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8 ------------------------------------------------------
라롤린
너무 힘들어 드러눕듯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통증은 다 사라졌지만, 흔히 하는 말로 진이 빠져 움직이기도 싫었다.
걱정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콘즈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약간 움직일 힘이 생기자 아공간에서 라민차를 꺼내 마셨다. 요즘은 아루가 집안일을 다하기 때문에 라민차를 끓여서 항상 식탁위에 올려두었다. 마치 돈벌어오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부인 같이 말이다.
힘이 다시 솟아나자 마기를 끌어올려 마력 회로를 가동시켰다. 두 개의 마력 회로가 동시에 가동되었지만 순식간에 어떤 식으로 마력 회로를 켜고 끄는지 알 수 있었다. 의식적으로 방금 각인시킨 마력 회로만 구동했다.
시야 왼쪽 아래에 반투명한 조절바들이 생겨났다. 처음 각인시켰던 예술계 마력 회로와 다르게 특별한 명칭은 없이 약, 중, 강으로 나뉜 조절바가 있었는데 이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책에 설명이 나와 있어요.”
콘즈에 말을 듣고 책을 보자 대략적인 설명이 적혀 있었다.
[병에 따라 수치를 조절바를 선택하면 된다. 몸이 뻐근하고 피로해 근육통이 생긴 수준이라면 약을 선택하고 두통, 치통, 생리통에는 중, 허리 디스크나 폐렴, 위궤양 등에는 강의 수치를 조절해 회복할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먼서 각인 시켰던 예술계 마력 회로와 별로 다른 것도 없었다. 보통의 게임시스템처럼 간단하고 조작하기 편했다.
의자에 앉은 시황이 소환단을 만지면서 고민했다. 마력 회로를 각인했으니까 이제 소환단을 먹고 마기를 늘리고 싶었다.
분명 그러고는 싶었다. 그런데 아까 전의 고통을 다시 반복될 거 같아 선뜻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잠깐 아픈 거 참고 그냥 먹겠다.’ 라고 쉽게 말하겠지만 직접 아파보면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할 것이다.
“이거 그냥 먹어도 돼?”
시황은 소환단을 가리키며 콘즈에게 말했다.
“그냥 먹으면 영약의 기운을 다 흡수하기 어려워요. 시황 님께서 3레벨이 되시면서 연공실과 수련실이 개방됐으니까, 연공실에 직접 가셔서 드시면 영약의 기운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어요.”
“그렇단 말이지.”
잠깐 고민하던 시황은 소환단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가자. 하는 김에 오늘 다 해버리게.”
“네!”
콘즈는 시황을 데리고 연공실로 갔다. 케즈론의 성에 무엇이 있고 구조가 어떤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3레벨밖에 안돼서 그런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았다.
연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한쪽에는 복잡한 회로도가 그려진 검은색의 평평한 돌과 반대편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차가운 한기를 흘리고 있었다.
“저 흑석 위에서 영약을 먹고 운기조식을 하시면 돼요.”
시황은 콘즈가 말한 흑석 위에 앉아 가부좌를 취했다.
딱딱할 거라 생각했는데 쿠션에 앉은 것처럼 푹신푹신했고 흑석에서 은은한 열이 피어나 엉덩이가 뜨끈해졌다.
아공간에서 소환단을 꺼냈다. 목함을 열자 알싸한 약초향기가 퍼져 나왔다. 금박을 입힌 듯 표면이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후우…….”
아플 걸 알고 있으니 긴장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크게 숨을 내쉬고 소환단을 빠르게 입안에 집어넣고 꼭꼭 씹었다.
무슨 약초를 집어넣은 건지 너무 써서 순간적으로 뱉어버릴 뻔 했다. 하지만 억지로 참고 계속 씹자 나중에는 소환단이 액체로 변해버려 물을 삼키듯 꿀꺽 마셔버렸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소환단의 액이 가슴부근에 도달하자 엉덩이에서 올라온 열기와 소환단의 액이 만났다. 그리 그 순가, 거대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이 얼마나 대단한지 시황은 전혀 손을 쓸 수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그 기운을 제어해 하단전에 있는 마기와 융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기운이 어찌나 흉포한지 시황의 말을 듣기는커녕 자기 멋대로 온몸을 사방팔방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혈맥을 통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이 기운들은 무법지대에서 설치는 깡패들 같았다. 혈도를 막고 있는 벽을 망치와 도끼로 때려 부수듯 가차 없이 찢어발겼다.
팔이며 다리며 할 거 없었다. 온몸으로 뻗어있는 좁은 혈맥을 거침없이 들락거렸다.
혈도를 막고 있는 벽 하나 뚫는데도 엄청난 고통을 느꼈던 시황이었는데 온몸의 혈도가 뚫어버리면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의지와 다르게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렀고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시황 님 기운을 제어하셔야 돼요! 그대로 있으시면 백회혈까지 기운이 올라가 백치가 될지도 몰라요!”
저 먼 곳에서 말하는 듯 콘즈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고통 때문에 사고력이 많이 떨어져 저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기운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1년이 겨우 넘는 양의 마기를 제어해오던 시황이 갑자기 들어온 10년이나 되는 기운을 제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온몸에 있는 혈도를 뚫은 거대한 기운이 혈맥을 이리저리 방황하다 저절로 하단전에 모여들어 마기와 융화되기 시작했다.
“휴우…….”
고통이 사그라지고 기운이 자리를 찾아가 마기로 변하자 시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에는 단순히 고통을 참아야겠다는 걸 넘어 이대로 있으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까지 느꼈었다.
