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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주적 행운아
시황은 며칠 전부터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저기요. 잠깐 5분이면 되거든요?”
길을 가는데 조약한 동영상 플레이어를 든 중년의 여성이 시황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오랜 전도 생활로 사람을 딱 보기만 해도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과 거절하는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먹잇감으로 시황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네?”
시황은 낯선 여자가 말을 걸자 미친 듯이 놀라면서 되물었다.
“아, 아니 저기 그냥 잠깐 얘기만…….”
너무 지나친 반응에 그녀가 오히려 움츠려 들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요 몇 년간 전도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싫습니다!”
시황은 차가운 말을 내뱉고 재빨리 걸음을 옮겼는데 가는 중에 뒤를 조심스레 돌아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빨리 뛰어갔다.
“뭐, 뭐지?”
당황한 그녀는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온 시황은 세수부터 했다. 씻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머리도 이틀이나 삼일에 한 번 감는데 집에 돌아왔다고 세수부터 하는 건 시황의 그간 행태로 보자면 터무니없는 행동이었다.
“있다! 아직도 있다고!”
또 다시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본 시황은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황이 돌아본 곳에는 희미한 안개처럼 문이 하나 있었는데 [시황님의 당첨을 축하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써져있었다.
“으 아니, 왜? 왜 안 사라지는 거야!”
정체불명의 그 문은 얼마 전부터 생겨나더니 시황의 뒤에 자리 잡고는 항상 뒤따라 다녔다. 아무리 뛰어도 소용없었고 망치를 가지고 휘둘러도 부서지기는커녕 유령처럼 그대로 관통되었다. 그런데 섬뜩하게도 시황이 직접 손으로 만지면 차가운 나무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문을 열어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다각도로 판단한 결과 열지 않는 쪽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단 제일 큰 근거는 저 당첨됐다는 글이었는데 저건 전형적인 스팸 광고가 보여주는 문구였다. 만약 저 문을 열게 된다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무언가 좋지 못한 게 풀려날지도 몰랐고 아니면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빼앗아 갈지도 몰랐다.
“아아! 젠장!”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황은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을 했다. 어찌되었든 아직까진 자신에게 별 피해주는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며칠 같이 지내다 보니 약간 적응되기도 했다.
인터넷을 하는 시황은 유머를 보고 잠깐 웃다가도 금세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뒤에 있는 문이 너무 신경 쓰인데다 왜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왔는지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사실 시황은 여자 친구 한 번 못 사귀어본 모태솔로에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소비생활도 거의 하지 못했었다. 거기다 재능까지 없고 지방 사립대를 다니는 터라 사촌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꺼리가 하나도 없어 성공이라든가 자부심 같은 단어와 거리가 매우 멀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항상 시황을 걱정했지만 시황은 그게 다 귀찮을 뿐이었다.
“자자.”
유령 같은 문이 너무나 신경 쓰여 12시가 채 되지 않았음에도 컴퓨터를 할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이건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평소 새벽 3시까지 컴퓨터 하는 건 기본이고 심하면 다음날 9시에 강의가 있음에도 새벽 5시까지 안 잘 때도 빈번했다. 그렇다고 뭔가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인터넷이랑 게임을 좀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었다.
시황이 침대에 눕자 문이 쉽게 열 수 있는 방향으로 저절로 이동한다.
그 장면은 너무나 섬뜩해 시황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나름 과학을 신봉했기 때문에 귀신같은 건 존재 한다고 믿지 않았는데 그 믿음에 큰 수정을 가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한참이나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몇 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눈이 떠졌다. 긴장감 때문에 오줌을 누고 자지 않아서인지 방광이 터지려고 했다.
시황은 비몽사몽으로 방문을 열고 화장실로 향했다. 주위가 어두운데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떠서인지 사물이 제대로 식별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묘하게 느껴지는 이질감과 낯선 느낌에 시황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어?”
여긴 화장실로 가는 고시원의 좁은 복도가 아니었다. 양팔을 잔뜩 휘둘러도 아무것도 닿지 않을 만큼 넓은 공간이었는데 지나칠 정도로 캄캄해 그 무엇도 식별되지 않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이마에선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방금 전에 들어왔던 문을 찾으려고 뒤쪽을 더듬거려봤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이 잡힐 뿐이었다.
온몸이 찌르르하면서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단순한 긴장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시황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당황, 긴장, 두려움 등 온갖 공포에 관련된 단어가 점칠 된 표정이 시황의 얼굴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얼마나 두려웠는지 손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목소리에서 신음성만 자꾸 흘러나왔다.
“사, 살려주세요. 아무나 제발 살려주세요.”
다급한 마음에 우왕좌왕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소심한 시황은 평소에 말도 잘 못했는데 이런 위기 상황이 되자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축하합니다!”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면서 10살 정도 돼 보이는 금발의 꼬마가 큰소리를 외치며 시황의 앞에 나타났다. 어디서 뛰어온 게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뭐, 뭐야?”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자 시황은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리며 손으로 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에 적응을 해서인지 주변이 사물이 분간이 되기 시작했다.
“시황님은 골드 드래곤이신 케즈론님의 유산을 이어받았습니다! 수천 조는 물론이고 수천 경까지 가볍게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확률에 당첨 된 거예요!”
“뭐, 뭐라고?”
시황은 꼬마가 하는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바리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 답답해. 그러니까 시황님이 케즈론님의 유산에 당첨돼서 전 우주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다고요.”
“케즈론님의 유산?”
“그렇다니까요.”
하지만 시황은 아직까지 금발의 꼬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슬쩍 둘러봤는데 이곳은 마치 거대한 성의 내부 같았다. 어딘가의 강당처럼 한없이 넓은 공간의 바닥엔 어떤 동물의 털로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는 카펫이 극상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시황님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여기저기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벽면에는 케즈론인가 뭔가로 추정되는 골드 드래곤의 그림과 조각상이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여긴 도대체…….”
“제가 그냥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해 줄 테니까 따라오세요.”
금발의 꼬마는 시황의 손을 이끌고 응접실로 데려갔다. 그런데 이 응접실이 마치 100평대 아파트의 거실처럼 넓었고 방의 가운데에는 앤티크한 탁자와 소파가 놓여 있었다.
“저,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