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86화 (86/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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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케즈론

9시 30분이되기 10분이나 넘게 남았는데도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시황이 대학교 정문 앞에 서있자 현주는 당황한 표정으로 빨리 뛰어갔다.

“안녕하세요.”

“뛰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시황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현주의 옷은 어제와 별 다를 게 없었다. 목 늘어난 티와 물 빠진 펑퍼짐한 청바지는 현주의 매력을 단 1%도 나타내지 못했다. 시황은 옷부터 사고 머리를 자를지, 머리부터 자르고 옷을 사 입힐지 고민했다.

“일단 미용실에 가죠.”

“네.”

시황이 가자 현주가 주춤거리면서 따라 걸었다. 남자와, 그것도 시황처럼 멋있는 남자와 같이 길을 걷는 건 처음이라 긴장이 됐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기 때문에 남자를 만날 접점 따위는 하나도 없었고 소심하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고백을 받은 적도 한 적도 없었다. 그저 집에서 드라마나 만화를 보면서 시황처럼 부잣집 아들에 잘생긴 미남과 사귀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며 욕구를 채웠었다. 하지만 안다. 어차피 다 상상일 뿐이라는 걸.

“여, 여기요? 제가 돈이 별로 없는데…….”

겉보기에도 엄청 비싸고 화려해 보이는 헤어샵에 시황이 들어가려하자 현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다 내드릴 테니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들어와요.”

시황이 현주의 팔목을 잡고 헤어샵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현주가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남자와 이렇게 스킨십을 한 건 처음이었다. 현주는 시황이 자신에게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걸 아는데도 괜히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어서 오세요. 어느 분이 머리 하실 건가요?”

“이쪽이요.”

시황이 현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미용사가 현주를 데리고 비어있는 미용의자로 데리고 갔고 시황도 뒤따라갔다.

“원하시는 스타일 있으세요?”

“네? 그, 그냥 깔끔…….”

“잠시 만요. 머리 스타일 나와 있는 책 있어요?”

“네. 바로 갖다드릴게요.”

시황은 현주의 말을 잘랐다. 지금 스타일에서 깔끔하게 자르면 되지도 않는다. 큰 눈과 오뚝한 코 덕분에 현주의 얼굴이 못 생긴 건 아니었는데 뭔가 2% 부족하긴 했다. 그래서 머리스타일과 화장법, 패션으로 승부를 봐야했다.

미용사가 책자를 갖다 주자 시황은 쭉 훑었다. 그 중에 한 가지 머리가 눈에 띈다. 요즘 한창 인기가 많은 로즈마리라는 3인조 아이돌 그룹의 리더인 김다연이 하고 있는 헤어스타일이었다.

허리까지 오는 기다란 머리였는데 중간쯤부터 웨이브가 진,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머리 스타일이다. 특히 카키 블론드가 매우 잘 어울렸다.

“이걸로 해주세요. 색도 이대로 카키 블론드로 해주시고요.”

“요즘 이 롱 웨이브 러블리펌이 인기가 많은데 센스 있게 잘 고르셨네요. 거기다 여성분 피부도 하얘서 카키 블론드랑도 잘 어울리구요.”

“자, 잠깐 만요. 사장님 설마 염색하는 거에요?”

현주가 잔뜩 당황해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시황에게 물었다. 염색이라니? 거기다 금발? 어떤 모습이 될지 정말 상상조차 안 갔다. 긴장을 넘어 겁까지 났다.

“네. 마음에 안 드세요?”

“제, 제가 금발이랑 너무 안 어울릴 거 같은데요.”

“아니에요. 현주 씨는 얼굴이 하얗고 머리가 조그마해서 엄청 잘 어울려요. 제가 어제 봤을 때 현주 씨가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계셔서 금발이 정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매, 매력이요?”

“네. 현주 씨의 체형이 상당히 서구적이고 선이 예뻐요. 그래서 롱 웨이브에 카키 블론드를 하면 상당히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  정 싫으시면 안 하셔도 돼요.”

