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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케즈론
다행히 목소리가 떨려나오거나 막히지 않았다. 옛날부터 이런 감정은 많이 느껴봤기 때문에 익숙하다.
“네. 일반 생두랑 섞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특별한 맛을 내게 할 생각이에요.”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은 그냥 공짜고 일반 생두 사는데 돈이 더 많이 들었지만 그런 거 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커피 값이 너무 비싸질 거 같은데요.”
“싸게 공급 받는 곳이 있어서 괜찮아요. 그래도 가격이 가격이다 보니 아메리카노 잔당 6000원정도 받을 생각이에요.”
시황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지만 현주가 생각하기에는 6000원이라는 가격은 지나치게 비쌌다. 물론 블루 마운틴이 포함이 된 걸 생각하면 싸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일반 카페가 아메리카노 한 잔에 4000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인 걸 생각하면 가격경쟁력에서 너무 밀렸다.
“일단 한번 커피 만들어 보세요. 가격이야 맛보고 조정하면 되니까요.”
현주가 가격을 듣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시황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커피 맛을 보지 않았으니 저런 걱정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한번 제대로 된 커피를 시음해보면 6000원도 싸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네. 6:2:2로 해서 만들어 볼게요.”
현주가 일반 생두와 블루 마운틴, 그리고 시황이 자랑한 특별한 생두를 섞어 예열이 된 로스터기에 집어넣었다.
“온도가 너무 높게 되어 있는데 일부러 이렇게 설정하신 거에요?”
“네? 아니요.”
“그러면 먼저 평범하게 해서 만들어 볼게요.”
현주는 능숙하게 온도를 조절하고 생두를 볶기 시작했다. 마치 팝콘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2번이 나자 원두를 빼내 식힌 다음에 그라인더로 갈아 커피 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뽑았다.
시황이랑 다르게 너무나 능숙하고 빠른 움직임이었다. 보기엔 어리숙해 보여도 행동까지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다.
“에스프레소를 뽑을 때는 25초 동안 1온스, 그러니까 30ml 정도를 추출하는 게 느끼함과 잡내가 없어 깔끔한 맛이 돼요. 보시면 여기에 크레마가 4mm정도 있죠? 이정도면 꽤 괜찮은 맛이 날 거 같아요.”
현주가 건네주는 커피 잔을 받아보자 갈색의 크림이 예쁘게 나있었다. 자신이 만들었을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신기하다.
시황은 조심스럽게 향기를 맡은 뒤에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쓰긴 했지만 진하면서도 부드럽고 달콤하다. 굉장한 풍미가 입안을 채운다. 오자마자 이런 커피를 뽑아내다니 감탄이 나온다. 확실히 전문가는 다르다.
커피는 현주에게 맡기면 별 문제 없을 거 같다. 커피는 해결된 거 같은데 현주 자체가 문제였다. 저번에 만났을 때와 별 다를 거 없는 저 후줄근한 차림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걱정이다.
“이야, 굉장하신데요? 전 계속 실패만 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제 손이 문제였네요. 한번 드셔보세요.”
시황이 커피잔을 건네자 현주는 시황의 입이 닿지 않은 곳으로 조금 마셨다. 입 안 가득 기품있는 풍미가 퍼진다. 은은한 달달함과 부드러움은 이때까지 마셔본 그 어떤 커피와도 비교가 되지도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맛이다.
“어, 어떻게 이런 맛을 내죠? 블루 마운틴을 제가 마셔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덤덤한 시황과 다르게 현주는 경악을 하고 있었다. 매니아인 만큼 맛있다는 커피는 다 마셔봤지만 이 커피는 그것들과 비교를 거부했다. 이런 커피가 6000원이라니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현주 씨 능력이 좋아서 그런 거죠.”
시황이 간단히 말했지만 현주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일반 생두와 블루 마운틴을 섞어서 이런 맛을 낼 리는 없고 아까 특별한 맛을 내준다는 생두가 비밀인 게 분명했다. 그 생두로만 만든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는 욕망이 계속해서 생겨난다.
