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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골목 시뮬레이션-60화 (60/75)

00060 왕자와 거지 =========================

1개월, 약속한 시간이 지났다. 소피아는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고, 잠시 뒤에 나를 바라본다.

"응, 이제 잠시 나가있어줄래 당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레이첼의 몸 상태가 정상일까. 멀쩡할까. 걱정이 된다. 물론, 소피아는 내가 자신을 레이첼이라고 알아줄 거라 믿는다. 그렇기에 별 다른 제제를 레이첼에게 가하지는 않았겠지만.

잠시 뒤에, 문이 열리고, 나는 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

두 사람이, 각자 의자에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색 나비모양의 가면을 쓴 채로. 나는 그 두 사람의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를 보자마자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외친다.

"당신! 괜찮아!?"

... 미치겠네. 너 목소리는 어떻게 바꾼거냐 소피아? 나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는 두 사람은 목소리, 톤, 사용하는 단어들이 너무나도 같았다. 사실, 레이첼이 둘로 나누어져서 내 앞에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같은 목소리.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만 남고 하나는 잠시 자리를."

그렇게 말하고, 나는 왼쪽의 레이첼을 가리켰다.

"일단 잠깐만. 부탁할게."

그 말에, 문이 열리고 그 레이첼을 남자 두 명이 데리고 사라진다.

나는 유심히 레이첼을 바라본다.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지? 갑자기 나 습격받아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리고 이 상황은 뭐야...?"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본다.

"레이첼."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대답한다.

"응."

나는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예전에 했던 말 기억나? 가끔 해주겠다고 하던거."

그 말에, 레이첼이 나를 바라본다.

"이 상황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레이첼이 약간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정말이지."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그때와는 다르게 거칠고 잠겨있는 목소리지만. 그래도 들으면서 분명히 느껴진다.

우연이겠지만. 내 눈 앞에 서 있는 이 레이첼이. 진짜다.

"괜찮았어? 목이 잠겨서 조금 걱정인데."

그리고, 나는 그녀를 잠깐 내보내고. 밖에 나가있던 레이첼을 불러왔다. 그리고, 노래를 부른 레이첼이 나간다.

둘만 남은 방에서. 나는 레이첼에게 같은 부탁을 한다.

그리고, 이 레이첼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그때와는 다르게 거칠고 잠겨있는 목소리지만. 그래도 들으면서... 들으면서... 니미 시팔!

이젠 모르겠다. 이게 뭐야. 있을 수나 있는 일이냐 이게. 어떻게 두 사람이 이렇게 똑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지!

나는 그녀까지 밖으로 내보내고. 머리를 싸메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씨발 이게 뭐야! 조금 적당히 닮으란 말이다! 이게 무슨 옹고집전 이냐!? 소피아는 막 짚단 인형같은거였냐?!"

노래라면, 그거라면 알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닮아버리면 이제는 솔직히 제대로 파악도 할 수 없잖아. 소피아, 너는 무슨 메타몽 같은거냐1?

나는 혼자 남아서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알아 낼 수 있지. 노래로는 분명히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이상 레이첼이 가지고 있던 특징을 통해서 소피아를 가려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다른 방법이 없을까.

30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레이첼 한 명을 불러오게 했다.

그리고, 앞에 앉아있는 레이첼에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레이첼이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랬구나. 소피아, 그 아이가..."

이제부터가 진짜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부탁인데, 레이첼. 당분간 소피아의 역할을 해줄 수 있어?"

그 말에, 레이첼이 당황하면서 나를 본다.

"소피아를?"

그리고 레이첼이 대답한다.

"그건... 조금..."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역시... 알았어. 괜한 부탁이었나봐."

그 말에, 레이첼이 당황하면서 말을 잇는다.

"하지만, 당신 부탁이라면 할 수는 있어! 그러니까 맡겨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줄래?"

그리고, 레이첼이 다시 나가고. 다른 레이첼이 들어온다. 같은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피아의 역할을 해달라고 하는 내 말에, 레이첼이 대답한다.

"...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

나는 대답한다.

"소피아는 지금 정상이 아니야. 뭔가에 갇혀있어. 마치, 마치..."

레이첼이 말한다.

"예전의 나 처럼?"

그리고, 레이첼이 웃었다.

"내가 소피아의 역할을 한다고 해도, 당신. 소피아가 정신을 차릴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확신은 못하지만. 가능할 것 같아. 그리고, 사실 지금의 소피아 상태라면 내가 레이첼을 선택한다고 해도 목숨을 보장할 수가 없어."

