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99화 (9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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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수리 나형 치실 거죠?”

“응. 영어영문학과에 갈 생각이거든.”

영어에 뜻이 있어 또 영어학과를 가는 건 아니었고, 언어 습득용 알약으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어서 선택한 거였다. 다른 과를 고르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건 경험치를 위해 명문대학교에 들어감과 동시에 청담동에 카페를 진출시키려는 자신의 의도에 차질을 빚게 만든다. 최대한 공부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면서 학점을 잘 받아야 했고 그런 과가 바로 영어영문학과다.

미리 인터넷에서 영어 원서로 된 문학책을 사서 좀 읽어봐야겠다. 영문학과라는 게 영어만 잘한다고 무조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건 또 아니니까.

“영어 좋아하시나 봐요. 지금 다니시는 학과도 영문학과잖아요.”

“뭐,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고 영어 같은 건 알아두면 여러모로 편해서 말이야. 찬미는 무슨 과인데?”

“저요? 전 경영학과에요.”

“와, 고려대 경영? 찬미 진짜 대단하다.”

시황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라면 최소 상위 0.3% 안에는 들어야 갈 수 있는 학과다. 60만 명 중에 0.3%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공부도 잘하면서 얼굴도 예쁜데 몸매도 완벽하다시피 했다. 이런 거 보면 세상이 참 불합리하다 싶다.

“아니에요.”

“그런데 휴학은 왜 한 거야?”

별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었다. 군대를 가야하는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라 다들 한번씩은 휴학을 하니까.

“네? 휴학이요?”

하지만 휴학 얘기를 묻자 찬미의 안색이 급격히 흐려진다.

“응. 취업 때문에 한 거야?”

“아, 아니요.”

찬미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시황은 모르는 척 하면서 계속 물었다.

“그래? 그러면 언제까지 휴학할 건데?”

“잘 모르겠어요.”

어떤 이유로 휴학을 했는지 말하기 싫어하는 거 같았다. 프로필에 나와 있는 단 1회의 섹스횟수가 약간 걸린다.

“그렇구나. 아, 맞다. 찬미, 너 전에 내 부탁 하나 들어준다고 했지.”

“네.”

유미 남자 친구인 척 해달라고 했을 때 그런 말을 하긴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낼지는 몰랐다.

“지금 말해도 돼?”

“네. 괜찮아요.”

“그러면 이번 주에 나랑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실래?”

“네? 술이요?”

술이라는 말에 찬미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딱히 자신이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저런 부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응. 찬미랑 친해지고 싶어서.”

찬미같이 남자를 불신하는 여자에게 의도를 감췄다가는 곤란해질 수도 있어, 시황은 자신의 의도를 그대로 밝혔다.

“저랑요?”

“찬미랑 나랑 아직 좀 서먹하잖아. 그래서……. 정 싫으면 거절해도 괜찮아.”

항상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요.”

“나도 잘 못 마셔. 그냥 맥주 500cc정도만 먹지 뭐.”

찬미랑 노는 날은 현주에게 말해서 오전이 아니라 오후 6시 30분에 출근해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오전은 자신이 카페를 보고 오후는 현주가 보면 되니까.

“그런데 오빠 카페 때문에 바쁘시지 않아요?”

“현주 씨한테 부탁하면 돼. 찬미는 언제 시간돼?”

“전 아무 때나 다 괜찮아요.”

“그러면 이번 주 금요일에 보자.”

“네. 알겠어요.”

여기까지는 간단했다. 찬미와 그렇게 나쁜 사이도 아니었고 부탁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이후가 문제다. 찬미가 남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고 그 아픔을 보듬어 준다면 게임이 끝난 거나 다름없을 텐데 어떤 식으로 해야 자연스럽게 그런 과정이 진행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술이 들어가면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 놓을까?

“이제 공부하자.”

“수학부터 할게요.”

