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5 신기루 =========================
그 이후로 2개월이 지났다. 몸은 거의 다 회복되었고. 나도 병원을 나왔다. 소피아의 집, 아버지와는 여전히 같이 살지 않아서. 지하에 있는 것들도 무사히 남아있었다. 다만, 그 집 안에는 소피아도 들어간 적이 없어서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두터운 먼지 위로 나 있는 발자국과 거기를 따라갔을 떄 보이는 토끼머리 인형.
"..."
다녀갔던 모양이지. 본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토끼머리를 두었다는 건. 토끼인형의 이마에는 심장에 볼트가 박힌채로 죽어있는 크리스틴의 시체가 찍혀있었다. 나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달라."
그 말에, 소피아가 나를 바라본다.
"무슨 소리야?"
이 장면 만큼은, 내 머릿 속에 박혀있다시피 남아있다. 나는 손을 뻗어서 가르켰다.
"반달도 아니었고, 구름도 이렇게 많지 않았어. 테이블 위에는 저런 볼펜들이 있지도 않았고. 바닥의 카페트 문양도 약간 틀려."
그 말에 레이첼이 나를 바라본다.
"... 당신, 조금 무서워."
그 말에 나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괜찮을거야."
이 사진은, 나중에 찍힌 사진이다. 저 크리스틴 또한 가짜리라. 뭘 위해서 이렇게 친절하게 상황재현까지 해주셨을까.
크리스틴은 토끼탈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개같은 새끼. 나는 옆에 있는 벽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나와있는 책들의 제목의 머리 글자들을 합치자 하나의 문자가 완성되었다.
'burial'
"크리스틴, 장례식은 치러졌지?"
그 말에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덤으로 가보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짐들을 챙겨서 크리스틴이 묻혀있는 무덤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누가 꽂아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대추나무 가지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
찾아본 결과, 대추나무꽃의 꽃말은 처음 만남.
개새끼가 나랑 퍼즐맞추기라도 하자는 거냐. 나는 이를 갈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처음만난 장소는, 가구점이다. 나는 두 사람에게 부탁해서 돌아가 있게 하고, 혼자서 그곳으로 향했다. 그래, 한 번 정도는 가봐야 할 장소였다.
크리스틴을 처음 만난 그 장소 앞에 선 나는 가만히 그곳을 바라봤다. 가구점이 사라지고,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새로 가게를 연 모양인지, 풍성들이 이리저리 꾸며져 있고, 안에는 제법 활기를 띄고 있었다. 나는 카페에 앉아서 점원에게 음료를 한 잔 시켰고. 오픈 기념 세일이라고 말하며 넘겨주는 과자를 받았다.
그래, 여기에서 뭘 하자는 거지. 과자를 한 입 씹자. 그 안에서 나오는 종이조각. 나는 고개를 들어서 점원을 찾아봤지만. 이미 보이지 않았다.
"... 개같은 새끼가 진짜."
종이를 열어보자. 그 안에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마음 속 깊이 간직해온 작은 사랑으로
로맨스를 꿈꾸던 나의 가슴에 박혀들어간
니 화살이 내 기대와 달리 가슴에 박히고
애달픈 사랑이 끝나버린 건 언제였을까.
- 오늘의 운세 : 물을 조심하세요.
마로니에 공원으로 가라는 건가. 나랑 진짜 장난하지는 건가. 짜증이 날 지경이다.
차를 타고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했다. 중앙에 있는 커다란 분수. 나는 그걸 바라보았다. 물을 조심하라고. 나는 분수대로 향했다. 분수대는 조각상들로 장식되어있었다.
... 그 중에는, 활과 화살을 들고 웃고 있는 큐피드의 동상도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그 동상에 다가갔다.
내가 그녀를 쏘아버린 시간. 나는 천천히 큐피드를 붙잡고 살짝 움직여보았다. 의외로 쉽게 움직이는 큐피드의 동상. 나는 그 동상이 바라보는 곳을 9시로 두었지만. 변화는 없다.
...
오후 9시. 나는 한 바퀴를 돌려서 다시 9시에 맞추었고. 아래쪽에 작은 열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이건."
내가 처음에 살고 있던 집의 열쇠와 똑같이 생겼다. 아마... 그곳으로 가는 열쇠인가.
최초에, 내가 살고 있던 집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로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건물. 나는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 내가 살고 있던 곳 문에 열쇠를 끼웠다. 꼭 맞아들어가며 열리는 문.
그리고, 그 너머에 앉아 있는 바니.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진짜로 이 새끼가 그 녀석인가.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성실하게 문제는 잘 풀었나, 응?"
그 말에, 나는 확신했다. 이 새끼는 진짜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고, 그가 나를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라고. 나는 지금 상당히 가라앉아 있는 상태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기분이 어떤가? 플레이어."
그 말에 나는 그를 바라봤다.
"개 좆같지."
그 말에 그가 큭큭거리다가 나에게 석궁을 던져주었다.
"이제 끝내지. 지겹고도 길었다."
그래, 이렇게 담담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너는 이걸로 끝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를 향해 석궁을 갈겼다. 그의 가슴팍에 깊숙히 박혀들어가는 석궁의 볼트. 그리고 그가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말했다.
"그래서, 로그아웃은 언제 해봤나?"
