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164화 (16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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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간단히 말하면 그림에 스토리를 부여해서 보여주는 거야. 그림에 대화도 넣고 하면서 말이지.”

“아! 정말 참신한 발상인데요? 그림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글을 보여준다니.”

“이건 대충 설명한 거고, 밥 다 먹고 만화책 가져다줄게.”

시황의 말에 수란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새로운 문물을 보는 건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식사를 다 마친 시황은 바로 케즈론의 성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만화책들을 살폈다. 이 만화라는 게 지구에만 있는 건 아닌 듯 다른 행성에서 그려진 만화들도 제법 보인다. 시황은 그런 만화도 살펴볼 겸 그림체가 무난한 거 몇 개 뽑아 들고 난 뒤에 유명한 일본 만화인 베르사유의 백합 전권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 도서관에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출간된 수많은 만화, 그것도 얼마 전에 발간한 최신 만화까지 다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만화나 책을 사러 서점에 갈 이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여튼 그런 수많은 만화 중에서 베르사유의 백합을 고른 이유는 한국인에게 상당히 유명하면서도 프랑스 대혁명 전후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로 하임 제국, 아마도 중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진보된 나라에서 살다온 수란에게 이질감이 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완전한 중세를 배경으로 한 만화인 버서커라는 것도 뽑아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어떤 만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세를 배경으로 한 것들을 고루고루 보여줘야 시야가 넓어질 테니까.

적당히 다 고른 시황은 다시 오피스텔로 돌아갔다.

“수란아, 이거 보면서 만화가 대충 이런 거라고 알아두면 돼.”

시황은 아공간에서 만화책을 꺼내서 탁자위에 올렸다. 수많은 책들이 수북히 쌓이자 수란의 눈에 흥미가 가득하다.

"상당히 흥미로운데요."

“그렇지? 보고 있어. 난 잠깐 일 좀 하고 올게.”

카페에 출근한다는 시황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수란은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보려는지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기댄다. 옷을 갈아입지 않아 짤은 슬립으로 하얀 허벅지가 드러난다.

“오빠 다녀오세요!”

활기찬 아루의 인사를 받은 시황은 살짝 웃어주고는 노트북 가방을 메고 카페로 갔다.

전처럼 현주와 탈의실에서 섹스를 하기 위해 일부러 평소보다 30분 일찍 갔고 아르바이트생들이 오기 전까지 느긋하게 현주와 탈의실 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 집에서 하는 것과 다르게 이런 좁은 탈의실, 그것도 카페라는 공간의 탈의실에서 하는 섹스는 상당히 다른 맛을 주었다.

아침에 아루와 섹스를 하고 바로 이어서 현주와 섹스를 3번 정도 해서 제법 많은 양의 마기를 모을 수 있었다. 세맥에 잠들어 있는 마기도 모아야 하는데 하루, 하루가 너무 바쁘다보니 그럴 시간이 없다.

그러고 보니 톨레이만이 말한 격투게임에 접속해서 대전도 치러야 한다. 가만히 퀘스트 잘 하고 있는 자신에게 왜 그런 짓거리를 하는 건지 새삼 짜증이 났다. 그 의도자체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동기화율을 100%로 만들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주와 카페 정리를 마무리한 뒤에 오픈을 했다. 항상 그렇듯 사람들이 물밀 듯 밀려들었고 바쁜 타임을 도와준 시황은 조금 한가해지자 어제 방송에 대한 반응을 검색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노래 본좌라고 치고 검색 버튼을 눌린다. 그러자 수많은 검색 결과들이 주루룩 나온다. 항상 인터넷 글들을 체크하고 읽기 때문에 몇몇 글들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읽지 않은 글 중에서 [어제 노래 본좌 방송에 나온 아루라는 여자 봤냐? 진짜 개쩔게 예쁘던데.]라는 글을 클릭했다.

그러자 아루의 얼굴이 몇 장 캡쳐된 사진이 바로 보인다. 실물보다는 조금 못하게 나왔지만 세렝게티에서 방송하는 그 어느 여BJ 보다, 아니 심지어 TV에 나오는 여자 배우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어제 노래 본좌 방송 보는데 와, 미친. 여친 소개하는 거 보는 순간 입에서 바로 욕 나오더라. 진심 살면서 본 여자 중에서 제일 예뻤다.]

반말을 기본으로 사용하는 사이트에다 입들이 다들 험하기는 했지만 아루를 칭찬하는 말에 시황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 밑에 달린 댓글을 읽었다.

[나도 보자마자 레알 감탄함. 저런 여친이 있는데 그 옆에 여드름 난 애를 따먹으려고 모텔에 끌고 가는 게 말이 안 되지.]

