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8 늦게 일어났다고 덜 위험하지는 않은 법이다 =========================
솔직히 무서워지기 시작하는게. 나는 절대로 소피아가 레이첼을 완전히 따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두 사람의 성격에는 차이가 있고. 쓰고 있던 가발도 어색하고 몸짓과 손짓도 어색했다. 그야, 이십 몇 년을 소피아로 살아왔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가 레이첼이 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레이첼처럼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레이첼."
"응? 불렀어?"
라고 말하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귓머리를 살짝 쓸어서 귓바퀴 뒤로 넘기는 그 모습은 이제는 완벽하게 레이첼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따스한 미소.
의외로 독특한 것은, 내가 소피아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면서도 그녀에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녀가 먼저 나서서 잠자리를 거부할 줄은 몰랐다. 이유가 뭔지 몰라서 한 동안 고민했는데. 의외로 결과는 간단했다.
이 여자는 음모가, 하얀색이려나?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이 비열하고 추잡한 머릿 속을 습격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어차피 지금 내 앞에 있는 소피아는 소피아가 아니라 레이첼이니까. 소피아에 대한 질문을 해도 대답을 제대로 해줄 리가 없다.
오늘 소피아가 싸온 식사는 핫도그. 안에다가 레이첼이 시도해서 성공했던 소스가 들어가 있는 그 핫도그다. 무심코 소피아라고 부르려던 나는 재빨리 호칭을 레이첼로 바꾼다.
"레이첼, 편식 있었나?"
소피아는 음식을 아무거나 잘 먹는다. 레이첼은 몇 가지 음식을 싫어하는데, 그 대표주자가 바로 오이다. 피클까지도 혐오할 정도로 오이를 먹지 않는 레이첼.
그리고 그녀를 따라하고 있는 소피아도 자신의 핫도그에는 피클을 넣지않았다. 그리고, 약간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웃는 레이... 아, 소피아.
"무슨 소리야, 나 원래 오이 안 먹잖아."
농담도, 라면서 후훗 하고 웃는 소피아.
거의 완벽하다! 나는 혼자서 탄식을 할 뻔했다. 지금 소피아의 몸을 살펴보자면. 일단 레이첼의 머리 색과 완전히 똑같은 색깔의 가발, 압박 붕대로 꽉꽉 눌러담아 사이즈를 굉장히 줄여놓은 가슴. 연한 녹색의 원피스 드레스와 약간 굽이 높은 힐.
당연하다는 듯이 내 집에 들어와서 레이첼의 옷장을 뒤지고, 거기에서 옷을 꺼내 입으면서 잘 어울려? 라고 말하는 소피아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레이첼의 옷 대부분은 슬프게도 소피아의 우람한 갑빠에는 어울리지 않는 겸손한 사이즈였고. 소피아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과 식칼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보기 시작했었다.
내가 곁에서 말리지 않았으면. 그날이야말로 로고스 시티에서 전설의 부족인 아마존이 부활하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소피아가 과다 출혈 같은 걸로 죽거나.
소피아, 소피아. 이 여자가 나한테 까칠하게 굴던 모습이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그 성격을 다시 살리고 저 해괴한 코스프레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이마에 리볼버를 대고 협박당하는게 지금처럼 팔짱을 끼고 당신, 당신 거리면서 컷팅칼로 자른 핫도그를 먹여주는 모습보다 백배는 좋다.
무심코 나온 나의 한마디.
"소피아가 보고 싶네."
그 말에, 소피아의 몸이 굳는다.
"... 그 여자는 왜?"
그 말에, 나는 머리를 긁었다.
"그냥, 그리워서."
그리고, 소피아의 얼굴이 나에게 다가오고, 은은한 레이첼의 향수 내음이 내 코를 덮친다.
"그런 한심한 여자는 잊어. 내가 있잖아."
내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혀가. 따끔거리는 탄산음료를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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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피아는 꿈을 꾼다. 그렇게 바래 마지않던 잭의 곁에서 항상 잠들지만. 그녀의 몸은 항상 무겁다. 그 꿈이 그녀를 항상 괴롭힌다. 거기에는, 소피아가 묶인 채로 무릎꿇고 있고. 그녀를 레이첼이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붉은머리, 우월한 몸매, 태양같이 따스한 성격의 레이첼이.
꿈 속은 항상, 끝임없이 펼쳐져 있는 설원이다. 살짝 발을 딛으면 그걸로 발목까지 눈에 파묻힐 정도로 잔뜩 눈이 내린 설원. 거기에서 소피아는 항상 슬픈 표정으로 레이첼을 바라본다.
그리고, 레이첼이 비웃음을 띄우고 팔다리가 꽁꽁 묶인 소피아를 바라본다.
"누가 제일 걸레같은 년이지?"
그 말에 소피아는 대답한다.
"저입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레이첼은 다음의 말을 이어간다.
"쓸데없이 가슴에 기름만 잔뜩 낀 채로. 할 줄 아는 건 총알이나 갈기는 것 뿐인 한심한 여자는 누구지?"
그 말에도, 소피아가 고개를 숙인채로 대답한다.
"저입니다."
그런 질문들이 이어자고나면, 비웃음 소리와 함께 레이첼은 소피아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옷을 벗긴다.
"희끄무래한 이 머리카락부터 바꾸자."
