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143화 (14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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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시황은 서랍에서 일반 문구점에서 파는 커터 칼을 꺼냈다. 콘즈가 뼈와 근육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고 했지만 평생을 살아오며 생긴 사고방식 때문인지 긴장감이 몸을 조금 떨게 만들었다.

“후우…….”

한차례 호흡을 한 시황은 눈에 힘을 주고 자신의 팔등을 단번에 커터 칼로 그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이 찌푸려지며 섬뜩한 느낌이 등골이 쭈뼛했지만 예상대로 팔등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괜찮은데?”

자신감을 얻은 시황은 다시 한번, 더 강하게 팔등을 그었는데 피부에 상처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커터 칼의 이가 나가버렸다.

“하하.”

흡족한 결과에 시황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커터 칼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어 주방에 가서 가장 날카로운 칼을 하나 꺼냈다. 산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곤두선 날이 섬뜩해 보인다.

혹시 모르는 일이라 강한 힘으로 단번에 손등을 벤 게 아니라 힘을 점점 강하게 주는 식으로 여러 번 베었다. 일반인의 손이라면 이미 살이 갈라지고 피가 철철 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어야 하지만 시황의 피부는 얼마나 질겨진 건지 아무런 상처조차 나지 않았다. 칼로 긋고 두드리고 베었다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였다.

많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단순히 몸이 단단해졌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무리해서 실험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테스트는 격투 게임에 접속해서 해볼 생각이었다. 그곳에서는 통증도 30%로 완화가 되며 아무리 실험해도 다치지도 죽지도 않으니까.

시황은 칼을 다시 꽂아두고 문을 소환해 케즈론의 성으로 갔다. 소파에는 어느새 잠이 든 아루가 누워있었다. 침대에 눕힐까 하다가 저 소파도 극상의 안락함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괜히 아루 깨우는 것 보다 계속 재우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다른 침실에서 이불을 가져와 아루에게 덮어준 시황은 조용히 서재를 나왔다.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루는 자신이 죽었던 12시간이 넘도록 잠을 자지도 않고 보살펴 주었던 거 같았다.

자신의 생각하는 아루의 깊은 마음을 느낀 것만으로도 왠지 감동해서 콧날이 시큰해졌다. 앞으로 아루에게 더 잘해줘야겠다.

“콘즈야, 도서관은 어디야?”

시황은 서재에 있다가 자신을 따라 나온 콘즈에게 물었다.

“조금 걸으셔야 돼요. 이쪽으로 오세요.”

콘즈가 힘차게 걸음을 옮겼고 시황은 그런 콘즈의 뒤를 따라갔다. 케즈론의 성은 일반적인 유럽의 성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항상 비슷한 곳만 돌아다니는 시황은 어디가 어딘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성이 복잡하네.”

전과 다르게 꽤 먼 곳까지 걷자 시황이 말했다. 복도에 걸려있는 수많은 액자와 장식이 눈을 즐겁게 해주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멀었다.

“도서관은 따로 커다란 건물 한 채를 쓰거든요. 혹시 헷갈리시면 지도를 켜보세요. 4레벨이 되시면서 지도를 확인하실 수 있어요.”

“그래?”

지도를 보겠다고 생각하자 시야의 왼쪽 아래에 네모난 지도 모양의 아이콘이 생겨났다. 의지로 그 아이콘을 선택해자 아이콘이 빙글빙글 돌면서 쑥 커지더니 시야의 오른편에 반투명의 지도가 생겨났다. 그 지도에는 케즈론 행성의 구조가 일목요연하게 나타나있었고 확대와 축소를 통해서 원하고자 하는 정보를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되겠네.”

마치 네비게이션처럼 자신의 위치가 표시되어 어디로 이동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저 앞에 도서관이라 써진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 걸 보니 조그만 더 걸으면 될듯했다.

“그런데 이 지도 지구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지구에서도 사용하시려면 관련 마법 아이템이 필요해요. 그냥은 사용하실 수 없어요.”

“그렇구나.”

지구에서 쓰려면 아이템이 필요한 건 아쉽긴 했지만 한번 지도로 만들어두면 상당히 편리할 거 같았다.

“여기에요.”

지도에 나온 대로 얼마 걷지 않아 도서관이 나왔다. 그런데 다른 건물이라고 해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게 아니라 성과 도서관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영화에서나 볼법한 3미터가 넘는 거대한 문을 통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크다.”

