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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그 뒤로 일사천리였다. 애초에 이런 법률 사무소 찾아온 거 자체가 이런 고소장을 자신이 다 쓰기 힘든데다 나중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시황은 변호사에게 자료를 다 넘기고 변호사 선임비까지 다 지불하고는 법률 사무소를 나왔다.
익명성에 기대서 욕설을 해댄 놈들에게 인생은 실전이다라는 걸 가르쳐 줄 걸 생각하니 절로 휘파람이 나온다.
카페에 온 시황은 혹시나 싶어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의 세렝게티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러자 뉴스 기사를 봤는지 몇 페이지나 되는 글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 개좆만한 새끼야. 그딴 고소 드립에 내가 쫄 줄 아냐?]
[푸하하 네가 300명을 고소한다고? 진짜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야, 고소해봐. 해보라고.]
[완전 병신이네. 그런 욕 조금 썼다고 고소가 되는지 아냐? 그걸로 고소됐으면 인터넷 하는 놈들 전부 다 잡혀갔다. 병신아.]
방금 고소하고 왔다는 것도 모르고 괜히 패기를 부리면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들을 엄청나게 써놓았다. 하지만 그런 욕을 봐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욕해도 나중에 벌벌 떨게 뻔하니까.
[노래 본좌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루머를 보고 흥분해서 심한 욕설을 한 걸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정말 많이 반성하고 있으니까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그런데 드문드문 용서해달라고 사과문을 쓴 사람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사과문을 봐도 그렇게 용서해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만약 자신이 고소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런 사과문을 썼을 리가 없을테고, 정말 반성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시황은 방송국 공지에 방금 법률 사무소에 가서 변호사를 선임해서 고소를 했다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적어서 올렸다.
300명이나 고소한다는 말에 진짜 고소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말로만 고소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꽤 큰돈을 들여서 정말 다 고소해버렸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추적기로 악플을 쓴 사람을 찾아가 직접 처단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악플을 썼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건 정말 무식한 행동이었고 그것보다는 이렇게 고소하는 게 훨씬 깔끔하면서도 더 큰 두려움을 줄 수 있었다. 어찌됐든 현실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법적 처벌이 가장 와 닿게 무서우니까.
그리고 시황은 포털 사이트에 [노래 본좌 고소]라고 적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글들이 주르륵 나타난다.
[야, 노래 본좌가 악플 쓴 놈들 고소한다는데?] 라는 제목이 바로 눈에 띈다. 시황은 그 글을 클릭했다.
[개허세임. 300명을 어떻게 고소함?]
[보나마나 고소한다고 했다가 선처를 베푸니마니 할 듯 ㅋㅋㅋ]
[그걸 믿냐? ㅂㅅ임?]
다들 자신이 고소했다는 걸 비웃고 있었다.
글을 쭉쭉 내리면서 훑어보자 [님들 노래 본좌가 악플 쓴 사람 고소한다는데 저도 고소 당할까여?] 라는 글도 보인다.
[제가 노래 본좌님 방송에 가서 욕을 조금 썼거든여. 중간에 강퇴도 당했는데 저도 고소 당하는 건가여? 겨우 욕 조금 썼는데 고소될 리가 없죠? 조금 불안한데 답변 좀 ㅜㅜ]
자신에게 욕을 썼던 애가 뉴스기사를 보고 상당히 불안했던지 포털 사이트 질문&답변이라는 코너에 관련 글을 올려놨다. 피식 웃음이 나온 시황은 스크롤을 내려 등록된 답변을 읽었다.
[그런 욕 조금 적었다고 고소 안 되니까 걱정 마세요. 욕 조금 했다고 잡혀가면 우리나라 사람 다 잡혀가게요? 그리고 보통 귀찮아서 말로만 고소한다고 하지 고소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고소하면 무고죄로 역고소 하면 되니까 님이 훨씬 유리하죠. ㅎㅎ 전혀 쫄 필요 없습니다.]
[헐,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괜히 쫄았네요.]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로 답글을 달아놓고 그걸 보고 위안은 얻고 있는 이 어린양을 보니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안심하고 있는데 고소당했다고 연락이 오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고 앞으로 인터넷에서 욕을 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드르륵!
한창 고소 관련 글들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저장된 번호는 아닌데 뭔가 낯이 익은 전화번호다.
