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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그러면 가게 오픈하고 나서 정리 좀 되면 집에 가자.”
“네.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아니야, 찬미는 쉬고 있어. 어제 늦게까지 일했는데 힘들잖아.”
시황은 찬미의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전 괜찮아요. 오빠.”
마치 연인들과 같은 대화에 현주는 입술을 살짝 깨문 채로 쳐다봤다. 뭔지 모를 분한 감정이 생겨났다. 이때까지는 시황이 자신을 어루만져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시황이 그 누구와 사귀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관심을 가진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어차피 자신은 남자 친구 사귀는 건 옛날 옛적에 포기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르쳐 준 것만으로도 은혜를 입은 거니까. 그래서 시황이 그 누구와 사귀든 자신이 그걸 간섭하고 기분 나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건 원래 갈수록 더 큰 자극을 원하기 마련이었다. 막상 시황과 깊은 관계가 되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나자 시황과 사귀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찬미와 정답게, 그것도 마치 연인처럼 얘기를 나누자 질투와 부러움이라 감정이 조금 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찬미가 정실이라면 자신은 마치 첩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질투심이 조금 생겨났다고 그걸 표현할 수는 없었다.
“미안. 괜히 카페 일 하게 해서. 찬미 힘든 일만 시키고.”
“아니에요. 오빠. 카페 일도 재밌는 걸요.”
시황은 찬미와 대화하면서 현주의 반응을 살폈다. 원채 내성적인 아이라서 자신의 감정 표현을 잘 하지는 않는데 마치 찬미와 연인처럼 대화를 나누는 걸 직접 보여주자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정도면 충분하다.
가게 정리를 다 해놨기 때문에 알바생이 오자마자 바로 가게 오픈을 했다. 10시라는 시간은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잡을 수 있는 시간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바로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바로 카페가 꽉차버렸다.
가게 크기의 부족은 항상 느끼고는 있지만 상황이나 시간이 애매해서 쉽게 확장을 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이대로 몇 개월 더 운영한 뒤에 서울에 조금 크게 카페를 낼 생각이었다.
“현주야, 난 오늘 바빠서 카페에 못 올 거 같거든. 나중에 찬미 오면 교대하면 돼. 알겠지?”
“무슨 일 있으세요?”
“오늘 방송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게 좀 있거든.”
“그렇군요. 카페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저도 나중에 방송 꼭 볼게요. 오빠.”
“고마워.”
시황이 웃으면서 말하자 현주도 배시시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현주 씨. 그럼 저희는 갈게요.”
“아, 네.”
시황의 옆에 조신하게 서있던 찬미가 인사를 하더니 시황을 데리고 카페를 나갔다. 그리고는 카페 앞에 세워져있는 자전거에 같이 타더니 시황을 꼭 끌어안은 채로 떠나간다.
그걸 본 현주의 미간에 주름이 조금 생겨났다.
“언니, 언니. 사장님이랑 오후 바리스타 하시는 분이랑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찬미를 계속 눈여겨 본 초롱이 현주에게 말을 걸었다. 여자의 직감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직장 동료를 넘은 사이였다.
“그런가…….”
현주라고 모르지 않았다.
“언니, 이대로 있으면 저분한테 사장님 뺏길지도 몰라요. 저 오후 바리스타 하는 찬미 언니가 진짜 몸매도 좋고 엄청 예쁘잖아요. 그러니까 언니가 더 적극적으로 사장님한테 어필을 해야 돼요.”
“어필? 어떻게?”
현주가 소라에게 물었다.
“오빠가 뭘 해주길 기대하는 거 보다 언니가 먼저 오빠한테 키스해 달라거나, 가슴 만져도 된다고 막 그런 야한 얘기해요.”
“얘, 얘는……. 그런 말을 어떻게 해…….”
거침없는 소라의 말에 현주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섹스할 때야 자기도 온갖 음란한 짓을 다했지만 정작 평소에는 그런 말이 부끄러워서 해본 적이 없었다.
