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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딘데? 병원이야?]
시황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부모님이 다칠 거라는 생각은 이때까지 살면서 한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봉합수술하고 있어. 시황아. 어떡하니. 정말.]
[어딘데? 내가 지금 바로 갈게.]
시황은 카페로 들어가 엄마가 불러주는 병원을 메모했다. 글을 적는데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호흡을 깊이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찬미야, 나 지금 병원 갈 건데 오늘 못 올 거 같거든?”
“무슨 일 있으세요?”
시황이 전화를 끊고 찬미에게 말하자 찬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가 조금 다쳐서 빨리 가봐야 할 거 같아. 시간 되면 문 닫고 가면 돼. 알겠지?”
“네. 여기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찬미는 묻고 싶은 말이 더 많았지만 시황의 시간을 빼앗지 않기 위해 꾹 참고 그냥 알겠다는 대답으로만 끝냈다.
“갈게.”
“나중에 연락주세요. 오빠.”
“응.”
걱정하는 찬미를 뒤로하고 시황은 카페를 나와 택시를 잡았다. 평소엔 차가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는데 이런 급한 상황이 되니 차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택시기사에게 메모로 적은 곳을 말해주자 바로 달려간다.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라 택시비가 꽤 나오겠지만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택시의 창으로 보이는 어두워진 밤길이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자신이 찬미와 유미랑 노는 동안 아빠는 막노동을 하다 손가락을 잘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부모님에게 큰 신경을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자신에게 아직 1억이라는 돈이 넘게 있었는데 설명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드리지 않은 게 정말 후회가 됐다. 만약 이 돈을 로또에 당첨됐다는 식으로 말하며 진작 드렸다면 아빠의 손가락이 잘릴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아아…….”
거기다 3레벨을 찍고 아무 의미도 없는 장애물 무시 후프가 같은 걸 선택한 게 아니라 부모님을 위한 마법 도구를 얻어서 주었다면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3레벨에서 안 됐다면 4레벨을 빠르게 찍어서 새로운 마법 도구를 얻었다면 부모님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상황에 너무 만족한 나머지 나태해진 자신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변명은 할 수 있었다. 4레벨 경험치를 아예 안 올린 것도 아니고 카페를 하면서 틈틈이 올린 데다 카페 때문에 바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전과 마음가짐이 달라져 있었다는 건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계속되는 후회에 시황의 마음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하아…….”
계속 한숨만 나왔다. 자신에게 완전 회복 물약이 2개나 있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힘든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런 거 하나 신경 쓰지 못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서였다. 드래곤의 유산을 받고 조금이나마 성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유산을 받기 전과 다를 게 전혀 없었나 보다.
“다 왔습니다.”
4만 3천원이 나온 택시비를 주고 시황은 바로 병원으로 들어갔다. 응급실 앞에 엄마가 힘없이 앉아 있었다.
“엄마, 나왔어.”
“시황아, 왔니?”
아까랑 다르게 약간 진정이 됐는지 엄마가 희미하게 웃었다.
“어떻게 됐어?”
“아직 수술 중이야. 여기 앉아.”
시황은 엄마의 옆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그런 거야?”
“나무를 자르다가 그랬다네. 그나마 손가락 하나만 잘린 게 어디니.”
엄마는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말을 했지만 시황은 아빠의 손가락이 잘리는 장면을 생각하자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미안해 엄마.”
“네가 뭐가 미안해. 공부는 잘 하고 있어?”
시황이 괜히 걱정을 하자 엄마는 주제를 돌릴 겸 한 말에 시황은 순간 흠칫했다. 카페 때문에 학교를 자퇴한지는 꽤 됐는데 아직 이걸 부모님에게 전혀 말하지 않고 있었다. 시황은 지금 고백을 해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숨겨야할지 고민했다.
“엄마, 나 카페 차렸어.”
어차피 밝힐 거 차라리 지금 밝히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이런 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밝히기가 어려워 질 테고, 카페 수입을 말하면 힘든 부모님에게 금전적으로 지원을 해드리기도 수월했다. 그리고 이미 부모님에게 뭐라고 말해둘지 오면서 생각도 대충이나 해 놨다.
“뭐? 카페? 네가? 무슨 돈으로?”
깜짝 놀란 엄마가 묻는다.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이랑 아루가 모은 돈이랑 해서 차렸어. 가게가 조금 안정되면 말하려고 했는데……. 미안 엄마.”
“아루가?”
단순히 자신이 아르바이트만 해서 모았다고 하면 부모님이 절대 안 믿을 게 뻔했기 때문에 일부러 아루를 끼워 넣었다.
“응. 아루가 많이 보태줬어.”
“정말이니?”