시황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유, 유하영이라고 하는데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유하영 씨요? 누구시죠?]
[그, 그러니까……. 노래 본좌님에게 아, 안 좋은 글을 처음 쓴…….]
[아, 아. 유하영 씨. 무슨 일로 전화 하셨죠?]
이름까진 모르고 그저 루머 유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이름만 듣고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그게요. 인터넷 뉴스 보니까 고, 고소 하셨다고 해서……. 저, 정말 죄송해요. 제가 나이도 어리고 철이 없어서 그렇게 나쁜 행동인지 모르고 그런 글 썼어요.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흑…….]
하영은 울먹이면서 말하다가 끝에 가서는 눈물을 흘리는지 훌쩍 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행동이긴 하지만 그 글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받은 걸 생각하면 여전히 짜증이 조금 나긴했다.
[그래서요? 말로만 잘못했다고 하면 끝인가요?]
자신에게 욕설한 네티즌들만 고소했고, 루머를 유포한 유하영은 고소를 하지 않았지만 일부러 그 사실은 말하지 않고 차가운 어투로 대꾸했다.
[정말……. 정말……. 죄송해요……. 흑……. 제가 앞으로 노래 본좌님 팬 카페 만들어서 거기서 열심히 활동할게요. 흑……. 그러니까 제발 용서해주세요.]
시황이 차갑게 말하자 하영은 엉엉 울면서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유엔미 오빠하고 노래 본좌하고 자꾸 비교당하길래 욱하는 마음에 쓴 글인데 이런 결과가 될지는 상상치도 못했다. 그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정말 후회되고 너무 두려웠다. 혹시 고소당해서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정말 앞으로 그런 행동 안 하실 겁니까?]
[네. 네. 정말 안 할게요. 흑... 제가요. 앞으로 노래 본좌님 방송 홍보도 하고 팬 카페도 만들고 정말 열심히 할게요. 용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번 한번만 용서해드리죠. 앞으로 계속 지켜볼 겁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흑…….]
시황은 전화를 끊고 피식 웃어버렸다. 사실 이 루머 유포한 여자애는 고소가 아니라 부모님에게 직접 전화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미리 전화를 할지는 몰랐다. 인터넷에 대충 사과문이나 끄적거린 애들과 다르게 정말 반성하는데다 앞으로 자신의 팬 카페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한다니까 이쯤에서 용서해줄 생각이었다.
인터넷으로 관련 글을 조금 더 보던 시황은 뉴엔뉴의 김철민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강시황 님 안녕하세요.]
[네. 김철민 기자님 기사 잘 봤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고소 오늘 다 접수하신건가요?]
기자답게 눈치가 빠르다. 안 그래도 고소를 다 접수했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 한 거였다. 이런 기사가 떠야지 악플러들이 더 벌벌 떨 테니까.
[네. 방금 법률 사무소에 가서 300명 전부 채팅 내역 넘기고 왔습니다. 변호사님께서도 모욕죄로 충분히 고소가 된다고 하더군요.]
[아, 그렇군요. 그러면 그렇게 새로 기사 쓰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어제 시황의 고소 기사는 평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 인터넷 뉴스의 특성상 인터넷 광고를 통해 수입을 얻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뉴스 기사를 클릭해 줘야했다. 자극적인 기사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도 그런 이유다.
어찌됐든 시황의 이런 기사는 일반 기사와 다르게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기 때문에 김철민 기자에게도 이득, 시황은 그런 기사를 냄으로써 인지도를 올리고 악플러들에게 압박감을 줄 수 있으니 이득. 두 사람 다 윈윈하는 아주 좋은 경우다. 거기다 이렇게 기자를 한명 아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고 말이다.
시황은 기사가 올라올 때까지 유투브에 올린 자신의 영상을 살폈다. 그런데 조회수가 전보다 조금 오르긴 했지만 좀 지지부진하다. 처음에 오르던 그 기세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도 앉아서 밋밋하게 노래만 부른데다 다른 사람의 노래를 따라 부른 것, 그리고 세계인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그런 노래가 아닌 한국에서나 통하는 노래라는 점 등이 문제인 듯 했다.
결국 유투브에서 노래 조회수를 올리려면 어찌됐든 국내보단 외국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노래가 필요한 것이다.
“흠…….”
