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 ------------------------------------------------------
강은지
시황은 다들 마실 때 자기도 살짝 마신 척 했지만 사실은 한 입도 대지 않은 차를 앞으로 밀었다.
“정말요? 고마워요.”
보통은 거절하는 법인데 민영은 넙죽 차를 가져가더니 은지와 효주에게 나눠주었다. 다들 별 말 없이 차를 음미하기 바빴다.
시황은 그 모습을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 맛있었다.”
“맛있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다시 시작해요. 대화를 어떤 식으로 할까요?”
시황은 긴장돼 터질 거 같은 심장을 억누르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여기는…….”
자연스럽게 티타임이 끝났다. 다들 연극 대사를 고민하면서 의견을 내는 동안 시황은 끊임없이 시간을 측정했다.
3시.
“하암, 조금 피곤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저도 약간 잠오네요.”
민영의 말에 은지가 대답했다. 수면용 차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20분만 더 있으면 잠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시황은 벌써부터 긴장해 손발이 벌벌 떨리려고 했다. 손을 꽉 쥐면서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봄이라 춘곤증이 생기나봐요. 이런 날 나가서 놀아야 하는데 말이죠. 하하.”
시황은 잠이 오는 원인을 춘곤증으로 돌렸다.
“하암, 정말 잠 오네요. 이대로 한 시간만 자면 딱 좋겠는데.”
민영은 말하면서 시황을 슬쩍 쳐다봤다. 약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시황은 문득 이대로 정신을 멀쩡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조는 척을 해야 나중에 의심을 안 받을 거 같았다.
“하암.”
그 뒤로 시황은 계속 하품을 하면서 졸린 척을 했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부족할 거 같아 눈을 감고 조는 척을 했다.
“오빠 설마 조는 거에요?”
“네? 네? 아, 아니요. 안 졸았어요.”
“에이, 졸았으면서.”
민영은 조는 시황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은지도 웃겼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그맣게 웃는다.
3시 15분.
다들 말이 없어졌다. 이미 차의 효과가 나타난 건지 셋 다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시황은 혹시 몰라 자기도 조는 척을 했다.
3시 25분.
실눈을 뜬 시황은 아주 조심스럽게 여자들을 살폈다. 아까까진 고개를 끄덕이면서 졸던 그녀들은 이젠 완전히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은지 씨, 민영 씨.”
시황은 혹시 몰라 그녀들의 몸을 흔들면서 깨웠다. 하지만 죽은 듯 전혀 깨어나지 않았다.
“된건가?”
시황의 입에서 낮고 메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심장이 폭발할 거 같았다. 그녀들이 자는 걸 보자 엄청나게 긴장되고 엄청나게 떨렸다. 이 순간의 감정을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멍하니 은지를 쳐다보던 시황은 조심스럽게 은지의 등에 손을 갖다 대었다. 까칠한 니트의 느낌만 났지만 처음으로 여자 몸에 접촉해봤다는 그 느낌 때문에 발기된 성기가 폭발이라도 할 거 같았다.
시황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 같아서는 은지의 옷을 벗겨 가슴을 빨고 음부의 냄새를 맡고 싶었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자제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은지의 등을 쓰다듬다 양말을 신고 있는 발도 만지작거렸다.
“후…….”
은지를 만진다는 자극이 너무 강해서인지 깊은 숨이 나왔다.
시황은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는 은지를 조심스럽게 들어 거실 한쪽에 눕혔다. 눈을 감고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 그저 감탄만 나왔다.
시황은 은지의 손을 잡아 만지작거렸다. 비단결처럼 고운 손이 말도 안 되게 부드러웠다. 연인들이나 낀다는 깍지까지 끼니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
“으, 은지야.”
전부 다 자고 있어 그 누구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했지만 은지라고 부르는 거 자체가 너무 떨려 말을 더듬어버렸다.
“그……. 은지야, 바, 밥 먹을래?”
한 손은 깍지를 끼고 누워있는 은지를 보면서 대화를 하듯 말했다.
누가 보면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시황은 이 기회에 여자에 대한 내성을 조금이라도 키우고 말을 잘 하기 위해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이틀 전부터 눈여겨 봐뒀던 은지가 그 대상이니 최고의 교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은지야, 사, 사, 사, 사랑, 사랑해.”
다른 건 그럭저럭 은지 얼굴을 보면서 할 만했는데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부끄러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이나 더듬더듬 거렸다.
하지만 말을 하고 나니 그 짜릿한 느낌에 성기가 아플 정도로 커졌다.
계속해서 은지의 얼굴을 보며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니 정말 은지를 좋아하는 거 같이 가슴이 두근거렸고, 은지가 더 아름다우면서 매력적으로 보였다.
특히 입을 다물고 있는 도톰한 입술에 자꾸 눈이 갔다.
시황은 집에 아무도 없음에도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은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은지의 입술이 느껴지자 아까부터 흐르기 시작한 쿠퍼액이 팬티를 가득 적셨다.
첫 키스였다.
감미로웠다. 심장이, 머리가 터질 거 같은 황홀함이 느껴졌다. 그저 입만 맞췄는데 이런 기분인데 섹스는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섹스에 대한 목마름과 갈증이 더 커졌다.
입술을 뗀 시황은 은지의 얼굴을 보다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
“큰일이에요. 호흡이 곤란해요. 인공호흡을 해야 될 거 같아요.”
나중에 해야 할 대사를 계속 해서 연습했다. 처음에는 완전히 국어책 읽는 느낌이었지만 계속 반복하자 나름 그럴싸하게 변했다.
한참을 연습하다보니 어느덧 1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이젠 끝을 내고 계획해 둔 준비를 실행해야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 혹시 일찍 깨어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시황은 가방에서 준비해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차를 누워있는 은지를 조심스럽게 들고 다리에 목을 받친 뒤, 입에 조금씩 흘려 넣었다. 그런데 입 안에 차를 넣어도 삼키질 않아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목 여기저기를 꾹꾹 눌리자 겨우 삼켰다. 차 반잔정도의 양을 삼키게 하고 은지를 눕히기 전, 기억해 둔 자세로 탁자에 엎드리게 했다.
이제 초반부지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거실에 누워있는 은지를 눕히기 전, 기억해둔 자세로 탁자에 엎드리게 하고 카펫을 펴는 등 깔끔하게 정리했다.
시황은 혹시 몰라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체크했다. 아무리 봐도 특별히 이상한 점은 안 보였다.
“휴, 이제 된 건가?”
매의 눈으로 이상한 점을 찾다가 6시가 딱 되자 시황은 같이 탁자에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다 자는데 혼자 깨어있으면 분명 의심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은지와의 씬을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수정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