인지 물어보기 위해 직원 앞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손님,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주차장이 어디죠?”

“주차브레이크를 올리고 기어를 중립에 놓고 내리시면 저희가 대신 주차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황의 말에 직원이 친절하게 웃으면서 설명해주었다. 보통 이런 고급 호텔에서는 발레파킹, 즉 직원이 대신 주차를 해주기 마련이었다. 간혹 가격이 싼 차를 타고 오면 거부하는 일도 있지만 지금 시황은 척 봐도 포스가 넘치는 외제차를 타고 왔기 때문에 직원이 거부할 리가 없었다.

“아, 그렇군요.”

직원의 말대로 기어를 중립에 놓고 주차브레이크를 올린 상태로 차에서 내렸다. 당연히 자기가 직접 주차를 해야하는지 알았는데 고급 호텔이다 보니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차를 찾을 때는 어떻게 하죠?”

“네. 이 티켓으로 여기 오셔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시황은 직원이 건네주는 티켓을 받았다. 왠지 차 열쇠를 받지 않는다는 게 조금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고급 호텔이니 만큼 믿고 맡기기로 했다.

호텔로 들어간 시황은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갔다. 처음에는 아루와 같이 묵을까 하는 생각에 제법 가격대가 나가는 곳을 예약했는데 어쩌다보니 은비 때문에 혼자 오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동으로 전등이 켜지면서 방을 밝혔다. 화려한 방 안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케즈론의 성에 있는 방은 고급스럽고 귀품있는 느낌이라면 이 호텔은 현대적인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혼자 지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방인지라 시황은 은비와 밤늦게까지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신이 솔로도 아닌데 이런 호텔에서 혼자 밤을 지새운다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눈속임수용으로 매고 있던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둔 시황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푹신한 침대가 몸을 나른하게 만든다.

6시 30분. 아직 은비가 오기까지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시황은 일단 욕실에 가서 샤워부터 했다. 은비가 오는데 좋지 못한 냄새를 풍기면 안 되니까.

샤워를 마친 시황은 아공간에서 팬티를 꺼내 입고는 부엌에 차를 몇 개 꺼냈다. 나중에 은비가 오면 대접할 차다. 어찌됐든 남자와 단 둘이 한 공간에 있으면 은비가 불안해 할 테니 그런 마음을 없애기 위한 차였다.

대충 준비가 되자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시황은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공중파에는 별 재미있는 것도 안하고 해서 채널을 넘기다 보니 제법 예쁘게 생긴 아이돌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채널을 멈춘 시황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노래를 감상했다. 4명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이었는데 제일 예쁘게 생긴 여자애 빼고는 지독할 정도로 노래를 못 불렀다. 그럼에도 얼굴이 제법 예쁘고 엄청 짧은 핫팬츠를 입혀서 은근히 야한 게 보기에는 상당히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래가 끝나고 다른 여자 아이돌 그룹이 또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방금 전과 컨셉은 조금 달랐지만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저래서 뜨기나 할까 라는 걱정이 될 정도다.

별로 취향에 맞지 않는 노래를 들으면서 시황은 몇몇 아이돌 그룹이 부르는 노래를 봤는데, 외모가 아루보다 뛰어난 여자는 당연히 없었고 대부분 찬미 선에서 정리가 될 정도였다. 아이돌이라는 게 배우와 다르게 노래와 춤이라는 끼를 바탕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얼굴이 엄청나게 예쁜 애는 흔치 않았다.

그럼에도 찬미만큼이나 예쁘면서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애가 있는 거 보면 어떻게 생각하면 좀 불공평하다 싶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공평한 게 있을까 싶다. 태어날 때부터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는 사람과 자신처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사람, 지능이 뛰어난 사람과 자신처럼 공부 못하는 사람 등. 이미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함은 정해져 있었다.

만약 드래곤의 유산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아직까지 섹스는커녕 여자 친구도 못 사겨보고 여전히 돈이 없어서 찌질하게 살았을 게 분명했다.

띵동.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에 벨소리가 들렸다. 시황이 시계를 보자 벌써 8시가 되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시황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서 문을 열어 주었다. 문 밖에는 평범한 야구 모자와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여자애 한명이 서있었다.

“은비 씨?”

“네. 일단 안에 들어가요.”

“아, 네.”

시황이 비켜주자 은비가 빠른 걸음으로 방 안에 들어왔다. 은비가 올 줄 알고 있었음에도 척 보는 순간 은비라는 걸 알아차리기 힘이 들었다. 아무래도 야구 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TV에서와 다르게 화장을 별로 하지 않은 듯한 청초한 모습이라 한 눈에 은비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거 같았다.

“호…….”

은비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가서는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겉과 속이 다른 애이긴 하지만 이 모습은 정말 신기하고 흥미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여기 처음이세요?”

“네. 전에 녹화할 때 와본 적은 있는데 그때는 로비에서만 녹화를 하고 끝내서 방 안에는 처음 들어와 봤어요.”

은비가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서 책상 위에 올려둔 은비가 상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화장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은 풋풋한 얼굴임에도 아까 TV에서 본 웬만한 여자 아이돌보다 훨씬 예쁜 모습이다. 괜히 인기가 많은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군요. 저도 처음이에요. 내일 방송 녹화가 아니었으면 평생 못 와봤을 거에요.”

“어머, 그런가요?”

별 거 아닌 시황의 말에 은비가 약간 가식적으로 보이는 리액션을 했다. 은비의 실체를 알고 있는 시황에게는 그게 한 눈에 파악이 됐다. 저런 이중적인 성격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뭔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앉으세요.”

“어머, 의자도 푹신푹신해요.”

시황이 가리킨 테이블에 앉은 은비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루로 단련을 하지 않았으면 보는 순간 몸이 녹을 듯한 마력을 가진 미소였다. 이전에 화장을 잔뜩 했을 때 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예쁜 거 같다.

“내일 녹화는 없으세요?”

“아니요. 저도 내일 오후에 녹화 있어요.”

일단 시황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모습에 은비가 살짝 흥미를 느꼈다. 보통 남자라면 자신을 보면 엄청 좋아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게 보통인데 시황은 자신을 아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무덤덤하게 반응을 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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