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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결과적으로 아루 외에 같이 지낼 식객이 한 명 늘어난 것과 한 달에 한번 격투 게임에 접속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이전과 다를 것도 없었다.
시황이 계속해서 생각이 잠겨있자 시황을 잠시 응시하던 세란은 시황이 가져다 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로운 표정을 가득 짓는다.
21세기에 왕이라는 건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시황은 세란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확실히 이해했다. 현대식으로 풀어보자면 그만큼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겨우 한국에서 카페를 차리고 돈이나 조금 버는 수준이 아니라 말이다.
돈을 버는 걸 넘어 세상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유명해지고,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다라…….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야망과 포부였지만 지금은 왠지 가능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시황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소시민답게 살아왔듯이 그저 케즈론의 유산으로 적당히 돈을 벌고 여자들과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게 목표였으니까. 그런데 톨레이만과 세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살기에는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황은 자신에게 그런 조언을 해준 세란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왕녀라더니 확실히 자신이 가진 야망의 범위가 달랐다.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이라는 게 사람을 이렇게 차이 나게 만드는 걸까?
그런데 세란을 보고 있던 시황의 눈이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향했다. 현주도 가슴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했는데 세란은 현주보다 가슴이 더 큰 거 같았다. 흰색의 얇은 티가 꽉 조일 정도다. 특히 티 위로 툭 튀어나온 유두는 너무나 음란해 발기된 성기가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여긴 정말 계급이 없군요. 이런데도 왕국이 운영된다니 신기한걸요?”
세란은 연신 감탄을 하면서 책을 본다고 정신이 없었다. 세란은 왕녀답게 노예였던 아루와 다르게 사회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체계를 습득하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잠시 세란의 가슴과 음부를 훔쳐보던 시황은 세란의 능력이 뭔지 궁금해졌다.
“세란 님.”
“네?”
“세란 님의 특기나 능력을 알 수 있을까요?”
“특기와 능력이라…….”
시황의 말에 세란이 책을 뒤집어 두고 시황을 바라봤다. 세란은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바지를 한껏 먹고 있는 음부 때문인지 너무 색정적으로 보였다. 아예 대놓고 옷을 벗고 있는 것보다 더 야한 모습이다.
“이 세계에서 어떤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전 4서클의 마법사에요. 그리고 문예와 연주,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흥미가 있어 제법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고요.”
“그림이요? 어떤 종류의 그림을 그릴 줄 아세요?”
그림이라는 말에 시황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시연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데 어쩌면 세란에게도 만화를 그리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풍경화나 정물화에 자신이 있어요. 그런데 왜요?”
“그걸로 중요하게 할 일이 있어서요. 여기에 한 번 그려보시겠어요?”
시황은 종이와 펜을 꺼내 세란에게 건네주었다.
“간단하게 그려볼게요.”
시황의 부탁에 세란은 별다른 궁금증도 없이 펜으로 바로 그림을 슥슥 그린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 단번에 오피스텔 내부 풍경이 그려진다. 마력 회로를 사용한 시황보다 약간 못하긴 했지만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실력이었다. 여자답게 섬세하고 세심함이 특히 눈에 띈다.
“잘 그리시네요.”
“그런가요? 그런데 이 펜 신기하네요.”
세란은 시황의 칭찬에 살짝 웃더니 펜을 자세히 살폈다.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잉크가 새는 것 하나 없이 적당한 양만 나오는 게 너무 신기했던 것이다. 이 세계에는 신기하지 않은 게 없었다. 세란은 펜을 살펴보다가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냉장고며 세탁기 등을 만져보고 살펴보며 감탄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드르륵.
그 때 찬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 5시. 어쩌다보니 또 과외를 빼먹은 것이다.
[여보세요.]
[오빠. 무슨 일 있으세요? 요즘 자꾸 과외에 빠지시는 거 같은데…….]
찬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무슨 일 있는 거죠? 그런 거죠?]
시황의 목소리만으로도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 챈 찬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사실 부모님 친구분이 해외에 사시는데, 그 분들 딸이 일이 있어서 한국에 왔어. 그런데 지낼 곳이 없어서 우리 집에서 잠깐 지낸다는 거야.]
