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1화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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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주적 행운아

[아이돌이랑 사귀기 vs 5억 받기]

의자에 앉아 인터넷을 하던 시황은 뜬금없이 올라온 글의 제목을 보고 고민했다.

아이돌하고 사귀면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 예쁜 아이와 손을 잡고 다니면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건 물론이고 하루하루가 행복할 게 분명하다.

“하아…….”

단순히 상상만 하는데도 시황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5억이라는 돈도 아이돌과 사귀는 것에 맞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통장에 남은 잔고가 8만원인데 아직 20일은 더 버텨야 용돈이 들어왔다. 한 달에 부모님에게서 20만원을 받는데 밥 먹고 일상 생활하는데도 빠듯한 돈이라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은커녕 타블렛 조차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1억 원만 있다면 스마트 폰은 물론이고 타블렛에 컴퓨터 업그레이드, 거기다 이 좁은 고시원을 벗어나 원룸으로 갈 수도 있었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시황은 글을 클릭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아놨는데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박빙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거 때문에 싸우는 사람까지 있었다.

[엄청 웃기네. 너희들이 이거 고민해봐야 뭐하냐? ㅋㅋ 아무 의미도 없는 짓하네.]

재미있게 댓글을 보다가 마지막에 달린 글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힘이 빠졌다.

“하아, 그렇지. 저런 고민해봐야 현실은 찌질한 인생일 뿐이지.”

시황의 입에서 나지막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느덧 새벽 3시가 지난 걸 보고 시황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왠지 모르게 안구에 습기가 낀다.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했던 것이다.

“꿈도 희망도 없구나.”

종료를 눌러놨던 컴퓨터가 열심히 하드 디스크를 읽다가 꺼진다. 시끄럽게 돌아가던 쿨러도 멈추자 방안은 적막으로 가득 찼다.

시황은 3년 전 군대를 전역하고 다니던 지방대 사립대에 복학했다. 한 학기에 들어가는 학비가 300만 원이 넘었지만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시고 있어 그만한 돈을 내기가 어려웠기에 번번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그렇다보니 갚아야 할 돈만 현재 2000만원이 넘었다.

하지만 더 갑갑한 건 따로 있었다. 그건 시황이 이제 4학년 졸업반임에도 토익을 쳐본 적도 없었고 학점도 3.0이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꿈이 있어 열심히 했냐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특기도 없고 학벌은 낮으며 토익 점수도 없다. 거기다 이 지방 사립대도 고등학교에서 바로 입학한 게 아니라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갈 거라면서 재수까지 하고 온 곳이었다. 이미 나이는 26살이나 됐지만 미래는 어두운 밤하늘처럼 캄캄하기 그지없었다.

4학년 1학기가 개강한지 한 달이나 지났지만 시황은 수업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4학년이라 생각하니 공부할 의욕이 별로 안 생겼기 때문이다.

이른 오후부터 근처 피시방에 간 시황은 요즘 한창 인기인 전설의 리그라는 게임을 실행시켰다. 대전 상대를 검색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편 5명, 상대편 5명 전부 게임에 들어왔고 다들 자신들이 자신 있어 하는 캐릭터를 골랐다. 시황은 고심을 하다 불마법을 쓰는 조그만 여자애를 선택했다.

게임이 시작되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플레이했다. 부모님이 항상 하는 말처럼 이렇게만 공부했어도 과거에 가고 싶었던 명문대는 쉽사리 들어갔을 것이다.

시황의 잘못된 판단으로 자꾸 적에게 죽자 팀원들이 시황을 보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님 뭐하셈? 거기서 왜 혼자 들어가세여?]

[진짜 더럽게 못하네. 야, 너 그냥 전설의 리그 접어라.]

채팅을 본 시황은 기분 나쁘긴 했지만 뭐라 대꾸를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기 때문에 지고 있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우 기분이 상한 관계로 일부러 적에게 죽어주기 시작했다.

[헤헤. 계속 죽네요. 죄송죄송.]

시황은 일부러 죽어놓고 실수라는 듯이 채팅을 하면서 같은 팀원의 화를 돋웠다. 욕만 먹기에는 너무 화가 나 이렇게라도 안 하고는 못 견뎠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패배라는 메시지가 뜨며 게임이 끝이 났다.

레이팅 833.

프로게이머의 레이팅이 2200점이 넘고 평범하게 게임하는 사람은 레이팅 1200정도인 게  보통인데 시황은 800점을 겨우 넘기고 있었다.

그렇다. 시황은 게임에도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특출한 점 하나는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데 적어도 현재의 시황에게선 그런 특출함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젠장. 집이나 가야지.”

수업은 수업대로 다 빼먹고 게임을 하다 기분은 기분대로 망친 시황이 집으로 돌아갔다.

월세 25만원의 고시원은 싼 만큼 시설이 매우 열악했다. TV도 없었고 냉장고도 없었다. 침대 하나와 책상만 덜렁 있는데다 얼마나 좁은지 그 두 개만으로도 공간이 다 찼다.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발가락으로 컴퓨터를 켠 뒤에 옷을 갈아입었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그는 정말 비호감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평소에 옷을 잘 입는 것도 아니었다. 물 빠진 청바지와 오래 입어서 쭈글쭈글해진 파란색 남방이 그가 즐겨 입는 패션이었는데 그냥 봐도 참으로 추레했고 여기에 소심하기까지 해서 아는 여자애는커녕 친한 친구도 없었다.

컴퓨터가 켜지자 콜라를 한 컵 따라와서 의자에 앉아 어제처럼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웹툰을 쭉 훑어보고 IT관련 기사를 읽은 뒤 이곳저곳 흥미롭다 싶은 사이트는 다 돌아다녔다. 시간이 하도 남으니 매우 무료했던 탓이다.

그렇게 소중한 시황의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갔다.

“정말 그래야 하겠소?”

허리까지 오는 금발의 남자가 힘없이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말했다.

“톨레이만. 이미 정한 일이네. 벌써 주사위는 굴려졌어.”

톨레이만은 강렬한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육안으로 확인 될 정도로 거대한 행성이 하늘에 박혀 있었다. 지구에서 보는 달의 10배 이상은 커보였는데 그 모습은 너무나 신비로워 눈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케즈론. 누군지도 모르는 존재에게 이 모든 걸 다 넘기겠다는 말이오? 그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찌한단 말이오?”

“그럴 일은 없을 거네. 쿨럭.”

의자에 앉은 병약한 사내, 케즈론이라 불린 그는 계속해서 기침을 토해내더니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모르는 일이오. 만약 인간이 이 모든 것을 이어 받는다면 그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행동할 것이 분명하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그래서 몇 가지 장치를 해두었지. 자네는 궁금하지 않은가? 이 우주에 있는 생명체 중 단 하나만이 나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네. 하하.”

케즈론은 무엇이 유쾌한지 크게 웃었다. 설원에서 빛나는 눈처럼 하얀 치아가 드러난다.

“난 선택받은 존재를 감시할 것이고 만약 그가 허튼 짓이라도 한다면 단번에 그를 처단할 것이오. 괜찮겠소?”

“그래 준다면 내가 고맙지. 하하. 과연 이 우주에서 나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미치도록 운 좋은 존재는 누구일지 짐작은 가나?”

“라락 행성의 인구가 수 조에 이르는데다 식민지로 삼은 행성도 많으니 그쪽에서 선택받을 확률이 높지 않겠소?”

“하하. 과연 그럴까?”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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