시황은 도서관 내부를 보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도서관이라고 해서 레포트 자료를 찾으러 가봤던 자신의 대학교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규모였다.

“총 7층까지 있고 레벨이 오를 때마다 한 층씩 개방돼요. 시황 님께서 사시는 지구의 책은 물론이고 다른 행성의 책들까지 포함되어 있어요. 하지만 시황 님의 레벨에 따라서 볼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전함 설계에 관한 거나 반물질을 이용한 동력원 구조 등은 최소 8레벨 이상이 돼야 열람하실 수 있어요.”

“그래? 그러면 일반소설들은 다 있지?”

“문학소설에도 차등이 있기는 하지만 1층 도서관에도 제법 볼만한 게 많아요.”

콘즈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시황은 일단 어떤 책들이 있나 대략적으로 훑어보기 위해 책장을 돌아다녔다. 나뭇결이 그대로 나타나는 고풍스러운 책장에선 신기하게도 오래된 책에서 나는 눅눅한 냄새가 하나도 나질 않았다.

케즈론의 도서관답게 뭔가 마법적 처리가 이루어진 듯 했다.

[토르톨만의 풍경.]

처음 보는 언어의 책이었지만 케즈론의 칩 덕분에 깔끔하게 번역이 되어서 읽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원서를 그대로 읽는다는 느낌이 조금 덜 했고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어 습득용 알약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책을 펴보자 중세시대 느낌이 나는 도시의 전경이나 아름다운 숲, 광활한 대지를 아름답고 감수성 있게 그려놓았다.

나쁘지 않은 그림들이라 시황은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풍경을 찍어놓거나 그려진 책을 몇 개 더 찾아서 아공간에 집어넣은 뒤에 문학책을 몇 가지 검색했다.

자신이 그릴 만화책에 적당한 스토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지구에 있는 소설책을 보고 비슷하게 만화책으로 그리는 건 저작권법에 의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행위이지만 이런 다른 행성에 있는 소설책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리는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표절이다 싶을 정도로 그릴 생각은 전혀 아니었고 소재나 스토리를 나름대로 각색할 생각이었다.

요즘 만화책 시장이 어렵다고는 하나 한국만 그럴 뿐 일본의 투피스나 루나토 같은 만화는 일본이나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국의 만화는 이미 웹툰으로 시장이 옮겨간지 오래였지만 시황은 웹툰보다는 만화책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다. 한국을 넘어 일본을 점령 한 뒤에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에도 출판하는 목표였다.

소설이나 만화책은 10만부당 100이라는 경험치를 줬는데 투피스만 해도 일본에서만 초판 발행 부수가 400만 부 이상이니 만약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다면 누적 판매 부수가 얼마일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1000만 부 이상 팔린다면 만이 넘는 엄청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으니 만화책을 그리는 건 5레벨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작업 중 하나였다.

[루스 모룬의 모험. 카카룬 저]

어느 행성의 책이든 상관없이 일단 전부 싹 다 훑어봤는데, 루스 모룬의 모험은 그 중에서도 단연 눈이 띠는 문학 작품이었다.

배경은 그 행성의 독특한 문화가 깔려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지구의 중세와 비슷했다. 단순히 훑어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엄청난 흡입력에 가만히 서서 자기도 모르게 단번에 다 읽어버리고 말했다. 200페이지의 책이라 다 읽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끝가지 읽고 나니 짙은 아쉬움이 남을 지경이었다.

시황은 같은 작가의 작품을 검색해서 몇 개 더 훑어보았다.

“대단하네.”

말 그대로 정말 대단했다. 다른 책들도 루스 모룬의 모험처럼 읽는 순간 말도 안 되는 흡입력으로 빨려들어 갈 거 같았다. 카카룬의 책을 전부 아공간에 집어넣은 시황은 중세가 아닌 현대나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책들도 찾아보았다.

그 중에서 재미있거나, 독특한 것, 자신의 마음에 드는 책들을 선택해 아공간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고 마지막으로 만화를 어떻게 해야 잘 그리는지에 대한 교육용 책도 몇 권 선택했다.

자신이 선택한 예술의 마력 회로에는 그림을 잘 그리게 해주기는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사람, 동물 등 개별적인 그림만 잘 그리게 될 뿐이었다. 보기에 멋진, 읽기에 재미있는 만화가 되기 위해서는 구도나 배경, 인체원근법, 소실점, 칸 나누기, 원근법, 화면 구성, 그림자 등 복합적인 요소가 적절하게 어우러지고 버무려져야했다.

