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174화 (17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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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오늘 어떤 팬분에게 그림 선물을 받았는데, 너무 너무 잘 그려서 깜짝 놀랐어요. 정말 대단하죠? 정말 감동했어요~ 선물 주신 팬 분에게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거실에 걸어둘게요~]

사진이 첨부된 짤막한 글이었다. 트위터 자체가 글자 수를 140자 이상 넘기면 안 됐기 때문에 내용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는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소진은 나름 트위터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연예인이라 팔로우된 사람이 많아 순식간에 리트윗이 되고 있었다.

[ㄷㄷ 이건 전문가의 솜씨?]

[소진 누나 실물 보다 더 예쁘다고 하면 혼나려나요?]

[와, 대박! 그림 대박! 진짜 잘 그렸네요. 나도 저런 선물 받고 싶다.]

[소진 누나를 정말 좋아하는 팬인가봐요. 저거 그리는데 시간 엄청 오래 걸렸을 텐데 대단하네요!]

트위터라는 게 관련 취미나 인맥,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을 팔로우 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처럼 의미 없는 악플은 없었다. 그런데 이 글은 소진의 트위터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항상 그렇듯 순식간에 캡쳐되어 여러 인터넷 사이트로도 퍼졌다.

시황은 일일이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에 대한 글들을 찾아봤다.

[흔한 팬의 그림 선물] 라는 제목의 글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클릭해보자 자신이 그려준 소진의 그림이 보인다. 그리고 본문에는 [팬이 그림 선물 하려면 이 정도는 그려야죠.] 라고 되어있었다. 전형적인 반어법. 그만큼 실력이 대단하다는 말이었다.

댓글에도 다들 그림 실력이 대단하다는 얘기뿐이었다. 자신이 보더라도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한 그림 실력이긴 했다.

“오빠, 소진 언니랑 통화했어요?”

“응.”

“무슨 일 있어요?”

시황은 궁금한 표정으로 묻는 은지에게 자신이 그림을 보내줬다고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그 대화를 현주가 슬쩍 엿듣고 있었다.

“부럽다…….”

“나중에 은지도 그려줄게.”

“정말요? 고마워요. 오빠.”

기분 좋게 웃는 은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시황이 슬쩍 옆을 바라보자 현주의 입이 살짝 나와 있었다. 은지와 너무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고 삐진 듯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황은 은지가 있는 앞에서 현주에게도 그림을 그려주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고, 그저 보통 사람은 상상치도 못할 기묘한 관계에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화로운 금요일이었다.

오전에 카페에 나온 시황은 만화 연습에 한창이었다. 좀 더 만화에 몰입할 수 있는 집중선을 그리는 연습을 하고 배경 구도를 잘 잡기 위해 노력했다. 꾸준히 연습해서인지 점점 실력이 향상되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드르륵!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시황 씨. 격돌! 본좌대 본좌의 하영수PD라고 합니다.]

소진이 말한 그 종편 방송의 PD에게서 온 전화였다. 30대 중후반의 남자 목소리였는데 여자가 아니라 그런지 크게 호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소진 씨한테 대충 얘기 들으셨죠?]

[네.]

[저희 격돌! 본좌대 본좌의 첫 방송을 노래에 관한 본좌들을 모아 대결 시킬 생각인데 여기에 노래 본좌라 불리는 시황 씨께서 빠지시면 안 될 거 같아서 말이에요. 하하.]

[하하. 그렇게 잘하지는 못해요.]

섭외를 하려고 해서 그런지 입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듣는 사람 기분 좋게 말을 잘한다.

[에이, 겸손은. 하여튼 그래서 다음주 화요일에 녹화가 있을 예정인데 그날 시간 괜찮으세요?]

[네. 별 일 없어요.]

[네. 그러면 제가 어디로 오면 되는지 문자로 자세히 보내 드릴게요.]

그 뒤로 어떻게 방송할 건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대충 요약하면 5명의 노래 본좌가 나와서 각 라운드에 맞는 노래를 부른 뒤에 소진 등 연예인을 포함한 총 100명의 사람들에게 투표를 받아 가장 낮은 표를 받은 사람이 차례대로 탈락하는 방송이었다.

얘기만 들어도 나름 흥미진진한 게 종편채널임에도 은근히 시청률이 나올 느낌이다. 하영수PD와 전화를 끊은 시황은 다음 주까지 노래 연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노래를 부르는 거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노래 가사와 음을 모르는 게 많아서 미리 연습을 해두어야 했다. 어찌됐든 방송에 나가는데 1라운드에 탈락하는 건 부끄러우니까 말이다.

“오빠, 누구에요?”

시황이 한창 방송에 대비해 노래를 찾고 있었는데 전화를 들은 건지 조금 한가해지자 은지가 다가와서 묻는다.

