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90화 (90/629)

0090 ------------------------------------------------------

카페 케즈론

“탈의실에 가시면 옷이 있거든요.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해보게 입고 나와 보시겠어요? 구두도 있으니까 같이 신으시면 돼요.”

“네.”

시연은 시황이 가리킨 방향에 있는 탈의실에 들어갔다. 약간 좁기는 했지만 카페 인테리어처럼 탈의실도 깔끔하고 예쁘게 구성되어 있었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원피스 스타일의 유니폼 중에서 자신의 사이즈와 비슷해 보이는 걸 하나 골랐다. 그런데 쉽사리 입을 수가 없었다.

지금 시연은 평범한 청바지와 후드티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특별히 멋을 부린 게 아니라 그저 편하고 간편해서 입었다는 티가 물씬 났다. 이미지와 옷만 봐도 알겠지만 시연은 이런 귀여운 스타일의 옷은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자신의 이미지와도 잘 안 어울리기도 했고,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이런 옷을 입고 애교를 부리는 걸 혐오했다.

“아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입어야했다.

시연은 후드티와 청바지를 벗고 어색하게 원피스 유니폼을 걸쳤다. 시연도 여자인 만큼 다리털 제모를 깔끔하게 했기 때문에 원피스 아래로 미끈한 다리가 드러났다. 원피스는 볼 때는 몰랐는데 입으니까 약간 몸에 달라붙어 은근히 가슴이 부각되었다. 정말 싫다.

표정을 잔뜩 찌푸리면서도 시연은 유니폼의 지퍼를 올리고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냈다.

“윽.”

옷만 그런 게 아니라 신발도 소녀다운 감성이 풍기는 귀여운 모양이었다. 특히 발등을 감싸는 저 스트랩은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

주저주저하다가 시연은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구두를 신었다. 생각보다 착용감은 나쁘지 않았다. 발이 아플 거라 생각했는데 방금 신었던 운동화처럼 은근히 푹신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시연은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신발이랑 유니폼이랑 마치 맞춤이라도 한 듯 몸에 딱 맞았다. 그나마 움직이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젊은 사장이더니 이런데 신경을 많이 쓴 거 같았다.

옷을 다 입은 시연은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와, 정말 잘 어울리네요.”

"..."

시황의 감탄에도 시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 귀여운 옷을 입고 무표정하게 있으니까 은근히 매력적이다. 그런데 무표정하고 귀여운 옷 사이의 갭이 매력적이라기 보다는 시연의 얼굴이 예뻐서 매력적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인 거 같았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니까.

“내일부터 나오실 수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부터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가르쳐 줄게요.”

“네.”

“이제 옷 갈아입으셔도 돼요.”

“네.”

시황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연은 다시 탈의실로 들어갔다. 이 닭살 돋는 옷을 빨리 벗고 싶었다.

시연을 보면서 시황은 피식 웃었다. 저런 타입은 키스를 해주고 가슴을 만져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아르바이트생은 이미 다 뽑아놨고 방금 면접 본 시연이 마지막이었다. 주간에 9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하는 여자애들 2명. 6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는 시연을 포함해서 3명이었는데 이게 또 주말 알바도 필요해서 상당히 수가 많았다. 알바비만으로도 지출이 상당했다.

뭐, 어찌됐든 이제 테이블과 기계들만 놓으면 준비 끝이다.

아루는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탁자와 의자를 케즈론의 성에서 옮겨와야 하는데, 낮이나 저녁엔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 문을 통해서 가져오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그나마 사람이 없는 새벽4시에 카페에 탁자를 옮기기 위해 온 것이다. 원래는 혼자 오려고 했는데 아루가 어떻게 알았는지 눈치를 채고 달라붙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

시황은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문을 소환해서 케즈론의 성으로 갔다. 새벽 4시라 어두운 한국과는 다르게 케즈론의 행성은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침실에는 탁자와 의자가 가득했다. 옮기기 편하게 시황이 미리 가져다 놓은 것이다. 기본 근력으로 탁자를 들기에는 상당히 무거웠지만 마기를 이용한다면 큰 무리 없이 다 옮길 수 있었다.

시황이 의자부터 하나씩 옮기자 하품을 하던 아루가 같이 의자를 들고 카페로 가져다 놓는다.

“아루는 쉬고 있어.”

“저도 도와주고 싶어요. 오빠.”

“그러면 가벼운 것만 들어. 알겠지?”

“네. 알겠어요. 오빠.”

아루가 의자를 옮기는 사이에 시황은 탁자들을 옮겼다. 카페에 불을 켜놓긴 했지만 밖에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 없었고 거기다 밖에서는 안 보이는 곳에서 탁자와 의자를 가져오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창고에서 나른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2인용으로 쓸 조그만 탁자 6개와 4인용 탁자 5개를 카페에 고루고루 배치했다. 그리고 로스터기와 커피머신 등까지 다 옮기자 이제야 제대로 된 카페가 된 거 같았다.

여기에 미리 봐뒀던 액자를 벽에 걸었다. 그림에 대해서 아는 건 없었지만 제일 그럴싸하고 멋있는 걸 골라 가져왔다.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공주가 성의 발코니에 서서, 저 멀리 떨어진 숲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감성적인 그림이었는데 어찌나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렸는지 풀HD의 화질로 보는 거 마냥 처녀의 솜털까지 다 보였다.

“음, 좋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지금 인테리어 자체로도 완성도가 상당했지만 이 액자까지 걸어두자 카페 밖을 보면 아름다운 숲이 펼쳐져있을 거 같은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로힘 카페의 커피잔에 주문한 종이컵 등 모든 구성품을 옮기고 나자 어느새 해가 떠서 카페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완벽하게 다 갖추고 나니 지금 당장이라도 장사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커피나 한잔 해볼까. 아루는 뭐 마실래?”