시황이 수학의 정석을 펴자 찬미가 자연스럽게 가까이 붙어 설명을 해준다. 향긋한 냄새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시황은 설명을 듣는 척 하면서 찬미와 가까이 밀착했다.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얼굴선과 기다란 생머리. 헐렁한 티로도 숨겨지지 않는 볼륨감 있는 몸매, 핥아보고 싶은 우윳빛의 허벅지. 열심히 설명을 하는 찬미 몰래 슬쩍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될 정도였다.

금요일이 정말 기대된다.

아르바이트생들과 현주가 9시 30분까지 출근하고 시황은 보통 9시에 미리 와서 카페를 관리한다. 그리고 9시 30분에 카페를 청소하고 10시에 오픈을 하는데 어쩐 일인지 현주가 9시에 출근을 한 것이다.

“현주 씨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시황은 커피 머신을 씻다가 현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슴골이 은근히 드러나는 블라우스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여기에 10cm정도 되는 킬힐까지 신으니 상당히 매력적이고 예쁘다. 처음 볼 때는 현주가 이렇게 예뻐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여자에게 화장과 스타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시황이 예쁘다고 칭찬한 이후로 현주는 계속해서 그런 스타일의 옷만 입었다. 가슴골이 은근히 보이는 블라우스라든가 살짝 달라붙어 가슴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어 노골적으로 커다란 가슴을 보였다.

“아……. 그, 그냥요.”

“현주 씨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요?”

시황은 현주가 왜 그렇게 입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을 하며 물었다.

“네? 아, 아, 아니요. 왜, 왜요?”

“요즘 너무 예쁘게 차려 입으시는 거 같아서요.”

“아…….”

시황의 말에 현주가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현주는 굴러들어온 떡이었다. 딱히 별거 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여자들만큼이나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잘해줘서 그런 거 같은데 여자와 제대로 말도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의 자신에게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가 잘 대해줬다면 하루 종일 그 여자만 생각하고 좋아했을 테니까.

“앉으세요. 커피 한잔 드릴게요. 뭐 드릴까요?”

“카, 카페라떼요.”

현주의 말에 시황은 카페라떼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침은 드셨어요?”

“아, 아니요.

시황이 커피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뽑으면서 현주에게 말하자 잠시 머뭇거리던 현주가 대답했다. 그런데 아침밥을 먹어놓고 아니라고 대답한 게 너무 티가 난다.

“저도 밥 안 먹었는데 같이 허니 브레드라도 먹을까요?”

“감사해요.”

단둘이서 먹는다고 생각하자 현주는 벌써부터 가슴이 터질 거처럼 뛰었다. 애초에 30분 일찍 온 거 자체가 시황과 단 둘이서 있고 싶어서였는데 같이 빵까지 먹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황이 카페라떼와 빵을 현주에게 건네주었다.

“드세요.”

“자, 잘 먹겠습니다.”

시황은 포크로 조각난 허브레드를 찍어 먹으면서 슬쩍 현주를 쳐다봤는데 눈이 마주쳤다.

“현주 씨 몰랐는데 몸매가 엄청 좋으시네요.”

“네?”

“아, 죄송해요. 이런 말은 하면 안 되죠?”

“아, 아니요. 그, 그냥 놀래서…….”

현주는 볼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시황에게 몸매가 좋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가슴골이 슬쩍 드러나는 옷을 선택한 게 정답이었다. 그저 칭찬을 들었을 뿐인데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조금 걱정 되는데요.”

“네? 뭐, 뭐가요?”

진지한 표정을 지은 시황이 말하자 현주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길거리 캐스팅 돼서 연예인 되실까봐요. 캐스팅 돼도 그만 두시면 안 돼요.”

“저, 절대 안 그래요.”

현주는 시황의 말에 부끄러워서 목까지 붉어졌지만 너무 행복해 가슴이 터질 거 같았다. 시황을 바라보기만 해도 질이 움찔움찔 거린다. 당장이라도 시황을 껴안고 온 몸에 키스를 하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어찌된 게 날이 갈수록 시황에 대한 생각 밖에 안 났다. 상상 속에서는 이미 시황을 수십, 수백 번을 범한지 오래였다.

