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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155화 (15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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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은 카페 안을 들여다보다가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뿌연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빛과 대기오염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치 않는 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다른 행성에 있는 존재를 찾기는커녕 미생물이나 물,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라도 찾기 위해 노력중인데 정작 자신은 과학자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다른 행성의 존재를 곁에 둔 것도 모자라 아예 행성 하나를 소유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스케일이 커도 보통 큰 게 아니다. 행성을 소유하고 드래곤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의 유산을 받았다라……. 이 기막히고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새삼 웃음이 나온다.

“들어오세요. 오빠.”

한참 감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루와 대화가 끝났는지 찬미가 시황을 불렀다.

테이블에 앉자 아루는 언제나처럼 밝고 활기차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얘기 했어?”

“앞으로 오빠와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요.”

“오빠, 언니도 오빠 엄청 좋아한데요. 저도 오빠 좋아하는데. 헤헷.”

아루가 밝게 웃으면서 시황에게 말했다. 아루야 애초에 세란처럼 다른 행성에서 태어난 데다 자신의 노예이다 보니 지구의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들과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찬미와의 관계를 알아도 별다른 상처나 충격을 받는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주인인 시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

찬미가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루는 착해도 너무 착했다. 자신이 시황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밝혔음에도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순수하게 기뻐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은 시황과 아루의 사이의 방해꾼일 텐데 말이다.

“아직 결정 못했어?”

“아니에요. 아루가 절 이해해줘서 오빠랑 지금처럼 지내도 된다고 허락해줬어요.”

걱정스러운 시황의 말에 찬미가 대답했다. 나이는 아루보다 자신이 많아도 어쨌든 시황과의 관계는 아루가 먼저였고 자신은 그 사이에 끼어든 거니까. 다만 자신은 시황이 아루든 유미든 누구와 사귀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유미는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시황과 자신의 관계만 알아도 큰 충격을 받을 텐데 여기에 아루와의 관계까지 알게 된다면…….

“하아…….”

답답함에 한숨이 나온다.

“미안해. 찬미야.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아니에요. 오빠. 전 괜찮아요.”

찬미가 아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유미의 일은 나중에 고민하기로 했다. 지금 이 일만으로 약간 힘이들었으니까.

“고마워. 이해해줘서.”

“그러면 내일 점심먹고 유미 데리고 오빠 집으로 갈게요.”

“응. 알았어.”

시황이 살짝 웃자 찬미가 복잡한 미소를 짓는다. 어쨌든 시황을 절대 포기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가자. 벌써 1시가 넘었어.”

“네.”

시황은 간단하게 테이블을 정리하고 카페 문을 닫았다.

“오빠, 전 들어갈게요.”

“응? 내가 데려다 줘야지.”

“아루도 있는데…….”

찬미가 아루를 살짝 보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루까지 있는데 자신의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기에는 약간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거리를 혼자 걷는 건 무섭기는 했지만 옛날 보다는 많이 괜찮아지기도 했다.

“괜찮아. 데려다 줄게.”

시황이 찬미의 손을 잡고 찬미의 집으로 향했다.

“오, 오빠.”

시황이 갑자기 손을 잡자 찬미가 당황해서 아루를 쳐다봤다. 자신이 시황과 아루사이에 꼈다고 의식해서인지 자꾸 아루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나도 오빠 손잡을래요!”

시황이 찬미와 손을 잡자 아루도 시황의 손을 잡았다. 시황의 손을 잡고 길을 걸어서인지 아루가 기분 좋게 웃는다.

오른손으로는 찬미의 손을 왼손으로는 아루의 손을 잡고 시황은 찬미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지만 조금 걷자 그나마 분위기가 풀어져서 소소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느덧 찬미의 집 앞 골목길에 도착했다.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가로등 하나만이 어두운 골목길을 뿌옇게 비춘다.

“오빠, 고마워요. 내일 가기 전에 전화할게요.”

찬미는 차분한 표정으로 시황에게 말했다.

“응. 알았어.”

“언니, 잘 가세요!”

“응. 아루도 잘 가.”

찬미가 아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너무나 사랑스럽게 착한 아이다.

“잠깐만.”

인사를 한 찬미가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시황이 찬미를 끌어서 키스를 했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찬미가 당황해서 시황을 살짝 밀쳐냈다.

“오, 오빠.”

찬미의 얼굴이 빨개져서 아루를 쳐다본다. 그런데 걱정한 것과 다르게 아루는 그저 부러운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오빠, 저도 뽀뽀하고 싶어요.”

그리고는 아루가 시황의 목을 끌어당겨서 가볍게 입을 맞춘다. 처음엔 가볍던 키스가 점점 농도가 짙어진다. 집에서 하는 것과 같은 지나친 키스는 찬미에게 큰 충격을 줄 수가 있어 시황은 적절한 순간에 아루의 키스를 멈추게 했다.

찬미는 멍하니 아루와 시황이 하는 키스를 쳐다봤다. 약간의 질투심과 부러움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아루와의 키스를 끝낸 시황이 찬미를 바라봤다. 둘의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다시금 시황이 다시 찬미를 끌어 키스를 했다. 이번에는 찬미도 거부하지 않고 얌전히 받아들인다. 아루의 키스를 봐서인지 찬미도 적극적으로 혀를 이용해서 끈적끈적한 키스를 한다.

평소라면 눈을 감고 키스를 하겠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상황이라 찬미는 슬쩍 곁눈질로 아루를 쳐다봤다. 아루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자신과 다르게 질투라는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정말 순수한 모습이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착하고 순진하고 순수할 수 있는지 아루를 보면서 처음 알았다.

