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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12화 (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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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지

콘즈의 말에 따르면 6시 20분정도 돼야 여자들이 깨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일어났다가 깨어있는 자신을 보면 난리가 나기 때문에 시황은 미리 대비를 했다.

20분은 지옥처럼 길었다. 긴장이 된데다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해 허리와 팔도 저릿저릿했다.

“아…….”

억겁 같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누군가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낯선 걸 보니 아마 효주인 듯 했다.

“으으……. 잤나?”

이어서 은지의 목소리가 시황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순간 엄청난 긴장감에 시황은 온몸이 오그라드는 거 같았다. 은지와 다른 여자들이 무슨 말을 할지 무척 걱정된 시황은 최대한 청각에 집중했다.

“민영 씨 일어나세요. 벌써 6시가 넘었어요.”

은지가 민영을 깨웠다.

“아함, 제가 잔거에요?”

민영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거 같아요. 언제 졸았는지 모르겠는데 벌써 6시가 넘었어요.”

“앗!”

갑자기 민영이 깜짝 놀란 소리를 냈다.

시황은 아까 전에 자신이 한 행위를 들켰을 까봐 심장이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귀를 울리는 심장 소리가 얼마나 큰지 여자들이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을 거 같았다.

“왜요?”

“오빠가 준 차 말이에요.”

“차요?”

민영이 차 얘기를 꺼내자 시황은 안절부절 못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1초, 1초가 너무 길었다. 이래서 사람은 나쁜 짓을 못하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 차 피로를 풀리게 해준다고 하더니 정말 몸이 개운해요. 은지 씨도 그렇죠?”

“아……. 그러게요. 몸이 가벼워졌어요.”

다행이 별 얘기가 아니자 시황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은지는 전혀 신변의 이상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안심이 되자 전신의 긴장이 풀렸고 아까 전에 곤두섰던 털들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오빠 깨우고 이제 슬슬 마무리해요.

“네. 오빠 일어나요.”

민영의 말에 은지가 소심하게 시황의 몸을 흔들었다. 은지의 손이 몸이 닿자 수그러들던 성기가 다시 발기를 해버렸다.

시황은 은지가 깨운다고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오빠 일어나세요.”

“으……. 제가 잤어요?”

은지가 좀 더 강하게 흔들자 시황은 이제 일어났다는 듯이 허스키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네. 시간이 늦었으니까 빨리 끝내요.”

“아! 벌써 시간이 6시가 넘었네요. 후딱 해야겠어요.”

시황은 은지의 말에 깜짝 놀란 듯 말하고는 머릿속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차가 발동하기까지 20분이라는 시간이 남은 걸 체크했다. 즉, 20분은 더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무리 작업이 이어졌다. 일단 대충 한글로 대사를 만들고 나중에 집에 가서 자신의 대사를 영어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나갔다. 영어로 작성하는 건 어려웠었는데 한글로 대사 쓰는 건 정말 금방이었다.

시황은 초조하게 시간을 보면서도 틈틈이 은지를 훔쳐봤다. 아까 전에 느꼈던 은지의 감미로운 입술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다 돼가네요! 조금만 힘냅시다!”

민영이 소리쳤다.

“아…….”

그때 갑자기 은지가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는데 표정이 약간 찡그러져 있었다.

시황은 드디어 차의 효과가 발동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챘다. 안정되어 있던 심장이 다시 두근두근 거린다.

“은지 씨 왜요?”

민영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은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머리가 띵해서요.”

“괜찮으세요?”

시황은 잔뜩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괜찮아요.”

찡그렸던 표정을 핀 은지는 괜찮은 척 하려고 노력했다.

시황은 그게 뻔히 보였다. 사실 어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아주 약간 마셔보았다.

그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두뇌회전이 굉장히 느려졌는지 사고가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꾸 끊기는데다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일어서려고 해도 다리에 힘이 없어 자꾸 주저앉게 되고 인지능력도 심하게 떨어졌다.

시황 같은 경우에는 조금밖에 안 마셔서 한 30분 정도 만에 정신을 회복했지만 꽤 끔찍한 느낌이었다.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닌데 정신이 혼미한 그 느낌을 다시는 겪기 싫었다.

은지는 초기 증상이었다. 뭔가 머리가 살짝 어지럽고 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아……. 잠시…….”

은지는 다시 표정을 찡그리더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갑자기 쓰러졌다.

“은지 씨!”

시황은 깜짝 놀라는 척 하며 바로 은지에게 다가갔다.

“어, 어떡해! 어떡해요…….”

민영은 갑자기 은지가 쓰러지자 상당히 놀랐는지 어떡하냐는 말만 하다가 울먹울먹 거렸다. 여자라 그런지 이런 응급상황이 되면 해결하기 보단 우는 걸 먼저 했다.