아직도 시황의 엄마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애 같기만 한 자신의 아들이 카페를 차렸다는 게 쉽사리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 가게 내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도 의문이다.
“그래. 내가 예전부터 집에 잘 안 내려갔잖아. 그거 다 아르바이트한다고 그런 거야.”
드래곤의 유산을 받아서 그랬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던 시황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하도 이런 저런 거짓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제는 엄청 자연스럽게 연기가 된다.
“어떤 카펜데?”
“아루랑 같이 하는 건데, 평범한 카페야. 커피 팔고 차 팔고.”
“그러니? 장사는 잘 되고?”
이제야 좀 믿음이 가는지 엄마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오픈한지 아직 한 달은 안 됐는데. 이번 달에만 2000만 원은 벌 거 같아.”
“2, 2000만 원?”
그저 조그마한 카페라고 생각했던 엄마는 시황의 아빠가 1년은 일해야 벌 돈을 이번 달에만 벌었다고 하자 입이 쩍 벌어졌다. 그저 애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아들이 카페를 차리기 위해 옛날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아서 결국 한 달에 2000만 원이라는 수입을 올리고 있었을 줄이야.
“한 달 장사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미안해 엄마.”
“네가 그래서 요즘 바쁘다고 했구나. 아이구 우리 아들 장하다.”
엄마는 시황의 엉덩이를 두드려줬다. 월 2천만 원! 1년이면 2억 4천만 원이라는 꿈에서도 상상치도 못한 돈을 모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얼굴 가득 그늘지어 있던 엄마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아빠의 손가락이 잘리면서 생계에 큰 타격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술비에 들어가는 돈과 나을 때까지 일을 하지 못해도 임금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손가락 하나 잘렸다는 것만으로도 이전처럼 일을 구하기 힘이 들 게 분명하니까.
그렇다면 엄마가 버는 1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으로 한동안 생활을 해야 하는데 시황에게 20만 원을 보내주고 집 월세를 내는 것만으로도 돈의 반이 사라져 생활비로 쓰기에도 너무 빠듯했다. 이런 걱정과 고민을 하는 와중에 시황이 이런 기쁜 소식을 말하니 엄마는 마음의 짐이 크게 덜어지면서 시황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생겨났다.
시황은 타블렛을 꺼내 병원 와이파이를 연결한 뒤에 인터넷에 자신의 카페 사진이 올라온 블로그 글을 찾아 엄마에게 보여줬다.
“이게 아루랑 같이 하는 카페야.”
“어머, 그러니?”
엄마가 감동한 표정으로 타블렛을 어색하게 만지며 카페 사진을 봤다.
그 모습을 보니 그제야 시황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계속 후회만 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떻게 해야 최선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카페에 대한 걸 밝힌 거고, 아빠에게는 3레벨이 되면서 받은 포션을 바르게 할 생각이었다. 완전 회복 물약이 있었지만 그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건 물론이고 잘린 팔, 다리까지 재생시켜 주는 기적의 약이었다. 그걸 사용하면 수술한 흉터 하나 남지 않을 테니 쓰기가 조금 곤란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제대로 붙지 않는다면 완전 회복 물약을 쓸 생각도 있었다. 아빠의 손가락을 낫게 하는 것과 완전 회복 물약을 아끼는 것 중 어느 걸 선택할 거냐 하면 주저 없이 아빠의 손가락을 낫게 할 것이다.
엄마와 대화하는 와중에 2시간 조금 넘는 정도 되는 아빠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옮겨졌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자 시황은 왠지 모르게 울컥해 눈물이 고이는 걸 느꼈다.
아빠의 옆에서 의사가 엄마에게 아빠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수술은 잘 됐구요. 별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손가락은 잘 붙을 거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 뒤로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하고 의사가 나가자 시황은 아빠의 근처로 갔다.
“아빠, 괜찮아?”
“겨우 손가락 잘린 거 가지고 뭐 하러 오냐.”
눈물을 글썽이는 시황을 보고 아빠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은 거지?”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일 학교 가야 될 건데 빨리 내려가라.”
걱정이 가득한 시황의 물음에 아빠는 오히려 빨리 가라고 말했다. 그래도 의사가 수술이 잘 됐다는 말과 괜찮은 듯한 아빠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어머, 이이도. 왜 자꾸 내려가라고 그래. 당신 우리 시황이가 카페 차린 거 모르지?”
엄마는 수술도 잘 되고 아빠도 괜찮은 거 같자 이제 완전히 안심을 했는지 살짝 웃으면서 아빠에게 말했다.
“카페? 무슨 카페?”
“글쎄, 시황이가 카페를 차려서 한 달에 2천만 원을 번다네.”
엄마가 아까 시황에게 들은 걸 아빠에게 그대로 말했다.