“오, 오빠 전 갈게요. 아루야 잘가.”

“네! 언니 빠이빠이.”

키스를 끝내고 찬미는 부끄러움에 볼을 잔뜩 붉힌 채 간단한 인사만을 남기로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루의 키스에 자극을 받아서 아루가 보고 있는데도 그런 끈적하고 음란한 키스를 하다니……. 부끄러워 죽을 거 같았다.

시황은 부끄러워하며 집으로 빠르게 뛰어간 찬미를 끝까지 응시했다. 키스를 했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면 찬미는 이제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항상 그렇듯 처음 인정하는 게 어려운 거지 한번 이런 식으로 인정하면 두 번째, 세 번째는 더 쉽게 인정을 할 게 분명했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했지만 그래도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점에서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시황은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아공간에서 케즈론의 자전거를 꺼냈다.

“가자. 아루야.”

“네! 오빠!”

자전거에 탄 아루가 시황을 등을 꼭 부여잡고는 따스한 시황의 등에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기분 좋다.

페달을 밟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찬미와 아루의 문제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세란과 아루가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다만 노예였던 아루와 왕녀인 세란의 신분적인 차이가 조금 걸리기는 한다.

오피스텔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란은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해서 보는지 집에 누가 들어와도 모를 정도였다.

“세란 님.”

“아! 시황 님 오셨어요? 옆에 계신 분이 아루 님이신가 봐요?”

세란은 아까 시황이 건네준 슬립을 입고 있었다. 팬티를 입고 슬립을 입었는지, 반바지를 입고 슬립을 입었는지,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없이 슬립만 입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자꾸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세요?”

아루가 궁금한 표정으로 세란에게 질문을 했다.

“반가워요. 세란 라논 톨레이만이에요.”

“전 서아루라고 해요. 성이 서고 이름이 아루에요! 19살이구요”

아루는 활짝 웃으면서 시황이 만들어준 성까지 얘기를 했다. 아마도 세란이 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거 같았다.

“19살이면 저랑 같은 나이가 같네요. 앞으로 같이 살 건데 편하게 지내요. 아루 님.”

“아! 네! 그런데 여기서 저랑 같이 계속 지내나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두 분이서 즐겁게 사는데 끼어들어서 죄송하기는 한데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서요.”

아루의 말에 세란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톨레이만의 명령은 정말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드래곤이란 존재는 강함이라는 걸 넘어 전지전능하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은 존재였고, 그런 존재가 내린 명령을 거부할 정도로 자신의 담이 크지도 않았다. 뭐, 사실 성에서 따분하게 있다가 정략 결혼이나 하는 것 보다 시황을 돕는 게 훨씬 흥미롭고 즐거울 거 같기도 했지만.

“아니에요. 세란 님이랑 같이 있으면 엄청 재미날 거 같아요.”

아루의 눈이 반짝거린다.

“고마워요.”

예상대로 세란과 아루는 별다른 문제없이 서로를 인정했고 싫어하는 기색도 없었다. 아루는 자신이 로쉘 행성에서 사온 하급 노예였고 세란은 로 하임 제국의 4왕녀라서 신분적인 트러블이 있지 않을까 걱정을 조금 하기는 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게 자신에게는 왕녀라고 소개를 했으면서 아루에게는 자신을 왕녀라고 소개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한국에는 신분제도가 없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를 했기 때문인 듯 싶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세란에게 지식이 많고 상황 인지력이 매우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세란 님. 그러면 아루랑 저는 샤워를 하고 올게요. 쉬고 계세요.”

“아, 네. 그리고 책 보니까, 보통 나이에 따라서 호칭과 높임법이 달라진다고 하던데 시황 님은 몇 살이세요?”

“전 26살이요.”

“아아, 그렇군요. 그러면 저한테 반말하시면 되겠네요. 저도 이제 이 세계의 일원이니까 이 세계의 규칙을 따르는 게 맞지 않겠어요?”

세란은 가볍게 웃으면서 얘기를 했다. 뭔가 상당히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집에서 나온 게 저렇게 기쁜 걸까?

“그럴까? 그러면 이름도 좀 바꾸면 좋겠는데.”

이미 수많은 여자들과 말을 튼 시황은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다.

“이름이요?”

“응. 세란이니까……. 음, 수란은 어때? 임수란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

“임수란이라…….”

세란은 시황의 말에 임수란이라는 이름을 곱씹어본다.

“나쁘지 않은 어감이네요. 뭐, 사실 잘은 모르겠지만요.”

세란, 아니 수란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세란 님, 이름 무지 예뻐요.”

오히려 아루가 감탄을 한다.

“그런가요? 아, 그리고 아루도 나랑 나이 같은데 말 편하게 해.”

“펴, 편하게요?”

“응. 반말해.”

수란의 말에 아루가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이때까지 태어나서 반말을 해본 적이라고는 거의 없었으니까. 아루가 당황해서 끙끙거린다.

“아, 알겠어!”

한참을 주저주저하던 아루가 굳게 마음을 먹고는 수란에게 반말을 했다.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얼마나 갈등을 하고 고민을 했는지 이마에서 땀이 송글송글한다.

시황은 그런 수란과 아루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노예와 왕녀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둘 사이에는 그 어떤 격차도, 인간적 문제도 존재치 않았다. 신분이라는 건 결국 환경적인 요인일 뿐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 누구라도 왕이 될 수도, 노예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 위대한 사람이라면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톨레이만을 만나고 변화한 시황이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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