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1 왕자와 거지 =========================
오늘도 즐거운 하루의 끝.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잭은 내가 뭘 해줘도 잘 먹지만. 그래도 항상 요리를 할 때에는 긴장을 하게 된다. 나는 붉은 머리카락을 슥 쓸어 넘기면서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 왜 안오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절부절하기 시작한다. 1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를 않고 있다. 이런 일 없었는데. 그리고, 문가에 놓여있는 쪽지가 내 눈에 들어온다.
- 잭을 구하고 싶으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고 부둣가로 와라.
눈 앞이 하얗게 물든다. 이게 뭐야. 잭이.. 납치? 말도 안돼. 어제 비로소 잭이 나를 알아줬는데. 어째서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야!?
그 쪽지를 읽고, 나는 정신이 나간채로 재빨리 옷을 입고 부둣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납치 된 거야?! 어떤 자식들이...!
나는 호핑 존스에 전화를 하려고 번호를 눌렀고.
소피아가 전화를 받았다.
- 네, 소피아입니다.
그 말에, 순간적으로 몸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불쾌감이 달리고. 나는 전화기를 끊어버렸다. 소피아 따위에게 부탁하고 싶지는 않아. 게다가 혼자 오라고 했잖아. 가서 어떻게든, 내 실력이라면 가능할 거야.
그리고, 신호등까지 무시하면서 차를 달려 도착한 나는 멀리에서 부둣가를 바라봤다. 척 보더라도 30명이 넘는 인원들이 부둣가에 연장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다.
너무 많다. 나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야. 그래도... 나는 손에 든 권총에 힘을 준다.
할 수 있어. 녀석들이 뒤편으로 숨고. 나는 사격을 시작하면서 몸을 숨긴다.
"진짜로 혼자 왔잖아?!"
텅, 부두에 불빛 하나가 켜지고. 거기에는 잭이 의자에 묶인채로 앉아있다. 그리고 옆에서 식칼을 들고 잭의 목을 겨누고 있는 남자가 하나. 뒤편에서 킬킬거리는 남자가 세 명.
이 정도면 사격으로 한 번에 제압이 가능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권총을 뽑아들어 한 명을 쏘았다. 그리고, 손가락이 삐걱거린다.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손가락이 이상해. 몸이 이상해. 나 사격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한 명이 손 언저리에 총알을 맞고 비명을 지르고. 이어서 사격을 하려던 나의 손을 뒤편에 있는 남자가 꺾는다.
"간도 크구만."
그러면서, 잭의 목에 식칼을 대고 있던 남자가 잭의 복부를 발로 걷어찬다.
"그 발 떼지 못해!?"
그 말에, 그들은 별 말 없이 킥킥거리면서 잭을 걷어차고, 주먹질을 하기 시작한다. 안돼, 잭... 잭...! 안돼! 그러지마!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잭의 몸이 이리저리 들썩거린다. 그의 입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정신을 잃었는지. 고개를 푹 숙인 그 머리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만해! 제발! 부탁이니까아아! 저러다 죽겠어!"
"시끄럽네."
그리고, 내 머리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지고.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꿈에서 보이던 익숙한 그 설원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소피아를 묻었던 눈더미를 파해치고 있었다.
"소피아! 소피아! 빨리 일어나봐!"
나는 정신없이 눈을 파해치고, 거기에는. 머리가 함몰 된 채로 차갑게 얼어붙어있는 소피아의 시체가 묶인채로 딱딱하게 굳어있다.
"일어나! 일어나! 지금 너가 필요해!"
딱딱한 시체를 흔들면서 레이첼이 정신없이 외친다. 일어나, 일어나! 하지만. 소피아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날 리가 없다. 몸에 흉측하게 새겨져 있는 수많은 상처와 함몰된 머리. 이미 소피아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구나. 내 안에 이제 더는 소피아가 없구나. 죽어버렸구나.
여기에는. 내 안에는 이제 레이첼 밖에 없는거야. 그리고, 정신이 든 나는 멀리서 울리는 총소리에 눈을 떴다. 칼을 들고 있던 녀석의 칼에 총알이 맞아서 그가 무기를 떨군다.
"여, 꼴 좋네. 뭐하는 거야? 나도 같이 놀지?"
하얀 드레스 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고, 팔을 꼰 채로 서 있는 소피아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전화하고 끊길래 뭔 일이라도 생겼나 했더니. 이 상황은 다 뭐야."
그리고, 소피아가 손을 몇 번 젓자. 뒤편에 있던 호핑 존스의 조직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항복하면 따로 구타하지 말고 곱게 묶어둬."
소피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혼자 오다니. 무슨 생각이야? 자살에 취미 붙였어? 니 능력을 생각하면서 움직여, 빨강 대가리."