그것도 사실이네. 라고 레이첼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믿을게. 나도 어떻게 보면 당신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분명히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레이첼이 웃는다.

"물론, 정신 차리면 소피아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엉덩이 삼백대는 때려야겠어. 이유도 모르고 갇혀서 한달이나 있어야 했다니. 너무하잖아."

그러면서 웃는 레이첼.

"... 괜찮은거야?"

그 말에 레이첼이 대답한다.

"당신은 멀쩡하잖아. 그러면 문제 없어. 그 아이도 당신을 사랑해서 그러는 거잖아."

그 마음 알 것 같아.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가 소피아를 연기하면 되는 거지?"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해볼게."

내 머릿이 복잡해진다. 천천히 머릿 속에서 테트리스를 하듯이 뭔가가 차곡차곡 쌓이고. 그게 하나의 건물처럼 세워진다. 좋아. 이거면 될 것 같은데.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레이첼을 바라봤다.

"조금, 수고해줘."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밖에 있던 소피아를 불러왔다.

"누가 레이첼인지 알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소피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이첼."

그 말에, 소피아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역시 알아주는구나!"

그리고, 나는 레이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웃기지도 않는 연극은 그만해. 소피아."

그 말에, 레이첼이 벌떡 일어난다.

"... 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어째서 나를 몰라주는거야!? 내가 진짜라고! 내가 진짜야! 당신, 모르겠어?!"

그리고, 소피아가 그렇게 소리치는 레이첼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 팔을 끌어안는다.

"저리가, 소피아. 잭은 내꺼야."

그러면서 미소짓는 소피아. 나는 소리치면서 이동하는 레이첼을 보며 말했다.

"빨리, 너의 위치로 돌아가. 소피아."

그 말에, 레이첼이 가슴을 들썩거리면서 말했다.

"... 너무해. 이런 건 너무해."

레이첼 연기 장난 아닌데. 감탄스럽다. 소피아가 내 곁에 안겨서 부비적거리는 틈을 타서 레이첼이 이쪽으로 윙크를 날린다. 그래, 잘하고 있다.

당분간은, 레이첼이 소피아가 되고 소피아가 레이첼이 되는 기묘한 연극이 계속될 것 같다. 그리고, 소피아가 그런 레이첼을 보며 뭔가를 툭 던졌다.

"돌아가."

그 앞에 떨어져 있는건, 새하얀 색의 가발. 그걸 레이첼이 바라보다가 머리에 뒤집어 쓰고 울상을 짓는다.

"좋아, 나 기분이 너무 좋아. 당신, 사랑해. 내가 진짜라고 알아 줄 거라고 믿었어."

그러면서 후후후 하고 웃는 소피아. 나는 그녀의 허리를 천천히 감싸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그 말에, 소피아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럴리가 없잖아."

이제 시작이다. 한 번 해보자고. 나는 하얀 가발을 뒤집어쓰고 나를 보는 레이첼에게 가볍게 눈짓으로 인사를 했다.

조금만 참아줘.

그렇게, 오후가 지나가고. 밤이 된 나는 옆에서 웃고 있는 소피아와 함께 밤거리를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굳이 오늘 바로 나온 이유는 하나의 실험을 해보기 위해서다.

로고스의 게임센터는 화끈해서, 진짜 총을 가져다 놓고 사격게임을 한다. 예전에 레이첼이랑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지. 나는 그걸 바라보다가 소피아를 바라봤다.

"한 번, 해보겠어?"

그 말에, 소피아가 잠깐 고민하다가 손에 총을 잡았다. 그 자세가, 너무나도 어색하다.

20개의 과녁 중에서, 12개를 맞추었다. 물론, 나쁜 실력은 아니지만. 소피아라면 저런 웃기지도 않는 사격은 한 손으로 쏴도 20개를 다 맞출텐데. 하지만, 가면을 멋은 상태에서 가끔씩 붉은 가발 아래로 비치는 하얀 머리카락들은, 그녀가 소피아가 맞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근데 진짜 신기하네. 어떻게 예전에 레이첼이 맞췄던 개 수랑 비슷한 개 수를 맞추지.

생각대로, 몸이 정신에 지배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레이첼로 여기고 있으니까. 사격도 딱 레이첼 정도의 수준으로만 할 수 있게 된 모양이지.

그럼 내가 생각한 계획은 가능할 것 같다.

============================ 작품 후기 ============================

소피아가 레이첼, 레이첼이 소피아. 조금 속도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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