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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3화 (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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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주적 행운아

응접실에 나 있는 거대한 창에는 난생 처음 보는 행성이 압도적이 위엄을 뿜어내며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달보다 수십 배는 커 보여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그 행성의 구성물들까지 보일듯했다.

“자, 앉으세요.”

시황을 소파에 앉히고 꼬마는 맞은편에 앉았다.

“이게 도대체…….”

너무 혼란스러워 시황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좀 소심하긴 해도 말 자체는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충격을 받았다.

“뭐 드실래요? 콜라 같은 탄산음료부터 엘프들이 만든 과일주까지 없는 게 없어요.”

“그래. 이건 꿈일 거야.”

시황은 금발의 꼬마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기 뺨을 때렸는데 아플 만큼 세게 때리진 않고 손만 갖다 대는 수준으로 살살 건드렸다.

“역시! 꿈이구나. 어쩐지. 하하. 너무 생생해서 현실인지 알았네.”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시황은 안심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제야 약간 여유가 생겼는지 표정이 풀어졌다.

“뭐하세요?”

시황이 혼자 뺨을 때리더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웃자 금발의 꼬마는 혐오스러운 걸 봤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응? 아니야.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약간 침착해진 시황은 꼬마를 보고 물었다. 겨우 주변을 둘러보고 말을 들을 만큼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러니까. 시황님이 여기에 온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아, 그 전에 뭐 마실 거라도 드세요. 이 행성의 모든 건 이제 시황님의 소유니까요. 여기 메뉴판이요.”

“이 행성이 전부 다 내꺼? 하하. 그렇구나. 꿈이라 그런지 스케일도 크네.”

아직도 꿈인지 현실인지 긴가민가했지만 꿈이라 믿기로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단

순히 진실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으니까.

꼬마가 건네준 메뉴판을 펼치자 익숙한 콜라부터 난생 처음 보는 이름의 술과 차도 가득했다.

무난한 콜라나 마실까 하다가 라민차라는 생소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라민차? 이걸로 할게.”

“그 차는 나블른 행성에서 나는 라민이라는 식물의 잎으로 만든 건데 라민을 재배하는 기간만 100년에 가까이 걸리는데다 키우는데 상당한 마력이 들다보니 이전의 시황님이라면 50년 정도 일해야 마실 수 있는 꽤 고급차에요.”

“그래? 하하. 신기한 차네.”

시황은 대답하면서 어차피 꿈이니까라고 생각했다. 꿈인데 찻잎 따려고 식물을 100년 재배하든 1000년 재배하든 무슨 상관일까.

짝!

꼬마가 손뼉을 치자 드래곤이 매우 세밀하게 음각 된 찻잔에 연두색의 차가 담겨 시황의 앞에 생겨났다.

“드세요.”

시황은 별 말 없이 차를 마셨는데 차가 몸속에 들어오자 자다 일어나서 뻐근하고 찌뿌둥했던 몸이 완벽하게 개운해졌다. 그냥 개운해졌다고 표현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몸에 활기가 가득 찼고 정신이 또렷해졌다. 지금 공부한다면 하루 종일 집중해서 모든 지식을 빨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야, 이건?”

“원래 이런 고급차는 마시게 되면 즉각 효과가 나타나요. 이건 몸에 활력을 북돋워줘서 틈틈이 마시면 피곤함을 느끼기 힘이 들 거예요.”

“신기하네. 현실에 이런 차가 있었으면 순식간에 부자가 됐을 텐데.”

“나중에 몇 개 드릴게요.”

“마음씨도 곱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금발의 꼬마는 의젓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이름은 콘즈. 케즈론님께서 남기신 유산들과 이 행성을 관리하는 관리자입니다.”

“유산? 아까부터 유산, 유산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이야?”

“간단히 말해서 골드 드래곤인 케즈론님께서 죽기 전에 전 우주에 있는 지적 생명체 중에 하나를 무작위로 추첨해 자신이 가졌던 모든 유산을 주기로 하셨습니다. 그 추첨에 시황님

이 당첨된 것이지요.”

시황은 콘즈가 하는 말을 대충은 이해했지만 왜 그런 짓을 했는지에 대한 인과관계와 그 드래곤이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불신, 마지막으로 억만금이라고 해봤자 이게 꿈이라는 현실로 인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꿈에서 아무리 예쁘고 좋은 여자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한다는 것에 기뻐해봤자 현실은 시궁창이니 잠에서 깨는 순간 극심한 박탈감만 느낀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

“안 기쁘세요?”

“기쁘긴 한데 아직 그 유산 내용을 모르니까.”

“어휴, 아직 제대로 이해를 못하신 거 같은데 시황님은 전우주적 행운아라구요. 지구에서 로또 당첨되는 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행운이라니까요.”

“그렇구나. 잘됐네. 하하.”

여전히 시큰둥한 시황의 반응에 콘즈는 한숨만 쉬었다.

“유산은 이 행성을 포함한 모든 것이에요. 셀 수도 없는 황금과 보석, 무공서, 마법서, 영약 등 보통 사람은 이 중에 하나라도 가지기 힘든, 희귀하면서 진귀한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있죠.”

“마법?”

“네. 1서클부터 10서클까지의 마법서는 물론이고 케즈론님이 창안하신 독창적인 마법서도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약간의 제약이 있다는 거에요.”

“꿈인데 그냥 다 주면 안 돼?”

“하, 아직도 꿈이라고 믿다니……. 어차피 내일되면 깨닫게 될 테니 일단 설명부터 할게요. 시간은 오늘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던가.”

시황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꿈에서까지 제약을 받아야 한다니 스스로가 한심할 뿐이었다.

“이 제약은 미성숙하고 진리에 다가가지 못한 존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수록 제약이 풀리게 됩니다. 일단 시황님은 모은 돈이나 쌓아올린 지위, 학력, 여자관계 등 판단했을 때, 총합이 1레벨인 관계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유산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없다고? 그러면 어떤 게 사용 가능한데?”

“케즈론님의 행성을 출입할 수 있는 문과 방, 성에 비치된 차와 음식, 매우 질 낮은 포션, 현금 500만 원 등 케즈론님의 제대로 된 보물에 비하면 쓰레기라 불러도 할 말 없는 것들이죠.”

“흠…….”

시황은 자신이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를 즐겨 보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보는 반지의 제왕이나 게임, 유명한 소설 몇 가지를 읽었을 뿐인데 왜 이런 꿈을 꾸게 됐는지 의아했다.

“실망하신 건 알지만 걱정 마세요. 여러 퀘스트를 통해서 등급만 높이면 권한이 차츰 늘어나서 나중에는 모든 유산을 다 물려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힘내세요!”

콘즈는 씩씩하게 말했다.

바가지 형태 비슷한 머리와 앙증맞은 얼굴로 말하니 엄청 귀여웠지만 남자 꼬마애는 싫어하는 시황에겐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무슨 퀘스트인데?”

“여기에 다 적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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