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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 왔어.”
당연하다는 듯 유미가 바로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 찬미가 움찔했다.
“와, 왔어?
“응. 언니 어디 아파? 얼굴이 또 왜 그렇게 빨게?”
“아, 아무것도 아니야. 유미 넌 빨리 옷 갈아 입고와.”
평소와 다르게 부끄러워하는 찬미를 보면서 유미는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어제도 그랬는데 오늘도 찬미의 행동이 이상한 게 너무 미심쩍다. 설마 자신의 언니인 찬미가 시황과 키스라도 했을까 싶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하는 생각이 바로 이어졌다. 찬미의 남자 혐오증이 얼마나 엄청난지 유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알았어. 그런데 언니 방에서 무슨 냄새 나는 거 같지 않아?”
유미가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찬미의 얼굴이 더욱 더 붉어졌다.
“무, 무슨 냄새?”
“그냥 약간 텁텁하면서 미묘한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아닌가? 하여튼 나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환기 좀 시켜.”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던 유미가 찬미를 보고 말했다.
“아, 알았어.”
말을 더듬는 찬미를 유미가 살짝 의심스럽게 쳐다보더니 방문을 활짝 열어두고 나갔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 찬미의 방으로 돌아와서 시황의 맞은편에 앉았다.
분위기가 약간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 뒤로는 별 일 없이 평소처럼 차를 마시고 공부를 했다. 시황은 6월 모의고사 수리 시험지를 풀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약간 막히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3점짜리 문제는 쉽게 다 풀었고 4점짜리 문제에서 막혀 시간을 제법 소비했다.
“확실히 조금 어렵네. 모르는 거 빼고는 다 풀었어.”
“제가 체크해볼게요.”
“응. 난 잠시 화장실 갔다 올게.”
시황이 나가자 유미가 찬미를 지그시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찬미의 행동이 너무 이상했다. 자신이 방에만 들어오면 얼굴을 붉힌 채 당황하는데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왜, 왜 그러니? 유미야.”
자꾸 유미가 쳐다보자 찬미가 슬쩍 눈빛을 회피하며 말했다.
“언니, 설마 시황 오빠 좋아하는 거야?”
“너, 넌 고3이 된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그런 거에 신경 쓰는 거야!”
찬미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볼을 붉히면서 유미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인지라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다.
“고3이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오빠 좋아하는 거 아니지?”
“너, 넌 고3이…….”
“왜 그래? 둘이 싸웠어?”
찬미가 할 말이 없어 말을 흐릴 때 시황이 들어왔다.
“아니에요. 오빠. 그냥 언니랑 잠깐 얘기 좀 했어요.”
유미는 정말 의심스럽다는 듯 찬미를 쳐다봤고 찬미는 그런 유미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래?”
시황이 찬미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 오빠. 수학 실력이 많이 오르셨네요. 3점짜리 한 문제랑 4점짜리 4문제 말고는 다 맞추셨어요. 얼마 공부하시지도 않았는데 수리 점수가 벌써 81점이에요.”
유미의 의심어린 시선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시황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꼭 그런 이유에서라기보다는 공부한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81점이나 받았다는 게 상당히 놀랍기도 했다.
“정말? 오빠 6월 모의고사 수리가 81점이에요?”
유미가 감탄하며 말했다. 자신의 점수보다도 높았기 때문이다.
찬미는 유미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끌리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황을 좋아한다고 밝혀도 큰 상관은 없었지만 그런 걸 말하기에는 정말 너무 너무 부끄러웠다. 이때동안 한 행동이 있는데 어떻게 밝힌단 말인가.
“81점? 제법 괜찮네.”
시황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등학교 3년과 재수 1년을 합해서 자신이 제일 잘 받은 수학 점수보다 2배가량 높은 점수였다. 이렇게 조금만 더 공부를 해나가면 만점을 받는 것도 큰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오빠, 이제 가게 갈 시간 됐어요. 저 옷 갈아입고 올게요.”
“응.”
찬미가 나가자 유미가 자연스럽게 시황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빠, 언니 요즘 이상하지 않아요?”
“응? 찬미가? 난 찬미보다 유미가 더 이상한데.”
“네? 제가 왜요?”
시황의 물에 유미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요즘 너무 예뻐지는 게 이상해.”
“뭐, 뭐에요. 오빠 완전 바보에요.”
시황의 말에 유미가 얼굴을 붉혔지만 기분이 좋은지 슬쩍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이건 유미 기분 좋으라고 시황이 입에 발린 소리를 한 게 아니었다. 케즈론 화장품을 바른 유미의 피부가 점점 좋아지면서 숨겨져 있던 미모가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몸매 자체는 찬미가 조금 더 뛰어났지만 얼굴은 대충 봐도 유미 쪽이 조금 더 예뻤다.
자매 둘 다 이렇게 매력적이라니……. 이래서 유전자가 중요한 건가 싶다.
유미와 키스를 하면서 노는 사이에 옷을 다 갈아입은 찬미가 방으로 왔고, 항상 그렇듯 찬미가 오기 전에 키스를 끝낸 유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다. 이것도 몇 번 하다보니까 적응이 돼서 전처럼 별로 긴장되지도 않았다.
“유미야, 집 잘 봐. 언니 일하고 올 테니까.”
“알았어. 나중에 오면 나랑 얘기 좀 해.”
“그, 그래.”
