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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154화 (15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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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이때까지 친동생이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다들 그렇게 아는 거 같더라고.”

“그, 그럼 아루랑 어떤 관계인거에요?”

찬미는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마음을 진정시키며 시황에게 물었다. 원래라면 큰 충격을 받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자기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느낌이었다.

“찬미는 모르겠지만, 사실 아루는 부모님이 안 계셔. 옛날에 우리 부모님하고 친하던 분이 사고로 돌아가셨거든. 그때 그 분들이 우리 부모님에게 아루를 맡겼고, 이때까지 같이 지내는 중이야.”

뭔가 소설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찬미가 부모님에게 물어서 확인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스토리를 짜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기도 했고.

“아……. 그래서 아루가 오빠한테 존댓말을 하고 그렇게 사이가 친했던 거군요.”

보통의 남매라면 서로를 원수마냥 싸우고 사이가 안 좋을 텐데 아루와 시황은 너무 사이가 좋아 약간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특히 동생인 아루가 존댓말을 하는 건 처음 볼 때는 어색하긴 했지만 시황의 집안 자체가 그런 분위기인가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응. 옛날부터 같이 지내서 친남매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부모님도 아루랑 둘이서 같이 살게 해준 거고.”

하지만 찬미의 얼굴이 썩 좋지는 않았다. 친남매일 때는 둘이 같이 살아도 그러려니 했는데 친남매가 아니라, 그저 친하기만 한 남남이라는 걸 안 순간 여자로서의 본능적인 불안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오빠랑 같이 살아서 엄청 좋아요! 막 재밌는 것도 많이 하고 공부도 하고. 헤헤.”

아루가 찬미에게 귀엽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본 찬미의 표정이 더 불안해진다. 저 순수한 아루가 시황과 야한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남녀 둘이서만 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인데다 아루가 시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아루도 시황을 좋아하기라도 한다면…….

“하아…….”

찬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 얘기는 찬미가 걱정할까봐 안 하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서…….”

“이, 일이요? 서, 설마 그, 그거…….”

찬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아루가 친남매가 아니라고 설명한 뒤에 뭔가 일이 생겼다 라고 말한다? 그러자 찬미의 머리에서 자연스럽게 임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방금 전까지 아루가 순수해서 그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친남매가 아닌 이상 남녀가 단 둘이서 같이 사는데 그런 일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그거? 찬미도 알고 있었어? 언제 알았어? 내가 요즘 그거 때문에 고민이 많거든.”

“아아…….”

시황의 말에 찬미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신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아루가 임신을 하다니. 보통이라면 양다리를 걸친 남자에게 극렬한 분노를 느껴야 하지만 찬미는 어째서인지 그런 분노보다는 허탈함과 슬픔만이 생겨났다. 시황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자신을 걱정해주고 감싸준 남자인데…….

찬미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차, 찬미야. 갑자기 왜 울어?”

“언니, 울지 마세요.”

갑자기 찬미가 울자 아루가 찬미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그러자 찬미도 아루를 안아준다. 아루는 미워할 수 없는 아이였다. 너무나 착하고 순진해서 19살이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이런 아루라도 시황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유미 때도 그랬지만 그저, 그저 조그만 시황의 사랑만 있으면 됐다. 유미든 아루든 누구와 사귀더라도 모든 걸 이해해줄 수 있었다.

“오빠……. 아루하고…….”

아까부터 얘기의 포인트가 조금 엇나간다고 느끼긴 했는데 찬미가 갑자기 울자 뭔가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걸 시황은 바로 눈치 챘다. 도대체 무슨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아루와의 사이에 대한 거라는 건 확실했다.

“미안. 찬미야.”

시황은 이 기회를 살려보기로 했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니까.

“아니에요……. 오빠.”

찬미의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시황은 마치 자신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나쁜 남자라도 된 느낌이다. 아니, 나쁜 남자가 된 기분이 아니라 완전 나쁜 남자인가? 양다리는 몰라도 여섯 다리 걸치는 짓은 보통은 안하니까.

