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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수업이 끝이 났다.
“모두 다음 시간에 봐요.”
수업 내내 고심고심해서 나온 생각이 일단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만나도록 유도 하는 것이었다. 별로 생각해둔 건 없었지만 그냥 그래야 기회가 많이 생길 거 같았다.
“저기요.”
교수가 나가자 뒤에 앉은 여자애가 말을 걸었고 시황과 은지가 자연스럽게 뒤로 쳐다봤다.
“다다음주까지면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이번 주에 만나서 빨리 해버릴까요?”
“그럴까요?”
은지가 대답했다.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일단 이번 주에 만나서 주제랑 대사 좀 생각하기로 해요. 언제 시간 돼요? 저랑 제 친구는 금요일 11시 이후로 수업이 없어서 시간이 괜찮거든요.”
“전 금요일에 수업이 풀이라서 곤란해요.”
시황은 금요일에 전혀 수업이 없었지만 일부러 수업이 있는 척 했다.
“그래요? 토요일은 괜찮아요?”
원래 성격이 활달한 건지 섹스를 8회한 여자애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네. 전 괜찮아요.”
“저도요.”
시황과 은지가 대답하자 여자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요. 다들 토요일은 시간 되는 거 같으니까 오후 1시쯤에 학교 정문에서 만나기로 해요. 그리고 우리 폰 번호 교환해요.”
섹스 8회한 여자애가 말하자 다들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서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시황은 순식간에 여자 3명의 전화번호를 얻은 것이다.
“저희는 가볼게요.”
여자애 두 명과 은지가 떠났다. 섹스 8회한 여자애는 시황에게 인사하고 갔는데 은지는 매정하게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그래서인지 전화번호를 얻긴 했지만 뭔가 별로였다. 너무 이끌려가기만 하고 말을 못했다.
그나마 토요일에 만나기로 유도한 게 먹혀서 다행이었다. 다음날이 일요일이라는 점을 적극 이용할 그런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것 보다 좀 더 변칙적이고 돌발적인 어떤 상황이 일어나야 호감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은 그렇다할 확신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 온 시황은 가방에서 타블렛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뒀다. 그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아 꺼내놓은 타블렛으로 완료된 퀘스트를 확인했다.
[여자의 전화번호를 등록하세요.][완료][경험치 20]
“어? 뭐야?”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걸라는 퀘스트는 완료 되지 않았다. 단순히 인사를 먼저 한 건 말을 건 걸로 치지 않는 듯 했다.
“모레는 제대로 먼저 말을 해야겠어.”
다시 한 번 깊이 다짐하고 어떻게 해야 은지의 호감을 늘려서 섹스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뒤죽박죽으로 떠올랐지만 가능성이 1%도 안 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허접쓰레기 같은 것들뿐이었다.
“가만, 혹시 콘즈가 해결책을 주지 않을까?”
지금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여자에게 다가가는 거조차 힘이 드니 유산의 힘을 조금 사용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로 갈 수 있지?”
유령 문이 어디 갔나 생각하는 순간 시황의 앞에 희끄무레한 문이 생겨났다.
“깜짝이야!”
갑자기 문이 나타나자 깜짝 놀란 시황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처음 갔을 때는 너무 혼란스러워 두려움만 가득했는데 지금은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오셨어요?”
“어, 응.”
어제와 같은 장소였다. 천장에서 밝게 빛나는 빛이 거대한 홀을 비추고 있었고 콘즈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시황의 바로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제 실감나죠?”
“그러게.”
왠지 부끄러웠다.
“가요.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줄테니까요.”
“어, 어.”
콘즈가 시황의 손을 잡고 어제 그 응접실로 데려갔다.
시황은 별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았는데 몸이 나른해질 정도의 편한함에 깜짝 놀랐다. 골드 드래곤의 물건들이라 그런지 범상치 않은 게 없었다.
“아침에 깜짝 놀라셨죠?”
“프로필 말이지?”
“맞아요. 제가 약간의 기능이 담긴 칩을 시황님의 뇌에 이식했거든요.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고 또 언제든 이 성으로 올 수 있는 문을 생성할 수 있어요.”
“아, 그래서 그랬구나.”
말을 듣고 나니 모든 상황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여자들의 섹스 횟수를 본다는 신비한 힘을 가진 건 즐거웠지만 이 힘이 어디서 왔는지 몰라 조금 불안하긴 했었는데 이제야 안심이 됐다.
“맞다. 뭐 드실래요?”
“그 전에 말이야. 혹시 내가 쓸 수 있는 유산들이 뭐뭐 있는지 알 수 있을까?”
“그게 궁금하셨구나. 제가 리스트를 드릴게요.”
콘즈는 주머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어 시황에게 주었다. 거기에는 큼직한 글자로 몇 개의 유산이 적혀 있었다.