현주는 시황의 현란한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찌릿찌릿해졌다. 매력이 있니, 선이 예쁘니 하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표정을 살폈지만 순수한 저 얼굴은 절대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니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지면서 정말 자신에게 금발이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할게요.”

시황의 말에 용기가 생겼다.

“고마워요. 그러면 전 저쪽 소파에 앉아있을게요.”

현주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준 시황은 소파로 갔다. 현주는 거울을 보며 그런 시황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저렇게 상냥하고 멋진 남자랑 사귀면 얼마나 행복할까? 시황같이 상냥하고 멋진 남자라면 분명 키스로 자신을 깨워줄 것이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슴을 만져주겠지.

‘하지 마. 바보야.’

그렇다면 자신은 이렇게 앙탈을 부릴 게 분명하다.

‘우리 현주가 너무 예쁜 걸 어떡해.’

‘부끄럽잖아. 바보.’

얼굴을 붉히며 시황의 품에 안길 것이다. 그리고…….

“하아…….”

그 장면을 상상만 하는데도 몸이 찌릿할 정도로 흥분이 됐다.

“잠깐 고개 좀 들어주시겠어요?”

“네? 네, 네. 그, 그럴게요.”

미용사의 말에 깜짝 놀라 현주가 말을 더듬었다. 안다. 이 모든 건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일 뿐이라는 걸. 시황 같이 부잣집 아들이라면 정략결혼을 한 상대가 있거나 이미 약혼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약혼자가 있잖아요.’

‘알아. 안다고. 하지만 너를, 너를 너무 사랑하는 걸……. 눈을 감아도, 일을 해도, 자꾸 너만 생각난단 말이야!’

해질녘에 주홍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강 옆에서 시황이 자신을 안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 돼요. 우리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어요.’

‘네가 없으면 난……. 난 살아 있는 의미가 없어.’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에 슬퍼하는 자신에게 시황은 거칠 게 키스를 하겠지…….

“불편하신 데는 없죠?”

“네, 네. 괘, 괜찮아요.”

이런 상상을 계속 해서인지 현주의 얼굴이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시황은 현주가 자신을 대상으로 그런 상상을 하는지도 모르고 타블렛으로 퀘스트를 훑었다.

[직원을 1명을 고용하세요.][완료][경험치 100]

현주를 고용하고 경험치 100을 얻었다. 아직 4벨까지는 까마득하다.

시황은 3레벨을 찍고 보상으로 받은 물품에서 쓸만한 게 뭐가 있는지 생각했다.

장애물 무시 후프는 있으면 좋을 거 같아 고르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은행을 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 집에 몰래 침입할 것도 아니라서 전혀 쓸데가 없었다. 이거 말고 다른 마법 물품을 고를 걸 하는 후회까지 생겼다.

오히려 별 의미 업을 거 같던 최고급 음질의 이어폰하고 로 하임의 원기 회복 나무는 어떻게 쓰면 상당히 괜찮을 거 같았다.

시황은 호주머니에서 손을 집어넣어 아공간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딱히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지 않아 처음 꺼내본다.

[후 센 카드론의 이어폰. 후 센 카드론이 만든 최고급 커널형 이어폰. 완벽한 차음성과 노이즈 캔슬링 덕분에 이어폰을 끼는 순간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단 한 개의 드라이버로 만들어져 작고 가볍지만 수억 원을 호가하는 음향기기보다 박력있고 섬세한 소리를 들려준다. 아무렇게나 던져놔도 선이 꼬이지 않고, 그 어떤 단자에도 꽂을 수 있는 다중 커넥터를 가지고 있다.]

설명은 엄청 거창했다. 시황은 한번 시험을 해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이어폰과 연결을 하고 귀에 꽂았다.

“응?”

정말이다. 노래가 틀어져있는데다 드라이기 소리 때문에 시끄럽던 미용실이었는데 귀에 이어폰을 꼽는 순간 적막감만 감돌았다. 마치 새벽 3시에 자려고 누운 것처럼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시황은 폰으로 로즈마리의 노래를 틀었다.