“언니, 울지 마세요. 저도 눈물이 나와요.”

찬미가 울자 아루도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루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찬미는 아루를 꽉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아루가 임신을 하고 시황과 그런 사이더라도 찬미는 도저히 시황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미 자신에게는 시황이 없으면 안 될 정도였으니까.

“아니에요. 언니. 제가 미안해요. 흑…….”

아루는 찬미가 왜 사과를 하는지도 모르고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자기가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아루와 찬미, 둘이서 한참을 엉엉 울고 나자 약간 진정이 됐는지 눈물을 닦는다. 슈슈의 차를 마셔서 저 정도인 거지 그냥 말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이 불가능했다.

“몇 개월이에요. 애는 낳으실 거에요?”

찬미가 서글픈 눈으로 시황에게 말했다.

시황은 그제야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했다. 찬미는 아루와 자신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고 착각한 것이다.

“응? 애? 무슨 애?”

“네? 아루 임신한 거 아니에요?”

“임신? 임신이라니? 그런 일 없는데. 내가 임신했다고 말했었나? 이상하네.”

“아…….”

시황의 말에 찬미의 얼굴이 갑자기 시뻘게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시황과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시황은 아루가 친동생이 아니고 일이 생겼다고 했지 임신을 했다는 건 순전히 자신의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진실인양 아루를 껴안고 울고불고해버린 것이다. 찬미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부끄러워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 그러면 일이라는 건 뭐, 뭘 말하는 거에요?”

“아, 그게…….”

시황은 인터넷에 올라온 루머에 대해서 찬미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오빠 그래서 어떻게 하시게요?”

찬미가 걱정과 부끄러움이 복합된 표정으로 시황에게 물었다. 이런 일을 아루와 임신했다고 오해를 했다니 정말 죽을 만큼 부끄러웠다.

“그래서 내일 방송에 유미랑은 친한 동생 사이고 아루랑 사귀고 있다고 말할 생각이거든. 그래서 친남매가 아니라고 찬미한테 미리 말해준거야.”

“그, 그렇군요.”

찬미도 매우 똑똑했기 때문에 시황이 의도하는 바를 단번에 이해했다.

“내일 유미한테도 설명할 건데 유미한테는 아루하고 친남매가 아니라는 건 안 밝힐 생각이거든. 찬미가 그거 생각해서 호응 좀 해줘. 알겠지?”

“아, 네.”

만약 유미가 아루하고 시황이 친남매 사이가 아닌데 사귄다고 인터넷에 보여준다고 하면 어떻게 될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시황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자신에게만 그런 사실을 밝힌 거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이때까지의 얘기들이 전부 이해가 되고 충분히 수긍이 갔는데 중간에 시황이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한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 오빠 아까 저한테 미안하다고 한 건……. 어떤 의미였어요?”

찬미는 물어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시황에게 미안하다는 의미를 물었다.

“아, 그, 그게…….”

이번에는 시황이 약간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아루와도 그런 관계에요?”

찬미는 침착하게 시황에게 물었다. 임신의 충격 때문인지 시황과 아루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해도 마음이 차분하다.

“으, 응. 미안 찬미야.”

시황은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아……. 언제부터였어요?”

찬미는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통이라면 화가 나야할텐데 어째서인지 시황을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만큼 시황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미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서일까?

“좀 됐어. 찬미 만나기 전부터…….”

“그렇군요……. 제가 방해꾼이었나 봐요. 오빠랑 아루랑 그런 관계인지도 모르고…….”

찬미는 자신보다는 유미가 걱정이 되었다. 시황을 그렇게나 좋아하는데 아루와 그런 관계라니, 혹시 나중에 알 게 되더라도 큰 충격을 받지 말아야 할텐데.

“아니야. 찬미야. 그렇지 않아. 아루랑 나는 그런 관계라기보다는 오빠, 동생 사이에 가까워서…….”

