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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덤하게 말하는 콘즈를 보면서 시황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정말 그랬던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럼요.
“하아, 그렇구나.”
시황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만에 하나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걸 대비해서 아루에게 완전 회복 물약을 맡겨둔 게 다행이었다.
공청석유가 아무런 느낌도 없이 몸에 흡수된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로 마신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물론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아무런 실수가 없게 하는 건 인간인 이상 불가능하다지만 지금 건 분명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일이었다.
흔히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넘어가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액체니까 분명 마시면 그 느낌이 있을 거라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에 콘즈의 주의를 듣지도 않았던 게 문제였다. 현장에서 수십 년 넘게 일한 베테랑도 실수로, 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가 일어난다는 걸 생각해고 충분히 주의를 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너무나 부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건 저번 소환단을 먹고 큰일 날 뻔한 것을 교훈삼아 아루에게 완전 회복 물약을 준비를 시켜둔것이다. 덕분에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가 있었으니까. 실행은 미숙했지만 대비는 좋았다 라고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을 거 같다.
케즈론의 마법 물품에 대한 위험성을 조금 간과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조금 더 조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성이 있었다.
“대신에 시황 님의 몸은 금강불괴에 가깝게 변했고, 파괴된 뇌세포가 완벽하게 복구되어서 기억력과 연산력, 사고력이 상당히 증가했어요.”
“금강불괴? 사고력 증가? 물약에 그런 효과가 있는 거야?”
콘즈의 말에 시황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물약에 그런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필연적인 결과에 가까워요. 컨트롤 되지 못한 1갑자에 해당하는 내공이 신체를 파괴하려는 특성과 그 파괴된 육체를 복원 시키는 회복력 덕분에 뼈와 근육이 강철처럼 단단하고 질겨졌어요.”
“그래?”
죽음을 겪으면서 얻은 일종의 보상이었다. 물론 다시 이런 보상을 얻을거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겠지만 이미 끝난 일이니까 그냥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이득은 이득이니까.
3개밖에 없는 완전 회복 물약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몸이 금강불괴에 가까워졌다니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하지만 완벽한 금강불괴지신이 되기 위해서는 7레벨이상의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비급이 필요해요. 만약 그 비급을 완벽하게 수련한다면 지금처럼 날카로운 쇠붙이만 견디는 게 아니라 만독이 불침하고 보통의 검강에도 몸이 잘려나가지 않게 돼요.”
만독이 불침하니, 검강을 막니 하는 건 별로 와 닿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몸이 보호가 된다고 하니 7레벨이 되면 익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이제 안 아파요?”
“응. 안 아파.”
“다행이다.”
아루는 시황의 품에 안겨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시황의 칠공에서 흘러나온 피가 찝찝할만 한데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저 따스한 시황의 체온을 느끼는 것만으로 더없이 행복했다.
시황은 그런 아루를 쓰다듬으면서 마기를 체크했다. 공쳥석유 10ml를 마시고 생겨난 1갑자의 내공 중에서 20년의 내공이 마기와 섞여 하단전에 쥐 죽은 듯이 얌전히 있었고 나머지 40년의 내공은 몸 구석구석 흩어져있었다.
“1갑자의 내공 중에서 20년의 내공만 하단전에 있고 나머지는 흩어져 있는데 이건 어떻게 모을 수 있어?”
“옆쪽에 있는 물에 들어가셔서 운기를 하시면 보다 쉽게 내공을 모으실 수 있어요. 저 차가운 물은 잠들어 있는 내공을 활발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그렇구나.”
시황은 콘즈의 말에 고민을 했다. 연공실에 온 김에 세맥에 잠들어 있는 내공을 긁어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어두컴컴해진 숲을 보자 약간 위화감이 들었다.
“아!”
고민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단번에 모든 상황이 파악되었다. 케즈론의 성이 어두워졌다는 말은 지구는 이미 해가 떠서 날이 밝아져있었다는 말과 똑같았다. 밤 12시에 카페를 끝내자마자 와서 공청석유를 마셨는데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아루야, 지금 몇 시야?”
시황의 말에 품에 안겨 있던 아루가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본다.
“1시 20분이에요. 오빠.”
“오후?”
“네.”