다른 흥미로운 책들도 많았지만 일단 원하는 책들을 다 고른 시황은 서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후우…….”

극상의 안락함을 제공하는 의자에 앉자 자기도 모르게 깊은 숨이 쉬어졌다. 소파에는 여전히 아루가 조그만 숨소리를 내서면 자고 있었다.

시황은 아루가 깨지 않게 도서관에서 고른 책을 조심스럽게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토르톨만의 풍경이라는 책을 아름다운 숲이 그려진 페이지를 펼치고 종이와 샤프도 꺼내었다. 일단 자신의 그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그려볼 요량이었다.

마려 회로를 가동시키자 [글자체], [그림], [노래], [춤] 이라는 항목이 떠올랐고 그 중에서 그림의 조절바를 끝까지 올렸다.

제법 많은 양의 마기가 소모되기는 했지만 3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마기를 가지고 있어 5시간 이상은 충분히 사용가능한 양이었다.

흰색의 종이에 토르톨만의 그림을 옮겨나갔다. 그림체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풍경화 느낌이 아니라 만화 같으면서도 풍경의 세밀함이 그대로 살아있게 그렸다.

간단한 손놀림이었지만 단번에 풍경이 슥슥 그려져 나간다. 일반적인 만화가와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속도였지만 그 세밀함과 미려함은 보자마자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노래도 그랬지만 만화의 극에 달한 그런 그림이었다.

“괜찮은데.”

예술 쪽에 전혀 재능이 없어 그림도 못 그리던 자신이 그린 게 맞을까 싶을 정도의 작품이었다.

시황은 이어서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는 아루를 그렸다. 사진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정밀하게 그릴 수도 있었지만 너무 사실적이면 만화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만화스럽게 그려내었다.

흰색의 종이에 담긴 아루의 미모는 만화인데도 빛이 났다. 시황은 그 그림을 조금 더 다듬어서 여자 주인공으로 쓸 생각이었다. 뛰어난 소설책과 아름다울 정도로 멋진 그림체가 섞인다면 척박한 한국의 만화 시장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시황은 카카룬의 소설을 뒤섞어 새로운 이야기로 창조해 냄과 동시에 만화를 그리기 위한 연습을 계속해 나갔다.

평소처럼 아침 운동을 하고 9시에 카페에 갔는데 언제 왔는지 현주가 미리 출근을 해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딸랑.

시황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주가 바로 쳐다봤고 동시에 얼굴 가득 기쁨이 어린다.

“현주야, 일찍 나왔네.”

“오빠! 걱정했어요.”

현주는 바로 시황에게 달려가다시피 해서 와락 껴안았는데 카페 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슬쩍 쳐다보자 얼굴을 붉히며 시황의 품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이 보는데서 껴안는 건 너무 부끄러웠으니까.

하지만 시황은 그런 현주를 다시 끌어안아 키스를 해주었다. 현주의 볼이 더욱 붉어졌지만 그렇다고 밀쳐 내거나 거부를 하지는 않았다.

“어제 별일 없었지?”

진득한 키스를 끝낸 시황이 대충 옆에 있는 테이블에 앉으며 물었다.

“네. 일요일이라 조금 바쁘기는 했는데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다행이다. 앞으로도 혹시나 내가 카페에 못 나오면 현주가 그렇게 관리해줘. 알겠지?”

“네. 그렇게 할게요. 오빠.”

비서처럼 자신의 옆에 서서 얘기하는 현주를 보며 싱긋 웃은 시황은 현주를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오, 오빠.”

그러자 현주가 당황스러운 음성을 내며 몸을 꿈틀거린다.

“잠깐만, 이러고 있자.”

“네…….”

자신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나직이 말하는 시황의 말에 현주는 가슴이 터질 듯이 뛰는 걸 느꼈다. 시황의 사랑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부끄럽긴 했지만 너무나 황홀한 기분에 팬티가 촉촉하게 젖어든다.

시황은 은은하고 좋은 향기를 풍기는 현주의 목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면서 허리며 어깨며 다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여자들에게 조금 더 연인다운 스킨십을 할 생각이었다. 전까지는 섹스는 했지만 연인은 아니고 친구보다는 조금 더 깊은 정도의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그 보다 더욱 연인에 가까운 관계를 구축할 계획이었다.

============================ 작품 후기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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