현주는 시황의 눈치를 살짝 살폈는데 눈이 마주쳐버렸다. 당황해서 바로 눈을 피했다. 괜히 긴장이 된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에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시황이 묻자 현주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저렇게 잘생기고 괜찮은 남자랑 대화하는 거 자체가 힘든 일이다.
“바리스타 옷 입고 커피 만들어 보실래요? 미리 연습해두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어때요?”
“아, 네. 괜찮아요.”
“잠시 만요. 옷 가져올게요.”
시황은 옷장에서 로힘 카페의 바리스타 유니폼을 꺼내 현주에게 건네주었다. 먼저 옷을 입혀봐야 상태가 어떤지 확인할 수 있을 거 같다.
“오빠, 저도 입고 싶어요.”
현주는 아루를 슬쩍 쳐다봤다.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거 같긴 한데 동생이 오빠한테 존댓말을 쓰는 건 처음 봤다. 만화에서 보면 부잣집 형제나 남매들은 존댓말을 쓰던데 시황도 그런 부잣집 사람일까?
“그래? 그럼 아루는 이거 입어봐.”
시황이 아르바이트생들이 입는 유니폼을 건네주자 아루가 기뻐하면서 살펴본다. 시황은 아루를 아르바이트생으로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조금 예쁜 여자가 아르바이트를 해도 대쉬를 하는 남자가 많은데 아루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얼마나 많은 남자가 추근거릴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옷은 어디서…….”
“2층에서 아루랑 같이 갈아입으세요. 전 다른 거 좀 하고 있을게요.”
“언니, 이쪽으로 가요.”
아루는 현주를 데리고 2층 침실로 갔다.
현주는 슬쩍 주변을 둘러봤는데 침대가 하나뿐이었다. 설마 동생하고 한 침대에서 자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야릇한 상상이 떠올랐다. 매일 밤 아루가 시황에게 봉사를 해준다든가…….
“언니.”
“어맛!”
어느새 현주는 시황이 아루를 거칠게 유린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루가 부르자 깜짝 놀라 소리를 쳤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거 마냥 얼굴이 화끈해지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침대 하나만 있는 거 보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오빠와 동생 사이인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있겠는가? 너무 민망하다.
“옷 안 입으세요?”
“네. 이, 입을 게요.”
현주는 혹시 몰라 계단 쪽을 슬쩍 봤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후줄근한 옷을 벗고 시황이 건네준 바리스타 옷으로 후다닥 갈아입었다. 아루와 같이 있기는 하지만 남자가 있는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으니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너, 너무 짧은데.”
살아생전 미니스커트를 한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현주는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고 타이트한 A라인 스커트를 입고 당황했다. 노출도 노출이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과 이런 스타일 좋은 옷이랑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았다.
현주는 옷을 다 입고 벽에 걸린 전신 거울에 비춰봤다. 생각대로였다. 예전에 바리스타 실기를 쳤을 때 입었던 옷과 비교도 안 되게 세련되고 멋진 이 옷은 자신과 너무 안 어울렸다.
“예쁘다.”
옆에 온 아루가 카페 유니폼을 입고 거울에 비쳐보는 걸 슬쩍 훔쳐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과 다르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연예인이 영화나 드라마를 찍기 위해 카페 유니폼을 입은 느낌이다. 유니폼의 디자인자체도 영화에 나올법하게 세련되어 아루의 얼굴과 너무 잘 어울렸다. 왠지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언니, 내려가요.”
“네.”
현주는 부끄러워하며 시황에게 갔다.
“오, 역시 잘 어울리네요.”
“네?”
현주는 뭔가 잘못 들었나했다. 잘 어울릴 리가 없는데…….
“오빠, 저는요?”
“아루도 예뻐.”
시황의 말에 아루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현주 씨.”
“네?”
“옷이 잘 어울리시기는 한데. 머리 스타일이랑 조금 안 어울리거든요.”
