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왕자와 거지 =========================
가습기가 김을 뿜어내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조금 집중하면 링거 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소피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지. 뭐 그렇게 무게를 잡고 있어.
"집으로 들어오면, 어디서 잘 거야?"
기껏 물어보는게 그거냐. 나는 소피아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글쎄, 니 침대에서 같이 자지 뭐."
그 말에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한숨을 쉬는 소피아.
"장난하지 말고."
"배에 총을 맞은 거니까. 나으려면 시간이 조금 있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 사이에, 지하에 조금 준비를 해 줄 수 있어?"
그 말에 소피아가 나를 본다.
"내 집에 지하실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 그냥, 감인데."
그 말에 소피아가 쯔, 하고 혀를 차고 말했다.
"많이는 준비 못해. 사람들 눈도 있으니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필요 없어."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그녀가 말한다.
"사과라..."
나는 한숨을 쉬었다.
'먹을 수 있겠냐."
그 말에, 소피아가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말했다.
"어깨라도, 주물러줄까?"
와 뜬금없어라.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적절하지 못한 상황에서 적절하지 못한 물음이었어."
"하지만,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잖아! 괜히 병상에 누워서는..."
그러면서 얼굴을 붉히던 소피아는 자신의 핸드폰이 울리자 그걸 손에 들었다.
"어, 나다."
뭐야 저 갭은. 방금 전까지는 부끄러운 타고 있다가 갑자기 전화기를 드니까 여왕님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잘 모르겠다는 거잖아."
잠깐 있던 소피아가 전화기에 대고 낮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한다.
"이 새끼야, 그걸 그 가격에 팔면 우리는 뭐 남겨 먹어."
잠깐 침묵 하면서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있던 소피아가 고함을 쳤다.
"그게 변명이야 임마!"
한 15분을 그렇게 털어버린 소피아가 다시 나를 본다.
"... 그래서, 주물러 줘?"
나도 눈이 자꾸 이리저리 돌아간다. 그리고 뭔가 애매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야, 이거 뭐야 도대체. 전화기에 대고 말하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나?
주물러 줄까? 주물러줬으면 좋겠지? 나 잘 주무를 자신 있어. 라고 말하는 듯 한 그 눈빛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피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다가와 내 뒤편에 앉았다. 가볍게 자신의 손가락을 푼 소피아가 손을 내 어깨 위로 올린다.
"자자, 어깨에 힘 풀고..."
그리고, 소피아가 손에 힘을 주고 어깨를 누르기 시작한다.
...!
"으하..아..."
어깨에서, 팔뚝으로 이어지는 쪽을 누르고, 그 상태에서 쓸어올린다. 가볍게 관절을 흔들고, 엄지로 눌러 비비는게. 그 지점으로 해서 몸 전체로 알 수 없는 통쾌한 쾌락이 달린다. 신기한게, 어깨를 안마하고 있는데 등쪽이 뻐근해지다가 시원해지기 시작하고. 목덜미를 누르면 양 팔에 짜릿거리는 감각이 달린다.
이건 프로 안마사 수준인데.
"괜찮아?"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아흐흐, 장난 아닌데."
그 말에 무슨 기운이라도 받았는지 점점 소피아의 손이 움직이는게 노련해지고. 어깨를 안마하는 건 만으로도 온몸이 노곤노곤해진다.
"피곤하면 누워도 괜찮아."
그리고 내가 쓰러지듯이 침대에 눕자, 머리맡에 앉은 소피아가 가슴에서 팔로 이어지는 부분을 누르기 시작한다.
"... 집중 하네."
나의 말에, 소피아가 대답한다.
"원래 모든 일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그 말에, 내가 대답한다.
"검은 팬티가 매력적이야."
"나 검은 색을 좋아... "
잠깐 고개를 들고 고민하던 소피아가 이내 내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죽어! 죽어버려라! 산소가 아까우니까 여기서 죽어버려!"
커헉, 커헉 하는 소리를 내던 나의 숨이 제대로 쉬어지고. 소피아가 나를 노려본다.