[네? 오빠 집에서요?]
시황의 말에 찬미가 놀라서 반문했다. 외간 여자가 시황의 집에 같이 지낸다니 이상한 상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응. 미리 연락해주려고 했는데, 미안해.]
[아니에요. 오빠. 그런데 아루가 있기는 해도 여자랑 같이 지내는 건 조금 곤란할 거 같은데 괜찮으세요?]
[괜찮아. 옛날부터 친하던 사이였거든.]
[그렇군요.]
찬미의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하다고는 하지만 왜 이렇게 걱정이 되는지 모르겠다. 아니, 친해서 더 걱정이 됐다. 시황의 매력은 자신이 잘 아니까. 그나마 아루가 같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시황과 그 여자 단 둘이만 지낼 거라고 했으면 결사반대를 했을 것이다.
[오늘 과외는 못할 것 같고, 나중에 카페에 갈게.]
[네. 알겠어요.]
찬미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아무래도 세란이 마음에 걸리는 거 같았다.
[오, 오빠 나중에 제가 그 분 만나봐도 될까요?]
[응? 아, 뭐, 그래. 나중에 우리집에 와. 만나게 해줄게.]
[네. 알겠어요. 오빠. 나중에 봐요.]
[응.]
도저히 불안함을 못 견디겠는지 찬미는 세란을 직접 만나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초창기의 아루와 다르게 세란은 이해력도 빠르고 처세술도 괜찮을 거 같아 찬미와 만나도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았다.
“그건 뭐죠? 통신마법 같은 건가요?”
시황이 전화를 끊자 흥미진진한 표정을 한 세란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비슷해요. 먼 거리에 있는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도구에요.”
“이 세계는 신기한 물건들이 정말 많군요.”
“그런가요.”
신기한 눈으로 전화기를 보던 세란은 다시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이 세계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거 같았다.
“책 읽고 계세요. 전 잠시 성에 갔다 올게요.”
“오호, 아까 그 성 말이군요. 워프 게이트를 마음대로 소환할 수 있다니. 역시 드래곤의 물품이네요. 정말 대단해요.”
세란은 시황의 행동 하나하나에 연신 감탄했다.
“혹시 밖에 나가시면 안 돼요. 밖에는 위험한 게 많으니까요.”
“몬스터라도 있나요? 저도 마법사라 일반적인 몬스터정도는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거든요.”
“아니요. 아니요. 몬스터는 없어요. 그리고 마법은 함부로 쓰시면 안 돼요. 여긴 마법이 없는 세계니까요.”
“아, 그렇군요. 저희 로 하임 제국에도 마법사가 별로 없어서 일반 평민들은 마법사를 악마처럼 두려워하거든요. 그것과 비슷한가 보군요.”
시황의 말에 세란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해력이 대단히 빨랐다.
그런 세란을 걱정스럽게 잠시 응시하던 시황은 문을 소환해 케즈론의 성으로 갔다. 그리고 마법 아이템 중에서 무언가를 찾거나 추적할 수 있는 종류의 물품을 검색했다.
[다용도 추적기. 네모난 스크린에 찾고자 대상의 정보를 적으면 원하는 결과가 도출된다. 항마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대는 찾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있는 정보 수준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하급 마법 물품 중에 딱 원하는 게 있었다. 항마력을 가진 상대는 찾을 수 없다는 엄청난 페널티가 있었지만 지구에는 항마력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페널티가, 페널티가 아니었다.
세란의 일로 정신도 없고 세란에게 가르쳐 줘야 할 것도 많았지만 허위 사실을 유포한 놈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쪽 일이 더 급했다. 인터넷의 특성상 루머라는 건 순식간에 퍼져나가니까.
타블렛과 비슷한 모양의 다용도 추적기를 선택한 시황은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다행스럽게도 세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이 세계는 정말 흥미로워요. 이 조그만 책에 있는 정보와 지식은 제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방대하고 대단해요!”
“그런가요? 다른 책도 가져다 드릴까요?”
