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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쓰레기 새끼야, 너 같은 놈은 죽어야 돼. 개새끼.]
카페에 앉아 인터넷을 하던 시황은 자신의 세렝게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번부터 계속 자신에게 욕을 하고 있었다. 왜? 무슨 이유로 욕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약간 기분이 나빠진 시황은 바로 글을 지워버렸다.
[진짜 개념 없네. 너 노래 잘 부른다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우리 오빠들에 비하면 똥 같은 실력이거든?]
밑에도 이런 식의 글들이 몇 개 보였다. 보이는 족족 다 삭제했지만 약간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잘나가거나 능력이 많은 인간을 시기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심지어 기부를 수없이 하고 여러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 배우에게도 가식적이라며 욕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오빠라는 표현과 실력이라는 단어가 같이 들어가 있는 걸로 봐서는 아이돌 가수의 팬일 확률이 높아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황은 자신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했다. 그러자 제법 많은 연관 검색어가 떴는데 외로운 밤부터 강소진, 정은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눈에 띠는 연관검색어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노래 본좌 vs 유엔미였다.
유엔미라하면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남성 아이돌 그룹이었는데 왜 자신과 묶여서 연관 검색어에 떠올랐는지 의문이었다.
시황은 그 연관 검색어를 눌러보자 동영상 하나가 바로 뜬다.
동영상을 눌리자 검은 화면에 자막으로 노래 본좌와 유엔미를 비교해본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팝송을 부른 영상이 처음에 나왔고 그 뒤에 유엔미가 같은 팝송을 부른 게 이어져서 나왔다. 누가 봐도 비교가 안 되는 실력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굴욕이라 해도 될 정도로 유엔미의 실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피식 웃은 시황은 댓글을 바로 훑었다.
[유엔비 완전 개굴욕이네. 노래 진짜 못한다.]
[노래 본좌 ㄷㄷ. 유엔미도 나름 노래 잘하는 아이돌 그룹인데 완전 개발렸네.]
[제가 듣기에는 유엔미가 더 잘하는 거 같은데요? 노래 본좌라는 저 사람은 괜히 막 기교만 부리고 그래서 듣기 좀 별로네요.]
댓글을 본 시황은 단번에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니까 이 동영상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유엔미 실력을 폄하하거나 비하했을 것이고 그걸 본 유엔미 팬들은 화가 나서 자신을 욕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노래 실력을 비하하면서 유엔미의 노래실력이 낫다는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사이트에 원색적인 욕설을 쓰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왜 며칠 전부터 욕이 계속 올라왔는지 이해가 갔다. 그런데 그렇다고 자신이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다지 큰일도 아닌지라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약간 귀찮고 짜증나기는 했지만 인기가 생기면 저런 악플은 필연적으로 따라붙기 마련이니까.
인터넷을 기사를 보며 최근 사회 트렌드와 동향을 살펴본 시황은 더 이상 읽을 게 없자 노트북을 덮고 펜과 종이를 꺼내어 그림 그리는 연습을 했다. 만화라는 게 단순히 그림만 그린다고 끝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요구했다.
하얀 원고지 위에 아름다운 그림이 새겨진다. 빠르고 경쾌한 손놀림이지만 원고지에는 살아 움직일 듯한 세밀하기 그지없는 그림이 그려졌다. 카페에서 일하는 찬미의 모습이 만화처럼 칸으로 나누어져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림 자체야 마력 회로 덕분에 그 어떤 만화가보다도 잘 그렸지만 표현력이라든가, 흐름, 동선 등이 너무 어색하고 별로였다. 몇 개 안 되는 칸이라도 마치 흐름이 이어지듯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시황이 간단하게 그린 이 만화는 그런 부분이 매우 부족했던 것이다.
그림만 잘 그리면 될지 알고 만화를 선택한 건데 정말 엄청난 착각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듯 만화도 많은 노력을 요구했다. 한참 동안 만화를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스팸 전화인가 싶어 잠깐 고민하던 시황은 혹시 몰라 받아보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정은비에요.]
[아! 은비 씨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는지…….]
뜬금없는 전화였지만 시황은 인기 연예인인 정은비가 전화했다고 해서 기뻐한다든가 당황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고 그저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저기, 전에 주셨던 그 약 있잖아요. 그걸 아버지에게 드렸더니 효과가 너무 좋다고, 더 구할 수 있냐고 하셔서 혹시나 하고 전화 드렸어요.]
시황은 은비가 질염을 치료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지만 인기 연기자답게 어찌나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지 정말 아버지를 위해 구하려고 하는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 그게 참……. 안타깝게도 지금은 다 떨어졌거든요.]
[그, 그런가요? 언제쯤 다시 들어오나요?]
은비에게 준 약이래 봐야 일반 원두 조금이랑 하급 포션이 다였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무한정 줄 수 있었지만 일부러 없는 척을 했다.
[글쎄요. 그게 저도 아는 분한테서 특별히 받아와야 하는 거라서……. 제가 나중에 구하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나중에 구하시면 꼭 연락해주세요.]
제법 효과를 보긴 했는지 은비는 시황에게 사정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시황은 최대한 애간장을 태우게 하면서 천천히 줄 생각이었다. 물건이 있다고 바로 주게 되면 그 소중함을 모르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하급 포션으로 아무리 음순이며 질이며 문질러봐야 질염의 상태가 조금 나아질 뿐 정작 완벽하게 치료가 되지는 않는다.
