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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케즈론
거기다 줄을 선 곳도 아니고 무질서하게 카페 안에 서서 시간만 기다리고 있으니 카페가 너무 혼잡스러워져 정작 돈 내고 마시는 사람들이 불편해 했다.
“그러게. 이러면 조금 곤란한데.”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시황은 종이를 가지런하게 찢어 숫자를 적었다. 일부러 마력 회로를 가동시켜 적은 숫자라 따라 그리기 불가능할 정도의 반듯함을 가졌다.
“지금부터 오신 순서대로 커피를 나눠드리겠습니다. 제가 배부하는 번호표를 제시하셔야만 커피를 드리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치고 나서 일일이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었다. 그러자 그제야 사람들이 번호표의 숫자를 보고 줄을 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황은 돈을 내고 마시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 불편하지 않게 가게 안쪽으로 이동을 시키고, 공짜로 마시기 위해 모여든 사람은 가게 바깥쪽에 줄을 세웠다.
이제야 약간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공짜로 커피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계속 모이고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이벤트용 현수막을 걸긴 했지만 정작 이 길로 지나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어디서 보고 이렇게 모였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빨리 안 나와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최대한 빨리 하고 있는 중이에요.”
은지와 지숙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부분이 여자들, 그것도 대학생과 아줌마들이었지만 간혹 커플로 와서 여자 친구와 같이 있는 남자들도 있었고 남자 친구끼리 온 사람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줄을 서서 무료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왕! 맛있다!”
공짜로 카라멜 마끼야또를 받아간 여자가 한 모금 마시더니 감탄을 하며 가게를 나갔다. 공짜라면 당연히 비싼 걸 마시고 싶은 사람의 심리상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사람은 거의 없어 아메리카노에 비해 1000원에서 2000원 가량 비싼 카페 모카나, 카라멜 마끼야또 같은 것들만 주문했다.
카페 모카 같은 경우에는 에스프레소에 초코 소스와 우유를 섞고 휘핑크림까지 올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알바생 한명은 카운터를 보고 카페 경험이 있는 다른 알바생은 현주를 도와 커피를 만들었다. 은지와 지숙은 경험이 없으니 카페를 치우고 줄 선 사람들을 정리했는데 사람이 자꾸 늘어난다는 점만 빼면 그럭저럭 할만했다.
“야, 학교 앞에 있는 카페 케즈론 오늘 오픈하면서 커피 공짜로 주는데 너 안 올 거야?”
줄 서 있던 여대생 한명이 전화로 친구를 부른다.
“언제까지 하냐고? 잠시만. 저기요. 이거 꽁짜로 언제까지 줘요?”
전화를 하던 여자가 은지에게 물었다.
“12시부터 1시 30분까지 하고 저녁 6시부터 7시 30분까지 해요.”
“두 잔은 못 받아가죠?”
“네. 한 분당 한 잔씩만 가능하세요.”
“감사해요. 야, 빨리 와. 1시 30분까지 한데. 난 마셔보고 맛 괜찮으면 6시에 한 번 더 올라고.”
저런 식으로 전화로 연락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폰으로 코코아 톡을 끊임없이 보내는 여자가 대부분이었다. 전부 공짜로 커피를 주니까 빨리 오라는 그런 문자들이었다.
군대에서는 비상상황이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을 주변에 전파를 하는데 지금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비상상황이나 문제가 생긴 건 아니지만 그만큼 다급하게 전파를 해야 할 만큼 대단한 이벤트였던 것이다.
사실 오픈했다고 6000원이나 넘는 고급 커피를 공짜로 주는 이벤트를 할 카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황의 카페는 가격에 대한 부담이 있는데다 일단 어떻게 해서든 커피 맛만 보여주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찾아올 게 분명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람들이 많아 약간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새치기를 하거나 비매너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헐, 진짜 쩐다. 야, 너도 마셔봐.”
커피를 공짜로 받은 여자 한 명이 줄 서 있는 친구에게 가더니 일회용 컵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게 건네주었다.
“그래? 어떤지 맛이나 보자. 엄청 궁금하네.”
커피 받는 사람마다 전부 맛있다고 감탄을 터트리니 줄을 선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그러나 다들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맛! 뭐, 뭐야?”
