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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시작
이건 일종의 확인이기도 했다. 만약 은지가 자신에게 마음이 전혀 없다면 먹히지 않을 테고 약간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꼭 은지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 조급하다든가 안달이 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은지에게 관심이 가는 건 처음으로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 상대라 그렇지 않나 싶다. 만약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되면 은지가 자신에게 정말 마음이 없다는 뜻과 다름없으니 그땐 정말 은지를 놓아줄 생각이다.
“오빠는 이제 4학년이세요?”
지숙이 묻는다.
“응. 지숙이는 3학년?”
“네.”
“경영과 수업 어렵지? 저번에 경영의 이해라는 교양 들어봤는데 엄청 어렵더라.”
“그럭저럭 할 만해요. 근데 전 영어가 더 어렵더라구요.”
시황은 맥주를 마시면서 일부러 지숙이하고만 얘기했다. 틈틈이 은지의 눈치를 살폈지만 별다른 기색 없이 고기만 먹는다. 이런 식으로 한참동안 지숙이 따라주는 술만 마시면서 은지가 말을 걸어도 건성건성 대답했다.
그러자 은지가 슬슬 시황의 눈치를 조금씩 보기 시작한다.
맥주를 몇 잔이나 마셔서 그런지 취기가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신은 또렷했기 때문에 시황은 은지의 표정을 보고 그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숙이는 남자 친구 있지?”
“네? 제가요?”
갑작스런 시황의 말에 지숙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지숙이, 너 인기 많을 거 같아서.”
“오빠 취하셨죠? 농담하지 마세요.”
말은 그래도 좋아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빈말이라도 저런 말 들어서 기분나빠할 여자는 없다.
“농담은 아니고 그냥 그런 거 같아서.”
그렇다고 여기서 더 나가 지나치게 칭찬하는 건 좋지 못하다. 자칫 잘못하면 바람둥이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는데다, 방금 한 말이 단순한 립서비스처럼 느낄 가능성이 생긴다. 칭찬은 거기에 담긴 진정성이 매우 중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지나친 칭찬은 오히려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자.
“전 오빠가 인기 많을 거 같은데요. 여자 친구 있는 거 아니에요? 있을 거 같은데.”
이 말을 위해서 시황은 마음에도 없는 인기 얘기를 꺼낸 것이다. 딱히 예쁜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게 생긴 지숙이 인기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하여튼 지숙이 저 말을 해줘야 아까 생각했던 계획의 진도가 나간다.
“여자한테 인기도 없고 여자 친구도 없어. 사실 나 아직 모솔이거든.”
“진짜요?”
지숙은 설마 시황처럼 괜찮게 생긴 남자가 여자 친구 한 번 안 사겨 봤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시황은 키가 약간 작긴 했지만 얼굴이 괜찮게 생긴데다 상당한 매력이 있었다. 만화책에 나오는 도련님처럼 피부도 하얀데다 잡티하나 없이 깨끗한 것과 착하고 순수한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호감을 갖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지숙은 아무 여자나 후리고 다니는 바람둥이 같은 스타일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그래서 은지에게 시황에 이것저것 정보를 캐물어보니, 아직 여자 친구도 없고 엄청 착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은지에게 한번 만나고 싶다고 자리를 마련해 달라하자, 은지가 이상할정도로 적극적으로 자리를 마련해 줬는데 그게 바로 이 소고기 파티였다.
서로간의 생각이 엇갈린 기묘한 저녁식사다. 은지는 자신이 찬 시황에게 미안해 지숙을 연결시켜 주려고 했고, 지숙은 시황이 마음에 들어 사귀고 싶었다. 그런데 시황은 그런 지숙과 은지의 생각을 단번에 간파하고 다시 한번 은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계책을 꾸미고 있는 중이었다.
“응. 그런데 얼마 전에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가 있어서 고백했는데, 차였어. 하하.”
시황은 말을 하면서 슬쩍 은지를 봤다. 그러자 은지가 움찔한다.
“그러면 이때까지 좋아한 여자가 한 명도 없었어요?”
“옛날 얘기하려니까 부끄럽다. 맞아. 옛날에는 내가 입이 튀어나와 얼굴이 못생기다 보니까, 여자한테 많이 소심하게 대했거든. 지금이야 교정해서 옛날보단 낫긴 해도 소심한 성격은 그대로라 우물쭈물하다 겨우 용기내서 고백했는데…….”
시황은 은지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걸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만전을 가해야했다.
“그 여자는 왜 찼데요?”
지숙의 말로 시황은 은지가 자신과의 일을 지숙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걸 확실히 알아차렸다.
지숙은 흥미진진하고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사귀는 것도 아니고 차인데다 이때까지 모솔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여자들은 모솔들은 다 이유가 있는 거라면서 싫어했는데, 그건 얼굴이나 성격에 문제가 있을 때나 통하는 말이지 시황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유가 있겠지.”
