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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레벨을 위하여!
직원이 추천해주는 DSLR과 렌즈까지 구입하고 매장을 나올 때까지 유미는 부끄러움에 말을 못했다.
“유미야. 미안해. 기분 나빴어?”
“네? 아, 아니에요. 그냥……. 약간 당황해서요.”
미안한 표정을 지은 시황이 묻자 유미는 우물우물하며 말했다.
“미안해. 유미야 괜히 거기서 아니라고 하면 설명이 길어질 거 같아서 그랬어.”
“정말 괜찮아요. 근데 오빠는 우리 언니 좋아하지 않아요? 같이 공부도 하잖아요.”
유미가 살짝 시황의 눈치를 본다.
“찬미? 아니.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도와준 게 있어서 그 보답으로 찬미한테 공부 가르쳐 달라고 한 거뿐이야.”
시황은 정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찬미에게 호감이 있을지언정 좋아한다는 감정까지는 아니었다. 지금 확실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상대는 아루뿐, 지영이나 은지, 찬미는 좋아함과 호감 사이의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다. 그래도 그들과 섹스는 하고 싶었다. 남자라면 예쁘고 매력 있으면서 호감을 가진 여자랑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본능이니까.
“진짜요?”
“응.”
“그렇구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시황을 보며 유미는 약간의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뭔지 모를 아리송한 기분이다.
“유미야 밥 안 먹었지?”
“네. 배고파요. 오빠. 밥 사주세요.”
순진한 얼굴을 한 유미가 밥을 사달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유미는 시황의 속셈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젯밤, 시황은 유미와 같이 밥을 먹기 위해 일부러 아침 11시에 약속을 잡았다. 3레벨을 올리려면 유미의 호감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키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녀의 첫키스를 훔치세요. 경험치 300]
지금 시황이 목표로 하고 있는 퀘스트였다. 경험치를 300이나 줬는데 이거라면 충분히 3레벨을 찍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이거 외에도 처녀관련 퀘스트가 몇 개 있었는데 처녀와의 섹스가 경험치를 600이나 줬지만 유미가 아직 미성년자인 관계로 지금은 절대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었다.
이런 생각으로 유미를 만나고 있으니 마치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밥 사주면 뭐 해줄 건데?”
“음……. 오빠 원하는 거 해줄게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시황이 말하자 유미는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그러면…….”
디지털 마트를 나온 시황이 마트 옆에 마련된 작은 공터에서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자 유미는 살짝 긴장했다.
“그러면요?”
유미는 침을 꿀꺽 삼킨다.
“오늘 나랑 영화도 보고 놀자.”
“에이, 그게 뭐에요. 근데 제가 돈이 별로 없어서 놀기 힘들 거 같아요. 오빠.”
시황의 말에 유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유미도 시황과 같이 있으면 즐겁고 좋았다. 이성적으로 시황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호감은 가지고 있었다. 화장품이 그 호감을 형성하는데 아주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시황과 같이 있으면 왠지 편안하고 기분이 좋았다.
“유미는 귀여우니까 공짜로 해줄게.”
“어, 어휴 또 그런다.”
시황의 말에 유미가 또다시 얼굴을 붉힌다. 시황이 가볍게 하는 말일지라도 듣기만 해도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굴을 망쳐놓은 여드름 때문에 유미는 주변에서 예쁘다는 소리를 거의 들은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한 번씩 예쁘다고 해주긴 했지만 이성이 그런 말을 해준 적은 시황이 처음이었다.
“오빠가 그렇게 사정하니까 제가 오늘 놀아드릴게요. 근데 오늘 이러려고 만난 거에요? 뭐 한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맞아. 그냥 놀기만 하는 건 아니고 중간 중간에 계속 사진을 찍을 거야.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겠지?”
“아아…….”
시황의 말에 유미는 괜히 착각을 한 거 같아 조금 부끄러웠다. 시황이 놀자고 할 때 그저 자기랑 놀고 싶어 그런 말을 한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게 있긴 한데…….”
유미는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조금 고민했다. 시황에게 부담이 갈 거 같아 선뜻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부담 갖지 말고 말해. 괜찮아.”
“삼겹살이요! 삼겹살 먹고 싶어요.”
“그래. 가자.”
시황은 기뻐하는 유미를 데리고 삼겹살 가게로 갔다. 그리고 고기를 굽는 동안 뻣뻣하게 앉아 있는 유미를 방금 산 사진기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유미야 좀 더 자연스럽게 있어 봐.”
“어, 어렵네요.”
유미가 다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어색한 포즈를 취했다. 잔뜩 긴장한 게 다 티가 났다.
“일단 고기부터 먹자. 다 타겠다.”
시황도 배가 고파 고기부터 집어 먹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유미 사진을 찍었는데 그나마 처음보다는 긴장이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많이 어색했다.
“근데 오빠 이렇게 사진 많이 찍을 필요 있어요? 어차피 사용기 쓸 거면 제 피부 몇 개 찍고 개선되는 것만 찍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의심스러운데요. 오빠 제 사진 찍어서 소장하려고 그러는 거죠? 완전 의심 가는데.”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는데 나중에 가서는 의심으로 변했다.
“하하. 잘 아네.”
“어, 어휴 진짜 농담을 못하겠다니까.”