유미의 말에 당혹스런 표정을 지은 찬미가 시황과 나가자 유미는 찬미의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의심스러웠다.
방 안을 싹싹 뒤졌지만 뭔가 증거가 될 만한 게 하나도 나오지가 않았다. 침대의 이불까지 들추면서 살폈지만 살짝 이상한 냄새가 나면서 축축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아닌가?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거린 유미는 마지막으로 찬미의 쓰레기통을 열어봤다. 거기에는 커다랗게 뭉친 휴지가 휴지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뭐지 이건?”
꺼림칙한 표정을 지은 유미가 집게손으로 그 휴지를 살짝 들어올렸다. 살짝 집었는데도 뭔가 축축한 게 엄청 기분이 나빴다.
“뭐지?”
그 휴지에서 약간 이상한 냄새가 났다. 침대의 축축한 부분에서 나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진한 냄새였는데, 아마도 찬미가 칠칠맞게 뭘 흘린 거 같았다. 자신의 언니인 찬미는 겉보기에는 단아하고 꼼꼼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눈치도 별로 없고 약간 칠칠맞은 부분이 있었다.
아마도 이것도 그렇게 뭔가를 잔뜩 흘려서 닦아 낸 거 같았다.
“없네.”
쓰레기통 안에도 별 게 없자 유미는 그 휴지를 다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손을 씻은 뒤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시황과 찬미에게 다행스럽게도 유미는 태어나서 정액 냄새라고는 한번도 못 맡아 봤기 때문에 찬미가 시황과 섹스를 하고나서 질 안에서 흘러내린 정액을 닦아낸 휴지라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물론 유미도 정액 냄새가 밤꽃 향기랑 비슷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밤꽃 향기 냄새도 잘 몰랐는데 정액 냄새를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유미는 컴퓨터를 켜고 포털 사이트에 카페 케즈론이라고 검색했다. 그러자 새로 올라온 글들이 몇 개 보였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는 중에 시황의 얼굴이 선명하면서 뽀샤시하게 찍힌 사진 몇 장이 보였다. 유미는 바로 마우스 오른쪽 클릭을 해서 사진을 저장을 했다.
“멋있다. 헤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유미가 다른 글들도 다 살펴보았다. 자신과 카페 케즈론은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시황의 카페를 칭찬하는 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한참을 그렇게 글을 보고 시황에게 문자를 보내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오자 인사를 하고 밥을 먹은 뒤에 다시 인터넷으로 새로 올라온 글이 없나 체크를 하고 시황에게 또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12시가 조금 넘자 현관문이 열리면서 일을 마친 찬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언니 내 방으로 와봐.”
유미는 바로 거실로 나가 찬미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자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찬미가 유미의 눈을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왜? 유미야?”
“언니, 진짜 오빠 안 좋아하는 거 맞지?”
“너 고3이면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유미를 나무라는 찬미였지만 어째서인지 전과 다르게 말에 힘이 없었다.
“아씨, 좋아하냐고.”
자꾸 말을 돌리는 찬미에게 유미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네가 그걸 왜 신경 쓰는데?”
“내가 오빠를 좋아하니까!”
“뭐?”
갑작스런 유미의 고백에 찬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유미가 시황을? 정말 예상치도 못했다. 그러면 전에 남자 친구 사귀었다고 생각한 게 사실은 남자 친구를 사귄 게 아니라 시황을 좋아해서 그랬던 건가? 그제야 모든 정황이 맞아 떨어졌다.
“너, 너 고3이면서…….”
당황한 찬미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아씨, 고3은 됐고 언니, 오빠 좋아하냐고.”
“아, 안 좋아해.”
찬미는 어쩔 수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시황을 가지고 차마 동생과 싸울 수는 없었다.
“정말이지?”
“그래. 넌 고3이면서 시황 오빠를 좋아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뭐, 열심히 공부해서 나도 시황 오빠랑 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면 되지. 앞으로 진짜 열심히 공부할 거야.”
시황을 상당히 많이 좋아하는지 유미는 벌써 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찬미는 그런 유미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판단이 서질 않았다. 자매 둘 다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일이 생길 줄이야…….
“그래. 그렇구나…….”
찬미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면 앞으로 내가 시황 오빠 옆에 앉을 거니까 언니는 맞은편에 앉아. 알겠지?”
“알았어.”
유미의 잔뜩 얼굴이 밝아진 반면에 찬미의 얼굴에는 조금 수심 어렸다. 하지만 유미에게 시황과 자신의 사이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아직 어린 유미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었으니까. 찬미는 유미를 위해 자신이 조금 희생하기로 했다.
“헤헤.”
“시황 오빠는 공부 잘하니까 같은 대학 가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해 알겠지?”
“알았어. 걱정마라니까.”
“그래. 그래.”
찬미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말이 별로 없는 자신보다 활달한 유미가 시황과 더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했다. 왠지 마음이 자꾸 복잡해졌지만 어쨌든 자신과 시황의 사이는 절대 밝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열심히 공부해야할 고3인데 괜히 충격이라도 받았다간 큰일이 날 게 분명했다.
“언니는 이제 방에 갈게. 피곤하네.”
“알았어. 언니. 오늘도 고생 많았어.”
아까는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더니 이제는 기분 좋아서 콧노래까지 부르는 유미를 두고 찬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하아……. 그래. 이걸로 된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선이었다. 내일 시황을 만나면 이 문제에 대해서 말을 해주고 양해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아…….”
자꾸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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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