"무슨 일을 하는거야!? 니가 보여 준 거지 내가 보겠다고 했냐?!"
"빨리 말을 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는 소피아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절대로, 일부러 보여준게 아니야. 나 그렇게 발랑 까진 여자가 아니라고! 알아들어!?"
그러면서 소피아가 나를 바라보고. 나는 머리를 긁었다.
"난 발랑 까진 여자가 좋은데."
그 말에 소피아가 당황한다.
"어... 어... 뻥치지마 이 바보같은 자식! 그런 거 좋아하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있어?"
그 말에 내가 씨익 웃는다.
"얼마나 남자를 많이 만나보셨는지요?"
그 말에 소피아가 침묵한다.
"난 발랑까진게 좋아."
그 말에 소피아가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다가 대답한다.
"... 그럼, 발랑 까진걸로 해둬."
나는 그 말에 킥킥거리면서 웃기 시작했고. 소피아가 쯧,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바라본다.
"숙녀를 놀리다니."
약간, 피로해지는데.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걸 확인한 소피아가 이불을 덮어주고, 조명을 어둡게 바꾼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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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팔장을 낀 채로 앞에 서 있는 레이첼을 보고 있다.
"좋은 시간 보냈어? 소피아."
그 말에 나는 웃는다.
"어머, 자리를 비워주겠다고 하더니. 여기 있었네요. 언니."
그 말에, 그녀가 웃는다.
"아무래도, 나도 사람인지라 긴장이 되지 않겠니?"
그러는 레이첼의 목소리에는, 앞서 달려가고 있는 자의 여유도 있었지만 그것만큼이나 뒤에서 따라붙는 자에 대한 견제도 담겨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너무해요. 언니."
이럴 것 같았지. 제 아무리 레이첼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렇게 쿨하게 나랑 잭만 남겨두고 떠날리가 있나. 분명히 감시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겠네, 잭이 안마를 좋아해서."
그 말에 나는 웃는다.
"그래도, 요리는 언니가 더 잘하잖아요. 부러워요."
나와 레이첼의 눈이 서로를 바라보는 채로 고정된다.
"연륜을 무시하는 걸까. 찬 물도 위 아래가 있다던데."
나이로 밀어붙일 생각은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늙은게 뭐 자랑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잭이 선택하겠죠."
"그렇겠지."
두 사람의 눈에서 불곷 비슷한게 튀어오르고. 거의 동시에 서로 고개를 돌린다.
"두고봐. 잭은 나에게 올 거야."
"그럴리가요."
정작, 잭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겠지. 왠지 얄밉다니까. 짜증나, 여러가지로. 레이첼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가서, 잭 잘 돌봐줘."
그렇게 말하고 레이첼이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내꺼 잠깐 맡겨두는거니까. 소중하게 쓰고 돌려줘야지?"
그 말에 나는 울컥해서 말했다.
"잭이 왜 언니꺼에요!? 내꺼에요!"
그 말에 레이첼이 묘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나 섹스도 했고. 동거도 엄청 오래 했는걸. 이 정도면 혼인신고 하고 접수만 끝나면 바로 신혼부부라고?"
그 말에서 느껴지는 묘한 자부심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 그녀를 바라봤다.
"어차피 잭은 이제 내 집 아래에서 살 거고. 그러다보면 분명히 나도 기회가... 기회가..."
지금 뭔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내가. 나는 말을 차마 이어가지 못하고 레이첼을 노려봤다.
"... 나 놀리는 거죠?"
그 말에 레이첼이 대답한다.
"응."
그리고, 이번에는 진짜로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 저렇게 해놓고 또 안 가는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병실로 돌아와서 잭의 얼굴을 바라봤다.
"거. 더럽게 비실비실하게 생겼는데 말이야."
... 근데 보고 있으면 뭐가 마음이 간질거린다.
============================ 작품 후기 ============================
신파극은 여기까지다!
좋은 밤 되세요. 죄송하지만 저도 대학이라는 걸 다니고 있어서 오늘은 한 편이 한계네요.
방독면 쓰고 침을 뱉는 놀라운 주인공도 수정했어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