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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이만 님의 말씀대로 시황 님을 도와드려야겠죠. 제 이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톨레이만 님은 우리 왕국을 세우신 분이시고 전 그 분의 명령을 거절할 수가 없거든요. 아니, 사실 거절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지만요.”
세란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
“집에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괜찮으세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거기 계속 있어봐야 정략결혼이나 할 게 뻔한데요. 거기다 성에서는 할 게 없어서 너무 지루하구요. 여기가 훨씬 나아요.”
세란은 오피스텔을 둘러보며 말했다. 단순히 시황에게 위로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여기에 와서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집이 많이 좁긴 하네요. 아까 그 성이 괜찮던데 거기서 안 지내고 왜 여기서 지내세요? 무슨 사정이 있나 봐요?”
“여기가 제가 사는 세계니까요. 그 성이 있는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다른 세계라서 제가 지내기엔 적합하지 않아요.”
시황은 세란이 이해하기 쉽게 사정을 얘기해주었다. 영민하고 똑똑한 여자이니 자신의 사정을 쉽게 이해해 줄 것이다.
“아하, 그래서 워프 게이트로 그 성에 가는 거였군요. 그런데 이 집엔 저희 둘만 사나 봐요?”
“아니요. 아루라고 같이 사는 사람 한명 있어요.”
“아루? 여자인가요?”
“아, 네. 여자요.”
“그렇군요.”
세란은 시황은 보면서 살짝 웃었다. 무슨 생각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별다른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시황은 그런 세란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생각해보니 앞으로 세란이랑 같이 지내야 하는데 아루랑 섹스하기가 조금 곤란해졌다. 둘만 살 때는 침실이든 소파든, 장소는 물론이고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섹스를 했는데, 세란이 있으면 이렇게 하기가 힘들었다. 거기다 침대도 2인용이라서 세란이 자기에 마땅한 곳도 없었다.
이런절 고민을 하는 와중에 시계를 보자 벌써 7시가 넘었다.
“일단 사용해야 하는 것들을 가르쳐 드릴게요.”
“고마워요.”
시황은 세란에게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는 것부터 샤워하는 방법 등 최소한의 것들을 직접 가르쳐 주었다.
세란의 눈에는 흥미가 가득하다.
“일단 저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샤워한 뒤에 쉬고 계세요.”
“샤워요?”
“네. 여기서는 샤워를 매일 해야 하거든요. 옷은 제가 새로 가져다 드릴게요.”
“알겠어요. 그, 그리고 옷은 지금처럼 너무 노출이 있지 않은 걸로 가져다주세요. 알겠죠?”
“그럼요. 당연하죠.”
시황은 세란에게 살짝 웃어주고는 케즈론의 성에 가서 옷을 골랐다.
노출이 없는 걸로 가져다 달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란을 완벽하게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야 했다. 지금처럼 약간 어정쩡한 관계는 같이 지내기에 너무 불편했고 원활한 성생활을 즐기기에도 문제점이 많았다.
시황은 눈대중으로 대충 훑다가 슬립을 하나 선택했다. 아까처럼 노골적으로 야한 건 아니었고 평범한 디자인의 일반적인 슬립이었다. 다만 어깨끈으로 된 V라인이 가슴골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어 가슴이 큰 세란과 잘 어울릴 듯 했다.
핑크색의 슬립을 고른 시황은 오피스텔로 다시 돌아왔다.
“씻고 이거 입으세요.”
세란은 시황이 건네준 옷을 바로 살펴본다. 어떤 디자인인지 체크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특별히 야한 옷은 아니었다. 언니들이야 성적으로 상당히 개방적이라 야한 옷도 즐겨 입는다지만 자신은 성적인 것에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라 야한 옷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정도면 괜찮겠네요.”
“그럼 전 갔다 올 테니까, 쉬고 계세요.”
“알겠어요.”
시황의 말에 세란이 고개를 끄덕인다.