“맛있지?”
“진짜……. 완전 맛있다. 나 조금 더 마셔도 돼?”
“안 돼. 그만 마셔.”
친구가 더 마시려고 하자 커피를 건넨 여자가 뺏어든다.
지금은 조금 무질서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 힘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저들이 전부 잠재적인 고객이었다. 이렇게 많이 오면 올수록 홍보가 더 잘 될 테고 카페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게 분명했다.
약간 안정이 되자 시황은 자리에 앉아 조금 쉬면서 타블렛을 꺼내 검색엔진에 카페 케즈론이라고 쳤다.
[우리 대학교 앞 거리에 있는 카페 케즈론에서 오픈 이벤트로 무료로 커피를 주는 중! 그저 그런 맛일지 알았는데 마셔 보고 깜놀했당. >_< 넘 맛있어.]
[대박! 우리 대학교 앞에 엄청 예쁜 카페 생겼어. 지금 공짜 이벤트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음 ㅜㅜ]
아직 블로그나 카페 관련 사이트에 글이 올라오진 않았고 카페 근처에 있는 대학생들이 SNS에 쓴 글이 몇 개 검색되었다. 꼼꼼하게 다 읽어봤는데 전부 칭찬 일색이다. 특히 인테리어와 맛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들을 보자 흐뭇한 미소가 생긴다. 이런 식으로 입소문을 더 탄다면 나중에 방송까지 나올지도 모르겠다.
1시 30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벤트 현수막에 매혹되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학교 친구들을 부르고 그 친구들도 또 친구들을 또 부르다보니 이렇게 된 거 같았다. 이 거리에 대학생들이 많이 다니기는 해도 절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러다 준비해둔 원두와 초콜릿 소스, 시럽들이 떨어질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오빠, 사람들이 안 줄어들어요.”
“안 되겠다. 이러면 끝이 없겠어.”
1시 30분이 됐다고 사람들을 다 보내버리면 분명 불만이 생길 것이다.
시황은 가게 문 밖으로 나가서 소리를 쳤다.
“지금 줄서서 번호표를 받으신 분들까지만 커피를 무료로 나눠드리겠습니다.”
크게 낸다고 낸 소리지만 사람이 워낙 많은데다 시끄럽게 웅성웅성 거려서 시황의 말소리가 하나도 전달이 안 됐다.
이대로 소용이 없겠다고 생각한 시황은 은지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라고 한 뒤에 마기를 끌어 올렸다. 마기가 전신 혈맥을 순환하자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은 충만한 기운이 솟아났다.
“여러분! 오후 이벤트는 지금 번호표를 받으신 분들까지만 드리고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확성기라도 튼 것처럼 용맹하고도 우렁찬 소리가 거리를 채우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시황을 쳐다봤다. 거리에 있는 사람 전부들이 자신의 말을 다 들은 걸 확인한 시황은 카페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두번 다시는 이런 이벤트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가격을 조금 깎아주는 거면 몰라도.
3시가 가까이 돼서야 번호표를 나눠준 손님들에게 전부 커피를 무료로 나눠주었다. 카페를 처음 여는 김에 시럽과 소스, 원두를 많이 가져와서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지금 이벤트만으로 재료들이 다 떨어졌을 게 분명했다.
“저기요. 제가 번호표를 받았는데 실수로 잃어버렸거든요. 그냥 한 잔 주시면 안 돼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카운터에서 억울한 듯이 말한다. 알바생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시황을 쳐다봤다.
“하아…….”
저런 게 가장 어려운 문제다. 저 여자가 정말 번호표를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고 커피를 먹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커피를 주지 않으면 거짓말이든 아니든 카페에 대해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거짓말이라 해도 ‘그거 하나 못주나? 더럽게 쪼잔하네.’ 식으로 생각할 테고 거짓말이 아니라면 진짜인데 커피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외를 만들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번호표가 없으면 커피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정말 번호표 잃어버렸는데 주시면 안 돼요?”
“대신에 지금 1번 번호표를 드릴 테니 6시 이벤트에 오시면 바로 커피를 무료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알겠어요.”
시황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여자가 머뭇거리더니 1번 번호표를 받고 돌아갔다. 카페 연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피곤하다.
