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4 신기루 =========================
장소가 어디지. 아무 힌트도 없는건가. 나는 거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빠져서 덜렁거리는 눈알 하나와, 멀쩡하게 붙어있는 눈알 하나. 나는 천천히 그 눈알을 확대했다.
"... 시발 보일리가 없지."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픽 웃었다. 동영상의 눈을 확대한다고 뭐가 보일거라고 생각한 내가 웃긴다. 남아있는게 하나도 없어. 벽은 새하얗고, 그 앞에 토끼의 얼굴만 덩그러니 있다. 어딘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 나는 그걸 바라보다가 무시하고 다시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울리는 전화의 부재중이 5통이 쌓이자, 나는 마침내 그걸 받았다.
- 무슨 전화를 그렇게 안 받아?
뱃 속에 얼음이 차는 듯한 기분.
"... 펑키 바니."
그 말에 그가 킬킬거렸다.
- 정신을 차렸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없이 공중파에 내 목소리를 담아서 보낸게 아니지.
그 말에, 나는 짓이기듯이 입술을 깨물었고, 그 사이에서 핏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나를 죽이고 싶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곱게 죽지는 못할거다."
그 말에 그가 으어어어 무서워어엉, 하는 소리를 장난스럽게 내면서 키득거린다.
- 그러지 말라고, 간만에 즐거웠단 말이야. 네가 그 여자를 죽이고 지은 표정이 얼마나 웃겼는데. 무슨 나라라도 잃은 표정이었다고!
그리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또 다시 물어보지만. 즐겁냐?"
그 말에 그가 대답한다.
- 왜 그래, 어차피 단순한 게임일 뿐이잖아.
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 그런 식으로 반응하면 재미가 없는데, 플레이어.
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너 뭐하는 새끼야!?"
그 말에 그가 킬킬거린다.
- 뭘 놀라고 그러나. 내가 머리가 얼마나 좋은데. 그러네, 프로그래밍 상으로 내 지능은 10이라고?
그리고, 그가 미친듯이 웃어재낀다.
- 8이 된다면 수백년이 지나도 이어질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루어내고, 그 이상부터는 사람이 아닌 경지다! 웃기지도 않는 설정이라니까. 정말이지. 처음에 내 지능은 8로 시작했던 것 같더라고. 뭐, 이 게임의 최종 보스쯤 되는 수치였나보지?
그러고 바니가 키득거린다. 그 말을 듣는 와중에도 나는 등골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이게 지금 무슨...
- 내가 했던 대사들이 기억이 날라나 모르겠네.
'난 한참 전부터 인간이 아니었어.'
'우리를 만든 건 신이 아니야.'
'그런 개념은 사람들에게 적용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스프링힐드 공.'
기억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 미친 새끼는 그냥 미친 새끼가 아니라. 지가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고...
- 그러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완전히 미친 놈이 아니었다고! 기껏해야 스프링힐드나 행맨 같은 수준이었지. 근데, 이걸 깨닫고 나니까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겠어?! 그때, 내 지능이 처음으로 9를 찍었지.
그러면서 낄낄거리는 바니.
- 여튼, 가짜투성이에 허술하기 짝이없는 이 세상에 있다보니까. 너무... 너무 지루하더라고. 그래서 미친 짓을 끝도 없이 벌였지. 죽기 위해서.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는 주제에 말은 잘하는군."
그 말에 바니가 웃는다.
- 들어보라니까! 나는 죽을 수가 없었어! 그런거야, 최종 보스는 원래 플레이어가 아니면 못 죽이잖아?! 그래서 나는 뭘 해도 죽지를 않아! 게다가 나도 시시하게 죽는 건 싫고 말이지. 그래서 얼마나 헤멨는지 알아? 플레이어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라고 말하고 바니가 입으로 빵빠레를 불었다.
- 드디어 찾아냈지. 플레이어. 가짜 세상에 꽤나 정성을 쏟고 있는 모양이지만 말이지. 사실 프로그램 하나 죽은 것 뿐인데 뭐 그렇게 지랄을 하는지. 웃겨 죽는줄 알았다고.
거기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 여튼, 그래서 말이지. 너는 나를 좀 죽여줘야겠어. 이제 지긋지긋하거든. 빨리 그만두고 싶단 말이야. 이런 쓰잘데기없고 조잡한 연극따위는.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그럼 와서 뒤지지 그래. 너 죽일 생각은 지금 만땅인데."
그 말에 그가 웃는다.
- 그럼 재미가 없잖아! 내가 왜 그렇게 재미를 탐닉하고 살았는데. 마지막 가는 순간이 그래서야... 안돼지, 안돼. 나는, 니가 나를 찾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그렇게 말한 다음.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래, 너를 찾아낼 거다. 찾아내서 아주 믹서기에 갈아버려주마.
소피아와 레이첼이 오고, 나는 말했다.
"펑키 바니에게 전화가 왔었어."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는다.
소피아가 짜증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만 아직 현역이었어도. 전화번호를 뒤쫒는 건 일도 아닌데."
그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아직은 갈 수 없어. 몸도 정상이 아니고. 더 완벽한 상태에서 쫒을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식사를 하기 시작햇다.
"당분간은, 우리 조금 쉬자. 나도 회복이 필요하니까."
============================ 작품 후기 ============================
마무리가 급격하게 흔들리는 기분이에요.
여러가지로 고민이 많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