“언니, 남자들이 여자 가슴 만지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막 화났을 때도 가슴 만지게 해주면 금방 화가 풀린다니까요. 언니는 가슴이 크니까 사장님이 분명 더 좋아할 거에요.”
“그, 그래?”
현주는 소라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시황과 섹스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소라의 조언대로 옷과 스타일을 바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만약 예전처럼 후줄근한 옷과 스타일이었다면 시황과의 섹스는 분명 불가능 했을 것이다. 어쩌면 성기를 빠는 걸 들킨 순간 해고는 물론이고 경찰서에 끌려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현주는 눈을 빛내면서 소라의 연애 특강을 열심히 경청했다.
“집에 그 분 계시죠?”
“아, 수란이? 응. 지금 아루랑 있을 거야.”
오피스텔 건물 입구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자 찬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루와 시황이 친동생 사이도 아니고 할 짓 다 했다는데 수란이라는 외국에서 온 여자가 하나 낀다고 해서 큰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어떤 사람인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가서 시황이 바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러서 집으로 들어갔다.
“앗! 오빠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아루가 반가운 목소리로 시황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리고는 얼굴을 가슴에 부비적부비적거린다. 마치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처럼 애정이철철 흘러넘친다.
“아루야, 안녕.”
“찬미 언니. 안녕하세요.”
찬미가 인사하자 아루가 시황에서 떨어져 정중하게 꾸벅 인사한다. 예의범절이 남다르다.
아루는 어제 시황이 입혔던 야한 캐미솔이 아니라 평소에 입는 평범한 티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브레지어를 하지 않아서 유두 부분이 살짝 튀어나왔고 반바지가 매우 짧아 제법 야한 모습이기는 했지만 어제 새벽에 입은 캐미솔에 비하면 너무나 건전한 옷이었다.
찬미는 집을 둘러보면서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여자 하나를 발견했다. 아름다운 검은 머리가 허리까지 왔는데 묘하게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미인이었다. 그것도 자신보다 더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수란아, 인사해. 찬미라고 내 여자 친구야.”
시황이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는 수란에게 가서 찬미를 소개시켰다. 그러자 수란이 책을 덮고는 찬미를 슬쩍 쳐다봤다.
“어머, 안녕하세요. 임수란이에요. 오빠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수란은 능숙하게 찬미에게 인사했다.
“네. 이찬미에요.”
찬미는 수란을 훑어봤다. 어떤 사람인지 탐색을 하는 것이다. 수란도 아루처럼 평범한 티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기나 한 건지 티에는 유두가 도드라져 보였고 잔뜩 달라붙는 바지는 갈라진 음순에 파고들어 있어 흔히 말하는 도끼자국이 나있었다.
찬미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외국에서 왔다더니 지나치게 성적으로 개방적인 거 같았다. 아니, 어쩌면 시황에게 관심을 끌고 싶어 저런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저보다 언니이신데 말 편하게 하세요.”
“아, 네. 그럴게.”
붙임성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붙임성 좋은 성격이 더 신경쓰였다. 그만큼 시황에게도 친하게 대할테니까. 자신의 마음이 아무리 넓더라도 아루와 유미 외에 시황과 깊은 관계가 있는 여자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언니, 제가 맛있는 거 드릴게요. 소파에 앉아계세요.”
“응. 고마워.”
아루의 말에 찬미는 소파에 앉았고 시황은 찬미의 옆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수란은 시황의 옆자리에 앉는다.
찬미는 수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찬미도 알겠지만 내가 만화를 그리잖아. 수란이가 그거 도와주기로 했어.”
“수란이, 그림 잘 그리나봐?”
찬미는 수란을 보면서 말했다.
“제가 자신 있는 특기 중에 하나가 그림이에요.”
“아, 그래?”
“네.”
수란의 말에 찬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외국에서 온 여자가 같이 산다기에 그냥 밥만 축내는지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이거 드세요. 언니. 수란이도 먹어.”