시황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유를 시시콜콜하게 밝히지 않은 건 은지의 입장을 생각해서다. 은지보고 들으라고 한 얘기는 맞지만, 이 대화의 초점은 ‘내가 내성적이고 소심했는데 난생 처음, 첫 눈에 반한 여자가 있다.’였다. 그만큼 은지를 좋아했다는 식으로 마음을 어필하기 위한 건데, 괜히 더 깊이 말하다 은지가 기분 나빠한다면 이 계획은 여기서 끝이다.
“이제, 그런 여자는 잊으세요. 계속 생각하면 괴롭잖아요.”
지숙이 시황에게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생각처럼 잘 안되네. 첫사랑이라 그런가봐.”
왜 아까부터 시황의 자신에게 건성건성 대답하면서 차갑게 대했는지 알아차린 은지는 당황했다. 차고 난 이후에도 평소와 별로 다르지 않아 다 털어낸 걸로 생각했는데, 시황이 자신을 저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을지 몰랐다. 물론 저런 모습을 봤다고 마음이 시황에게 기운 건 아니지만 확실히 전과 다르게 보이긴 했다.
10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여자는 그만큼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약했고, 은지도 마찬가지였다.
시황은 당황해하는 은지를 보면서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이쪽저쪽 흔들리는 갈대 같다가도 천년이 넘은 고목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다. 고백했을 때 고민조차 하지 않고 거절한 은지의 모습에서 시황은 후자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정도까지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애초에 시황은 지숙을 통해 은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리고 싶었을 뿐이라 아직도 그 여자를 못 잊는다는 말을 했었다. 지숙을 꼬실 생각이 있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과 다르게 지숙은 그런 시황의 말을 듣고 시황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저렇게 애틋한 사랑을 할 줄이야! 착하고 선하게 생긴 얼굴처럼 사랑도 너무 착하게 했다. 바람둥이 같지 않고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야 말로 지숙의 이상형이었다. 물론 그 이상형에 얼굴은 기본 베이스로 들어간다.
과거에는 그렇게 여자와 사귀고 싶어도 불가능했었는데 지금은 별 의도도 안 했음에도 여자가 막 호감을 표한다. 얼굴과 자신감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이다.
“오빠, 술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에요?”
“아직 괜찮아.”
시황이 계속 맥주를 들이키자 지숙이 걱정스럽게 말한다.
그만큼 괴롭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마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마셔버려 아까와 다르게 상당한 취기가 올라왔다.
시황은 지숙과 얘기하면서 은지를 슬쩍 쳐다보자 은지는 무슨 생각에라도 잠긴 듯 술만 홀짝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고민한다는 거 자체가 긍정적인 변화였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건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는 걸 뜻했다.
맥주를 조금 더 마시자 갑자기 정신이 흐려졌다. 술이 워낙 약하다보니 맥주만 마시고 취해버린 것이다. 시황은 이제 술을 그만 마시기로 했다. 더 이상 마시면 정말 정신을 잃을 거 같았다.
어느새 고기를 다 먹고 간단한 대화를 하는 자리로 변했다. 은지가 말이 없어 시황은 계속 지숙과 얘기를 나눴는데 의외로 지숙과 말이 잘 통했다. 하는 말마다 잘 맞장구를 쳐주다 보니 대화하는 재미가 있었다.
“잠깐만,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네.”
그런데 자꾸 술 때문에 정신이 흐트러지려고 하자 시황은 화장실에 들어가 아공간에서 라민차를 꺼내 마셨다. 반신반의로 마셨는데 몸에 활력이 샘솟고 정신이 순식간에 또렷해졌다. 체내에 흡수된 알코올이 혈액 속으로 들어와 온몸으로 퍼지면서 뇌에 이르러 정신을 교란시키는데 라민차는 이런 술에 대한 해독작용도 있었던 것이다.
생각 외로 효과가 굉장히 좋자 숙취해소용 음료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황은 또렷해진 정신으로 가볍게 세수를 하고 벽에 걸려있는 수건에 얼굴을 닦았다.
약간 젖은 그 수건에서 달콤한 향기가 난다. 냄새에도 굉장히 민감한 시황인지라 그 향기만으로도 흥분해버렸다.
“안 되지.”
조금 더 냄새를 맡아볼까 하다가 왠지 너무 변태 짓인 거 같아 고개를 흔들고 거실로 나갔다. 거기엔 어느새 술에 취한 은지가 식탁에 엎드려서 졸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마시더니 갑자기 이러네요. 술도 잘 못하면서…….”
지숙이 은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깨워서 옮겨야겠다.”
“은지야, 일어나봐. 침대에 가서 자.”
“나 아, 안 취했어.”