“아, 방송국PD인데 방송에 출연해 달라고 전화가 와서.”

“방송이요?”

은지의 말에 아르바이트생과 현주가 깜짝놀라 시황을 쳐다본다.

“응. 노래 관련 방송인데 다음 주에 녹화할거야.”

“와, 대단해요. 오빠. 어떤 방송이에요?”

은지가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고 근처에 있던 현주도 귀를 쫑긋하며 대화를 듣고 있었다. 시황은 며칠 전보다 기분이 많이 나아진 은지에게 차근차근 방송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 때, 심상치 않은 표정을 한 부부가 카페에 들어왔다.

“여기 강시황이라는 사람 어딨어요!”

아줌마가 크게 소리를 치며 시황을 찾았다. 표정을 보니 화가 단단히 난 거 같았다.

“제가 강시황인데 무슨 일이죠?”

혹시 카페 관련 일로 온 건가 싶어서 시황은 탁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자 그 부부가 시황 쪽으로 빠르게 다가온다.

“이봐요! 당신이 우리 아들 고소했어요?”

시황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슨 이유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눈치 챘다. 자신은 합의를 안 한다고 했기 때문에 고소당한 측에서 자신의 전화번호나 기타 신상정보를 알 수는 없지만, 이미 인터넷에 자신과 카페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와있어 카페로 찾아 올 수 있었던 거 같았다.

“제가 인터넷 유저 몇몇을 고소한 건 맞는데 그쪽 자제분까지 고소를 했는지는 모르겠군요.”

“어머어머, 말하는 거 봐.”

시황의 덤덤한 대답에 아줌마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한다.

갑작스럽게 생긴 이 분란에 카페에 있던 사람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봤고 은지와 현주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했다. 당장 싸움이라도 날 듯한 험악한 기세다.

“이 새끼야! 우리 아들이 실수로 인터넷에 몇 마디 적은 거 가지고 그걸 고소하고 자빠져가지고…….”

덩치가 제법 큰 아저씨가 흥분을 해서 시황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아, 그런가요? 그 아들 분 아이디가 어떻게 되죠? 제가 실수한 거 같네요.”

시황의 고분고분한 말에 흥분했던 부부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자신들의 말에 시황이 꼬리를 말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의심없이 부부는 자기 아들의 아이디를 바로 말해준다.

“잠시 만요.”

“그러니까, 함부로 그딴 짓거리 하지 말라 이거야. 알겠어?”

시황이 컴퓨터로 가서 뭔가를 하자 아저씨가 더 기세등등해져서는 이제는 훈계까지 한다. 그럼에도 시황은 별다른 말없이 컴퓨터를 뒤적거리더니 타블렛을 들고 그 부부에게 다가왔다.

“여기 있네요. 저한테 ‘엄마 없냐? 개년아.’, ‘니 엄마 창녀.’, ‘좆같은 놈 노래 좆나 못함.’, '너희 엄마 언제 뒤지냐.' 등의 욕설을 한 애 말이군요.”

시황이 주변에도 다 들을 수 있도록 적당히 큰 소리로 대화 내역을 읊어주자 갑자기 그 부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설마 시황이 자신의 아들이 쓴 욕을 대놓고 읽을지는 몰랐던 것이다.

“어머, 설마 저런 욕 쓴 거야? 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저런 욕을 할까?”

“그러게. 인터넷에 보면 저런 막말하는 애들 많던데 진짜 따끔한 맛을 봐야 돼.”

주변에서도 수군수군거렸는데 그 말이 그대로 다 들린다. 그러자 덩치 큰 아저씨가 처음 보다 더 흥분해서 시황을 한 대 칠거처럼 군다.

“야, 이 개새끼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말을 하다 보니까 더 화가 났는지 덩치 큰 아저씨는 시황을 거칠게 밀쳐내며 온갖 욕을 다 퍼부었다. 보통 이렇게 찾아온 거면 합의를 하러 온 걸 텐데 이런 태도라니. 살짝 짜증이 났다.

“당신이 누군지 잘 모르겠고, 저한테 욕설을 했으니까 고소를 한 겁니다. 합의할 생각 전혀 없으니까, 돌아가세요.”

“어머어머, 말하는 거 봐. 이봐요. 당신, 겨우 그런 욕 가지고 애를 고소하는 게 말이 돼요? 당신 때문에 별 거 아닌 일로 범죄 기록 남으면 어쩔 거에요. 그리고 그 일이 주변 사람들한테 들키면 책임지실 거에요?”

아줌마가 시황을 노려보며 말했는데 아무리 봐도 합의하러 온 태도가 아니었다.

쾅!

“이놈 보게? 얼마 필요하냐? 어? 얼마 필요해서 그딴 짓거리 한 거냐?”