[내가 진짜 그런 여자랑 사귀면 맨날 섹스함.]

[나도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줌. 항문 빨아주는 건 물론이고 오줌도 먹을 수 있음]

[난 겨땀에 밥도 비벼먹을 수 있음.]

“큭…….”

온갖 더러우면서도 노골적인 댓글에 시황은 웃음을 살짝 터트렸다. 그만큼 아루가 예쁘니까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시황은 이미 아루가 자신의 거라서 그런지 오줌을 먹는다든가, 겨드랑이 땀에 밥 비벼 먹는 건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아루를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더러운 걸 먹는 변태적인 행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역겹다.

[난 저 사진보고 딸쳤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꼴려서 참을 수가 없더라.]

댓글을 쭉 읽다가 끝부분에 살짝 거슬리는 글이 하나 보였다. 변태적인 글들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웃을 수 있었지만 아루를 보고 자위행위를 했다는 글은 아무리 봐도 거슬린다.

시황은 가방에 손을 집어넣은 뒤에 아공간에서 추적기를 꺼냈다. 그리고 자위행위를 했다는 유저의 아이디와 ip주소를 적어 넣었다.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다는 글이 잠깐 뜨더니 2명의 신상정보가 화면에 나타났다. 이 사이트 자체가 아무런 가입도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곳이다 보니 ip주소만으로 그 위치를 추적했고, 그 ip에 해당하는 집에서 이 사이트에 글을 쓴 적이 있는 사람 2명이 나타난 것이다.

23살의 남자와 19살의 여자였는데 여자가 아루를 보고 딸쳤다는 말을 썼을 리가 없으니 23살의 남자가 그 글을 쓴 듯 했다. 서울 어디에 산다고 주소까지 정확히 뜨고 전화번호까지 나오자 순간 전화해볼까 하는 충동이 생겼지만 꾹 눌렀다. 이 댓글들은 남자라면 누구나 가진 본능이니까. 아루가 자신의 여자이기에 약간의 화가 난 거지 충분히 이해는 할 수가 있었다.

시황은 그 글을 끄고 다른 글들도 읽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유미와의 스캔들은 아루라는 말도 안 되는 아름다움에 묻혀서 사라져버렸다. 인터넷의 이슈라는 건 보통 이런 식이다. 사실이 아님에도 흥미로운 스캔들이 뜨면 사람들은 왈가왈부하면서 온갖 악플을 다 쓰다가 거짓이라는 게 밝혀지면 입을 싹 닫는다. 결국 피해를 받는 사람은 그 스캔들의 주인공일 뿐, 가해자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연예인들이 상처를 받고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까지 생기기도 했다.

십년동안 인터넷을 해온 베테랑 인터넷 유저인 시황은 이러한 인터넷의 습성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생긴 거짓 루머를 단번에 사라지게 만들고 더 큰 이슈를 끌어낼 수가 있었다. 드래곤의 유산을 받기 전의 시황이 하루하루를 잉여짓만 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생각 외로 그 잉여짓이 상당히 도움이 된 것이다.

더 이상 읽을 글이 없자 이번에는 아루라고 검색해서 글들을 읽었다.

[언니들 노래 본좌 여자 친구 말이야. 성형 안 하고 이런 얼굴 되는 게 가능해?]

대부분 남자들이 쓴 글이었는데 신기하게 여자가 쓴 글도 몇 개 보였다. 그 중에서 제법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글을 클릭했다. 그러자 유미가 자주가는 불여시 사이트가 열린다.

[성형 안하고 이렇게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한 게 말이 돼? 암만 봐도 앞트임, 뒷트임에다 코성형까지 풀로 다 한 거 같은데 언니들 생각은 어때?]

얼마 전까지 노예로 힘겹게 생활하던 아루에게 성형설을 제기하고 있었다.

[ㅇㅇ 맞음. 저거 성형 100%임.]

[딱 보면 알잖아. 저거 성형 맞아.]

[근데 저 얼굴이 예쁜가? 난 완전 별론데.]

[그지? 나도 딱 보고 그닥인데……. 라고 생각되더라.]

[솔직히 저 얼굴, 남자들한테 그렇게 인기 있는 스타일은 아님. 남자들은 저렇게 착하고 순진하게 생긴 거 보다 글래머 스타일을 훨씬 좋아함.]

이 글도 댓글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마치 자신이 뭘 아는 것 마냥 글들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놨는데 맞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아루의 얼굴을 보고 질투심에 가득 찬 여자들의 분노가 여기까지 전해진다.