...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의 가슴에 피가 번지기 시작한다.
"로그 아웃 말이야. 너 게임 밖으로 나가 본 적은 있나?"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게임 밖에서의 기억은 있나? 잭이라는 이름 말고, 밖에 가족들이 있을 거아니야. 추억도 있을거고. 좀 말해줘봐. 바깥 세상은 어떤지."
그 말에, 나는 침묵했다. 밖의 세상.... 밖...
그런거 모른다. 기억이 없다.
침묵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그가 웃는다.
"뭐,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겠지. 너는 이름만 플레이어일 뿐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제대로 말해, 그게 무슨 소리냐."
바니가 웃는다.
"너도 똑같은 거라는 거지. 아, 인생은 작은 아이러니들로 점철되어있는 법이지. 이 얼마나 웃겨?"
나는 멍해진 상태에서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가 나를 보며 말한다.
"뭐야, 제대로 이해 못했냐. 쉽게 말해줄까?"
너도 프로그램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바니가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을 때에는 고통이 약했겠지? 하나만 물어보지, 네 녀석 정신을 잃고 있다가 다시 차렸을 때, 많이 아프던가? 진짜 현실인 것 처럼?"
... 처음에, 자해를 위해서 네일건을 몸에 박아넣었을 때, 나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 레이첼에게 복부를 찔렸을 때 엄청나게 아팠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소피아를 생각하면서 게임이라는 걸 자각하자, 아프지 않았다.
"뭐, 짐작가는게 이제는 있는 모양이네."
그는 큭큭거리며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애초에 이런 걸 왜 하고 있는지 까지는 나도 잘 몰라. 근데, 아무래도 너도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응?"
닥쳐. 라고 말하고 나는 메뉴창을 불러내려고 노력했다.
"로그아웃이... 그럼 내가 찾아봤던 그 인터넷의 글들은 다 뭐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잖아!"
그 외침에, 바니는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말했다.
"그럼 로그아웃인지 지랄인지 한 번 해봐. 나도 궁금하다. 실제로 나갈 수는 있는거냐, 너?"
머리가 아프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나는, 나는...
그리고, 주변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한다.
"역시, 재미없는 신파극이었다니까."
바니의 말을 끝으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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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주변이 분해되어 간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조각조각 뜯어지고, 흩어지고, 사라지기 시작하는 주변의 풍경들.
"뭐, 필요 없어진 모양이지? 다시 시작하는 건가?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 같은데. 이런 행위 따위는."
바니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부서지기 시작하는 잭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본다.
"아, 그래. 내가 이 세상이 가짜라는 걸 깨닫고 지능이 9가 되었다는 건 이미 알고들 있지."
그리고 바니가 히죽거린다.
"10이 된 게 언제인지 알아?"
그리고 바니가 손가락을 흔든다.
"혼자 이야기하는게 아니야. 나는 지금 너희들 보면서 말하고 있다고. 글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독자들이라고 하면 적절한가?"
그러면서 바니는 혼자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키득거린다.
"작은 아이러니가 가득하다니까. 결국은 이 세상이 가짜라고 알고 있는 녀석들도,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니. 얼마나 웃겨."
그리고, 그가 다시 이쪽을 보면서 말한다.
"이 세상은 끝났어. 일부러 저 플레이어에게 스스로가 가짜라는 걸 알려줘서 이 세상은 무너지고 있지. 그야, 저 녀석을 위한 세계였으니까."
이야기는 이제 끝났어.
그 말을 끝으로, 바니조차 흩어져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사실, 쉬겠다고 했을 때 부터 이야기를 뽑아놓았었습니다.
쉬겠다고 한 이유가 사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괜찮은 소재였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잡았으면 훨씬 더 좋게 풀어나갔을 텐데. 이걸 이렇게 끝내버리면 안되지 않나.
차라리 멈출까. 이렇게 밖에 끝내지 못하는 미천한 실력으로 좋은 소재를 망치는 것 같은데. 다시 처음부터 써볼까.
욕 먹을 만한 허접한 구성이었어요. 제대로 회수도 못했고, 마지막에 가서는 뒤틀려버렸고. 집을 짓는 거라고 예전에 말했었는데... 열심히 쌓다가 보니까 이상하게 지어진 모습을 보고 절망 해버렸습니다.
사실 3일 정도 쉬는 동안에도 그냥 그만 둘까. 습작으로 돌릴까. 그 고민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한 번 쭉 훑어보려고 한 번 제가 쓰는 집필 프로그램을 켰는데. 평상시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아래 부분이 들어오더라고요(신기하게 그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소설 쓸 때의 마음가짐? 이런게 적혀있는 곳이었는데.
작품에 대한 진실된 평가를 위해서는 미완성의 걸작보다 완성의 졸작이 더 낫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라고 적혀있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먹었습니다. 잘못 지어지고, 독자들이 실망하고 졸작이라고 욕을 해도. 그래도 끝은 내자.
이번에는 비록 내가 실력이 모잘라서 이렇게 끝냈더라도 이걸 거울 삼아서 다음에는 더 나아지자. 잘못 지은 집에 대한 날선 평가는 평가대로 받아들이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
그래서, 졸작이나마 끝을 냅니다. 실망하셔서 더는 보지 않을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더 나아져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