“정말이냐? 학교 공부는 어떡하고?”
그런데 아빠는 2천만 원을 번다는 거 보다 학교를 어떻게 했는지가 더 궁금한 듯 했다.
“휴학했어.”
차마 자퇴했다는 말은 못하고 휴학했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자신의 아빠가 꼭 대학을 나오길 바란다는 걸 시황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저히 자퇴를 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학은 꼭 졸업해야 된다. 시황아. 알겠냐?”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래.”
그제야 시황의 아빠 얼굴이 펴졌다. 자신의 손가락 잘린 것보다 시황이 학교를 잘 다니는지가 더 걱정됐던 것이다.
“시황아. 시간되면 나중에 아루도 데리고 병문안 와. 엄마가 꼭 한 번 보고 싶네.”
“아루는 왜?"
“너희들 결혼할 거 아니니? 엄마가 어떤지 미리 봐야지.”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어”
뜬금없는 엄마의 말에 시황이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루는 아직 한국 국적은커녕 그 어떤 나라의 국적도 없는 무국적자라 결혼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거기다 아루와 결혼이라니…….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시황아, 아빠는 네 나이 때 벌써 결혼해서 너도 낳았는데 우리 시황이도 빨리 결혼해야지.”
엄마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드르륵!
그때 찬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올게.”
시황은 병실을 나가서 복도에서 전화를 받았다.
[오빠, 어떻게 됐어요?]
[응. 다행히 수술 잘 됐데]
[아,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데 어디를 다치신 거에요?]
찬미는 많이 걱정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사장에서 일하시다가 손가락이 잘리셨어.]
[어머, 어떡해…….]
[괜찮아. 수술이 잘 돼서 이제 푹 쉬기만 하면 나을 거래. 그보다 가게는 잘 닫았어?]
시황은 찬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주제를 돌렸다.
[네. 닫고 이제 집으로 가는 중이에요.]
[미안해. 데려다 줬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오빠 전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보다 내일 아침에 저도 병문안 가도 돼요?]
[네가?]
갑작스런 찬미의 말에 시황이 놀라서 말했다. 당연히 안 된다.
[네. 아침에 잠깐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요.]
[미안. 아직은 조금 힘들 거 같아.]
분명 찬미가 병문안을 오면 엄마가 괜히 아루 얘기를 꺼낼 것이고 그러면 아루와 자신이 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 날 게 분명했다.
[네……. 그럼 다음에라도 꼭 갈게요.]
[응. 알았어. 집에 들어가서 쉬어. 내일은 내려갈게.]
[네. 오빠 내일 봐요.]
찬미의 전화를 끊고 시황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누구야? 아루?”
“아니. 다른 친구.”
“학교 친구?”
“아니. 학교 친구는 아니고 그냥 아는 친구야.”
엄마가 자꾸 물었지만 시황은 대충 설명하고 넘겼다. 숨길 게 많다보니까 거짓말하기도 힘이 든다.
하여튼 처음 아빠의 손가락이 잘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는데 다행스럽게 수술이 잘 끝나고 두 달 정도만 입원하면 될 거 같았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엄마나 아빠나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게 위해서라도 빠르게 4레벨을 찍고 마법 도구를 얻을 필요성이 있었다. 세상에는 위험한 게 너무 많아 조금만 방심해도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는 걸 지금이라도 알아차린 게 다행이었다.
드르륵.
그때 또 전화가 왔다. 지영이다.
“전화 좀 받고 올게.”
“우리 아들 카페 차렸다더니 바쁘네.”
병실 밖을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시황아, 뭐해? 가게 끝났으면 오늘 누나 집에 안 올래?]
지영은 은근히 색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까지 임신을 하는 건 번번이 실패했지만 이번 가임기 때는 꼭 성공하고 싶었다.
[죄송해요. 누나. 아빠가 다쳐서 병원에 와 있어요.]
[어머? 아버님이? 왜 다치신 거야?]
[공사장에서 일하시다가 손가락이 잘리셨어요. 그래도 수술이 잘 됐다니까 다행이에요.]
[어머, 다행이다. 그런데 공사장? 시황이 아버지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거야?]
지영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이 아는 시황은 분명 부잣집 아들일 텐데 시황의 아빠가 공사장에서 일한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탓이다. 건설사 쪽에서 일하시는 걸까?
[네. 공사장에서 일하세요.]
[관리 같은 거 하시는 거야?]
[네? 아니요. 그냥 막노동 하시는데요.]
[그, 그래?]
시황의 말에 지영의 목소리가 약간 떨떠름해져 있었다. 26살 밖에 안됐는데 2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카페를 차린다기에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막노동을 하신다는 말을 듣고 뭔가 시황에 대한 환상이 깨져나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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