[노래 본좌 차 보니까 엄청 부자인 거 같던데, 여친한테 돈 좀 썼나보지. 보니까 피부 관리도 엄청 열심히 받은 거 같은데, 솔직히 돈 들여서 성형하고 피부 관리 받으면 저 정도 안 되는 여자 없음.]

[반대 아닌가? 저 여자가 성형해서 노래 본좌 꼬신 거 같은데. 노래 본좌는 저 여자가 성형한 거 모르겠지? 불쌍하다.]

“가지가지한다.”

댓글을 본 시황의 입에서 저절로 말이 툭 튀어나왔다. 피부 관리 받고 성형하면 아루만큼 예뻐지니, 아루가 성형해서 자신을 꼬셨니 하는 말을 보자 어이가 상실될 지경이다. 인터넷이라고 글을 써도 너무 막 쓴다.

시황은 바로 댓글 쓴 여자들을 추적해봤다. 17살, 18살, 23살, 27살. 그렇게 어린 애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알만큼 알 나이인 여자들도 상당수였다. 자신의 주위에 저런 염치없는 여자들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아루 얘기에 이제 유미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어찌됐든 목적을 달성하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빠르게 루머를 올린 여자에게 사과문을 쓰게 만들고 방송에서 직접 해명한 게 주효했다. 조금만 더 꾸물거렸으면 그 루머가 진실로 둔갑해서 끝없이 자신을 괴롭힐 뻔 했다.

약간, 그것도 공중파에 나오는 연예인만큼 유명하지도 않은데도 이렇게 루머에 시달리는데 유명한 연예인들은 어떨지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더 이상 아루의 글을 볼게 없자 시황은 어제 저장해뒀던 채팅 내역을 뽑아서 악플러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이런 악플로 고소를 해봤자 벌금형 정도밖에 안 먹겠지만, 고소를 당했다는 그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벌금형이라는 전과가 남기 때문에 아예 무가치한 일은 아니었다.

보니까 다수의 사람이 악플을 쓴 게 아니라 몇몇의 유저가 도배를 하다시피 악플을 썼다. 그런데 방송 시청 인원이 상당히 많다보니 심한 욕설을 도베한 악플러가 50명에 달했고 일반적인 욕설을 한 악플러가 200명이 넘었지만 인정 따윈 봐줄 생각 없었고 하나도 남김없이 깡그리 다 고소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바쁜데 이런 일을 일일이 다 자신이 처리하기 힘드니 법무사에 대행을 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 지불할 돈이야 넘쳐났으니까.

따르릉.

한창 악플러들을 선별하고 있는데 카페에 전화가 왔다. 그러자 아르바이트생인 소라가 받는다.

“사장님, 뉴스 기자라는데 전화 좀 바꿔 달래요.”

잠시 얘기를 듣던 소라가 시황에게 말했다.

“기자? 알았어.”

기자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한 시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뉴엔뉴 뉴스의 김철민 기자입니다.]

진짜 기자였다. 30대 초반의 목소리였는데 무슨 의도로 전화를 했는지 의문이다. 또 인터뷰인가?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는지…….]

[하하. 먼저 어제 방송 재밌게 잘 봤습니다. 노래 정말 잘하시더군요.]

[감사합니다.]

[흠흠, 다름이 아니라 어제 방송을 보다보니까 악플러들 고소한다고 하셨는데 정말 고소하실 건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거에 관해 기사를 쓸까하는데 동의도 받을 겸 해서요.]

뜻밖에도 너무나 좋은 제안이다. 원래는 그냥 악플러들에게 인생은 실전이다라는 걸 가르쳐 줄 생각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뉴스 기사로 띄워서 큰 이슈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욕설을 한 놈들이 더욱 더 벌벌 떨 테니까.

[그럼요. 전부 다 고소할 예정입니다. 안 그래도 지금 악플러들 채팅 내역 뽑고 있는데 대충 300명 가까이 되더군요.]

[3, 300명이나 고소하시게요?]

[네. 법무사에 대행해서 전부 고소할 생각입니다.]

[와, 대단하시네요. 보통 말로만 고소한다고 하지 다들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고소를 하지는 못하거든요.]

특종을 잡았다는 듯 김철민 기자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얼마 전 전설의 리그에서 한 여성 유저가 심한 욕설을 받아 2명의 유저를 고소한 일이 있었고, 그 2명의 유저는 모욕죄로 벌금 50만원을 내야했다. 그런 소소한 고소도 인터넷 뉴스에 엄청나게 떴었는데 노래 본좌라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시황이 300명이나 되는 악플러를 고소한다는 건 상당한 특종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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