그렇게 말하면서, 소피아가 잭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이야, 꼴 좀 봐. 이게 뭔 상황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소피아가 잭을 묶고 있는 끈들을 풀어낸다. 잭이 쿨럭거리면서 피를 토하고 말했다.
"고마워 소피아."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는 잭의 모습에, 소피아가 픽 웃는다.
"뭐, 애들 끌고 올 필요도 없었겠네. 고작 이 정도 숫자에 잡혀서 절절메고 있었던 거야? 하여튼, 나약한 건 알아줘야해."
소피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슥 본다.
"정리 다 끝났네. 걸을 수는 있겠어?"
그 말에 잭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걸어온다.
"괜찮아?"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잭도 못 구하고. 소피아 따위에게 도움까지 받고.
"... 응. 당신은?"
나의 말에, 잭이 웃는다.
"나야 뭐, 약간 삐걱거리지만 그런대로 멀쩡하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숙인다.
"니 잘못이 아니야. 레이첼."
레이첼, 나는 레이첼. 나는 고개를 숙인채로 운다.
"미안해..."
그리고, 소피아가 이쪽을 보면서 말한다.
"신파극은 나중에 찍어라 좀."
소피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리된 주변을 보고 묶여있는 사람들을 죽 본다.
"데려가서, 뭐하러 이런 짓거리를 했는지 알아봐."
소피아의 명령에 다른 사람들이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그들을 끌고 먼저 호핑 존스로 출발했다.
"다음부터 이런 일 있으면 이쪽에 말을 해. 사람 몇 명 써서 잭 구해내는 건 일도 아니니까."
나를 보면서 소피아가 한마디 던지고. 자신의 차에 올랐다.
뭐야 이 비참한 느낌은. 저건 당연한 거잖아. 나는 레이첼이고, 저 여자는 소피아인걸. 당연히 내가 못하는게 있으면, 소피아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당연하잖아.
... 그게 당연한 건가? 소피아는 찌질하잖아. 그래서 내 안에서 레이첼에게 죽은거잖아. 그런 여자 따위 필요 없는게 맞잖아. 잭에게 사랑도 받을 구석도 없는 멍청한 바보잖아.
그럴리가 없잖아. 레이첼이 할 수 없는 일을 소피아가 할 수 있다고? 그럴리가 없잖아. 그럼 나는 뭣 때문에...
그리고, 잭이 나를 바라본다.
"레이첼, 괜찮아? 얼굴이 창백한데."
그 말에, 나는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응... 그냥, 잠깐 피곤해져서."
잭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함께 돌아왔다. 잭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침대에 눕고. 나는 그 옆에 눕는다.
잭은 빠르게 잠에 들어버리고. 나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져서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는 마음으로 누워있었다.
머릿 속에, 레이첼이 하지 못하는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레이첼이 더 좋잖아. 봐, 여기에 이렇게 누워서 함께 있는 시간은 소피아가 가지지 못하는 시간이야!
잭이 신음을 한다.
저게 누구 때문이지. 나 때문이었지. 잭이 나 때문에 아파졌다. 죄책감이 몸을 휘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잭이 사무실 안에서 나를 보며 말했다.
"저기, 레이첼."
"응?"
잭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돌려서 그를 바라봤고. 그가 입을 열었다.
"요즘 저녁 메뉴가, 너무 비슷비슷하지 않아?"
그 말에, 나는 당황한다. 그러네, 확실히 요즘 내가 만드는 요리들이 다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나 다른 요리 할 줄 모르는 걸.
"... 그런가?"
잭이 나에게 다가온다.
"힘든게 있으면 말해. 식사 정도는 나도 만들 수 있으니까."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러네, 앞으로 조금 더 신경 쓸게, 당신."
그리고, 점심 때가 되서 도시락을 풀어놓는데. 소피아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이쪽을 보면서 손을 올렸다.
"좋은 오후."
그 말에, 잭이 픽 웃는다.
"뭐야, 왠일?"
그 말에 소피아가 털썩 소파에 앉으면서 말한다.
"식사나 같이 하자고."
그리고, 잭과 소피아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조직 일에 관련된 내용인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 밤에 시간을 좀 내줘야겠어."
그 말에, 잭이 나를 흘긋 바라본다.
"레이첼, 괜찮겠어? 오늘 조금 늦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약간 움찔거리다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 항상 괜찮다고 했었잖아. 그러니까.
"응, 잘 다녀와."
--------------------------------------
레이첼이 스스로를 극복했던 그 술집에서. 나는 하얀 가발을 쓰고 있는 레이첼을 바라봤다. 그녀가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면서 가발을 벗는다. 붉은 머리카락이 가발 뒤편에 숨어있다가 흘러내린다.
"정말 이걸로 소피아가 괜찮아질까?"
자작극이라는 거다. 호핑 존스의 조직원들이 나를 감금하고 구타한다. 그리고 쪽지를 받은 소피아가 거기에 레이첼의 모습을 하고 찾아온다. 소피아는 사격도 제대로 못하게 되어버렸고, 능력도 더 이상 이전의 소피아가 아닌 모양이니까. 당연히 그 정도의 숫자에는 지고 말 것이다.