“아, 네.”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마도 못생긴 자신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저런 말을 하는 거 같다. 하지만 안다. 이런 세련된 옷과 자신이 잘 안 어울린다는 걸.
“머리를 좀 자르셔야 될 거 같은데…….”
“네. 나중에 가서 자를게요.”
“아니요.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미용실에 가실래요?”
“네? 가, 같이요?”
현주는 당황스러웠다. 같이 간다니?
“네. 그러는 김에 시장조사도 하게요. 싫으세요?”
“아, 아니요. 알겠습니다.”
시황은 다시 한번 현주를 훑어봤다. 생각대로 후줄근한 옷을 바꿔 입으니 상당히 괜찮아졌다. 특히 C컵이라는 가슴을 가진 몸매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매력과 약간 어리숙하고 순진하게 생긴 얼굴이 사이의 갭이 꽤나 좋았다.
현주 스스로는 모르는 거 같지만 짧은 스커트에 가슴이 은근히 부각되는 셔츠를 입히니 모델 못지않은 굉장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얇고 가는 다리는 아루와 비교도 안 되게 길쭉했고 허리도 개미만큼이나 잘록하다.
단순히 얼굴만으로는 그렇게 예쁘다는 느낌이 들지 않지만 모델과도 같은 몸매와 조화가 되니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후줄근한 옷이 이렇게 아름다운 몸매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어떤 식으로 현주를 코디하고 바꿔야할지 그림이 그려졌다. 대충 기르기만 한 머리를 깔끔하게 자르고 청순한 메이크업까지 한다면 첫눈에 감탄이 나오게 변할 거 같다.
“몰랐는데 현주 씨 몸매가 상당히 예쁘시네요. 각선미도 좋으시구요.”
“네?”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아니요.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현주는 시황의 말에 볼을 붉혔다. 너무 당혹스러웠다. 몸매가 예쁘고 각선미가 좋다는 말은 난생처음 들어봤다. 단순히 립서비스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혹시 놀리는 건가 싶어 시황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거짓 따윈 하나도 없다는 듯 너무나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 다시 커피 만들어 봐요.”
“네, 네. 그, 그럴게요.”
현주는 허둥거리면서 다양한 로스팅을 하면서 에스프레소를 뽑아냈고 시황은 일일이 맛을 음미했다.
“이 특별한 생두는 양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딱 지금의 비율을 유지했으면 하는데 어떨 거 같아요? 6000원 주고 마실만 할까요?”
“그럼요! 6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 제가 마신 그 어떤 커피보다 맛있는 걸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역시 예상대로 맛을 본 현주는 부정적이던 아까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매혹적인 맛의 커피였으니까.
그 뒤로 로스팅의 시간을 달리하면서 최적의 맛을 뽑아내기 노력했고 어느정도 맛이 안정화 된 후에 에스프레소가 아닌 카푸치노와 카라멜 마끼야또 등 다양한 커피를 일일이 시음했다.
맛도 맛이지만 고급스러운 풍미가 제일 만족스러웠다. 이 커피를 마시고 반하지 않는 여자는 없으리라.
“오늘 고생하셨어요. 현주 씨.”
“아, 아니에요.”
어느덧 오후 6시나 되었다.
“그러면 내일도 9시 30분 쯤에 대학교 정문 앞에서 보도록 해요. 괜찮죠?”
“네. 괜찮아요.”
시황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현주를 뽑은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약간 어리숙한 태도만 빼면 일하는 거 자체는 빠릿빠릿하고 이해도 빨리해서 답답한 점이 전혀 없었다. 이제 현주에게 코디만 해주고 알바생만 뽑으면 카페 준비는 끝이다.
시황은 바로 인터넷에 구인광고를 올렸다. 카페 오픈까지 10일 남았다.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그리고 쿠폰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선작 만이 넘었네요. 제 소설을 봐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전에 말한대로 연참을 하려고 하는데... 사실 어제 일이 있어서 비축분을 전혀 못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신에 금토일요일에 3~4개편씩 올리도록 할게요. 아마 가능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