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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골목 시뮬레이션-62화 (62/75)

00062 왕자와 거지 =========================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빡센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걸 예상했던 게 아닌데. 소피아는 지금 거의 기억상실 수준이다! 나는 내 옆에서 어설프게 리볼버를 조작하고 있는 소피아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레이첼로써의 기억은 완전하냐면...

그럴리가 없잖아. 어차피 약간의 시간동안 레이첼이 하던 걸 보고 배운게 전부인데. 결국, 소피아의 머릿 속에 남아있는 것들은 아주 최근에 만들어졌던 레이첼로써의 소피아 밖에 없는 거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서 그렇게 폼나게 돌리던 리볼버를 저렇게 허술하게 만지작거리고 있는거고.

= 소피아  : 27세 조직 '호핑 존스'리더 =

지능 : 교수님, 너님 강의 이상한데요[6]

매력 : 내 매력에 대해서 말해보렴 [7.5]

카리스마 : 누가 너더러 입을 열랬지? [7.5]

체력 : 물 한방울 없이 35kg의 짐을 지고 40km를 걸을 수 있는 [7]

힘 : 사실 이 큰 가슴은 다 근육이다! [6]

성적특성 : [여왕님], [열등감], [글래머], [연애 전무], [자아상실]

검은 사랑의 꽃(딸기꽃, 질투) : 성장 완료

나는 상태창을 보면서 기겁했다. 요즘 이거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 직접 열어보니까 이미 딸기꽃은 피어있고, 가면 대신에 자아상실이라는 특성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다. 이제는 뭐 하나 알려주지도 않기로 마음을 먹은건가?

나는 상태창을 닫고 눈 앞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소피아를 바라봤다.

"나 기억이 진짜 안 나. 나 소피아는 맞는 거지, 응?"

오 주여.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절대로 지금 상태가 호핑 존스에 들키면 안된다. 호핑 존스의 보스가 기억상실 비슷한 거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그 순간 호핑 존스는 종말의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할 거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다시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기는 했지만 그녀는 더욱 더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모습이었다.

"나, 미칠 것 같아."

아니, 너 미칠 것 같은게 아니라. 더 미칠 것 같은거겠지. 나는 소피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천천히, 마음을 편히 가져."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크리스틴처럼 되지 않은게 어디야. 그렇게 되었으면 진짜 답도 없었을 텐데.

리볼버를 만지다가, 실수로 탕, 하고 총이 발사되고. 소피아가 그거에 놀라면서 몸을 바르르 떤다.

"으...흑..."

소피아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걸 보고 내가 소피아를 위로하려고 다가가자. 그녀가 리볼버로 자신의 머리를 후려치기 시작한다.

"기억... 크윽.. 기억해줘. 응? 기억하라고! 너 할 줄 알았다고 다들 말하는데. 왜 전혀 못하는거야! 빨리... 빨리이이이!"

나는 그녀가 휘두르는 팔을 막는다.

"심호흡, 진정해. 숨을 깊게 들이쉬고...."

그 말에, 소피아가 당황하면서 자신의 목을 잡는다.

"나... 아... 숨, 심호흡... 어떻게.. 쉬었지? 모르겠..."

그러면서 자신의 목을 붙잡고 파랗게 질리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당황한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건 까먹지 마! 그녀의 눈이 점차 위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미친 이건 아니잖아.

급한대로, 나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고 내가 숨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거기에 맞추어서 그녀의 가슴께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한다.

"아... 아..."

정신이 돌아온 그녀가 다시 호흡을 시작하면서 나를 바라본다.

"안돼겠어. 나..."

점점 까먹는게 많아지기만 하는 것 같다. 이대로 혼자 두면 바지에 오줌도 지릴 기세야. 이 여자. 치매 같은 건가. 시발 이거 진짜 위험한데.

레이첼이, 소피아의 모습을 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서는 가발을 벗는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던 소피아가 얼굴이 굳어버리고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간다.

"... 소피아 상태가 심각하네."

쾅, 닫히는 문을 바라보면서 레이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더 안 좋아진 건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레이첼이 대답했다.

"아니, 그래도 자기가 레이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잖아. 그걸로도 큰 변화야. 분명히 나을거야."

레이첼이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 그래."

사실, 나와 소피아도 문제지만. 레이첼의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점점 진해지고 피부도 수척해지고 있었다. 그야, 소피아는 더 이상 레이첼의 역할을 하지 않으니까. 아가페의 일은 아가페의 일대로 레이첼이 하고. 그렇다고 소피아가 지금 호핑 존스를 이끌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호핑 존스는 호핑 존스대로 레이첼이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가발을 썻다 벗었다 하면서 혼자서 2인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틈나는 대로 돕고 있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있다.

"몸은 괜찮아?"

그 말에, 레이첼이 희미하게 웃는다.

"아니. 괜찮을리가."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첼이 자신의 입술을 검지로 톡 건든다.

"뽀뽀라도 좀 해줘. 요즘 힘들어 죽겠어."

한 번 키스가 끝나고 나서,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꼭, 멀쩡하게 만들어. 알았지? 저런 상태로는 라이벌로 볼 수도 없잖아."

레이첼이 그렇게 말하면서 내 뺨을 한 번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가발을 머리에 뒤집어 썻다.

"그럼, 바뻐서."

레이첼이 떠나고. 나는 소피아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여자 화장실. 그 울음소리는 최근에 너무 많이 들어서. 대번에 소피아라는 걸 알고 난 그 문을 두들겼다.