시황은 오피스텔을 나와 카페로 향했다. 저 슬립자체는 망사가 아니라서 그렇게 야하지는 않았지만 팬티를 주지 않아 저대로 입게 되면 음부가 그대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냥 자신이 준대로 옷을 입을 수도 있었지만 세란이 그런 것에 부담을 느낀다면 아까 준 바지에 겹쳐 입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뭐든 상관없었다. 일단 세란과 친밀해지고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기에는 얼마나 걸릴지 몰랐고, 그 사이에 아루와의 원활한 성생활을 위해서는 저런 노출이 있는 옷들을 계속적으로 보여주고 별 거 아닌 거라고 인식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오빠!”
카페에 들어가자 아루가 시황을 발견하고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불렀다. 현주와 찬미와 노는 것도 재미가 있었지만 역시 시황과 있을 때가 제일 좋았다.
“아루, 잘 있었어?”
“네. 제가 오늘 현주 언니 도와서 커피도 만들고 청소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 잘했어.”
“헤헷.”
시황이 칭찬해주자 아루는 기분이 좋아 몸을 배배꼰다.
“오빠. 나중에 저랑 얘기 좀 하실 수 있어요?”
시황이 아루와 함께 테이블에 앉자 찬미가 와서 시황에게 말했다. 그런데 찬미의 표정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아, 그래. 알았어. 카페 끝나고 얘기하자. 나도 사실 말할 게 있거든.”
“네? 말할 거요?”
“응. 약간 중요한 얘기야.”
“어떤…….”
시황의 말에 찬미의 얼굴이 불안감에 가득 찼다. 중요한 얘기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했다. 아까 그 해외에서 왔다는 여자랑 같이 산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나중에 카페 끝나고 말해줄게.”
“아, 네. 알겠어요. 오빠.”
시황의 말을 들은 뒤로 찬미는 자꾸 시황의 말이 마음에 걸려 일이 제대로 되지도 않았다. 커피를 만들어도 계속 그 중요한 얘기가 뭘까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쨍그랑!
그러다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찬미가 유리쟁반을 떨어트려서 산산조각 내버린 것이다.
유리 깨지는 소리에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카운터 쪽을 슬쩍 쳐다본다.
“찬미야 괜찮아?”
“찬미 언니, 괜찮아요?”
유리 깨지는 소리에 깜짝 놀란 시황과 아루가 찬미에게로 다가가서 말했다.
“죄송해요. 오빠. 제가 치울게요.”
찬미가 시황에게 사과를 하며 유리 조각을 집으려고 했다.
“찬미야, 위험하니까, 내가 치울게. 찬미는 손대지 마.”
시황은 찬미의 손을 잡아 멈춰 세운 뒤에 직접 유리조각을 손으로 집어서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자신은 이딴 유리조각 따위로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기 때문에 괜찮지만 찬미는 다칠 수가 있으니까.
마지막 유리조각까지 쓰레기봉투에 다 집어넣자 찬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시황과 전화를 한 이후로 머릿속에는 시황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혹시라도 시황이 떠나갈까 봐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조심해. 찬미야. 다치면 안 되잖아.”
“언니, 조심하세요!”
“고마워요. 오빠. 고마워. 아루야.”
자상한 시황의 말에 찬미는 살짝 웃음을 지었다. 시황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나중에 할 중요한 얘기에 다시금 생각이 미치자 찬미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어떤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너무나 불안했다.
대충 정리를 마친 시황은 테이블로 돌아와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했다. 아까 그 여자애가 사과문을 제대로 썼는지 확인을 해봐야했다.
[거짓 루머를 퍼트려서 노래 본좌 님께 피해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사이트에 들어가자 사과문이 올라와있었다. 그렇게까지 마음에 드는 제목은 아니었다. 시황은 글을 클릭해서 사과문을 읽어보았다.
[사실 전 그 여자와 같은 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유앤미 오빠들을 노래 본좌 님과 비교해서 자꾸 욕하자 화가 나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허위 사실을…….]
장문의 사과문이었다. 정말 고소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글에서 가득 느껴진다. 나름 괜찮은 사과문이라 시황은 휠을 내려 댓글을 읽어봤다.
[헐, 진짜인가요? 님 아무리 화나도 그런 거짓말을 쓰시면 안 되죠.]
[아, 괜히 또 유앤미 오빠들만 욕먹게 생겼네. 글 지워라. 짱나네.]
[역시……. 난 노래 본좌가 그런 짓 할 리가 없다는 걸 알았음.]