아루는 케즈론의 성에서 가져온 간식을 가져와서 탁자에 올려두었다.
“아, 그리고 야간에 일하는 시연이 있지? 걔도 나 도와서 같이 그림 그릴거야. 좀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거든.”
“시연이요? 그럼 아르바이트생은 한 명 더 구하시게요?”
“응. 그럴 생각이야.”
찬미는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카페 케즈론의 한 달 매출이 4000만 원을 넘겼기 때문에 만화가 잘 안 되더라도 돈 문제는 없을 거 같아 다행이었다. 다만 시황의 씀씀이가 조금 헤픈 거 같아 그 부분은 자신이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는 거니까.
“수란이는 계속 여기서 지낼 거야?”
“네. 부모님이 그러라고 했으니까요. 저도 혼자 지내고는 싶지만 어쩔 수 없죠.”
수란이는 연기를 잘했다. 한참을 노력해서 겨우 일반인과 얼추 비슷한, 그것도 엄청 순진하고 순수한 일반인 수준인 반면에 수란은 너무나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고 대화를 했다. 표정에 별다른 변화조차 없어 거짓말을 하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유미 쉬는 날이야?”
“네. 토요일은 쉬는 날이에요.”
“그래? 나 때는 방학 때도 5시 넘어서까지 학교에 있고 토요일도 매일 갔는데……. 요즘 엄청 편하네.”
“오빠 나이 생각하면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일인걸요.”
“그래? 하하.”
시황이 찬미랑 즐겁게 대화를 하자 수란은 별 신경을 쓰지도 않고 덮어놓은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찬미는 시황과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수란의 모습을 꼼꼼히 살폈고 시황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나름의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러면 이제 유미 불러야겠다.”
시황은 유미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길게 간다.
[오빠! 저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에요?]
[하하. 그래. 유미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헤헷.]
시황의 말에 유미가 기분 좋게 웃는다.
[어디야?]
[지금 독서실이요. 저도 오빠랑 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 가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죠!]
[그래? 미안한데 지금 우리 집에 올 수 있어?]
[오빠 집이요? 가고는 싶은데……. 친구들도 있고…….]
시황의 말에 유미가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시황의 집에 가서 놀고 싶었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독서실에 와서 공부하고 있어서 조금 곤란했다.
[조금 급한 일이라서.]
[급한 일요?]
[응. 그게…….]
시황은 유미에게 인터넷에서 생긴 루머에 대해 말해주었다.
[정말요? 미친 거 아니에요? 와, 진짜 짜증나네.]
시황의 말에 유미가 화가 나서 말했다. 요즘 공부를 한다고 시황에 관한 글을 조금 띄엄띄엄 봤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벌써 7월 중순이 넘어 수능 100일까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이라 공부를 안 하려야 안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거 때문에 와줬으면 하거든. 해명할 게 있으니까.]
[알겠어요. 오빠 당장 갈게요.]
잔뜩 화난 목소리로 말한 유미가 전화를 끊었다.
“오빠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찬미가 걱정스럽게 시황에게 말했다. 찬미도 연예인들 루머를 보면서 그런 가십거리가 쉽게 진압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늘 방송에서 아루랑 사귄다고 하려고.”
“네?”
시황의 말에 찬미는 깜짝 놀라 뭐라 말해야 할지 선뜻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당사자인 유미와 사귀는 것도 아니고 아루와 사귄다니? 아니, 그건 둘째치고 유미에게 그런 말을 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왜 하필 아루에요? 차라리 유미랑 사귄다고 해야 하지 않아요?”
“그게 맞기는 한데. 그러면 그다지 이슈가 안 되거든. 그리고 어차피 유미는 나랑 아루가 친남매 사이로 아니까 쉽게 수긍해 줄걸?”
“아……. 그렇구나.”
생각해보니까 유미는 아직 시황과 아루가 친남매가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미도 의외로 간단히 허락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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