“아, 현주 씨. 내일은 오후에 나와 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내일 오후에 할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이…….”

“아는 사람이랑 밥을 먹기로 해서요. 부탁 좀 드릴게요. 대신에 다음에 제가 밥하고 술 사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시황이 밥을 사준다는 말에 현주는 빠르게 외쳤다. 세상에 그렇게 꿈꾸던 시황과 같이 밥을 먹을 날이 오다니, 믿겨지지가 않는다. 거기다 술까지 사준단다. 혹시 자신에 술에 잔뜩 취하면 모텔로 데려가지 않을까?

“고마워요. 다 드셨으면 주세요. 제가 치울게요.”

“아, 아니에요. 이건 제가 할게요.”

현주는 시황의 포크를 슬쩍 보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시황이 접시를 건네주자 현주가 조심스럽게 받아들어 카운터 뒤로 가서는 조심스럽게 시황의 동태를 살폈다. 전처럼 타블렛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현주는 시황의 입에 들어갔다 나온 포크를 집어 혀로 할짝거렸다.

“읏…….”

시황의 입에 들어갔던 포크를 핥는다고 생각하자 너무나 흥분돼 전처럼 애액으로 팬티를 흥건하게 적셨다. 이건 중독이었다. 처음이 어려웠던 거지 한 번 하니까 틈만 나면 시황이 썼던 컵이나 수건 같은 게 없는지 살피게 되었다.

“아아…….”

포크와 컵까지 다 핥아버리자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이건 하면할수록 더욱더 강한 자극을 원했다. 시황의 냄새가 짙게 묻은 티나 셔츠를 구한다면 얼마나 기쁠까.

시황은 그런 현주를 보면서 다음에는 뭘 줄까 고민했다.

현주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어리숙하고 착한 줄만 알았는데, 저런 페티시를 가지고 있을지는 몰랐다. 뜻하지 않게 좋은 인재를 뽑았다.

해가 지고 있어 주변이 점점 어둑해졌다. 찬미와 만나기로 한 금요일이라 현주에게 가게를 맡기고 전에 다녔던 대학교 앞에서 찬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많은 커플들이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은 채 돌아다니고 있는 반면 여자 친구가 전혀 없게 생긴 남자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자신의 옆을 지나갔다. 땀 냄새가 은근히 풍긴다.

자신도 저럴 때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피식 미소가 나온다. 옛날에는 여자 손만이라도 잡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주변에 여자가 넘쳐나니 말이다. 사람일이라는 게 정말 알 수가 없다.

시황은 기다리기 지루해 타블렛을 꺼내 퀘스트를 확인했다.

[가게의 일 매출액 100만 원을 넘기세요.][완료][경험치 400]

[직원 5명을 고용하세요.][완료][경험치 500]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된 것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50건 이상 올라가세요.][완료][경험치 500]

어느덧 3레벨의 경험치 바의 절반 이상이 붉게 물들었다. 카페가 인터넷에 글이 많이 올라갈수록, 매출액이 증가할수록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4레벨도 조만간이면 찍지 않을까 싶다.

아직 운동 쪽이나 무술 쪽은 안 한 게 많으니까 슬슬 그것들도 빨리 처리해야겠다.

“찬미야, 여기야.”

퀘스트를 보며 생각하고 있는데 조신하게 차려입은 찬미가 다가왔다. 집에서와 다르게 스키니 진과 블라우스를 입어 노출을 최대한 자제했다. 그 일이 일어난지 몇 달이나 지났음에도 아직도 쉽사리 잊지 못하는 거 같았다.

“오늘 나 만난다고 그렇게 예쁘게 입고 온 거야?”

“대, 대충 입은 거에요.”

시황의 말에 찬미가 조금 부끄러워했다.

“뭐 먹을래?”

“전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래? 그럼 나중에 술 마실 건데 적당히 먹자.”

“네. 알겠어요.”

시황은 세워둔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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