그 점을 노려서 어떻게든 직접 은비의 질을 보고 치료해주고 싶었는데 마땅한 계획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일반적인 여성도 산부인과 같은 병원이 아닌 이상 자신의 은밀한 성기를 좋아하는 남성 외엔 보여주지도 않는데 인기 연예인인 은비의 성기를 자연스럽게 볼 방법 따위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흐음…….”
시황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했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오빠, 그거 뭐에요?”
한참 시황이 고민을 하고 있는데 찬미가 다가오더니 시황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테이블에 뭔가가 그려진 종이가 많아 상당히 궁금했기 때문이다.
밤 10시가 넘은지가 오래라 이미 밖은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고 손님들도 슬슬 빠지기 시작해 카페는 제법 여유로웠다.
“심심해서 만화를 좀 그려봤는데 생각처럼 잘 안 그려지네.”
“저도 봐도 돼요?”
시황의 말에 찬미가 흥미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시황이 만화도 그릴 줄 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던 것이다.
“응. 한 번 봐.”
“어?”
시황이 종이를 건네주자 찬미가 짧은 감탄성을 냈다. 흰색의 종이에는 자신으로 보이는 여자가 일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어찌나 섬세하고 아름다운지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자신의 얼굴과 옷도 생동감이 넘쳤지만 주변 배경으로 그려진 카페의 내부 모습은 그림으로 이런 표현이 가능한가 할 정도로 너무나 정교하다.
“오빠……. 정말 정말 잘 그리시네요.”
찬미가 진심으로 말했다.
“이제 연습하는 중이라 좀 부끄럽네.”
“아니에요. 오빠. 제가 만화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이렇게 잘 그린 그림은 처음 보는 거 같아요.”
찬미는 연신 감탄을 하며 말했다. 그럴 정도로 시황이 그림을 너무 잘 그렸기 때문이다.
“그래? 고마워. 그런데 아직 많이 연습해야 돼.”
찬미는 새삼스럽게 시황을 쳐다봤다. 노래면 노래, 그림이면 그림, 못하는 게 뭔가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제 그림도 하나 그려주실 수 있어요?”
“당연하지. 언제든지 그려줄게.”
“고마워요. 오빠.”
“그 정도야 우리 찬미한테 당연히 해줘야지.”
시황의 말에 찬미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그림은 왜 그리시는 거에요?”
“만화책 내볼까 하고 연습중이야.”
“만화책이요?”
“응. 뭐, 아직 생각만 하고 있어.”
깜짝 놀라며 말하는 찬미에게 시황은 덤덤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아 바로 만화를 출판하기에는 무리가 뒤따랐다. 현실적인 제약도 많았고 아직 능력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때 시연과 시황의 눈이 마주쳤다. 찬미와 하는 말을 들었는지 시연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계속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무뚝뚝하던 그녀를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모습이었다.
“시연이도 볼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황은 시연에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저 모습은 그냥 궁금해서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흥미가 있는 분야에 대한 관심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시황의 말에 시연이 잠깐 갈등을 했다. 분명 관심이 있어서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원래라면 그냥 됐다고 한마디하고 끝냈을 텐데 말이다.
“보고 싶으면 봐.”
“……네.”
주저주저하던 시연은 테이블로 다가와서 시황이 그린 그림들을 훑어봤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표정하던 시연의 표정에 살짝 경악이 어렸다.
“어, 어떻게…….”
“응? 왜?”
시연의 감탄사는 찬미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찬미는 그저 순수한 일반인의 입장에서 감탄했다면 시연은 뭔가를 아는 듯한 눈치였던 것이다.
“그림 잘 그리시네요.”
“아? 그래 고마워.”
시황이 웃으며 대답하자 시연의 표정이 살짝 흥분 비슷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워낙 표정 변화가 미미한 애라서 한 달 넘게 일하면서 봐왔기 때문에 겨우 이런 표정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잘 그리시기는 한데 만화를 그리시려면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콘티부터 먼저 짜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것처럼 캐릭터 배치나 구도, 연출 등이 어색해지거든요.”
“오, 시연이는 만화에 대해서 잘 아나봐?”
”조금은요.”
시황의 말에 시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표정에는 은근히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그러면 그 콘티라는 건 어떻게 짜는 건데?”
“콘티를 그리기 전에 먼저 스토리에 구상을 하고 그걸 가지고 콘티를 짜는 거에요. 콘티는 칸을 어떻게 사용할지, 대사를 어떻게 넣을지, 어떤 연출을 할지 등을 대략적으로 그리는 건데……. 이런 것도 모르시고 만화 그리시려면 힘드실 거에요.”
시연은 아예 시황에게 충고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시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을 했다. 안 그래도 생각보다 만화 그리기가 어려워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시연이라는 의외의 인물이 만화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시연이는 만화 그려봤어?”
“고등학교 때 만화부였고 지금 대학교에서도 만화부였거든요.”
시연은 은근히 자부심 넘치는 표정이었다. 평소에는 그 어떤 주제에도 별 관심 없거나 신경조차 쓰지 않더니 만화 얘기가 나오니까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아졌다.
“만화 엄청 좋아하나봐?”
“그럭저럭요.”
방금 전까지 열심히 얘기하던 시연이 시황의 질문에 다시금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건 시황의 질문이 기분 나빴다기보다는 부끄러워서 약간 숨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나 좀 도와줄래? 내가 만화를 그려볼까 생각 중인데 조금 어렵네.”
“저도 잘 할 줄 몰라요.”
“그래도 나보다 잘 아는 거 같던데 조금 도와주면 안 돼?”
“학교랑 카페 때문에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어요.”
시황의 말에 시연이 계속 매몰차게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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