“오빠, 동생끼리 섹스, 아, 아니. 그런 성적인 행위를 하지는 않잖아요.”

시황의 말에 찬미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했지만 어째서인지 이해가 되고 이미 아루와의 관계도 인정을 거의 하고 있었다. 오히려 시황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크게 생긴다.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시황은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니. 그거 엄청 재밌어요. 오빠가 막 가슴하고 만져주면 기분 엄청 좋아져요.”

섹스라는 말에 방금 전까지 눈물을 찔끔 흘리던 아루가 순진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심각한 일이라도 아루가 얘기를 하면 정말 별 거 아닌 것처럼 들리는 묘한 효과가 있다.

“아, 아루야.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노골적인 아루의 말에 찬미의 얼굴이 붉어져서 아루에게 말했다.

시황이 밖에서는 그런 얘기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는데 아루는 찬미가 편하고 친해서인지 스스럼없이 얘기한 듯 싶었다.

이 정도쯤 진행됐으면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처음에 임신에 대한 오해 덕분에 한번 극적인 긴장감이 생겼다가 풀려서인지 아루와 섹스를 하는 사이라는 말을 살짝 돌려 말했음에도 찬미는 처음과 다르게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미안. 찬미야.”

“오빠 아니에요. 제가 미안해요.”

시황의 사과에 오히려 찬미가 사과를 했다. 보통 여자라면 이런 상황이라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너 죽네 나 죽네 했을 텐데, 슈슈의 달콤한 차 덕분인지 찬미는 상당히 침착해 보였다.

“네? 어떤 거요. 언니?”

“미안, 아루야. 정말 미안해. 오빠랑 네가 그런 사이인지도 모르고 끼어들어서…….”

찬미가 아루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시황과 아루의 사이에 끼어든 거나 다름이 없었다. 시황은 자신에게 그저 순수한 감정으로 도움만 줬을 뿐인데 자신이 그런 시황을 유혹해 관계를 가진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시황과 술을 먹었을 때 일이 다시 생각나자 찬미의 얼굴이 빨개졌다.

여자들은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정적라고 한다. 찬미도 여자인만큼 이성적이기 보다 감정적인 면이 강했고, 사실 이런 남녀 사이의 문제는 이성적이니 감성적이니 할 거 없이 누구나 감성적이기 되기 마련이기도 했다.

하지만 슈슈의 달콤한 차를 마셔서 감정적이기보다 마음이 넓어지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어 찬미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을 한 상태였다. 오히려 아루에게 너무나 미안할 정도였다.

“저도 미안해요 언니.”

아루는 찬미가 사과하자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같이 사과를 했다.

“찬미야, 아루랑 나랑은 그런 사이 아니니까 크게 신경 안 써도 돼.”

“오빠. 아루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거에요.”

“미, 미안.”

괜히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오빠, 전 아루랑 잠시 얘기 좀 할 테니까 잠깐 밖에 나가주실 수 있으세요?”

“으, 응? 난 여기 있으면 안 돼?”

“여자끼리 할 얘기라서 안 돼요.”

“알았어. 다 되면 불러줘.”

“네.”

시황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밤 12시가 한참 전에 지나서 이미 거리가 어두워진지 오래였다. 방학이라 그런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커플과 대학생들이 무리지어 몰려다닌다.

카페 안을 바라보자 찬미는 아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나쁘지 않은 게 얘기가 잘 되고 있는 거 같았다.

어쩌다보니 큰 고비를 하나 넘긴 듯 하다.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그리고 쿠폰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자꾸 소설 올리는 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약간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요즘 이명증 때문에 매일 약을 먹는데 이게 먹으면 엄청 졸려요...

그래서 아까도 저녁에 약을 먹고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서 12시에 일어났더군요;

약만 먹으면 너무 잠이 와서 글도 잘 안써지고.. 좀 더 힘내서 써보도록 할게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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