덩치 큰 아저씨가 화를 못 참겠는지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며 말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합의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탁자를 내리 치시며 안 됩니다. 자꾸 이러시면 영업방해로 경찰 부르겠습니다.”

부부는 화가 나서 씩씩 거리고 있는데 시황이 침착한 태도로 말을 하자 아저씨가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덩치 큰 아저씨가 시황의 멱살을 움켜진다.

“때리시기라도 하실 겁니까?”

“그래. 이 개새끼야.”

시황의 말을 도저히 못 참겠는지 덩치 큰 아저씨가 시황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퍽!

시황은 그 주먹을 그대로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30년의 마기에 권법 수련을 한 시황이 이런 일반인의 주먹을 맞는 일 따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시황은 일부러 맞아주었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되도록 유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꺅! 오빠!”

“오, 오빠! 어, 어떡해.”

시황이 쓰러지자 깜짝 놀란 은지와 현주가 시황에게 달려가서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퍽 하는 큰소리와 다르게 다행스럽게 시황의 입에서 피 같은 건 전혀 나지 않았다. 일반인의 힘이 아무리 세다고 해봐야 금강불괴에 가깝게 변한 시황의 몸에 그 어떤 피해를 주는 건 불가능하다.

“괜찮아.”

현주와 은지를 안심시킨 시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황이 얻어맞고 쓰러지자 덩치 큰 아저씨는 더 기세등등해져서 시황의 멱살을 다시 움켜쥔다.

시황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들이 그런 잘못을 했으면 싹싹 빌어도 모지랄 마당에 오히려 이렇게 행패를 부리다니? 이 부부는 이렇게 큰소리 치고 때리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시황이 보통 다혈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 대 얻어맞는 순간 앞뒤 안 가리고 한 대 먹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황의 성향은 불보다는 얼음 쪽에 가까웠기 때문에 냉정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복수를 하면 좋을지 말이다. 단순히 경찰을 부르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합의금 몇 푼으로는 지금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짜증과 화를 풀어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다 때리신 겁니까?”

“뭐? 다 때려? 이 개자식이 말하는 거 보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하는 시황의 말에 덩치 큰 아저씨가 더 흥분을 해서는 또 시황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한대만 때리는 게 아니라 시황의 얼굴을 수없이 가격한다.

“제발 그만하세요.”

“아저씨 그만하세요. 우리 오빠 그러다 죽겠어요. 흑…….”

“여, 여보 그만해요.”

그런데 좀 지나치게 구타를 하자 얼굴이 하얗게 된 은지와 현주가 아저씨에게 매달리며 사정을 했고, 그 부인도 사색이 돼서는 말리기 시작했다.

“야, 이 개자식아. 너 당장 고소 취소 안 하면 내가 아예 반 죽여 버릴 줄 알아. 알겠어?”

바닥에 쓰러진 시황을 보며 윽박을 지른다. 하지만 속에서 화가 끓어올랐지만 절대 지금 손을 쓸 생각이 없었다. 분풀이는 사람이 없는데서 해야 한다.

“알았냐고!”

한참을 씩씩거린 아저씨가 쓰러진 시황에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지갑을 꺼내서 만원짜리 몇장을 꺼내 대충 던져 준다.

“이건 치료비 쓰고 내일 안에 고소 취소해. 만약 내일도 고소된 상태면 너 오늘 정도로 안 끝날 줄 알아.”

“여, 여보 그만 가요. 이정도면 저 사람도 알아들었을 거에요.”

원래는 돈을 좀 쥐어주고 합의를 할 생각이었는데 자신의 남편이 이렇게 흥분해서 구타까지 할 줄은 몰랐다.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은 아줌마가 아저씨를 데리고 카페를 나갔다. 그런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는지 아저씨는 욕은 욕대로 다 하며 카페를 억지로 나갔고 사람들은 쓰러진 시황을 보며 웅성웅성거렸다.

“오빠, 오빠. 괜찮아요? 흑…….”

“오빠…….”

은지와 현주는 눈물을 흘리며 쓰러진 시황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괜찮아.”

시황은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나 많이 맞았음에도 피가 흘리는 곳은커녕 멍이 든 곳 하나 없었다. 일반인에게 맞는다고 다칠 리도 없었고 아플 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드래곤의 유산을 얻고 이때가지 느껴보지 못한 화가 가슴에서 치밀어 올랐고 시황의 눈에선 싸늘한 빛이 발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욕설을 한 애의 부모에게 고소 취소를 안 해준다고 얻어맞은 다음날 새벽 3시. 아루와 수란이 자는 걸 확인한 시황은 집을 나섰다.

아까 전 그 부부에게서 자신에게 욕을 한 아이의 아이디를 알았기 때문에 추적기를 통해서 집 주소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싸늘한 밤거리를 걷는 시황의 표정은 섬뜩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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