그 사과문의 댓글 반응도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중간 중간 유앤미 팬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사과문을 올린 여자애를 욕하고 짜증을 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유미를 모텔에 끌고 가서 폭행하고 강간한다는 글은 댓글이 1000개가 넘게 달렸는데 이 사과문에는 댓글이 50개 정도밖에 안 달려 있었다. 거기다 조회수도 스캔들 글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낮았다.
시황의 예상대로 이런 사과문은 스캔들에 비해서 전혀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이다. 뭐, 충분히 예상한 결과였다.
시황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자신에 대한 여론을 읽었다. 사과문이 아까 전에 올라와서 몇몇 사이트로 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신은 인간 말종 쓰레기였다.
거기다 디시아웃사이더에서는 자신을 필수요소로 지정하고 얼굴을 가지고 온갖 합성 사진을 쏟아내고 있었다. 구경할 때는 그저 재미있던 그런 합성 자료가 자신이 소재가 되니 상당히 짜증나고 화가 났다.
바쁠 때는 가게 일을 도와주고 인터넷으로 여론을 틈틈이 살펴보는 사이에 어느덧 카페가 마칠 시간이 되었다.
시연과 다른 아르바이트생은 퇴근을 하고 문을 닫은 카페에는 찬미와 아루, 그리고 시황만 남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찬미의 표정에 불안함이 가득하다.
“찬미야, 이번에 내가 새로 구한 차 있는데 마셔볼래?”
“차요?”
“응. 잠시 기다려봐.”
시황은 가방에서 꺼내는 척 하며 아공간에서 슈슈의 차를 꺼냈다. 이걸 마시게 되면 찬미의 마음이 차분해지고 이해심이 넓어질 것이다.
말린 꽃잎을 넣은 컵에 뜨거운 물을 부어넣었다. 자주빛의 꽃잎이 부유하며 달콤하면서 은은한 향기를 피어낸다.
차가 담긴 컵을 아루와 찬미에게 건네주었다. 찬미만 주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 같아 아루에게도 준 것이다. 나쁜 것도 아니고 그저 마음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을 뿐이라 아루가 마셔도 전혀 상관없었다. 맛도 괜찮았고.
“향기 좋네요.”
찬미는 컵에 코를 살짝 대고 향기를 음미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안함이 가득하던 찬미의 얼굴이 약간이나마 풀어진다.
“마셔봐.”
“네! 오빠! 무지 맛있을 거 같아요.”
시황의 말에 아루가 눈을 반짝이면서 차를 조심스럽게 마셨다.
“맛있따!”
아루는 순수하게 웃으면서 감탄을 내뱉었다. 아루 덕분에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느낌이 든다.
“찬미는 어때?”
“맛있어요. 오빠.”
찬미도 차를 음미하면서 마시고는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설탕처럼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자극적인 맛은 전혀 없이 담백하면서도 달달한, 그러면서 향긋하기 그지없는 맛이다.
“다행이네.”
찬미가 이제 차를 마셨고 슬슬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 사실 이건 언젠가는 밝혀야 할 일이기도 했고 루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지금이 제일 적합한 시기이기도 했다.
“내가 아까 해외에서 부모님 아시는 분, 딸이 왔다고 말했지?”
“아, 네.”
시황의 말을 듣는 순간 찬미의 얼굴에 다시금 불안감이 살짝 어린다.
“어쩔 수 없이 좀 오래 같이 지내야 할 거 같아.”
“그 분 혼자 살면 안 되나요? 요즘 고시원 같은데 얼마 하지도 않는데…….”
“돈 문제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고, 그 쪽 부모님들이 딸을 혼자 보낸 걸 좀 불안해 하셔서 나랑 같이 지냈으면 하시거든.”
“아…….”
시황의 매너나 됨됨이, 성실함을 잘 아는 찬미로서는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시황만큼 마음씨 좋고 착한 사람도 드물 테니까. 그래서 분명 그 쪽 부모들의 권유에 거절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거 말고 찬미에게 밝혀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네? 밝혀야 할 일이요?”
“응. 사실 아루는 내 친동생이 아니야.”
“네?”
시황의 말에 찬미는 선뜻 이해가 안 가는지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루가 친동생이 아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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