케즈론의 도서관에 가면 다른 행성의 악보가 있을 테고 그걸 본다면 이제껏 듣지 못한 참신한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악보를 전혀 볼 줄 모른다는 점이다.
“음악 공부도 좀 해야겠는데.”
자신이 가수가 아니다보니 작곡가에게 노래를 받기가 힘이 들 테고 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세계에 먹힐 가능성은 아주 없다시피 했다. 이때까지의 한국노래가 그래왔으니까. 일반 발라드나 아이돌 노래가 아닌 참신한 뭔가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음악 공부는 하는 수밖에 없는 듯 했다.
“일이 많구나.”
그건 일단 좀 천천히 하기로 하고 먼저 만화부터 제대로 하기로 했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건 11월 수능을 치는 것과 만화를 그리는 것. 두 가지다. 4레벨이 되기 위해 급했던 거지 지금은 그렇게 급하지가 않다. 5레벨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경험치가 필요했고 급하게 뭘 한다고 될 정도로 만만한 게 아니었다.
퀘스트를 살펴보면 케즈론은 자신이 모든 것에 만능이 되기를 원했다. 그렇지 않다면 10레벨에 이르는 경험치를 획득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모든 것에 대한 만능이라…….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어찌됐든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었다.
시황은 인터넷 기사가 올라왔나 검색했는데 이번에는 새로 기사를 작성하는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시계를 보자 어느새 찬미에게 가서 과외를 해야 할 시간이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한 시황은 케즈론의 자전거를 타고 찬미의 집으로 향했다. 이 케즈론의 자전거의 안락함은 2억원에 가까이 주고 산 BMW M6보다 비교도 안 되게 뛰어났다. 그 어떤 지형을 가더라도 흔들림 하나 없는 이 완벽함은 탈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찬미의 집에 도착해서 찬미의 방에 들어가자 이미 탁자를 놓고 공부할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오빠, 오늘은 모의고사를 풀어 봐요. 얼마 전에 유미가 모의고사 문제지를 하나 갖다 줬거든요.”
“응. 그러자.”
탁자 앞에 앉아 있는 찬미가 시황이 들어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모의고사 문제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황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찬미의 맞은편에 앉았다.
당연히 시황이 자신을 껴안고 침대로 갈 줄 알았는데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자 찬미는 괜히 움찔해서 시황을 쳐다봤다가 눈이 마주쳐버렸다. 자신의 생각이 들킨 거 같은 느낌에 찬미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뭐부터 풀까?”
“수, 수학부터 해요.”
“응. 알았어.”
시황은 찬미의 앞에 있는 수학 모의고사를 집어 들어 바로 풀기 시작했다. 2점짜리는 가볍게 다 풀고 3점짜리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슥슥 풀어낸다. 이전에도 3점짜리 문제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공청석유를 먹은 이후로 두뇌회전이 더욱 빨라졌고 사고의 폭도 넓어졌다. 뭐, 그래봤자 천재라는 단어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머리가 좋아지긴 했다.
문제를 푸는 시황을 보면서 찬미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조금 안 좋아진 게 아니라 누가 봐도 티가 많이 날 정도로 표정에 불안감이 가득해졌다. 시황이 유미와 아루와 친하게 지내더니 자신에게 흥미가 사라진 건가 하는 불안감이 순간적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분명 평소라면 당연히 자신을 끌어안고 키스부터 해줬을 텐데, 지금 이렇게 무관심한 듯 문제만 풀고 있으니 걱정이 돼서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자, 다 풀었어. 이번 모의고사 쉬웠나봐?”
“네? 아, 버, 벌써 다 푸셨어요?”
“응. 문제들이 간단하네. 수학의 정석 한번밖에 안 본 내가 간단히 풀 정도니까 말이야.”
영어야 언어 습득용 알약으로 완전히 마스터했기 때문에 수학 위주로 공부를 했는데, 그럼에도 시간이라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수학의 정석을 한번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원래의 시황이라면 수학의 정석을 한번 다 보더라도 그것을 응용해 3점이나 4점짜리 모의고사 문제를 풀 능력이 전혀 되지 않았을 테지만, 임독양맥이 타동 되고 뇌세포가 재생되면서 지능이 상당히 상승해버렸다. 덕분에 수학 문제를 보기만 해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수학식이 머릿속에 바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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