지숙이 은지를 흔들어 깨우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은지가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안 취했다고 한다.
“알았으니까 올라가서 자.”
“으응.”
꾸역꾸역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걷는 은지를 지숙이 부축해 2층으로 데리고 갔다.
시황은 자리에 앉아 시계를 봤다. 10시.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은지도 잠이 들었으니 이제 슬슬 집에 가봐야 할 거 같았다.
“오빠 죄송해요.”
“아니야. 네가 뭐가 미안해. 일단 이거부터 치우자.”
“고마워요. 오빠 사실 혼자 치우려면 엄청 힘들거든요.”
식탁은 난장판이었다. 시황과 지숙은 정리를 하면서 부엌에 불판하고 식기들을 갖다 두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아니에요. 손님이신데 어떻게 설거지까지 시켜요. 제가 할게요. 이리 주세요.”
시황이 부엌에서 물을 틀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자 지숙이 가까이 오더니 수세미를 빼앗아 갔다. 그런데 몸이 살짝 접촉하는 순간, 아까 화장실의 수건에서 맡았던 그 달콤한 향기가 지숙의 몸에서 은근히 풍겨 나왔다.
그 냄새에 갑자기 발기를 해버렸다.
정력에 투자한 6포인트는 정말 엄청났다. 예전에는 아루가 만지고 빨아줘야 서던 성기였는데 이제는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지숙의 향기만으로 서버릴 정도로 정력이 넘쳐났다. 하루 1회 섹스가 아니라 2회도 거뜬할 기세다.
“그러면 난 거실을 치울게.”
“네. 고마워요. 오빠.”
지숙이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했는데 갑자기 몸매가 눈에 들어온다. 159cm의 크지 않은 키인데도 은근히 다리가 길고 허리가 잘록했다. 얼굴에 비해 몸매가 굉장히 뛰어났다. 거기다 짧은 반바지와 가벼운 티를 입고 있어서 상당히 야릇한 모습이었다.
은근히 지숙이 마음에 든다. 처음엔 평범하게 생겨서 크게 관심을 안 뒀는데 대화도 잘 통하고 나름의 매력이 가득했다.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계속 얘기해보니 매력이 느껴지는 케이스였다.
시황은 거실 청소를 다하고 지숙의 옆으로 갔다.
“거실 다 치웠어. 설거지 도와줄까?”
“괜찮은데…….”
“도와줄게.”
시황은 수세미 하나를 더 들고 설거지를 했다. 일부러 지숙의 가까이 붙었는데 지숙도 피하지 않는다.
설거지를 하면서 타이밍을 노리다가 시황은 지숙이 원하는 그릇을 같이 집어 들었다. 손이 닿는다.
“미, 미안.”
시황은 부끄러워하면서 손을 놓았다.
유미한테 썼던 수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예 대놓고 손을 잡은 거였고 이건 남자가 부끄러움을 느껴 화들짝 놀란다는 게 포인트였다. 여자를 전혀 모르는 숙맥인 척 하는 게 중요하다.
“괘, 괜찮아요.”
갑자기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다. 처음 만난데다 처녀인 지숙과 섹스를 하기는 힘들 테지만 가능한 많은 스킨십을 하고 싶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깔끔하게 정리한 시황과 지숙은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안마해줄까?”
“네? 안마요?”
그저 지숙의 몸을 만지고 싶었다.
“응. 내가 안마를 좀 배웠거든.”
“알겠어요.”
지숙이 약간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손금을 봐준다든가 안마를 해준다는 건 남자가 여자 몸을 만지고 싶어 하는 대사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순진하고 착해 보이는 시황이 그런 의도로 말은 한 거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허락했다.
시황은 소파의 앉은 지숙의 뒤로 돌아가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바로 마력 회로를 가동시켜 치료능력을 발현했다. [하]의 맨 아래에 놓고 약하게 지숙의 어깨를 주무른다.
“괜찮아?”
“으음……. 네. 오빠 안마 정말 잘하시네요.”
지숙이 깊은 숨을 한번 내쉬며 말한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굉장히 기분 좋은 감각이 생겨났다. 시황은 여자의 몸을 만지고 싶어 안마를 해준 게 아니라 자신이 피곤해 하는 걸 보고 안마를 해준 거라는 확신이 섰다. 역시 생긴 거만큼 착하고 상냥하다.
지숙의 표정을 본 시황은 [하]의 중간쯤에 놓고 어깨를 주물렀다.
“어흑…….”
“왜? 아파? 조금만 참아 어깨가 많이 뭉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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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선작, 코멘트, 쿠폰 감사해요.
원래라면 한 편 더 올릴려고 했는데 지금 너무 피곤해서 이제 겨우 다 썼네요..ㅜㅜ
오늘 일찍 자고 일어나서 올리도록 노력해볼게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