“헛!”

처음 시작하는 드럼 소리의 박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로즈마리의 리더인 다연의 목소리가 마치 옆에 있는 것 마냥 생생하게 들렸다. 묵직한 저음과 귀가 시원해지는 고음, 생생한 보컬 소리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마치 콘서트장에라도 간 듯 비트에 맞춰 심장이 쿵쿵하고 뛴다.

“대단한데.”

노래 한 곡을 다 들은 시황은 이어폰을 뺐다. 음악과 소리에 문외한 자신이 듣기에도 평범한 이어폰과 차원이 다르다는 걸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이 이어폰과 mp3를 놔두고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타블렛으로 카페에 대한 정보를 찾고 어떤 식으로 꾸밀지 한참을 생각하고 있는데 현주의 머리가 다 된 거 같았다.

“저, 저기 다, 다 됐는데…….”

현주는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더 어울렸다. 그냥 검은색 롱 웨이브 러블리 펌이었다면 평범했을 지도 모르나 카키 블론드로 염색을 한 게 완전 최고의 선택이었다. 흰 얼굴과 카키 블론드의 아름다운 색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와, 제가 생각했던 거 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데요.”

“그, 그런가요?”

감탄을 하며 말하는 시황의 말을 듣자 현주는 또 몸이 찌릿찌릿했다. 솔직히 머리가 끝나고 자신을 봤을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인지 알았다. 생각과 다르게 머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여기 메이크업도 해주나요?”

“물론이죠. 고객님.”

시황이 말하자 옆에 있던 미용사가 바로 대답한다.

“그러면 머리스타일하고 어울리는 청순한 스타일의 메이크업도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미용사가 다시 현주를 데리고 가더니 다른 직원이 와서 메이크업을 해준다. 평범하던 현주의 얼굴이 청순가련한 모습으로 변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루만큼 예쁜 건 아니었지만 뿔테를 벗고, 머리 스타일과 풀 메이크업의 조합으로 이전의 어리숙하던 모습과 완전 달라졌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메이크업과 머리를 한 현주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렌즈를 맞춰주고 어울리는 옷을 사 입혔다.

“사, 사장님 이건 너무 비싼데요.”

“괜찮아요. 대신 앞으로 지금 입는 옷 말고 제가 사준 옷만 입으세요. 알겠죠?”

“네, 네.”

현주는 지금 꿈을 꾸는 건지 착각이 생길 정도였다. 지금 이렇게 시황이 해주는 장면은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상 중 하나였다. 그렇데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다리에 딱 달라붙는 민트색의 스키니 팬츠와 단화, 흰색의 쉬폰 블라우스를 입은 현주는 아침에 만났을 때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귀엽고 청순한 얼굴과 다르게 섹시한 몸매가 가져다주는 미묘한 매력은 시황이 본 그 어떤 여자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거였다. 얼굴은 평범할지 모르나 가슴덕분에 확실히 매력이 가득했다.

“저녁 먹고 헤어지죠.”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었다. 하루 종일 현주를 데리고 쇼핑을 하고 주변 카페를 돌아다녔더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아, 그, 제가 너무 죄송해서…….”

“앞으로 계속 같이 일할 사이인데 죄송할 게 뭐있어요. 초밥 드실래요?”

“네? 네. 아, 아무거나 괜찮아요.”

시황은 자신이 말만 걸면 당황해하는 현주를 보며 피식 웃고는 초밥집으로 데리고 가서 식사를 했다.

“남자 친구 사귀어 본 적 있으세요?”

시황은 초밥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아, 아니요.”

“그래요? 저도 여자 친구 사귀여 본 적 없는데. 하하.”

거짓말은 아니다. 섹스를 하는 상대는 많았지만 아직 여자 친구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또 미묘한 게 시황이 고백하면 고민조차 안 하고 허락해줄 여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이었다. 그냥 순 말장난일 뿐이지만 그런 게 또 묘하게 여자를 안심시키기 마련이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은 오후 2~3시 쯤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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