몸이 전혀 제어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옥에 있는 듯한 고통을 계속해서 느낀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시황 님! 끝난 게 아니에요! 마력 회로를 가동시키세요!”
갑자기 콘즈가 다급하게 외쳤고 잠잠할 줄 알았던 기운이 마기로 변하자마자 성난 황소처럼 머리를 향해 쏜살같이 치달렸다.
찰나의 순간! 위급함을 느낀 시황은 콘즈의 말대로 온 힘을 다해 마력 회로를 가동했고 곧바로 조절바를 최대로 올렸는데 그 순간, 광폭한 마기가 백회혈을 찢고 날뛰었다.
지금까지도 고통스러웠지만 백회혈이 찢기는 순간의 고통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라 시황은 그대로 바닥에 쓰려져 기절해버렸다.
이대로 있으면 제어가 되지 않은 마기 때문에 뇌가 망가져 백치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데 그때 시황이 가까스로 가동시킨 마력 회로에서 치료능력이 발동되었고 풀가동된 마력 회로는 말도 안 될 정도의 마기를 소모하면서 파괴된 뇌세포를 재생시키기 시작했다.
흉포하게 날뛰던 11년의 마기가 소모되기까지 딱 11초가 걸렸다.
모든 마기가 사라지자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시황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1년의 마기밖에 컨트롤할 줄 모르면서 영약의 기운을 전부 흡수하겠다고 흑석 위에서 운기조식을 한 게 문제였다. 만약 그냥 삼켰다면 대부분의 기운이 흩어지고 시황이 컨트롤 가능한 1년여 정도의 기운만 흡수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기절을 하기는 했지만, 시황은 다치지 않고 10년에 이르는 기운을 전부 흡수해버렸다. 거기다 몸에 있는 주요 혈맥을 넓히고 혈도를 다 뚫어버렸으니 열심히 수련만 한다면 어떤 행성에 가더라도 제 한 몸 지킬 능력을 가질 정도는 되었다.
만약 시황이 치료계 마력 회로가 아니라 다른 것을 선택했다면 그대로 모든 뇌세포가 파괴되어 백치가 되거나, 반신불수가 되었을 것이다. 우연찮게도 부모님을 치료해주기 위해 고른 마력 회로가 시황을 살린 것이다.
“에구, 아루 님을 불러와야겠다.”
콘즈는 문을 소환해 아루를 불렀다. 시황의 오피스텔은 관리자가 없는 곳인지라 콘즈가 들어갈 수 없었다.
“아루 님, 시황 님께서 쓰러지셨어요.”
“네?”
문 안 쪽에서 외치는 콘즈의 말에 깜짝 놀란 아루가 달려왔다.
검은 색의 돌 위에 죽은 듯이 쓰러져있는 시황을 본 순간 아루는 울음을 터트렸다.
“오빠, 오빠!”
아루의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쓰러져 있는 시황을 보자 걱정과 두려움에 눈물부터 나온 것이다.
“아루 님, 시황 님께서는 조금 있다가 깨어나실 거에요.”
콘즈가 말했지만 아루는 시황을 부둥켜안고 크게 소리 내어 울더니 갑자기 시황의 입에 입을 맞추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저번에 본 영상에서 이렇게 쓰러진 사람을 구할 때 인공호흡을 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호흡을 하는 방법도 모르고, 그저 다물고 있는 시황의 입에 바람만 불고 있었다.
이건 인공호흡이 아닌 단순한 입맞춤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이런 아루의 정성 때문일까?
쓰러진지 20분쯤 지나서야 시황이 눈을 떴다.
눈을 뜬 시황에게 제일 먼저 보인 건,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아루가 자신의 입에 바람을 불어 넣는 장면이었다.
시황은 단번에 아루가 뭘 하는지 깨달았다.
“으으…….”
이미 정신이 들었음에도 시황은 정신이 드는 척을 했다.
“오빠!”
“아, 아루야.”
시황이 정신을 차리려고 하자 아루는 더 열심히 입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고마워. 아루 덕분에 살았어.”
“오빠, 오빠…….”
이제 정신을 차렸다는 듯 시황이 일어나 앉으면서 아루에게 말하자 아루가 시황을 안고 한참을 더 울었다. 그런 아루에게 시황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등을 두드려주는 것뿐이었다.
“이제 괜찮으니까, 울지 마.”
“네.”
시황의 말에 아루가 훌쩍 거리면서 말했다.
피식 웃은 시황은 아공간에서 휴지를 꺼내 아루의 콧물과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뻐근한 몸을 풀었다. 하단전이 텅 비어있는 게 조금 이상했지만 마기야 다시 모으면 되는 거고, 다친 곳이 없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아까 그 상황에서 어떻게 된 건지 콘즈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신의 품안에서 울고 있는 아루를 보니 그건 내일로 미루고 일단 오피스텔로 돌아가야 할 거 같았다.
“콘즈야, 난 갈게.”
“네.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는 콘즈를 뒤로하고 아루와 함께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아루야, 이제 괜찮아.”
아루는 시황을 껴안고 놓아주질 않고 2층으로 데리고 갔다.
“오빠 침대에 누우세요. 제가 완전히 낫게 해드릴게요.”
아루는 시황을 침대에 눕히더니 그 위에 올라타 입을 맞추고는 계속 인공호흡을 하듯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런 아루가 너무 귀여워 시황은 입을 벌리고 바람을 불어넣는 아루에게 혀를 집어넣었다. 인공호흡으로 시작했던 입맞춤이 어느새 끈적끈적한 키스로 변했고 자연스럽게 섹스로 이어졌다.
방금 전의 일 때문일까? 시황과 아루는 평소보다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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