“하아……. 괘, 괜찮…….”

은지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말을 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말을 못했다. 사고력이 떨어지긴 해도 생각자체는 할 수 있으니까 자기 스스로는 괜찮다고 느끼는 듯 했다. 마치 술 취해서 술주정 부리는 사람이 자기 술 안 취했다고 하는 것과 비슷했다.

“큰일인데요. 호흡이 곤란한 거 같아요.”

“어, 어떻게 하죠? 네? 오빠? 네?”

민영은 은지가 걱정되는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말했다.

“인공호흡을 해야 될 거 같아요. 민영씨 하실 줄 아세요?”

인공호흡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시황은 단순히 은지에게 뽀뽀를 하고 싶어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물론 아예 그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은지를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 라는 사실을 만들고 싶었던 게 더 컸다. 그리고 이런 혼수상태 비슷한 상황에선 보통 인공호흡을 하기 마련이라 민영과 효주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 모든 건 팀플레이를 하기로 했을 때부터 틈만 나면 고민하고 시나리오를 짠 결과였다. 임기응변이 아닌 수많은 고민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아니요. 못해요.”

“효주씨는요?”

“저도 못해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듯한 효주의 말까지 들은 시황은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너무 척척 맞아 떨어져가자 희열을 느꼈다.

남자는 군대에서 구급법을 배우기 때문에 인공호흡을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대충은 안다. 하지만 시황이 알기로는 여자는 인공호흡 같은 구급법을 전혀 배우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되면 여자는 남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 아무도 못하시네요. 그렇다면 제가 인공호흡을 할게요. 군대에서 배운 걸 써먹을 때도 있네요.”

시황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그리고 뒷말은 혹시 여자들이 의심할까봐 덧붙인 말이었다.

왼손을 펴고 오른손가락을 왼손가락 사이에 집어넣어 꽉 쥐었다. 사실 왼손을 펴는지 오른손을 펴는지 헷갈렸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그리고는 은지의 젖가슴 사이의 살짝 아랫부분을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눌렀다. 정말 위급한 상황일 때는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강한 압박을 줘야하지만 연기니까 안 다치게 조심해야 했다.

대충 꾹꾹 눌리다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은지의 코를 막고 입술을 갖다 댄 뒤에 숨을 불어 넣었다.

아까 전에도 느꼈지만 은지의 입술은 말도 안 되게 감미로웠다. 그래서 심장 압박을 하기 보다는 은지의 입술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인공호흡 위주로 했다.

“119를 불러주세요!”

시황은 매우 힘이 들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땀을 닦는 척 했다. 그리고는 안절부절 못하는 여자들에게 소리쳤다. 크게 소리치고 나니 왠지 스스로가 좀 카리스마있다고 느껴졌다.

“네, 네.”

민영은 부들부들 손을 떨면서 전화기를 꺼냈다.

“1, 119죠? 여기 스카이하이 오피스텔 701호인데요. 지금 사람이 갑자기 쓰러졌거든요.”

민영이 다급하게 119를 부르는 동안 시황은 계속해서 은지의 입술을 느끼며 입안에 바람을 불어 넣어줬다.

응급상황이 아닌 걸 알아서 그런지 부드러운 은지의 입술이 한 없이 달콤했다.

“전……. 괜찮…….”

시황이 가슴부분을 손으로 꾹꾹 눌리고 있으니 은지가 힘겹게 자기는 괜찮다는 어필을 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119 불렀으니까요.”

하지만 시황은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 인공호흡을 하며 입을 막았다.

10여분 가까이를 그렇게 하자 119 대원들이 들이닥쳐서 은지를 이송용 침대에 눕혀서는 데려갔다. 시황과 여자들은 재빨리 119대원들의 뒤를 쫓아가 같이 엠뷸런스를 타고 인근 병원 응급실 센터로 갔다.

간단한 검사가 끝나고 의사는 몸에 별 문제는 없었고 피로 때문에 그런 거 같으니 한숨만 자고 일어나면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제야 시황을 제외한 여자들이 안심한다.

은지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건지 눈을 감고 있었다.

“안 늦으셨어요? 일 있으시면 먼저 가보세요. 제가 여기 있을게요.”

시간은 벌써 8시가 지났는데 민영과 효주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자 시황이 말했다.

“어떻게 먼저가요.”

“괜찮아요. 여기 많은 사람 있을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나중에 은지 씨가 퇴원하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그래도…….”

민영과 효주는 먼저 떠나길 주저하고 있었다.

“걱정 말고 가보세요. 의사 선생님도 아무 문제없다고 했잖아요.”

“알겠어요. 은지 씨가 일어나면 나중에 꼭 전화 주세요.”

민영과 효주는 주저주저하더니 먼저 떠났다.

============================ 작품 후기 ============================

11화의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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