“전 달콤한 거요.”

“알았어. 금방 해줄게.”

“네.”

아루가 신기한 듯 카페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동안 시황은 커피 머신을 청소하고 미리 로스팅 해놓은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았다.

딸랑.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황은 현주가 일찍 온 건가 싶어 쳐다봤는데 생전 처음 보는 여자 두 명이 자연스럽게 탁자로 가서 앉았다. 카페가 문을 연지 착각을 하고 들어온 거 같았다.

“죄송한데, 아직 오픈을 안 했거든요.”

“네? 그, 그런가요? 죄송해요.”

시황의 말에 여대생 둘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나가려고 했다.

“아, 괜찮아요. 아직 오픈을 안 하긴 했는데 이왕 오신 김에 커피 드시고 평가도 조금 해주세요."

그냥 내보낼까 하다가 평가나 받아볼 겸 커피나 한번 줘보기로 했다.

“아…….”

시황의 말에 여대생 둘이 어떻게 할지 조금 고민한다.

“걱정 마세요. 커피 값은 안주셔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공짜라는 말에 바로 대답이 나왔다.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시황은 상냥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평소에 이렇게 웃지는 않는데 손님이라고 생각하니까 자동적으로 영업용 미소가 나왔던 것이다.

“전 아메리카노요.”

“저는 카페 라떼요. 괜찮을까요?”

“네. 잠시 만요.”

여자들이 들어오자 아루는 시황의 옆으로 가서 커피 만드는 걸 구경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검은 가루를 만들어 낸다. 평소의 시황도 멋지지만 커피 만드는 시황도 멋졌다. 가슴이 두근거려 당장에라도 시황을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있어 참아야했다. 아루도 이젠 그정도는 충분히 구별할 수 있었다.

“여기 괜찮은 거 같지?”

“그러게. 인테리어도 예쁘고 분위기도 좋은 게 마음에 든다. 야, 이 테이블 봐. 디자인 엄청 예쁘지?”

“진짜네. 테이블도 예쁜데 의자가 완전 푹신하고 편해. 이거 엄청 비싼 테이블하고 의자겠지?”

여대생 둘이서 계속해서 속닥거렸다. 여자인 만큼 카페의 디자인부터 테이블, 의자 까지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다 살피고 있었다.

“야, 여기 아메리카노 6천 원이나 해. 엄청 비싸.”

“6천 원? 진짜?”

메뉴판을 보던 여대생 한 명이 친구에게 말하자 깜짝 놀라 살펴본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거 보면 그만큼 맛있다는 말이겠지?”

“그렇지 않을까? 은근 기대된다.”

처음에 가격을 보고 부정적인 입장을 띠던 여대생들이 메뉴판을 보더니 조금씩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카론의 깃펜 덕분에 가벼운 호감이 생겨 가격에 대한 부담을 조금 떨쳐낸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드시고 평가도 해주세요.”

시황이 웃으면서 커피잔을 조심스럽게 탁자에 내려놓고 돌아갔다.

“윽, 잔도 진짜 예뻐. 여기 완전 쩐다.”

“와…….”

한명은 잔을 살펴보는 사이에 다른 한명은 카페 라떼를 마시더니 가벼운 감탄성을 냈다. 입안에 감도는 지나치지 않은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이때까지 마셔봤던 그 어떤 커피와도 비교가 안 되게 맛있었던 것이다.

“야, 너도 커피 마셔봐. 진짜 어이 상실함.”

“왜? 맛없어?”

호들갑을 떨며 말하는 친구의 말에 약간 꺼림칙한 표정을 지은 여대생이 아메리카노를 조금 마셨다.

“응?”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떠올랐다. 의아한 표정을 지은 여대생이 다시 한번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어?”

“왜? 맛없어? 카페 라떼는 진짜 맛있는데.”

“아니, 그게 아니고…….”

씁쓸함 속에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함과 고급스러운 풍미는 과연 자신이 마시고 있는 게 평소에 자주 마시던 아메리카노가 맞는지 의심이 갔다.

“왜?”

“말도 안 되게 맛있어…….”

“진짜?”

“어. 정말. 너도 나 알잖아 커피 엄청 좋아하는 거. 근데 이거 진짜 말도 안 되게 맛있어.”

여대생 둘은 서로 커피를 마시면서 감탄하기 바빴다. 인테리어랑 의자가 너무 좋아 커피값이 비싼 걸 이해하기는 했지만 커피 맛도 이렇게 좋을지는 정말 몰랐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커피 맛은 어떠세요? 괜찮아요?”

“사, 사장님 정말 맛있어요.”

“저 여기 완전 단골될 거 같아요.”

시황이 여대생들을 계속해서 관찰하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나가 의견을 묻자 여대생 둘이 흥분해서 떠들었다.

“아, 괜찮으셨어요? 다행이네요.”

시황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예상했던 대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여대생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역시나 6000원이나하는 가격이 꽤나 부담으로 다가온 거 같았다. 가격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안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오픈 당일에 무료 시식 이벤트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야동을 한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시황은 자신이 만드는 이 커피도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 커피를 한번이라도 마시면 다른 커피는 맛이 없어 도저히 못 먹을 테니까.

“사장님 돈은 낼 테니까 테이크아웃 해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죠.”

시황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카페의 성공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카페가 아니라 여자들이었다. 내일이면 서로를 만나게 될 텐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이 된다.

============================ 작품 후기 ============================

약간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