“고마워요. 여기 있는 책들은 정말 흥미로워서 눈을 떼기가 어렵네요.”
시황에게 말을 한 세란은 다시 책을 펼쳐서 읽었다. 1분 1초가 아깝다는 모습이었다. 거기다 표정을 보니 정말 즐거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톨레이만에게 소환돼서 생면부지의 남자를 도와야 하는데 저렇게 활기차다는 게 기이할 정도다. 뭐, 개인마다 성격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
다시 케즈론의 성에 있는 도서관에 간 시황은 지구에 관한 다양한 종류의 책을 가져와 세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서 컴퓨터를 켠 시황은 인터넷에 접속해서 유미와 자신에 관한 루머를 최초로 유포한 글을 찾았다. 그 루머는 며칠 전까지는 전혀 없다가 유미와 거제도에 갔다 오고 난 이후에 갑작스럽게 생겨나 있었다.
그 글을 클릭하자 꽃님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거짓을 진실인양 사진까지 첨부해 온통 거짓말을 써놓고 있었다. 이미 그 글에는 댓글이 1000개가 넘게 달려있었는데 시황을 완전 인간쓰레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저런 인간 말종은 죽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고등학생 여자애 모텔에 끌고 가려고 때리려고 하는거지?]
[완전 무개념이네. 우리나라 경찰은 뭐함? 저런 새끼 안 잡아가고.]
[노래 본좌 개쓰레기네여. 신상 털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해야 돼여.]
[이미 신상 다 알지 않나요? 카페 케즈론 주인이라던데.]
[저희들 그 카페 앞에서 시위라도 할까요?]
[진짜 그래야 할 듯.]
[뉴스에도 내보내서 다시는 얼굴 못 들게 만들어야 해요.]
[이번 주 토요일에 세렝게티 방송 한다는데 방송 테러도 합시다.]
처음 댓글은 자신을 욕하는 게 맞았지만 그 이후에 달린 댓글은 카페를 망하게 해야 한다느니, 방송 테러를 하자니, 점점 상황이 과격해지고 있었다.
인터넷 경력이 10년이나 되는 시황은 진실이든 아니든 한번 네티즌들의 눈 밖에 나면 무슨 짓을 해도 욕먹는 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황은 바로 다용도 추적기에 사이트 주소와 꽃님이라는 이름, 아이디 그리고 ip주소를 적었다. 그러자 잠깐 데이터베이스를 읽는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글이 뜨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신상정보가 뜬다.
[유하영]
[17세]
[010-xxxx-xxxx]
[경상북도 대구시……]
너무나 상세한 정보가 떠서 시황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루머를 퍼트린 사람이 20살도 채 되지 않은 여자애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도대체…….”
단순히 재미로 그런 건가?
시황은 그 밑에 자신에게 욕이란 욕은 다한 여자애들의 이름과 아이디, ip를 기입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부분이 20살이 채 안 된 중, 고등학생 여자애들이었고 간혹 20대 초중반의 여자들도 있었다.
뭔가 느낌이 온 시황은 그 여자애들의 아이디를 고글링해서 어디서 활동하는지 검색했다.
“역시.”
루머를 쓴 여자애는 유앤미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중이었다. 오늘도 유앤미에 관련된 글을 여러 개나 써놓은 것이다.
시황은 이 여자애를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 전화를 걸었다.
잠시 신호음이 지나고 여자애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유하영 씨 맞으세요?]
[네. 맞는데요. 누구신데요?]
여자애가 약간 귀찮다는 듯 말했다. 스팸 전화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노래 본좌인 강시황이라고 합니다. 유하영 씨가 쓴 루머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네?]
시황의 말에 갑자기 유하영이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있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셔서 관할 경찰서에 고소할 예정입니다.]
[네? 저, 전 그런 거 모르는데요.]
이제 고등학생 1학년인 유하영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고소라는 말에 잔뜩 겁을 먹은 것이다. 물론 시황은 고소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사회의 쓴 맛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미 ip 추적 완료한 상태입니다. 부모님에게도 연락이 갈 테니 그렇게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자, 잠깐…….]
시황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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