[현금 500만원]
[각종 마실 것과 먹을 것]
[매우 질 낮은 포션]
[타블렛을 넣을 수 있는 아공간]
[케즈론의 성]
이게 끝이었다. 현금 500만 원이라는 큰 금액 덕분에 기분이 매우 좋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 조촐한 물품들이라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정말 이거뿐이야?”
“유산 레벨이 1밖에 안 되셔서 어쩔 수가 없어요. 가실 때 돈하고 포션 좀 챙겨 드릴게요.”
콘즈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 말이야. 혹시 여자를 유혹하는 차라든가 사랑에 빠지는 차 같은 거 없어?”
“있어요.”
“정말? 그럼 그 차 좀 줄래?”
생각보다 쉽게 은지와 섹스할 수 있을 거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아져 시황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바보 같은 미소였다.
“그런데 그게 레벨 제한이 좀 높아서 드릴 수가 없어요. 죄송해요.”
“아오…….”
급격한 실망감에 얼굴이 죽을상처럼 찌푸려졌다. 레벨 1이라 뭐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대신에 상대방을 잠재우게 하는 차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차 같은 건 드릴 수 있어요.”
잠재우는 차라는 말에 시황은 저게 무언가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차 마시면 바로 잠드는 거야?”
“아니요.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거에요. 이것도 레벨 때문에 그렇게 효과가 뛰어난 차는 아니라서요. 그리고 잠이 들어도 3시간만 지나면 바로 깨어나고요.”
“잠들었을 때 막 흔들면 일어나?”
“그렇진 않아요. 말이 수면용 차지 기절시키는 거나 다름없거든요. 대신에 일어나면 상당히 개운한 느낌을 줘요. 3시간을 잤는데 12시간을 잔 거랑 비슷해요.”
“괜찮네? 그러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차도 잠재우는 거랑 비슷해?”
“네. 비슷비슷해요. 차를 마시고 1시간 정도 지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보통 3시간 정도 효과가 지속돼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는 게 자세히 어떤 거야?”
시황은 나름 그럴싸한 계획이 떠오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에요. 정신을 잃는 게 아니라 마치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요. 사고능력도 상당히 떨어지게 되구요.”
“맛은 어때? 엄청 쓴 건 아니겠지?”
“라민차보다 맛 자체는 더 좋아요. 원래 몸에 나쁜 게 더 맛있잖아요?”
“좋은데? 그거 둘 다 줄 수 있어?”
“당연하죠. 다 시황님 건데요. 가실 때 제가 다 챙겨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또 말이야. 혹시 이 성에 다른 사람도 데리고 올 수도 있어?”
“물론이죠. 이 성과 성에 있는 모든 건 시황님 거니까요. 부담 가지실 필요 전혀 없어요.”
“정말 고마워.”
시황은 10살 밖에 안 돼 보이는 콘즈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단숨에 현금 500만 원과 현실에 없는 다양한 차를 주는데다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데 안 고마울 수가 없었다.
“배 안 고프세요? 뭐 좀 드실래요?”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끼도 안 먹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라민차를 마시고 몸에 활력이 가득치 배가 고픈지도 몰랐던 것이다.
“아무거나 적당한 거 있으면 줘.”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고시원에 가봤자 먹을 것도 없었다.
“여기 매일 오셔서 식사 하셔도 돼요.”
“그래도 돼?”
“그럼요. 당연하죠. 자, 그럼 식당으로 가시죠.”
콘즈가 시황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데려갔다.
화려한 중앙 홀을 지나 왼쪽으로 가자 영화에서나 볼법한 기다란 식탁에 금빛의 자수가 수놓아진 고급 식탁보로 덮여 있어 서민인 시황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저거 비싼 거 아니야? 음식 떨어트릴까봐 걱정되네.”
“천쪼가리가 비싸봤자 얼마나 비싸다고 그래요. 그리고 어차피 다 시황님 건데요.”
말로는 그런데 시황은 막상 이 모든 게 자기 거라 게 아직까진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아마 익숙하지 않아 그런 거 같았다. 시간만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식탁에 앉자 콘즈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수십 종류의 음식이 식탁을 가득 채웠다.
“너무 많은데?”
깜짝 놀란 시황이 말했다.
“일단 처음이라 여러 가지 꺼내봤어요. 드셔보시고 입맛에 맞는 거 말씀해 주시면 그거 위주로 내놓을게요.”
“먹고 싸가도 돼?”
“물론이죠.”
콘즈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시황은 젓가락을 들고 조심스럽게 음식을 한입씩 먹다가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맛있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한 달에 겨우 20만 원으로 생활하는 시황이 밥을 잘 먹어봐야 얼마나 잘 먹겠는가? 3천 원짜리 식당에 가는 것도 은근히 부담돼 라면으로 때우는 일도 빈번했다. 그러니 이런 음식들을 보고 정신없이 먹는 건 당연한 일인데다 음식 맛 자체도 입안이 녹아버릴 정도로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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