그리고, 레이첼은 소피아의 발등을 찍고. 소피아는 비명을 지른다. 피를 양동이에 받으면서, 레이첼은 멈추지 않고 소피아라는 여자가 얼마나 한심하고 쓸모없고 비루먹은 여자인지 계속해서 말한다. 양동이에 받은 피가 아직 뜨거운 김을 올리고 있을 때. 레이첼은 깔보듯이 소피아를 보며 말한다.
"조금은 더 나은 인간이 되게 해줄게."
그리고, 그 피로 소피아의 머리를 적시고. 검붉은 피가 소피아의 머리에 엉겨붙는다.
"아핫! 이제 조금 봐줄 만 하네."
소피아가 그 말에 고개를 숙인채로 울면서 대답한다.
"감사... 감사합니다."
벌거벗은 그녀의 몸을 바라보던 레이첼이 말한다.
"뭐야, 이 기분나쁜 색깔은."
그러면서 엄지와 검지로 소피아의 젖꼭지를 잡아 비트는 레이첼. 신음하는 소피아.
"저열한 색깔이야. 기품이라고는 없고. 쓸데없이 수컷들만 홀리는구나. 천한 몸뚱아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소피아는 울면서 중얼거리고. 레이첼은 당연하지! 라고 외친 다음 그녀의 젖꼭지를 꼬집고 비틀어서 시뻘겋게 부어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녀의 배를 차서 눕힌 다음 하이힐을 가슴 위에 올리고 짓누르기 시작한다.
"아무리 바꿔주려고 해도 이건 어쩔 수 없구나. 젖 좀 보라지. 이렇게 커다란 걸 달고 다니니까 잭이 피하는거 아니야. 둔해보일 정도로 무식하게 커서는."
그러고는 레이첼은 하이힐로 소피아의 배를 내려찍고, 소피아의 입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꿈 속의 장면들. 소피아의 얼굴을 칼날이 이리저리 긋고, 가슴을 잘라내고, 소중한 곳을 시뻘겋게 될 때 까지 괴롭히는 레이첼. 피부의 색을 바꿔 준다면서 채찍으로 온 몸을 후려치는 레이첼. 고통받는 소피아. 태어나서 잘못이라고, 병신같은 년이라고. 그렇게 자학하면서 고개를 몇 번이고 숙이며 레이첼에게 비는 소피아.
그 장면에서 소피아는 깨어났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그리고 옆에 자고 있는 잭을 보면서 작게 미소짓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레이첼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소피아는 싫어. 소피아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잭을 끌어안고 잠에 든다.
그리고 오늘, 잭의 입에서 무심코 나온 말이 소피아의 머릿 속을 맴돌았다. 그런 쓸모없는 년은 뭐하러 보고싶은데? 저녁을 먹고, 거울은 커녕 자신의 몸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몸을 씻은 다음, 소피아는 잭의 품에 안겨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 앞에 펼쳐지는 끝없는 설원.
이번 꿈은 약간 다르다. 레이첼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소피아를 보고 있고. 소피아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레이첼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몸에는 고름이 흐르고, 피딱지가 엉겨붙은 흉터들 투성이고, 머리카락에 엉겨붙은 피는 검붉게 덩어리져있다. 한쪽 눈은 상처가 난 뒤 엉겨붙은 피딱지로 감겨서 떠지지도 않고. 남은 눈 하나도 얼마나 맞았는지 시퍼렇게 부어올라서 앞도 제대로 못 볼 지경이다. 쿨럭거릴 때 마다 입 안에서 진한 피를 게워내는 소피아. 그럼에도 그녀는 허리를 곧게 세운채로 무릎꿇고 레이첼을 올려보고 있었다.
"건방진 년이네."
소피아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레이첼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의 머리를 삽으로 한 대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게 더 이상 엉겨붙을 곳도 없는 소피아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
"삽이 있어서 다행이야."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고 삽으로 눈을 퍼서 소피아의 몸을 덮기 시작했다.
"사라져, 사라져. 너 같은 찌질한 년이 아직도 내 안에 있다는 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으니까 사라져!"
눈이 점점 소피아의 몸을 덮기 시작한다. 추위로 인해서 소피아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리고, 얼굴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 와중에 소피아는 레이첼을 보면서 차갑게 내뱉었다.
"언젠가는 이 외롭고 추운 설원에도 봄이 오겠지. 그럼 니가 나를 가리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쌓아올린 눈은 녹아내릴거야."
닥쳐, 라고 말하면서 레이첼이 다시 삽으로 그녀를 후려친다. 소피아의 눈이 점점 흐려진다. 삽날이 치고 지나간 머리의 일부분이 함몰되었는지. 소피아의 골상이 기괴하게 무너져 있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 녹으면, 다 보여질거야. 병신같은 년."
그리고, 소피아의 머리 위쪽으로도 두껍게 눈이 쌓여서. 마치 하나의 무덤 같은 둔덕이 설원에 만들어졌다.
============================ 작품 후기 ============================
4000이 넘었어요. 저의 정신 건강과 독자 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소피아와 잭의 달짝지근한 불장난을 외전으로 쓰려고요.
소피아도 불쌍하고. 여러분의 말대로 갑자기 잭도 조금 불쌍하고.
근데, 안 굴리면 재미없다고 할 거잖아요! 초반에도 잭 조금 잘나가니까 꼴보기 싫다고... 그랬으면서.