사람이 많이 왔다 가면서 카페가 지저분해졌고 시황은 은지, 지숙과 함께 카페를 정리했다.
이벤트가 끝나서인지 3팀 밖에 남지 않아 카페가 한산해졌고 시황은 은지, 지숙과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힘들지?”
맞은편에 앉은 은지와 지숙에게 물었다.
“조금요. 아르바이트 처음 해보는데 힘들긴 힘드네요.”
“오빠, 전 전혀 안 힘들어요. 다음 주에도 와서 도와드릴게요.”
지숙이 어깨를 두드리며 피곤한 표정으로 말하자 은지가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이 지숙보다 낫다고 어필을 했다. 오늘 새벽에 시황과 섹스를 한 이후로 전보다 더 애정이 깊어져서 시황을 위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다.
“고마워. 은지야.”
“아니에요.”
시황의 칭찬에 은지가 수줍게 웃으면서 대답하자 지숙이 입술을 깨물면서 은지를 노려봤다. 은지도 지영이나 유미 같은 여자들이랑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오빠, 저도 안 힘들어요. 그냥 농담 해본 거에요.”
지숙이 재빠르게 말을 정정했다.
“그래? 어깨 안마라도 해주려고 했는데 괜찮은가 보네.”
“네? 아, 아니요. 지금 저 엄청 피곤해요. 팔이 막 저려요.”
“오빠, 저는 다리도 많이 아파서 움직이기도 힘들어요.”
시황의 말에 은지와 지숙이 당황해서 이번에는 서로 더 피곤하다고 난리를 쳤다.
“그래? 움직이기 힘든 은지부터 마사지 해줄게.”
피식 웃은 시황은 은지에게 먼저 가서 어깨를 주물러줬다.
“하아.……. 좋아요. 오빠.”
시황이 마력 회로를 가동시켜 치유능력을 발현해 어깨를 주물러 주자 은지가 나른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었다. 시황의 안마는 받을 때 마다 느끼지만 정말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은지가 먼저 마사지를 받는 걸 본 지숙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시황은 은지보다 자신을 더 좋아했고 속궁합도 은지보다 자신과 더 잘 맞았다. 그런데 친구 같지도 않은 저 웬수는 그것도 모르고 자꾸 자신과 시황의 사이에 끼어들어 끊임없이 방해를 한다.
“자, 이제 지숙이도 해줄게.”
은지에게 마사지를 적당히 해준 거 같자 시황은 지숙에게 마사지를 해주기 위해 지숙의 어깨를 잡았다.
“조금 더 해줘요. 오빠.”
은지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야! 오빠가 나 해준다잖아.”
“지숙이 끝나면 더 해줄게.”
“네.”
시황의 말에 은지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그런 은지를 지숙이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언니, 사장님 인기 엄청 많죠?”
카운터에서 은지와 지숙이 시황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알바생 중 한 명이 현주에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은지와 지숙이 시황을 많이 좋아하는 게 보이는데 정작 시황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가 없다.
“응. 인기 많아. 뭐, 얼굴도 잘생겼고 능력도 좋으니까 인기 없는 게 이상하지.”
현주가 멍하니 시황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근데 키가 좀 작잖아요. 전 180cm 이상이 아니면 남자 친구로 좀 별로더라구요.”
옆에 있던 알바생이 말한다.
“넌 사장님의 매력을 몰라서 그래. 얼마나 다정하고 매너가 좋으신데.”
현주의 눈은 시황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22년 동안 살면서 시황처럼 자신에게 잘 대해준 남자는 처음이었다. 후줄근한 자신을 위해 옷도 사주고 머리도 해줬을 때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그 전에도 잘생긴 시황을 보면서 약간 망상을 하긴 했지만 그 뒤로부터는 시황을 볼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야한 망상이 떠올라서 민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머, 언니 설마 언니도 사장님 좋아하세요?”
“으응? 아, 아니. 내가 어떻게…….”
시황의 주변에는 자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많았다. 거기다 그 여자들은 시황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걸 직접 보지 않았는가? 시황을 좋아해봤자 자신같이 못생긴 애가 시황과 사귄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았다.
그때 마사지를 끝냈는지 시황이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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