"소피아! 소피아! 괜찮아?"

그 말에 소피아가 대답한다.

"나, 문 여는 법을 모르겠어서..."

그래 씨발 다 까먹어라! 미쳐버리겠네 아주! 나는 천천히 소피아에게 여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 뭐야 이건."

나는 내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본다.

소피아는 그걸 보면서 입을 쩍 벌리고, 저 너머에서 누군가가 탁탁탁 하는 소리를 내면서 복도를 뛰어 도망친다.

"소피아... 빨리, 응급차."

그렇게 말했지만, 확신이 없다. 나는 흘러나오는 피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칼빵 다음에는 뭐냐 이건. 총알이냐. 하 시팔 진짜... 고통의 연속이구만.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하는 소피아를 보다가 정신을 놓았다. 이렇게 가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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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걸어야 해. 어디에 전화해야 하더라. 전화가... 뭐였지?

"아... 아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손에 쥐고 있는 이게 뭐였지. 나는 나는... 이걸로 뭘 해야하는거야. 앞에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잭을 바라봤다. 안돼, 잭이 죽을거야. 저렇게 피를 흘리면 진짜로 죽어버려.

나 이걸로 뭘 해야 하지. 이게 뭐지. 머리 속이 뭐로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진다.

"제발, 한 번이라도..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기억을..."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뭘 해야 할 지만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기억을 해봐! 잭이 죽을거야! 죽어버린다고! 살려야 하는데.

후욱, 몸 안으로 한기가 밀고 들어온다. 하얀 눈밭. 또 여기야? 이젠 그만 좀 보고 싶어. 그것보다 하필 이렇게 긴급한 순간에 이런게 또 나타나는데?!

내가 소피아의 시체 앞에 서 있다. 흘러내리는 붉은 머리카락. 내가 레이첼이 된 건가. 나는 그 시체를 붙들고 마구 때린다. 일어나, 니가 정말로 잊어버린 나의 기억들이라면. 깨어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잭은...

죽은 소피아의 팔이 툭, 하고 떨어져나가 바닥을 구른다. 그걸 보면서 나는 입술을 깨문다.

내가 너무 바보같아서. 내가 너무 어리석어서. 이렇게 되어버렸어. 소피아였을 때도 좋았었을 텐데. 분명히 행복했을 텐데. 근데 괜히 욕심부리고, 스스로를 남이랑 비교하고. 그래서 결국 눈 앞에서 잭이 죽어가는데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

나는 그대로 나였으면 괜찮았는데. 왜 남을 부러워하고. 가지지 못해서 안달을 부리고. 이제 와서 죽어버린 자신을 그렇게 애타게 찾는거야. 멍청해. 진작에 내가 얼마나 멋있는 여자고,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람인지 알았으면...

그러니까 일어나 줘. 제발!

"일어나아아아!"

내가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내 시선을 붉은 머리카락들이 가린다.

... 뭐야. 이건. 그 머리카락을 가만히 보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서, 머리채를 붙잡는다. 그리고, 당기자 내 머리칼이 통째로 치워지고, 그 아래에 있는 하얀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가...발?"

나는 그걸 툭 하고 바닥에 던졌다. 나는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바라본다.

"이게..."

그리고, 나는 무심결에 옷을 벗어본다. 꽉 동여매진 붕대를 푼다. 하이힐을 벗긴다. 차가운 눈으로 몸을 문지르자 피부 톤을 억지로 바꿔놨던 화장품이 눈에 비벼져 조금씩 지워진다. 점점, 화장품 아래 묻혀있던 하얀 살결이 드러난다. 그렇게 하나씩 벗기고. 나의 모습이 소피아로 바뀔 때 마다...

시체의 모습이 바뀐다. 거기에는 레이첼의 시체가 누워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던 내 눈에서 콘텍트 렌즈가 빠지고. 거기에 숨어있던 보라색 눈이 보인다.

"... 그랬구나."

원래 이 안에는 레이첼이 없었어. 그저, 레이첼을 따라하던 소피아와, 원래 모습을 유지하던 소피아가 있었을 뿐이야. 소피아는 죽지 않았어. 다만, 스스로가 너무나도 레이첼을 따라하던 나머지 소피아였다는 것도 까먹은 내가 있었을 뿐이야.

다시 눈 앞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 씨발."

나는 입으로 탁 하고 말을 내뱉으면서 핸드폰을 들어 병원에 전화를 건다.

"여기 사람 하나 칼 맞았어. 빨리 엠뷸 하나 보내."

그리고 나는 뛰어가서 잭의 사무실에서 붕대와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와 그의 복부에 난 상처를 막는다. 상처가 지나간 곳을 보니, 깔끔하게 관통했다. 의외로 상처가 깊지는 않겠는걸. 지나간 곳도 뼈는 없는 부분이다.

붕대를 감고. 응급처치를 마친 나는 거울을 바라보면서 울부짖었다

"존나 병신같아! 나 어떻하지!? 레이첼 얼굴이랑 잭 얼굴을 어떻게 보냐고! 죽어버릴까?! 그냥 죽어버리는게 좋을 것 같은데!"

맙소사, 상상도 못할 만큼 쪽팔려 죽을 것 같아! 이게 뭐야!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산거야?! 나는 잭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너, 죽기만 해봐! 내가 쫒아가서 다시 죽여버릴거야! 그리고 다시 쫒아가서 또 죽일 테니까!"

죽지마. 그 동안 했던 병신 짓에 사과는 하게 해달라고 이 허약한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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