대략 죽은지 12시간 만에 부활했다. 그 어떤 감각조차 느끼지 못하고 사고만 오롯이 남아 있을 때 죽음을 예감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죽고 나서 살아날 때까지 마치 깊은 잠에 든 듯 아무런 기억도, 감각도, 느낌도 존재치 않아 자신이 정말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게 크게 와 닿지가 않았다.
바로 카페로 출근할까 고민하던 시황은 아무리 그래도 방금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바로 일하기에는 뭔가 좀 그랬기 때문에 오늘은 쉬고 내일 출근하기로 했다. 물론 몸이 아프거나 힘들고 피곤한 건 전혀 아니었고 오히려 힘이 넘쳐나 주체를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기분상이라는 게 있으니까.
시황은 얼굴과 몸에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어 아루와 함께 케즈론의 성에 있는 목욕탕에 가서 깔끔하게 씻어내었다. 그리고 오피스텔로 돌아와 폰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현주에게서 전화가 몇 통 와있었다. 케즈론의 성에서는 당연히 전화가 안 됐기 때문에 오래 있으면 이렇게 문자나 전화를 못 받을 때가 많았다
보통 때라면 현주에게 미리 못 간다고 말을 하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말을 못해서 현주가 많이 걱정하고 있을 듯 했다.
시황은 현주에게 전화를 걸면서 소파에 앉자 아루가 자신의 옆에 앉아 가슴에 다시 꼭 안긴다.
[오빠! 무슨 일 있으셨어요? 전화도 안 받으시고 정말 걱정했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걱정스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현주가 말했다.
[미안. 갑자기 몸이 아파서 이제 일어났어.]
[많이 아프세요? 제가 마치고 죽이라도 사서 갈까요?]
[아니, 괜찮아. 이젠 많이 괜찮아졌어. 내일은 제대로 출근할 테니까 걱정하지마.]
[그래도…….]
현주는 걱정이 많이 되는지 시황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는데 아픈 척을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시황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제 괜찮아졌어. 나중에 찬미 오면 인수인계하고 퇴근하도록 해.]
[네. 알겠어요. 오빠. 가게는 걱정 마시고 푹 쉬세요.]
[응. 고마워.]
[네. 끊을게요.]
현주의 목소리에는 아쉬움과 걱정이 뒤섞여있었다.
시황은 그렇게 찬미에게도 전화해서 오늘 쉰다고 연락을 했다. 물론 찬미도 현주만큼이나 걱정을 하면서 지금 당장 오고 싶어 했지만 역시나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렇게 전화를 돌리면서 문득 느낀 건데 자신의 여자관계가 좀 많이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자신과 섹스를 하면서 깊은 관계가 된 여자만 해도 5명이었다.
그 중에서 아루는 자신이 누구와 섹스를 하든 사랑만 있으면 충분했으니 괜찮은데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은지와 지숙, 그리고 현주, 찬미, 유미에게 자신이 이렇게 복잡한 여자관계가 있다는 걸 들키면 조금 많이 곤란했다.
그래서 그런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카페 개업 전에 여자들을 한 번에 다 만나게 했었다. 그때 별 성과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만남 덕분에 다른 여자들과 있더라도 아직까지는 커다란 의심을 사지는 않았다. 다만, 한번씩 카페에서 만난 여자들끼리 질투심에 싸우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직까지는 위태위태하게 이 관계를 유지해오고는 있었는데 분명 평생 이렇게 안 들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눈치 없는 찬미와 다르게 평범한 눈치를 가진 유미만 해도 자신과 찬미를 사이를 계속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시황은 턱을 쓰다듬었다.
“오빠…….”
아루는 시황을 더 꼭 끌어안았다. 왠지 놓으면 또 시황이 아까처럼 싸늘한 시체가 될 거 같아 너무나 두려웠다. 이렇게 꼭 끌어안아 몸을 따듯하게 해줘야했다.
시황은 그런 아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생각을 이어갔다.
일부일처제가 당연시 되는 한국에서는 그 어떤 여자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와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씨받이라든가, 남자가 바람을 핀 걸 알고도 용서를 해준다든가 하는 일이 있는 거 보면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 싶었다.