그 뒤에 곧바로, 레이첼이 소피아의 모습을 하고 와서 나와 소피아를 구해준다. 그걸로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 금이 가게 만든다. 거기까지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계획이었다.
나는 레이첼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걸로 바로 나아지지는 않을거야."
시기심에서 비롯되고 있다면, 설사 소피아가 자신의 모습을 다시 취하더라도 그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면 계속해서 그 감정들이 소피아를 좀 먹겠지. 이런 자작극 정도로 나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것보다...
"... 호핑 존스는?"
그 말에, 레이첼이 한 숨을 쉰다.
"내 능력으로는 슬슬 위험해. 애초에 내가 관리하고 있던 조직도 아니고 규모도 너무 커. 소피아가 빨리 정신 차려주지 않으면 곤란해질거야."
말 그대로, 원래부터 호핑 존스가 커가는 것을 보고, 조직의 구성과 인간들의 성격까지 꿰차고 있는 소피아가 관리하는 것과 레이첼이 관리하는 건 차이가 크다. 나는 술을 한 잔 마시고 그녀를 바라봤다.
"오래 걸리지는 않길 빌어야지."
소피아는 조만간 다시 소피아의 모습을 할 거다. 그걸로 급한 불을 끌 수 있겠지.
진짜로 소피아가 가진 그 시기심을 가져가는 건 조금 더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
잭이 소피아를 만나러 간 사이. 나는 거울을 천천히 바라보다가. 꽉 압박하고 있던 붕대를 풀어보았다. 답답한 느낌이 가시고. 나는 그걸 바라보면서 멍해진다.
".. 나 누구야?"
천천히 머리에 쓰고 있던 가발을 벗어본다. 하얀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그 모습은 소피아다. 당연하지, 나 소피아였다가 그 모습이 싫어서 레이첼이 되었으니까. 근데...
나는 도대체 누구야. 나는 뭐야? 나 레이첼인가? 나 소피아인가?
둘 다 아닌 것 같아. 나는 도대체...
누구였지? 그래, 원래는 소피아였지. 많이 모자라고, 마음에 안드는 것 투성이었던 소피아. 그래서 레이첼이 되기로 했었고. 지금의 내 머리 속에 소피아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냥, 내가 과거에 소피아였던 사실 하나만이 얼룩처럼 남아서 내 머리를 맴돈다.
레이첼의 모습은 내가 아닌 것 같고. 소피아는 관련된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르겠어. 둘 다 내가 아닌 것 같다.
지금 소피아의 모습을 한 번 해봤지만. 그 때에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았는지, 뭘 하면서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리고, 화장실의 뒤편에서 문이 열린다.
"레이첼, 뭐하고 있는거야. 갑자기 그런 모습 하고서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서 잭을 바라봤다.
"잭, 나 이상해."
그 말에, 잭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 레이첼 맞아?"
그 말에, 잭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레이첼이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맞다고 했는데. 아닐리가 있어? 아직도 불안해?"
그 말에 나는 대답한다.
"하지만... 하지만 뭔가가.."
"그럼, 니가 소피아라는 소리를 하고 싶은거야?"
그건 아니야. 왜냐면, 나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겠는 걸.
잭이 나를 바라보다가 내 머리에 가발을 씌워주고. 가슴에 붕대를 감아준다.
"가자, 레이첼. 피곤해보여."
기억나는 건 하나다. 나는 원래 레이첼이 아니었어. 소피아였어. 근데, 소피아는 어떤 사람이었지. 머리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나는 내 곁에 있는 잭을 꽉 끌어안고 웅크려서 잠이 든다.
설원에서, 레이첼은 아직도 소피아를 바라보고 있다. 살아나, 살아나. 라고 말하면서 그 시체의 몸을 흔들지만. 여전히 죽어있고,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뺨을 때리고... 어떤 행위에도 죽은 소피아는 살아날 리가 없다.
설원에 있던 소피아가 죽으면서, 내 안에 있던 소피아의 기억들이 다 날아가버렸구나. 나는 그렇게 직감적으로 깨닫고 침대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베게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독자분들의 혼란을 야기해서 죄송합니다! 최대한 이해가 갈 수 있도록 다시 정돈해보겠습니다... 흑.
한참 모자란 능력이라... 돌아버리겠네요. 꼭 쓰고 싶었는데. 역할 체인지. 역시 어렵네요. 다 열정이 딸려서 그런겁니다 제가. 노력해서 고쳐놓겠습니다.
두 사람의 상태창도... 제가 이야기 구워내면서 꼭 넣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놓치고 가버렸네요. 이게 즉석빵의 문제에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그 파트도 넣어놓겠습니다. 당연히 그걸로는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