시황이 자꾸 저런 식으로 농담하자 자기한테 혹시 관심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 바로 고개를 저었다. 유미도 자신이 안 예쁘고 매력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시황같이 돈 많고 잘난 사람이 겨우 고3밖에 안 되는 자신을 좋아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왠지 한숨이 나왔다.
“연습이야. 연습! 너도 카메라에 익숙해져야 하고 나도 찍는 법을 알아야 하니까. 그래야 나중에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오지. 거기다 지금 찍어놓으면 나중에 컨셉에 맞게 쓸 수도 있고.”
“아, 그렇구나. 근데 사진 찍는다 생각하니까 진짜 표정이 자연스럽게 잘 안 지어져요. 그냥 대충 찍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엄청 어려워요. 으…….”
“조금만 더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시황은 유미와 간단히 얘기를 하면서 고기를 먹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만난지 얼마 안 된 거 치고는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대화가 이어졌다. 유미 자체가 상당히 활달한 것도 있었지만 시황이 여자를 대하는 게 예전처럼 어리숙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식사를 다하고 삼겹살 가게를 나온 시황은 이제 뭘 할지 고민했다.
“영화 보러 갈래?”
“그럼 극장가서 뭐볼지 골라요!”
“그러자.”
시황은 극장으로 가면서 유미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평소에는 자연스럽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어색하고 뻣뻣한 표정으로 변했다.
“사람 많네.”
토요일이라 그런지 극장 건물에 사람이 많았다. 극장이 7층에 있어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데 주변에 커플이 한 가득이었다.
“오빠 다른 사람들은 다 커플이에요.”
유미도 눈치 챘는지 시황의 귀에 조그맣게 말했다.
“우리도 그럼 커플인척 하자.”
“완전 바람둥이라니까. 오빠는 아무한테나 그래요? 언니한테도 그러죠?”
정말 자신에게 관심이라도 있는 듯한 시황의 말에 복잡한 표정을 한 유미가 쏘듯이 말했다.
“아니. 찬미한테 이런 말 해본 적 없고 이런 말 해줄 아는 여자도 없어.”
“에이, 거짓말.”
“진짜야.”
시황은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이렇게 적극적일 수 있는 건가 깜짝 놀랐다. 유미의 호감도를 올릴 작정을 하고 만난 것이긴 하지만 혀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부끄럽고 느끼한 대사가 성대에서 바로 튀어나올 수 있다니!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시황과 유미가 타자 커플들도 뒤따라 우르르 몰려 탔고 엘리베이터는 금세 꽉 차버렸다.
그 순간 시황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유미를 엘리베이터 제일 구석으로 보내고 유미를 바라보면서 등으로 사람들을 막아줬다.
이건 예전에 한 아이돌이 사람많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어떤 보디가드가 자신을 사람들로부터 막아줬을 때 가슴이 설렜다고 말한 걸 따라한 것이다. TV에서 본건지 뉴스에서 본건지 기억은 안 났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 떠올랐다는 게 중요했다.
시황이 손으로 벽을 지지했지만 사람이 워낙 많아 의도치 않게 유미와 상당히 밀착하게 되었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린다.
유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시황의 코가 유미의 머리카락에 닿아있어 은은한 샴푸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왠지 이 냄새만으로도 성기가 살짝 발기할 거처럼 움찔하자 시황은 마음을 다스렸다. 하체까지 밀착되어 있어 지금 성기가 발기라도 하면 유미가 그걸 고스란히 느낄 게 분명했다.
7층에 도착하자 유미와 시황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과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져있었다.
유미는 가슴 너무 뛰어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남자랑 그런 식으로 가까이 밀착을 해본 건 난생 처음이었다. 시황에게서 나던 은은한 향기가 아직도 코끝을 감도는 거 같다.
“가자. 영화 골라야지.”
“아, 알겠어요.”
시황은 부끄러워하는 유미와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사실 약간 가슴이 두근거리긴 했다. 아루와 지영하고 섹스를 많이 해 여자에게 충분히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여자의 향기를 맡으니 그게 아니었다. 만약 그때 마음을 다스리지 않았다면 유미의 향기만 맡고 바로 발기를 해버려 크게 난처해질 뻔 했다.
“뭐볼까?”
“오빠는 뭐 좋아해요?”
시황은 뭘 볼지 고민하는 척했지만 이미 어제, 오늘 뭘 하고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저녁을 먹을지 다 정해 놓았다. 엘리베이터 일이야 임기응변으로 한 거지만 기본적인 계획은 다 수립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는 요즘 가장 핫한 배우인 송기준이 주연한 늑대어른이라는 걸 볼 생각이었다. SF나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는 시황은 이런 로맨스 물은 별로 안 좋아했지만 유미의 호감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늑대어른 어때요 오빠?”
아직도 볼을 빨갛게 물들인 유미가 시황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했다.
“너도 그거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도 그거 볼까 했는데. 그러면 내가 표 끊어올게.”
“네. 전 저쪽에 앉아있을게요.”
유미가 의자에 앉자 시황은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로 갔다.
“어?”
그때 왠지 낯이 익은 여자 한명이 표를 끊고 있었다. 옆모습이긴 했지만 분명 은지 같았다. 시황은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가서 흘끔거리며 쳐다봤다.
은지가 맞았다.
은지는 표를 끊고 옆에 있는 남자에게 건네주는 순간 시황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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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