이해심. 이해심이 필요했다. 이미 은지와 지숙은 서로의 관계를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었고 찬미는 유미와 사귀어도 된다고까지 했었다. 이 모든 것은 이해심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니 이 이해심이 조금만 더 확장이 된다면 5명, 아니 유미를 포함한 6명 여자 중에 하나만 선택하는 비극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들 자신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라 절대 놓치고 싶지도, 헤어지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거기다 한국에서 어려운 거지 21세기인 지금도 다른 나라에서는 남자 한명이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사는 일부다처제가 존재했으니까 사고방식과 관습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충 생각이 정리 된 시황은 이제 어떤 식으로 그 이해심을 늘릴까 고민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시황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케즈론의 아이템에도 생각이 미쳤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아이템이 있지도 않겠지만, 그런 사람의 이성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아이템 따위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다만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차같은 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황은 아루를 데리고 바로 케즈론의 성으로 갔다. 그런 아이템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서재로 간 시황은 서재의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아루가 시황의 옆에 앉아 품에 안긴다.
"콘즈야."
“네. 시황 님.”
시황이 부르자 콘즈가 바로 나타난다.
“혹시 마음이 차분해지거나 이해심이 증가하는 차나 도구 같은 건 없어?”
“음, 4레벨 차 중에 비슷한 효과를 가진 게 있기는 한데 생각보다 그다지 효과는 없어요.”
“어떤 건데?”
시황의 말에 콘즈가 동그란 통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건네주었다.
[슈슈의 달콤한 차. 슈슈의 마당에서 나는 꽃잎으로 만든 차. 이 차를 마시게 되면 마음이 넓어지고 이해심이 조금 증가한다. 감정적이기 보다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는 충분히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용서 받지 못할 행위까지 이해해주지는 않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4레벨 차임에도 콘즈의 말대로 그렇게 엄청난 효과를 가진 건 아니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다는 말일까?
“이 차 좀 몇 통 줄래?”
“넵!”
시황의 말에 콘즈가 주머니에서 슈슈의 차를 10통 정도 꺼내서 시황에게 주었고 시황은 그 차를 바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생각보다 효과가 미미하기는 했지만 없는 거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리고 자신은 여자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은 거였지 조종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정도가 딱 적당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만으로 끝낼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몰라 하급 마법 아이템을 검색해서 비슷한 효과를 가진 초도 하나 챙겼다.
[차분함의 초. 이 초를 태우면 사람의 마음을 약간이나마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촛농이 떨어지지도, 촛불이 뜨겁지도 않으니 장식용으로 써도 제법 괜찮다.]
불을 켜놔도 촛농이 떨어지지 않고 촛불이 뜨겁지 않다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디자인 자체도 귀여운 동물에 양각되어 있어 장식용으로도 딱이었다.
일단 할 수 있는 준비는 다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슈슈의 차와 차분함의 초를 사용해서 차근차근 계획을 진행시켜 나가야 할 거 같았다. 이미 몇 가지 괜찮은 아이디어가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중이기도 했다.
“으흠. 좋아.”
충분히 가능성이 보였다. 나름 자신도 있었다.
이걸로 여자관계에 대한 건 대충 해결책이 나온 상태라 이제는 금강불괴에 가까워졌다는 자신의 몸을 조금 시험해보고 싶었다.
“아루야, 잠깐만 여기 있어. 오빠는 집에 금방 갔다 올게.”
“저도 같이 갈래요. 이렇게 계속 꼭 붙어 있어야 오빠 몸이 따뜻해져요.”
아루는 아까 시황이 죽었을 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는지 도무지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걱정 마. 아루야. 오빠 이제 다 나아서 전혀 안 아파.”
“…….”
시황의 말에 아루에 여전히 불안함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검은색의 눈동자가 너무나 아름답다.
“정말이야. 그리고 또 다치면 아루가 전처럼 오빠 살려주면 되잖아.”
“그건 그렇지만…….”
한참동안 계속 된 설득에 결국 아루는 시황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걱정이 되는지 시황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깐만 갔다 올게.”
아루가 떨어진 틈을 타 시황은 재빠르게 오피스텔로 건너갔다. 집에 있는 커터 칼로 시험해볼 생각이었는데 만약 아루가 보면 기겁할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떼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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